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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50화 (150/340)

제150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백야는 다행히 안내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미아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백야 어린이.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백야 어린이의 보호자께서는 3번 안내소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놀이공원 전체에 방송이 퍼졌다. 졸지에 미아가 되어 버린 백야는 안내소에서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백야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안내소 측에서 방송을 세 번이나 더 해 줬지만 결과는 같았다.

‘진짜 나 버리고 간 거 아니야?’

핸드폰은 물론, 지갑, 여권까지 몽땅 남경에게 맡긴 상태였다.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되게 생긴 백야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빈 종이컵을 잘근잘근 물어뜯던 개복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스큐즈미. 혹시, 아이 원트 콜 투 코리아…?”

국제 전화를 쓸 수 있냐는 말이었다. 다행히 뜻이 통했는지 직원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선뜻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남경에게 전화를 거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지만 번호를 외우고 다닐 리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떠올린 게 회사였다.

백야는 회사에 전화해 남경에게 연락을 취해 달라고 요청해 볼 생각이었다.

“앤드 캔 아이 서치 텔레폰 넘버?”

청이랑 하도 붙어 다녔더니 영어가 는 것 같기도 했다.

백야의 어설픈 영어를 모두 알아들은 직원은 기꺼이 요청을 들어주었다.

잠시 후 국제 전화가 걸린 수화기를 받아 든 백야는 ‘아리가또’를 염불하며 신호음을 기다렸다.

-ID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즈 백야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촬영 중에 멤버들이랑 떨어지게 됐는데 제가 지금 연락할 수단이 없어서요….”

- 네?

“혹시 김남경 매니저님께 제가 놀이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연락을 취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는 생각에 백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 저 데이즈 백야, 한백야입니다. 진짜 본인이에요.”

- 장난 전화는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뚜뚜뚜-.

끊어진 신호음이 귓가에 울렸다.

“뭐지…?”

진짜 장난 전화라고 생각한 건가.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이 상황이 썩 정상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한 번쯤 확인은 해 봐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개복치의 마음속에 서러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잘 해결되셨나요?”

연락이 닿은 거냐 물어오는 직원에게 백야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스. 땡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그냥 입구 쪽으로 가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저를 버려두고 퇴장하진 않았겠지.

백야는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사실 아까부터 저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탓이 컸다.

“땡큐 베리 머치.”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공손히 인사한 백야는 안내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곧장 놀이공원 입구로 향했다.

처음 오프닝을 찍었던 기념품 샵 앞의 아름드리나무. 그 아래 벤치에 자리 잡은 백야는 지나다니는 관광객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초 서는 미어캣이 따로 없었다.

꼬르륵-.

거기다 눈치 없이 우는 배꼽시계까지. 국제 미아가 된 것도 서러운데 배까지 고프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크흠.”

감정이 북받치자 목부터 메여 왔다. 헛기침을 한 백야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2시간. 시간이 흐르더니 점점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백야는 이쯤 되면 저를 버리고 퇴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해…….”

백야의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던 그때, 가까워진 인기척이 백야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형?”

빨개진 눈시울이 황급히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이는 남경도 멤버들도 아닌 초면의 여성 둘이었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인이세요? 아까부터 계속 이 자리에 앉아 계시던데….”

“아… 네, 안녕하세요.”

백야가 조금 불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혹시 일행분이랑 헤어지셨어요?”

“네. 어쩌다 보니…….”

“그러시구나, 어쩐지….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해서요.”

초면의 행인이 먼저 다가와 이유 없이 호의를 베푼다? 높은 확률로 데이즈의 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한국인을, 그것도 나이트일지도 모르는 분을 만나다니. 백야는 처음으로 자신의 직업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는 분일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래서 백야는 약간의 검증을 해 보기로 했다.

“혹시… 나잉이세요?”

“네? 저희 나이요?”

삐빅-. 당신의 팬이 아닙니다.

하마터면 몹시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이 헛나왔어요.”

백야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웠는지 백야의 귀 끝이 빨갰다.

속으로 이불 킥을 한 백야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핸드폰을 빌려 보기로 했다.

“저… 사실은 제가 데이즈라고 한국에서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대박.”

“어쩐지 내가 존X 귀엽게 생겼다고, 헙! 죄송해요.”

내내 친구의 옆에서 고개만 끄덕이던 단발머리가 걸걸한 입담을 뽐냈다. 본인도 조금 민망했는지 갑자기 핸드폰을 보는 척하기 시작했다.

