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70화 (170/340)

제170화

“백야야 그거 아니야. 멈춰….”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방금 쟤가 한 말 들으셨잖아요.”

애가 어려서 그런가. 착각을 참 잘한다 생각한 남경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곤 상황을 대신 설명해 주기로 했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백야에 대한 소문이 도는데 대응 기사를 내기 전에 확인이 필요하다고.”

“무슨 소문?”

율무의 대답에 남경이 백야의 눈치를 살폈다. 골이 난 개복치는 소파에 앉아 화를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그게…. 그냥 백야가 누구를 좀 만난다고.”

“뭐!? 너 여자 친구 있어?”

“없거든!”

개복치의 포효에 율무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그냥 스캔들이면 쟤가 저렇게까지 화내진 않았겠지.”

남경의 의미심장한 말에 멤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돌았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율무야 제발.”

율무가 길길이 날뛰자 남경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유쾌한 이야기도 아닌 만큼 백야 앞에서는 언급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백야가 잔뜩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병약미 스킬 때문에 미화돼 보이는 것일 뿐. 속이 뒤틀리긴 했지만 멤버들이 오해한 만큼 상처받진 않았다.

‘다 죽여 버려.’

합의는 절대 없다며 이를 갈던 백야는 고개를 들어 남경을 올려다봤다.

“그래서. 저라고 주장하는 사진은요?”

“처음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글은 회사에서 삭제 처리했고 사진은 금방 내려가서 찾아보는 중이야.”

지잉-

진동이 울리자 덕진이 핸드폰을 내밀며 다가왔다.

“사진 왔어요!”

그 말에 남경과 데이즈가 주위로 둥글게 모여들었다.

덕진은 백야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런데 이건 물구나무서면서 봐도 백야가 맞았다.

당황한 멤버들의 눈알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반면 소문의 상대를 확인한 백야는 오히려 화가 누그러졌다.

“누나?”

“…누나라고?”

금세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백야는 사진 속 여성을 가리키며 재차 누나라고 말했다.

“1월이었나? 잠깐 집에 다녀왔을 때 같은데.”

사진에 찍힌 백야는 여성에게 볼을 꼬집히면서도 웃고 있었다.

“새해 기념으로 누나랑 형부랑 호텔에서 가족 외식했거든요. 덕진이 형이 데려다주셨어요.”

“아! 제우스 호텔!”

덕진도 기억이 나는 듯 금방 떠올려 냈다.

“마스크가 답답해서 잠깐 벗은 건데 알아본 분이 계실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정말 이 사진 맞아요? 왜 그딴, 아….”

다시 열이 받는지 발끈하던 백야가 말끝을 흐렸다.

오해받은 건 억울하지만, 상대가 가정도 있는 데다 공공연히 알려진 인물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설마.”

“왜? 뭔데.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형부가 제우스 호텔 부회장님이세요.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셨나?”

모두의 턱이 아래로 떨어졌다.

제법 길게 이어진 정적 끝에, 유독 입을 크게 벌리고 있던 남경이 겨우 말을 이었다.

“그, 그럼 백야 너희 누나분께서 제우스 호텔 사모님….”

“에이. 그건 아니죠. 아직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신데.”

대기업 회장님과 사모님을 할아버지, 할머니라 부르는 개복치의 클래스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참고로 백야랑 누나의 나이 차이는 12살.

누나가 대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 갓 유치원을 졸업한 백야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집안에서 사랑받는 막둥이는 물론, 모두가 업어 키우다시피 한 개복치는 그녀의 찬란한 연애사를 모두 지켜봐 온 1인이었는데.

혈육은 넉 달에 한 번씩 남자 친구를 갈아 치우던 과도기를 지나, 대학교 4학년 무렵 스터디로 만난 지훈과 폴인럽 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 두 사람은 웨딩마치를 올렸다.

당시 재벌 3세의 이른 결혼 소식에 커뮤니티가 떠들썩했지만 초딩 백야가 이를 알 리 없었다. 딸의 출가에 심란했던 부모님이 돌연 제주도행을 선언해 인생 처음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12세 백야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거취가 전부였다.

“그럼 그때 오셨던 분이….”

“네.”

당시 초딩 백야에게 한국이란 북한, 서울과 서울이 아닌 지역, 그리고 귤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였다.

도시를 벗어나 귤 섬으로 떠나기 싫었던 백야는 결국 사고를 치게 된다. 바로 자신이 서울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식 창고 고수들을 등에 업은 백야는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 지원, 합격하게 된다.

이때 막내의 탈선으로 부모님은 2차 충격을 받게 된다.

그로부터 3년 후, 백야는 고등학교도 기숙사형으로 가고자 했으나 안타깝게 떨어지고 만다.

이제는 정말 섬으로 떠날 위기에 놓인 백야는 처음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다. 1년 늦게 찾아온 중2병 시작의 계기였다.

그러던 그때!

누나 처돌이인 형부가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 흔쾌히 제안한다.

하지만 눈새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법. 누나의 신혼집에 군식구가 될 수는 없었던 백야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나 백야보다 더 완강한 지훈의 뜻 앞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종종 뵀어요.”

“엄청나다! 출생의 비밀!”

아침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청이 눈을 반짝거렸다.

“스님 나올 때부터 대단했는데!”

“…스님? 스님은 또 뭐야.”

“그런 게 있어. 비밀이야.”

민성이 궁금해 했으나 청은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편 백야는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이게 무슨 출생의 비밀이야.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분들인데. 그냥 도움을 조금 받은 거야.”

멤버들이 오해하기 전에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정확히 한 백야는 다시금 남경을 봤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돼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하고 싶어요.”

