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74화 (174/340)

제174화

* * *

교복으로 갈아입은 데이즈가 MC들과 나란히 서 있었다.

“먼저 게임을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학교는 세계적인 농구 스타 ‘골이군’을 배출해 낸 고등학교로, 그가 학창 시절 신었다는 전설의 농구화가 이 학교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 신발을 신으면 도약 한 번으로 강을 건너고, 농구공으로 수류탄을 만들 수 있는 전지전능한 권한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골이군’은 이 신발을 찾는 자가 자신을 잇는 농구 스타가 될 거라는 예언을 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의 농구부가 몰려들었는데….

이들을 제치고 살아남은 단 두 팀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데이즈 농구부 대 지구 방범대 농구부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이거 내용이….’

백야가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편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어이없던 MC들은 타임을 외쳤다. 현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제작진에게 항의했다.

“아니, 잠깐만. 지금 젊은 친구들 불러 놓고 이러시면 저희가 너무 부끄럽잖아요.”

그러나 방송국 놈들 특. 제작진은 뻔뻔했다.

“여러분은 이제 전설의 농구화를 찾으시면 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닌데 오늘은 조금 과하네요.”

정우가 제작진을 대신해 사과한다며 콩트를 시도했다.

제작진이 요즘 아이돌 세계관에 빠져서 저희에게 무슨 초능력을 쓰라는 등, 이상한 무리수 두기를 시작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전설의 농구화를 찾으시는 분께는 상금 100만 원을 드립니다.”

“가즈아아!”

그러다 상금이 100만 원이라는 말에 정우가 냅다 소리쳤다. 통 큰 상품에 데이즈도 감탄했다.

제작진은 팀 대결인 만큼 나눠서 시작을 해야 한다며 데이즈와 지구방범대를 1반과 8반에 배치했다.

“똑같은 단서와 미션을 세팅해 두었습니다. 목적지는 같고요, 미션을 빨리 수행하는 팀이 유리합니다.”

1학년 1반 교실로 향한 데이즈는 커다란 테이블에 놓인 먹과 벼루, 붓, 그리고 한지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가까이 다가간 멤버들이 서예 도구를 구경했다. 교실을 둘러보던 백야는 칠판 위에 걸린 급훈을 발견하곤 가리켰다.

“저거 봐.”

[나는 떡을 썰 테니 너희는 글을 쓰거라.]

“저거랑 관련 있는 게 아닐까?”

백야의 그럴듯한 추리에 멤버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데이즈는 다른 단서가 없는지 교실을 좀 더 뒤져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앞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등장했다.

“수업 종 친 지가 언젠데, 빨리 자리에 앉아!”

생활 한복을 입은 배우의 호통에 데이즈가 허겁지겁 책상에 앉았다.

잠시 후 교탁 앞에 멈춰 선 선생님은 대뜸 일회용 비닐장갑과 각종 장비를 꺼냈다.

도마와 떡, 칼이었다.

“저 사람 모냐. 떡 장사?”

청이 백야를 건드리며 선생님을 눈짓했다.

“선생님 아닐까….”

“근데 왜 떡을 써나?”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는 순간 그가 ‘이 반의 반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멤버들과 눈짓을 주고받던 민성이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났다.

“전데요.”

“그래. 나는 떡을 썰 테니 너희는 글을 쓰도록 하거라. 꼭 불을 끄고 해야 한다.”

“어…. 네.”

암호 같은 대사에 멤버들이 서로를 힐끔거렸다. 민성은 일어난 김에 교실 앞문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내리려 했다.

그런데 손을 올리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크게 호통을 쳤다.

“동작 그만! 너희 불만 끄거라!”

놀란 민성이 주눅이 든 얼굴로 돌아왔다.

“아까 불 끄라고 하지 않았어?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우리 불만 끄라고? 그게 뭐지?”

율무도 감을 잡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그때, 유연이 책상 서랍에서 검은색 레이스 안대를 발견했다.

“이건 뭐지? 다섯 개밖에 없는데.”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자 제작진이 나서서 룰을 설명해 주었다.

“저희가 제시어로 속담을 보여 드릴 겁니다. 다섯 분은 그 속담을 보시고 안대를 착용하신 후 글을 적어 주시면 되고요. 마지막 한 분은 멤버들이 적어 준 종이를 보고 속담을 맞춰 주시면 됩니다.”

제한 시간은 한 명당 10초.

종이를 넘겨받는 즉시 카운트가 되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여야 할 거라고 했다.

교실 뒤편에 모인 멤버들은 문제를 낼 사람과 맞힐 사람을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이야기 나누었다.

“속담 많이 아는 사람.”

“나다! 나한테 한국 속담 100개 책 있다!”

유연의 질문에 청이 자신 있게 외쳤다. 멤버들의 시선이 막내를 향하자 그의 어깨가 더 조금 더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까 얘가 문제네.”

“내가 모!”

하고 싶다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청에게 유연이 시범 문제를 내주었다.

“계란으로?”

“도장 깨기!”

“이거 봐. 안 돼. 안 돼.”

도장 깨기가 아니라 바위 치기라고 답을 알려 주자 청이 분하다며 콧바람을 뿜어 댔다.

“실수야! 다시 해!”

“오케이. 이번이 마지막이야. 티끌 모아?”

“티끌!”

지독한 현실주의에 지한이 작게 감탄했다. 민성은 청이 세상을 너무 빨리 깨우쳤다며 안타까워했다.