“이년은, 아니 얘는 신경 쓰지 마세요. 워낙 말을 호탕하게 하는 친구라. 하하.”

“네…. 아, 그래서 제 이름은 백야고요. 실례가 안 된다면 핸드폰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마음껏 쓰세요.”

얼굴에 홀린 친구가 자신의 핸드폰을 홀라당 바치려고 할 때였다.

탁-.

핸드폰이 백야의 손으로 넘어가기 직전, 단발머리가 친구의 손목을 잡아챘다.

“왜. 말을 해.”

단발머리가 백야와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가며 눈짓했다.

[‘백야’ 검색 결과 없음]

어설프게 기울인 화면은 백야에게도 보였다.

“아, 편하게 하세요. 혹시 ‘어이’로 검색하셨을까요? ‘백’자는 ‘아이’예요. 아니면 데이즈 쳐도 나올 텐데….”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백야, 데이즈 둘 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

백야가 몸을 굽혀 화면을 자세히 봤다. 그러다 ‘검색 결과 없음’을 확인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단발머리와 여자는 백야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빌려줬을 텐데 왜 그랬을까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충격의 늪에 빠져 버린 백야는 두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검색해도 안 나온다고?’

오늘 여러 번 충격받은 백야는 멘탈이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안내소에서의 통화도 그렇고, 데이즈와 관련된 것들만 증발해 버린 이상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나타나지 않는 상태창까지.

자신은 그대로인데 그룹을 포함한 멤버들의 존재만 씻은 듯 사라졌다.

하얘진 머릿속만큼이나 창백해진 백야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업데이트 관련 상태창이었지. 그럼 이거도 오류인가?’

망겜과 관련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상태창 같은 게 보이지 않는 삶이 정상임에도 백야는 지금이 잘못된 거라며 현실을 부정했다.

“저, 죄송한데 다른 거 하나만 검색해 봐도 될까요?”

미남의 애처로운 부탁에 단발머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혹시나 들고 튀진 않을까 걱정됐는지 은근히 몸으로 막아섰다.

한편 곧장 앱스토어에 접속한 백야는 자신이 동기화된 게임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를 검색했다. 썸네일은 다르지만 제목이 일치하는 게임 하나가 서치에 걸렸다.

상세 페이지로 넘어가자 얄미운 이모티콘이 백야를 반겨 주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경고창과 함께 오류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지속되는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받으세요.]

닫기를 누른 백야는 제일 하단으로 내려가 개발사 정보를 조회했다.

[- 서울 본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니은대로 44길 67

- 오사카 지사 : Star 606 Tower, Osaka, Japan)]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려 해외 지사가 있었다. 그것도 오사카에.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한 백야가 화면을 보여 주며 혹시 이곳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었다.

“엥? 여기 우리 숙소 바로 옆인 것 같은데. 맞지, 복쑹.”

“네?”

친구는 단발머리를 불렀으나 백야가 대답한 엉뚱한 상황이었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쪽팔리게 진짜….”

“왜~ 네 블로그 닉네임이잖아. 복쑹.”

“좀! 여기 모르는 분 계시즈느.”

단발머리가 친구의 팔을 꼬집으며 이를 악물었다.

백야도 자신을 부른 게 아님을 깨닫고 조금 머쓱했으나 지금은 낯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려야 하는 때였다.

그리하여 백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짓기로 했다.

글썽이는 눈물과 촉촉한 눈망울.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두 여성을 올려다보며 울먹이며 말했다.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네?”

* * *

미인계를 활용해 위기에서 탈출한 백야는 높다란 빌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은혜를 갚겠다며 연락처를 물어봤지만 의리의 한국인들은 정중히 사양했다.

“같은 한국인끼리 이 정도는 도우면서 살아야죠. 무엇보다 잘생기셨으니까.”

“맞아요. 부디 동료를 모아 꼭 데뷔, 아니 일행분들을 다시 만나시길 바랍니다. 팬 할게요. 진심이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하던 백야는 그제야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담당자를 만나려면 서둘러야 했다.

“여기 11층이랬지.”

백야가 주소가 적힌 손바닥과 층별 안내를 번갈아 봤다.

새까매진 손바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금 전 헤어진 두 한국인 이 사심을 가득 담아 받아간 일방적인 사례비였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렇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백야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크게 심호흡했다.

띵-.

그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비장한 얼굴로 바뀌었다.

“다 주거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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