드디어 망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이런 거짓 소문이라니.

아무리 루머라도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는 순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알게 되면 속상해할 것 같기도 했고.

게다가 데이즈의 평판은 곧 자신의 목숨이기도 했으니까 서둘러야 했다.

“남경이 형?”

넋이 나가 있는 남경의 앞으로 백야가 손을 휘저었다.

“어? 어어. 내 정신 좀 봐. 얼른 홍보팀에 연락하고 올게.”

알고 보니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개복치에 남경은 많이 놀란 것 같아 보였다.

* * *

[데이즈 백야, 제우스 호텔 전지훈과 사돈 관계]

[“선처 없다” ID 측, 소속 아티스트를 향한 근거 없는 루머와 악플 강력 대응 예고]

회사의 빠른 일 처리와 지훈의 적극적인 협조 덕에 백야의 스캔들 루머는 일단락되었다.

이제 남은 건 화장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 댄 두 놈들에게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알려 줄 차례였다.

자신이 그린 몽타주를 내려다보는 눈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다.

“눈에서 레이저 빔! 불 나오는 것 같아!”

“야, 청. 이놈들을 어디서 찾지.”

슬쩍 몸을 기울인 청이 다시 한번 몽타주를 확인했다.

동그라미에 삐죽삐죽 솟은 머리카락. 가로로 찢어진 눈과 가는 선으로 이어진 하찮은 몸뚱어리는 누가 봐도 인외존재였다.

“…몬스터?”

“사람이거든!”

발끈한 개복치에 청이 움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거를 어디서 찾나….”

“다 방법이 있지.”

바로 검색 찬스!

백야의 손엔 지훈과 연락하느라 받았던 핸드폰이 아직 남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거둬 갔을 테지만, 남경도 경황이 없어서 회수할 생각을 못 한 것 같았다.

‘여기서 꺼내면 무조건 뺏긴다.’

남경의 동태를 파악한 백야는 안전하게 화장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다른 팀의 사정은 자세히 알지 못하니 오늘을 넘겨서는 안 됐다.

만약 오늘이 마지막 활동이라면 연말 시상식에서나 만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너무 먼 미래이지 않은가. 개복치는 주저하지 않고 발 연기 스킬을 사용했다.

“아이고 배야~”

“왜 그래. 배탈 났어?”

“그런가 봐요. 너무 신경을 썼더니….”

백야가 배를 움켜쥐자 남경이 반응했다. 살짝 굽어진 등이 지독하게 어색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 어… 그래. 얼른 가.”

다녀오겠다는 건지 다녀와도 되냐는 건지. 모호한 억양에 듣는 이들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장 대기실을 뛰쳐나온 백야는 화장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들어서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초록창에 ‘인기뮤직 라인업’을 검색했다. 남자 그룹만 살펴보면 되는지라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생방송 인기뮤직 1024회 출연진, 데이즈, 노아, 어거스트….]

자신도 모르게 가장 끝 칸으로 향하던 백야는 잠깐 멈칫했다. 또 고장 난 칸에 들어갈 뻔했지 뭔가.

깜짝이야.

안도의 숨을 쉰 개복치는 옆 칸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닫히기 직전, 문 사이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으갹!”

“나야.”

백야의 뒤를 따라 나온 지한이었다.

“여, 여긴 어떻게….”

“놀랐어? 미안.”

지한이 백야가 떨어뜨린 핸드폰을 돌려주며 사과했다. 황급히 받아 든 개복치는 뒤로 숨기며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여, 여긴 내가 먼저 들어왔는데!”

이 칸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말에 지한이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다.

“…왜! 뭐!”

“너 배 아프다는 거 거짓말인 거 다 알아.”

백야가 그걸 어떻게 알아봤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지한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냐는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아까 화장실에서 했다는 이상한 짓이랑 조금 전 루머. 다 그 그림이랑 관련 있지?”

지한의 예리한 추리에 백야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이상한 짓이라니….

개복치는 조금 상처받았다.

“그 새끼들이 네 이야기했어? 넌 그걸 들은 거고. 맞지?”

무, 무서워….

지한의 살벌한 눈빛에 백야는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버렸다.

“어? 어…….”

“그걸 그냥 뒀어?”

“화장실 문이 고장 나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백야는 어느새 지한에게 혼나고 있었다. 그놈들을 그대로 놓쳤다는 이유로.

“얼굴은. 제대로 본 거 확실해?”

“당연하지!”

백야가 뒤로 숨겼던 핸드폰을 내밀며 한 남자의 프로필을 보여 주었다.

“이놈이 확실해.”

[저리 / 소속 그룹 : 안드로메다]

한 사람이 더 있는데 같은 그룹일 거라는 말을 이으려던 때였다. 화장실로 인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안 돼…!’

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던 백야가 갑자기 지한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달칵-

졸지에 같은 칸에 숨게 된 지한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해했다.

도대체 왜 숨는 거냐고 그의 눈이 말을 하고 있었다.

“미안. 나도 모르게….”

비밀 아닌 비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간이 콩알만 해진 탓이었다.

작게 속삭이던 두 사람은 지척까지 다가온 인영에 잠시 대화를 중단했다.

“아 씨. 귀걸이 여기서 흘렸나? 걔 다시 오는 건 아니겠지?”

“다시 보면 뭐. 지가 어쩔 건데. 어차피 오늘 음방 막날이라 당분간 볼 일도 없어. 백퍼 까먹음.”

쫄지 마라며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사건 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더니. 백야의 눈이 광기로 번쩍였다.

‘찾았다. 나의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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