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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49화 (149/340)

제149화

* * *

민성과 백야는 다행히 열 번째 초콜릿에서 원하는 카드를 얻을 수 있었다.

지도를 펼친 두 사람은 다음으로 만만한 곳을 찾다가 미니미즈 파크로 향하기로 했다.

“미니미즈는 알아? 작고 노란 애들. 바나나 바바나나~”

“그게 무슨 노래야….”

미니미즈의 바나나 송을 부르던 민성은 그곳에 가면 저희가 탈 수 있는 놀이 기구가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형 귀신은 안 무서워하면서 놀이 기구는 무서워?”

“나 고소 공포증 있어.”

“진짜? 비행기는 잘 탔잖아.”

“창문만 안 보면 괜찮아.”

생각해 보면 민성은 늘 통로 자리에 앉았던 것 같았다.

“왜 말 안 했어?”

“무슨 자랑이라고. 심한 건 아니라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백야의 걱정 어린 얼굴에 민성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나저나 너 얼굴이 더 빨개졌어. 볼만 빨간데?”

“더워서 그래.”

볼 터치를 한 듯 빨간 두 볼에 민성이 백야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모자라도 써야 하는 게 아니냐며 자세히 살피려 들자 백야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우, 우리도 아이스크림 먹자!”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가판대를 가리키는 손이 다급했다.

“맛있겠다. 형, 나 저거 사 줘.”

민성이 더 의심하기 전에 슬슬 떨어져야겠다 생각한 백야는 그를 막무가내로 잡아끌었다.

자연스레 스텝들의 몫까지 챙기게 된 두 사람은 손이 자유롭지 못한 VJ들을 배려해 잠시 그늘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테마에 맞게 꾸며진 쉼터가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니는데도 아무도 못 알아보니까 이건 이거대로 기분이 이상하다. 그치, 백야야.”

“응. 조금.”

민성과 백야가 비어 있는 벤치로 향하던 때였다. 갑자기 나무 뒤에서 튀어나온 아이가 백야와 세게 부딪혔다.

“아야.”

“으아아앙!”

다행히 넘어지기 직전에 백야가 잡아 주어 다치진 않았지만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괜찮아?”

눈높이를 맞춰 앉은 백야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나 아이는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발견하곤 더 크게 울 뿐이었다.

“으아앙!”

“다, 다쳤나?”

당황한 백야가 조심스레 몸을 살피는데 아이의 부모가 달려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이스크림 값을 계산하느라 잠깐 한눈판 사이에….”

“아…….”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 백야가 민성을 힐끔 돌아봤다. 민성도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눈앞의 남자가 사과를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사과하시는 것 같은데, 너는. 다친 데 없어?”

“나는 없, 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셔츠와 손이 엉망이었다. 아이를 받느라 놓친 아이스크림도 바닥에 떨어져 먹을 수 없게 됐다.

남자도 뒤늦게 발견한 듯 지갑을 꺼내 들었으나 백야가 괜찮다며 사양했다.

부모의 꾸짖음에 죄송하다는 말을 우물거리던 아이는 백야의 손 인사를 받으며 돌아갔다.

“잘 가~”

스텝들도 처음엔 당황했으나 좋은 영상을 건지게 됐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한편 부모의 극성으로 백야가 곤란해지진 않을까 마음 졸이던 한 사람. 남경은 두 부자가 돌아가기 무섭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백야 괜찮아?”

“아, 남경이 형. 전 괜찮아요.”

한쪽에선 통역사와 제작진이 남자에게 리얼리티 출연에 관한 동의를 얻고 있었다.

“옷이 엉망이네. 잠깐만 기다려. 내가 차에 여벌 있는 거 가져올게.”

“아니에요. 대충 닦아 내면 돼요.”

이곳에서 주차장까지 다녀오려면 못해도 30분은 걸릴 것 같았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남경을 고생시킬 수 없었던 백야는 그를 재차 말렸다.

“물로 씻어 보고 그래도 안 지워지면 그냥 사 입을게요. 기념품 샵에 예쁜 옷 많던데요, 뭘.”

“…그럴래, 그럼?”

남경이 솔깃해하자 그 모습이 우스운지 백야가 소리 내어 웃었다.

“네. 그럼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같이 가.”

민성이 백야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지금이 이들과 떨어질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백야는 극구 거절했다.

“아니야, 나 혼자 다녀올게. 형 아이스크림 먹고 있어.”

“그래도.”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인데 뭐.”

말하는 것만큼 엄청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 사실이었다.

“얼른 다녀올게!”

두 사람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피해야겠다 생각한 백야는 걸음을 서둘렀다.

‘일단은 보는 눈이 많으니까 화장실 가는 척하자.’

매직 월드에서 미니미즈 파크로 향하는 길은 조금 외진 편이라 화장실에도 선객 한 명을 제외하곤 백야뿐이었다.

아무도 없을 때 뒷문이나 샛길로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백야는 세면대 앞으로 향했다. 그리곤 손을 씻는 척 스트레스 지수부터 확인했다.

▷ 스트레스 : 75%

애매한 숫자였다.

