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55화 (155/340)

제155화

* * *

- 매일 아침 눈 뜨길 기다려

너의 하루는 나로 시작해

다음 날 아침. 데이즈의 WANT ME가 숙소에 울렸다.

“으응….”

하얀 이불 더미가 꿈틀거리더니 백야의 얼굴이 빼꼼 내밀어졌다. 절반도 못 뜬 눈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암막 커튼 때문에 실내는 캄캄했다.

“알람 누구야….”

백야가 잠꼬대를 웅얼거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팔을 허우적거려 보지만, 단단히 엉킨 이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홀로 낑낑거리다 결국 빠져나오기를 포기한 백야는 다시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편 이불에 말린 백야와 달리, 잔뜩 몸을 웅크린 민성은 추위에 떨고 있었다.

“……추워.”

주위를 더듬으며 이불을 찾던 민성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얼굴을 구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돌돌 뭉친 이불 더미가 침대 끝에 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이불이 왜 저쪽에 몰려 있는지 의아한 민성은 더미를 한참 쳐다봤다.

“근데 얘는 어디 갔지….”

허전한 침대를 본 민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밖에서는 아직도 데이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갔나?”

잠이 완전히 달아난 민성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문을 열고 나가자 맞은편 벽에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 정원]

화살표는 현관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리에 선 채 현관 쪽을 돌아보는데, 마침 2층 계단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야?”

“나다.”

누구냐 물었을 때 ‘나’라고 대답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청이 퉁퉁 부은 얼굴로 지한과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잘 잤어?”

“몰라. 유연 아파서 밤에 계속 일어났어.”

“…진짜?”

비몽사몽 한 얼굴의 지한이 느릿하게 물었다.

“올라가 봐야겠네. 너희 먼저 나가 있을래? 정원으로 나오래.”

민성이 이정표를 가리키며 계단을 올라갔다. 곧장 다다미방으로 향한 그는 조심스레 여닫이문을 열며 유연의 이름을 불렀다.

“유연아.”

“…….”

“유연아, 허리 많이 아파?”

“아니야, 안 아파…….”

잠을 설치긴 한 모양인지 유연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켜 앉은 그는 반만 뜬 눈으로 민성에게 칭얼거렸다.

“모기가 자꾸 나만 물잖아. 청 저거는 잘만 자고….”

“모기? 청이가 너 아프다던데.”

“어, 아파. 모기한테 물려서 너무 아파.”

유연이 밤새 모기에게 시달린 자국을 보여 주려고 팔을 들었다. 그러자 웬 동그란 모양의 스티커가 팔 위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이건 또 뭐, 아… 청청.”

어쩐지 살이 타들어 갈 것처럼 아프더라니.

스티커의 정체는 동전 파스였다.

아침부터 오르는 혈압에 유연이 눈을 감았다. 눈가를 짚은 손이 파르르 떨리자 민성은 말없이 팔에 붙은 것들을 떼 주었다.

“…….”

한편 몸을 뒤척이다 눈을 뜬 율무는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점점 작아지는 음악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희미한 목소리.

벌떡 일어난 그는 창문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원에 모인 제작진과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늦었다. 늦었다.”

직감으로 기상 미션이라는 걸 알아차린 율무는 성큼 침대를 밟고 올라 방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서로의 부은 얼굴과 엉망이 된 머리를 보며 비웃길 잠시. 아직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한백야는?”

지한이 두리번거리며 백야를 찾았다.

“화장실 간 거 아니야?”

“아니야. 아예 못 봤어.”

“못 봤다고?”

민성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걔가 제일 먼저 일어났을 텐데?”

민성이 대답을 구하듯 제작진을 바라보자 스텝들의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내가 일어났을 땐 방에 없었어.”

민성의 말에 남경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양해를 구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간 그는 두리번거리며 백야의 방을 찾았다.

방문을 열자 뱀파이어도 아니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뱀파이어 컨셉으로 활동하더니 진짜 뱀파이어라도 된 줄 아는 걸까.

불을 켜는 대신 방 안의 커튼을 걷어 내자 데이즈와 제작진의 모습이 유리 너머로 보였다.

남경이 백야의 흔적을 찾듯 방 안을 둘러보는데, 침대 위에 뭉쳐 있는 이불의 모양이 수상해 보였다.

“한백야.”

“으응….”

백야의 이름을 부르자 이불이 꿈틀거렸다. 유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멤버들도 움직이는 이불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어나.”

“하암…….”

남경이 다가가 이불을 들추자 입이 찢어지라 하품하는 백야가 보였다.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몇 시냐 물어오는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8시. 백야야 애들은 다 일어나서 지금 기상 미션 하는데.”

“…기상 미션?”

백야가 겨우 뜬 눈으로 남경을 올려다봤다. 그러다 남경의 뒤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흐어억!”

놀란 백야가 허겁지겁 이불을 파헤쳤다.

“아, 안경! 내 눈…!”

* * *

기상 미션을 위해 모인 멤버들은 일어난 순서대로 미션 카드를 뽑았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미션에 성공한 멤버에게는 용돈 2배라는 혜택이 주어졌다.

그 결과 정원에서는 꽤나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먼저 <바늘에 실 끼우기>를 뽑은 백야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침침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백도. 그래서 오늘 안에 끼울 수 있어?”

“너 때문이잖아. 좀 저리 가라고.”

“너 나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나 상처받아.”

“내가 언제 싫다 그랬냐. 기대지 말라고 그랬지….”

