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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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즈 리얼리티 촬영 후 귀국, 희망 콘서트 준비]
“백야 씨, 기억나세요? 저희 학교 다닐 때….”
“아! 단아 씨가 저 괴롭히던 못된 친구들 혼내 준 거요?”
“그거 말고요.”
“그럼 졸업식 날 엉엉 울던 거?”
하복 교복을 입은 백야와 단아가 쇼플리 MC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다 틀렸어요. 대체 왜 그런 것만 기억하고 계시는 거예요? 저는 복도에서 떠들다 혼났던 날을 말하던 거라고요.”
“네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백야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자 단아가 억울해했다.
“장난이었어요. 당연히 기억하죠~”
“역시 백야 씨도 기억하고 계실 줄 알았어요.”
“단아 씨 혼자 도망가서 선생님께 저만 엄청 혼났잖아요.”
“백야 씨! 자꾸 그럴 거예요?”
거듭되는 장난에 단아가 토라진 시늉을 했다.
“죄송해요. 다음 무대를 소개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백야가 애교를 부리며 다음 멘트를 이어 갔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두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오늘 의상은 SNS를 뜨겁게 달구어 놓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렇듯 매번 센스 있는 코디로 화제가 되고 있는 두 사람은 MC 역할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홍보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 우유즈에 진심인 쇼플리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하던 선배 (백야 교복 캡처.jpg)
- 오늘따라 병약미 낭낭한 여리여리 복숭아
- 백야 항상 위아래 동갑즈한테 당하는 거만 보다가 단아님 놀리는 거 보니까 쟤도 비글이었구나 싶음ㅋㅋㅋㅋ 진실의 입꼬리ㅋㅋㅋ
- 우유즈 쇼플리 엠씨 백 년 만년 해줬으면ㅜㅜ
- 작고 새하얀 남자애가 저 얼굴로 병약미 폴폴 풍기면서 심지어 교복을 입고 있다? 과몰입 쌉가능
- 목격담부터 백야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메이크업 때문인가
└ 오늘 약간 마지막 잎새 상
- 눈 내리깐 사진 입술색 살짝만 지워 봤는데 처연미 넘치는 망국의 왕자님 되어버림 (백야 사진.jpg)
개중에는 분위기가 달라진 백야를 언급하는 글들이 제법 많았다.
백야의 음악방송을 모니터링해 주던 율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백야를 돌아봤다.
“당백아~ 너 일본 다녀온 뒤로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대.”
“내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에 데이즈는 다 같이 연습실에 모여 있던 참이었다.
앞머리를 쓸어 넘긴 백야가 무심한 투로 대꾸하자 유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달까. 춤도 갑자기 는 것 같고.”
“에이…. 기분 탓이야.”
사연이 있긴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확실히 평소랑 다르긴 해.’
댄스 관련 스킬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효과는 대단했다.
늘 헷갈려 하던 동선을 수월하게 넘어가질 않나, 어려운 동작 때문에 몇 번이고 음악을 중단시킨 마의 구간을 단번에 성공하질 않나.
연습 내내 멤버들과 안무가를 여러 번 놀라게 한 백야였다.
“이만하면 춤 늘 때도 됐잖아.”
“그거야 그런데, 보통 이렇게 하루아침에 늘어서 오진 않지.”
잠시 자리를 비웠던 안무가가 돌아왔다.
호랭이는 일본을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리얼리티 촬영을 미루든지 컴백을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장 아티스트가 춤도 제대로 못 추는데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찍냐며 길길이 날뛰던 그는, 조금 전 무리 없이 안무를 소화해 내는 백야를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실수는 차치하고 동작이 자연스러워진 건 물론, 센터로 치고 나올 때 찰나의 표정 연기가 유연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백야 일본 가서 아팠다며. 몰래 연습하고 그런 거 아니야?”
호랭이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잔소리했다.
“아니에요. 잘하고 싶은 건 맞는데 그럴 시간은 없었어요.”
늘 호랭이 기운에 눌려 기죽어 있던 백야는 모처럼 밝은 얼굴이었다. 덕분에 오늘의 연습은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원래 엄청 못 하던 사람이 조금만 잘해도 그 효과는 극대화되어 보이지 않던가. 백야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아무튼 기특하네.”
백야의 머리를 쓰다듬은 호랭이는 마지막으로 딱 세 번만 더 하고 마쳐 주겠다고 선언했다.
퇴근을 목전에 둔 멤버들의 눈빛이 의욕으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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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아이돌 뮤비 촬영 목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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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시 삭제함 ※
어제 우리 학교에 아이돌 와서 뮤비 찍고 감!!
원래 방학이라 사람 별로 없어야 되는데 이날따라 학식 앞에 차가 많길래 엥 싶었거든.
그냥 지나치려다가 농구 코트 있는 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가 보니까 뭘 찍고 있었음.
스텝들이 우산 펴고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얼핏 보이는 머리 색이 굉장히 화려해서 아이돌이라고 확신함.
흰색 반팔에 반바지 입고 있었고 주황색이랑 흰색, 금색 아무튼 알록달록했음.
특히 키 제일 큰 사람은 주황색 머리였는데 햇살 그 자체.
잠깐 덩크슛하면서 뛰어오르는 바람에 보였는데, 진짜 개 잘생겨서 아직도 눈 감으면 아른거림ㅠㅠ
뭐 할 때마다 스탭들한테 우렁차게 인사하는데 성격 좋아 보이더라.