이럴 때 말도 안 되는 퀘스트라도 떠 주면 좋을 텐데. 오늘따라 퀘스트 알림도 잠잠했다.

‘스트레스를 당장 100까지 어떻게 끌어올리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깔끔하게 엔딩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디 호수에라도 뛰어들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 백야가 멍하니 흐르는 물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상태창이 떠올랐다.

[업데이트 준비 완료!]

[v.1.2 업데이트가 60초 후에 시작됩니다. 설치가 완료되면 게임이 자동으로 실행됩니다.

▶ 나중에

ㅤㅤ설치]

“끕!”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업데이트 준비 완료 알림이었다.

살았다!

입술을 짓씹어 비명을 삼킨 백야가 망설임 없이 설치를 눌렀다.

‘나중에는 무슨 나중에야.’

조금만 늦게 떴으면 팔자에도 없는 익사를 할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눈앞이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마냥 기분 탓은 아니었는지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뭐지. 몸이 왜…….”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세면대를 짚으며 넘어지는 건 면했지만, 몰려오는 수마에 눈이 감기는 건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때 흐려지는 시야로 시스템 창이 하나 더 떠오른 게 보였다.

[※ 업데이트 중에는 행동불능 상태가 됩니다.]

무거운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느낌과 동시에 암전이었다.

하. 망겜.

* * *

“아으… 머리야.”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세게 찧었는지 혹이 난 것 같았다.

‘뇌진탕 걸린 거 아니야?’

몸을 일으켜 앉은 백야가 머리통을 꾹꾹 눌러 보며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하필이면 머리가 있던 쪽의 타일만 붉은색이라 피인 줄 알고 다시 기절할 뻔했지 뭔가. 다행히 머리가 깨진 건 아닌 듯했다.

“휴.”

바닥을 짚고 일어난 백야는 거울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다. 깨어난 뒤로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확실히 얼굴의 홍조가 사라져 있었다.

‘업데이트되면서 스트레스 지수가 리셋됐나?’

개복치의 희망 회로가 가동됐다.

원래 게임에서도 레벨 업을 하면 체력이나 마나 같은 게 100%로 채워지지 않던가.

겜알못 백야는 가끔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나 기절하자마자 바로 일어난 건가?’

눈을 떴을 땐 시간이 꽤 지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는 걸 보니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좋아.

멀쩡한데 환자 취급하는 건 율무만으로도 충분했다.

백야는 다음으로 상태창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 봐도 창이 나타나지 않았다.

“…상태창?”

동기화된 첫날처럼 육성으로 뱉어보기까지 했지만 시스템은 응답이 없었다.

당당하게 오류를 낼지언정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상했다.

심각해진 개복치가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며 원인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백야는 누구보다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에잇! 모르겠다.’

일단은 민성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건물을 나온 백야는 스텝들이 모여 있을 쉼터로 향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공원은 아이스크림 가판대만 있을 뿐, 매우 한적해 보였다.

“다들 어디 갔지?”

백야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는 얼굴을 찾았다. 그러나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나 버리고 간 거야?’

그럴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지만 정작 보이질 않으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근처에 있겠지….’

장소를 옮겨야 할 이유가 있었겠거니 생각한 백야는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미니미즈 파크로 향하던 중이었으니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도 그렇지. 촬영 중이라 핸드폰도 없는데 말도 없이 가 버리냐….’

한 명쯤은 남아 있다든가 화장실에 들려서 말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쉰 백야는 어느새 민성과 함께 오기로 했던 미니미즈 파크에 도착했다.

“대체 어딜 간 거야.”

혹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곳에도 없었다.

설마 길이 엇갈렸나?

왔던 길을 돌아보던 백야가 커다란 안내판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렇게 움직일 게 아니라 안내소에 가서 방송을 부탁드려야겠다.’

현재 위치를 찾던 백야는 다행히 가까운 곳에 인포메이션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일본어를 못 하는 게 걱정이긴 했지만,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기초 영어가 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백야는 그길로 곧장 안내소를 찾았다.

“하이…!”

백야의 허리가 꾸벅 숙어졌다. 가볍게 묵례만 하려고 했는데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제법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 텐데도 직원들은 백야를 친절히 반겨 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가 친절하게 물어 왔지만 일본어라 알아듣지 못했다. 쭈뼛거리던 백야는 난감한 표정으로 영어를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어…. 아이 로스트 마이 패밀리.”

다행히 뜻이 통했는지 직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유 로스또 유어 화미리?”

“예스. 예스.”

“와츠 유어 네임.”

“마이 네임 이즈 백야.”

“배그아.”

“어……. 예스!”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 백야가 조금 뜸을 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이어서 가족 중 아무의 이름이나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와츠 유어 화자 네임.”

“…화자?”

영알못 백야가 눈을 끔뻑였다. 직원의 질문을 이해 못 한 백야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아버지와 오지 않았다고 이해한 직원은 곧바로 다른 질문을 이었다.

“와츠 유어 마자 네임.”

“…네?”

“오어 브라자.”

난데없는 단어의 등장에 백야의 동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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