“틀렸어. 태산이야.”

“그럴 수가….”

청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율무가 장난스레 말했다.

“너희 둘 떡락왕생 잊었어? 이번은 형들한테 맡기고 다음에 활약하자~”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가만히 있다 머리채를 잡힌 백야만 억울해졌다.

결국 심사숙고 끝에 정답을 외치는 건 민성이 맡기로 했다. 한 살이라도 더 오래 산 사람이 하나라도 더 알겠지, 라는 이유에서였다.

“자, 그럼 민성 씨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뒤돌아 주시고요. 제시어는 10초 보여 드립니다.”

10초 안에 다섯 명이 문장을 나눠 가진 뒤 안대를 착용해야 했다.

원래 속담의 경우 앞쪽이 결정적인 단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청은 가장 마지막 순서에 서게 됐다.

“문제 드리겠습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

나눌 것도 없이 다섯 어절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난이도에 멤버들도 안심하며 안대를 착용했다. 레이스 안으로 안감이 덧대어져 시야가 완전히 차단됐다.

“그럼 카운트 시작합니다.”

연필 쥐듯 붓을 쥔 율무가 붓촉을 먹물에 적셨다. 감각에 의존해 종이의 왼쪽 모서리 끝을 짚은 그는 침착하게 붓을 놀렸다.

[간에]

주어진 5초가 지나자 종이는 다음 차례로 넘겨졌다.

두 번째 차례였던 백야가 붓을 흠뻑 적셔 종이 위로 옮겼다. 대충 위치를 가늠해 ‘붙었다’를 적는데, 먹물을 너무 많이 묻힌 탓에 종이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이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바통을 넘겨받은 지한이 ‘쓸개에’를 적었다.

그러나 침착하게 잘 적었음에도 이미 먹물에 젖어 버린 종이는 글자를 담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유연과 청의 차례까지 지나 답안지가 민성에게 도착했다.

“이게 무슨….”

안대와 귀마개를 벗은 민성이 답안지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먹물에 담갔니?”

안대를 벗은 멤버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저거 왜 저래?”

“나 아니야.”

유연이 놀라워하자 백야가 제일 먼저 부정했다.

“정답 말씀해 주세요.”

“…한 치 앞이 어둠?”

“땡!”

당연히 오답이었다.

* * *

첫 번째 촬영을 마친 데이즈는 잠시 쉬는 시간을 얻었다. 먹물로 엉망이 된 백야의 메이크업을 수정하기 위함이었다.

“너 우리 몰래 군고구마 먹었지.”

숯검댕이를 묻힌 것처럼 인중 위로 난 검은 자국을 민성이 놀려 댔다.

“아니야. 먹물 때문에 그래….”

백야가 시무룩해하며 제작진 쪽을 힐끔거렸다.

아침에 봤던 <초보 예능인을 위한 꿀팁>에 나온 방법을 그대로 실천했지만 퀘스트는 아직 ‘진행 중’ 상태였기 때문이다.

예능 초보 꿀팁 제1장.

몸을 사리지 말 것!

‘그래서 얼굴에 먹물도 묻혔는데…!’

안타깝지만 PD의 눈에는 들지 못했다. 그냥 메이크업만 망가졌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2장을 실천해 볼 타이밍이었다.

‘기회는 쟁취하는 것!’

슬슬 촬영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에 들어야만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개복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백도, 오늘따라 의욕이 넘치네.”

“당연하지. 난 예능 깡패가 될 거니까.”

“오~ 울렁증은 이제 다 나았나 봐?”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백야가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스트레스 지수가 소폭 상승하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탓이었다.

“야, 왜 그래.”

“그냥… 장난 좀 쳐 봤어. 울렁증 어쩌고 하길래.”

대충 둘러댔지만 백야는 조금 심각해졌다.

처음 겪어 보는 퀘스트 풍년에 빠르게 오르는 스트레스 지수까지. 아마 각종 보상과 이벤트 쿠폰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진작에….

‘숨 참고 요단강 다이브.’

끔찍한 상상에 개복치가 세게 도리질 쳤다.

<병약미(S)> 패시브를 얻은 뒤로 스트레스 지수에 따른 반응이 악화된 게 걱정이었다.

‘스트레스가 경계 단계만 돼도 코피가 터지는데. 패시브 강화는 쇼크로 사망하는 거 아니야?’

이제 보니 <개복치(R)>는 양반이었다.

‘<병약미(S)>만 없었어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눈앞으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다음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여 <병약미(S)>를 해제할 수 없습니다.

- 단군신화! 100일 식단

- 헬린이의 역습

- 숨겨왔던 나의 복근♡]

충격과 허망함이 섞인 백야의 눈이 공허해 보였다.

‘잠깐만. 해제 조건?’

저 말은 해제 조건을 충족하면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다는 말처럼 보였다.

‘패시브는 해제가 안 된다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개복치가 발끈하자 한 번 더 상태창이 떠올랐다.

[근본 패시브 <개복치(R)>는 해제할 수 없습니다.

※ 해제 불가]

근본이라 함은 사물의 본질 또는 본바탕이 되는 뿌리였다.

단순히 운이 안 좋아서 <개복치(R)>가 걸린 줄 알았는데…. 이건 마치 제가 개복치라 해당 스킬이 부여됐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백야는 기분이 나빠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