뮤비 촬영 같았고 노래 살짝 들리긴 했는데(팝송이랑 겹치게 틀어 놔서 정확하진 않지만) 엄청 밝고 신나는 노래였음!
+ 누가 단백? 단배기? 라고 부르는 걸 들어서 검색해 보긴 했는데 안 나옴.. 노래 나오면 들어 보고 싶은데 그룹 이름을 모르겠다ㅠㅠ
(이동 중인 백야 지한 뒷모습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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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백이? 일루전 강백 아니면 데이즈 당백이 같음 (궁예 짤.jpg)
└ 백야ㅋㅋㅋㅋ 언제부터 별명이 예명 됐냐고ㅋㅋㅋ 귀여워
- 일단 일루전은 아님. 뮤비 촬영 다 마쳤고 다음 주에 일본 쇼케한다고 기사 뜬 지 오래
- 데이즈 같은데?
- 청량이야? 미쳤네
- 데이즈 또 컴백해? 언제 쉬어?
- 아 잠시만;; 그럼 키 제일 큰 애=율무잖아. 주황 머리에 덩크슛이요? 기절작렬
- 뒷모습 백야랑 청인가? 지한이 같기도 하고ㅠㅠ 작은 쪽이 백야인건 일단 확실한데...
- 리팩 뮤비 촬영했나 보네
- 애들 빨리 나오면 나야 좋지만 스케줄 너무 빡센 거 아닌가ㅠㅠ 백야는 렬리티 찍고 귀국하자마자 MC에 뮤비에 희망콘까지... 아파 보이던데 괜찮나ㅠㅠ
└ 건강 절대 지켜..
- 조만간 큰 거 오겠구나
- 자본주의의 맛을 보여줘 ID
데이즈의 뮤직비디오 촬영 목격담이 알음알음 퍼지자 회사 측에서도 공식 기사를 발표했다.
[데이즈, 리패키지 앨범 준비 중 “8월 발매” 신곡 포함]
활동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들려온 컴백 소식은 팬들을 기쁘게 했다.
SNS에서는 컴백을 준비 중인 멤버들이 희망 콘서트에 어떤 머리로 등장할 것인가를 두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작 데이즈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촉박한 일정 속에서 뮤직비디오와 자켓 촬영을 마무리한 멤버들은 망설임 없이 재염색을 감행했다.
그리하여 데이즈가 희망 콘서트 레드 카펫에 섰을 땐 목격담에 언급됐던 머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음악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며 팬들에게 꾸준히 모습을 보인 백야만이 흑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희는 방금 레드 카펫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습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대기실. 카메라를 든 유연이 민성의 옆으로 다가가 셀카봉을 높이 들었다.
“민성 씨. 소감이 어떠세요? 희망 콘서트에 나가고 싶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던 거로 기억하는데.”
“맞아요. 연습생 때부터 희망 콘서트에 출연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럼 꿈을 이루신 소감이 어떤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 조금 새삼스럽지만 저희가 데뷔한 게 맞구나 실감도 나고, 또 너튜브에서만 보던 분들이 복도에 막 걸어 다니고 계시더라고요.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 굉장히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맞아. 그때 인천 콘서트 때는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거 뭐 찍는 거야?”
물어 보길래 대답을 하긴 했는데 민성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이거 우리 희망콘 비하인드 찍고 있잖아. 아까부터 찍었는데. 형 잤어?”
“아니야. 잠깐 다른 거랑 헷갈렸어.”
차에서부터 찍고 있었건만 처음 보는 것처럼 반응하는 민성에 근처에 있던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었다.
“Hey! 저 사람 안 되겠네!”
“안 되겠네~ 여기 헷갈릴 카메라가 어디 있다고.”
청과 율무가 민성의 어깨를 흔들자 그의 몸이 종이처럼 나풀거렸다.
한편 시끄러운 네 사람과 달리 대기실 구석에 있던 지한과 백야는 조용히 과자를 먹고 있었다.
민성이 팔랑거리는 모습을 보고 금방 고개를 돌린 둘은, 괜히 말을 얹었다가 관종들의 흥미를 사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개복치는 마침 떠오른 상태창에 집중하기로 했다.
‘슬슬 퀘스트가 뜰 때도 됐지.’
포인트를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번 개고생으로 백야는 패시브 조건이 없는 히든 퀘스트 정도는 가볍게 패스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했는데….
[Q. 스포 요정(1) : 스포일러를 통해 팬들에게 컴백 힌트를 주자! (1초 이상 지속)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늘 그렇듯 시스템은 백야의 마음처럼 움직여 주는 법이 없었다.
‘장난해?’
비활동기 때는 주로 히든 퀘스트만 주던 시스템이 변덕을 부렸다. 거기다 퀘스트 내용도 백야를 심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스포일러를 하는 게 퀘스트라니!’
멤버들은 물론 회사의 역적이 되라는 소리나 다름없지 않은가.
입맛이 뚝 떨어진 백야는 감자칩을 지한에게 모두 넘겨주었다.
“그만 먹게?”
“응. 이따가 밥 먹어야 해.”
적당한 핑계를 댄 백야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실에는 문이 총 두 개였는데, 하나는 복도와 이어진 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기장 좌석과 연결된 문이었다.
앞문을 열고 야외로 나가자 쿵쿵거리는 음악이 심장을 울렸다. 막 시작된 콘서트는 올해 데뷔한 신인 그룹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25팀의 가수들이 모인 최대 규모의 행사답게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나보고 지금 여기서 스포를 하라고…?’
개복치의 콩알만 한 심장은 상상만으로도 터질 것처럼 뛰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