“안 돼. 기대는 게 내 미션이야.”

뒤에서 백야의 허리를 끌어안은 유연이 어깨에 턱을 괴며 은근히 괴롭혔다.

<멤버 한 명에게 5분 동안 백허그하기>를 뽑은 유연은 미션을 뽑자마자 백야에게 직행했다. 작아서 제일 편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백야가 바늘구멍에 실을 끼울 만하면 아닌 척 바람을 불어 방해한 유연은 입술을 말아 물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눈꼴 시려서 못 봐주겠네.”

떨떠름한 시선으로 유연과 백야를 보던 민성은 <수박씨 얼굴에 올리기>를 진행 중이었다.

“투.”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민성이 비장하게 수박씨를 쏘아 올렸다.

얼굴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씨를 받아 내기 위해 갖은 잔망을 떨어 보지만, 수박씨는 뱉는 족족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왜 안 되지?”

민성은 나름 쉬운 미션을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뱉어 줄까?”

일찌감치 미션을 포기한 청은 민성의 수박을 뺏어 먹고 있었다. 혓바닥 위로 씨 하나를 올린 그는 민성을 향해 혀를 날름 내밀었다.

“아니. 괜찮아.”

“왜? 나 잘 뱉어. 이마 센터에 붙여 줄게.”

“됐으니까 저리 가. 훠이.”

“쳇.”

잡상인을 쫓아내듯 손짓하는 민성에 청이 입술을 삐죽였다.

<젓가락으로 콩 옮기기>를 뽑은 청은 두 번의 시도 끝에 불가능을 깨닫곤 입 안으로 털어 넣은 지 오래였다.

“나 하나 더 먹어도 돼?”

“먹어.”

민성에게 수박 한 조각을 더 얻은 청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지한 뭐 하나?”

<달고나 뽑기> 미션을 수행 중인 지한은 엄청 집중한 얼굴로 바늘을 들어 달고나를 찌르고 있었다.

“토끼?”

“응.”

“나 이거 너튜브에서 봤는데! 뒤에 침 바르면 돼!”

“…침?”

너튜브 중독자의 꿀팁 대방출에 조또가 솔깃해했다. 침을 바르면 달고나가 얇아져서 선을 쉽게 떼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듣다 보니 일리 있는 것 같은 말에 지한이 달고나를 뒤집었다.

할짝-.

달고나를 할짝대자 혀끝으로 단맛이 퍼졌다. 입맛을 다신 지한이 이번에는 좀 더 과감하게 달고나를 핥았다.

내리깐 눈과 붉은 입술. 아직까지도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아 나른한 얼굴까지.

지한은 아침부터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러 스태프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멤버들의 등에 몰래 이름표 붙이기>를 뽑은 율무는 제작진으로부터 스티커와 네임펜을 전달받았다.

미션에 성공할 시, 멤버들은 오늘 하루 율무가 적어 준 이름표를 착용하게 될 거라는 말이 그의 장난기를 자극했다.

“일단 저는 제 이름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칸에 평범한 세 글자가 적혔다. 이어서 나머지 다섯 칸도 마저 채운 율무가 카메라를 향해 작성한 이름표를 보여 주었다.

[나율무]

[도도한 민성]

[엘레강스]

[연유 딸기]

[청개구리]

[병약 소년]

“순서대로 저, 민성이 형, 지한이, 유연이, 청이, 백야입니다.”

사실 백야는 ‘당도 100%’를 적으려 했는데, 아침에 이불에 파묻혀 있던 모습을 보고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고 했다.

“원래도 하얀 편인데 아침에 보니까 더 하얗더라고요. 잠이 덜 깨서 그런가 나른해 보이기도 하고.”

민성이 백야에게 붙여 준다고 냉장고에 오이를 넣어 놨던데 절대 못 붙이게 해야겠다며 농담했다.

“그럼 저는 미션을 수행하러 한번 나가 보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온 율무는 멤버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다른 미션을 하는 척했다.

“형은 뭐 뽑았어?”

여전히 백야에게 기대어 있는 유연이 율무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 네잎클로버 찾기~”

바닥을 살피는 척 곁으로 다가간 율무는 잠시 비켜 보라며 유연의 등 뒤로 손을 얹었다.

“여기 없어. 다른 데 가서 찾아.”

“왜~ 거기 뭐 많은 것 같은데 잠깐만 보자.”

“지금 얘 건드리면 화내. 문다 그랬단 말이야.”

백야가 손을 파르르 떨며 바늘구멍에 실을 끼우고 있었다.

“나 건드리면 죽는다.”

“너 떨어지라는데?”

“아니지, 형한테 하는 소리야. 나는 미션 성공하면 용돈 반 떼 주기로 했거든.”

치사하게 한편을 먹고 자신만 따돌리자 율무가 못마땅한 척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와~ 나빴다.”

그러는 동안 몰래 백야의 이름표를 뗀 율무는 삐친 척 개복치의 팔꿈치를 툭 건드렸다.

“아악! 넣을 뻔했는데!”

“메~ 롱~”

눈 아래 살을 죽 잡아당긴 율무가 백야를 약 올렸다.

“너 잡히면 가만 안 둬!”

“백도 진정해! 진정!”

유연이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백야를 붙잡았다. 졸지에 율무를 도와준 꼴이 된 게 못마땅하지만 미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거 놔악!”

허공에 뜬 백야의 다리가 헛발질을 마구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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