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80화 (180/340)

제180화

이번에 뜬 퀘스트는 광고 관련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봐오던 퀘스트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Q. (광고) 헤븐 플레이버7 : 광고를 시청하고 스타 포인트를 획득하세요!

※ 광고 시청 중에는 자동으로 행동 불능 상태가 됩니다.]

자세히 보니 퀘스트를 가장한 광고였다.

‘가지가지 한다.’

숙소나 이동 중인 차 안이었다면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보는 눈이 많아 힘들 것 같았다.

거절을 누른 백야가 멤버들의 뒤를 바짝 따랐다.

데이즈를 이끈 남경은 곧장 감독과 헤븐 플레이버 마케팅 팀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데이즈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휴, 기운이 대단하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이 손을 내밀며 멤버들과 차례대로 악수했다.

그 모습을 본 헤븐 플레이버 직원들은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돌 그룹이라며 데이즈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다른 회사에서 채 가기 전에 데려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저희 야근까지 해 가면서 기획서 올렸잖아요.”

그 말에 감독은 데이즈의 인사를 따라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유, 알겠으니까 부담 좀 그만 줘. 저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세요. 저희가 회사를 털어서라도 다 구해 올게요.”

광고주 측에서는 이번 촬영에 대한 기대가 큰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오기까지 했다.

덕진이 슬쩍 물어보니 메이킹 영상 촬영용이라고 했다.

“그나저나 가수분들 오늘 컨디션이 좋아야 할 텐데. 우리 오늘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야 해요.”

“컨디션 좋습니다.”

데이즈가 열정 가득한 모습을 보이자 감독도 만족스러워했다.

이어서 그는 사진이 길게 나열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광고의 전체 흐름을 나타낸 콘티였다.

“이번에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미니 스푼이라는 맛보기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에요. 그걸 홍보하기 위한 광고인데.”

감독은 오늘의 촬영 콘셉트에 대해 설명했다.

“헤븐 플레이버에 오면 원하는 맛을 모두 먹어 볼 수 있다는 컨셉이에요. 한 명씩 포스기 앞에서 원하는 맛을 말하고 옆으로 빠지면 됩니다.”

바스트 샷 위주로 찍을 예정이고, 마지막에 백야와 청은 짧은 대사가 있을 거라고 했다.

“대사요?”

“오!”

대사가 있다는 말에 백야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그 대사가 뭔지 알려 주시면 좋겠는데….

감독은 아무런 언질 없이 넘어갔다.

그래도 콘티에는 적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백야가 까치발을 들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대사가 뭔지 물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이던 백야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멤버들을 둘러본 민성이 대표로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바로 촬영 시작할게요.”

* * *

- 방금 강남에서 아이돌 본 썰 푼다 (유리 너머 데이즈.jpg)

└ 학원 마치고 아이스크림 사 먹으려고 헤플7 갔을 때였음. 오늘따라 매장 안에 카메라가 많네 하면서 들어갔는데 오늘은 뭐 촬영해야 돼서 영업을 안 한대. 나가달래

└ 집 가는 길에 헤플은 여기 하나라 솔직히 좀 짜증 났음. 심기가 뒤틀려서 내 아이스크림 못 먹게 한 놈들 얼굴이나 보자 하고 오기로 기다림

└ 나를 시작으로 기웃거리는 인파들은 점점 늘어만 갔음... 그러다 잠시 후 벤 한 대가 멈춰 섬. 문이 열렸는데 빛이 쏟아짐;; 거짓말 안 하고 그저 빛이었음

└ 디X니 왕자님같이 생긴 애가 날 보면서 씩 웃는데 심장 터질 뻔함. 이름은 모르지만 난 오늘부터 저분의 백성이 되기로 함

└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헤플답게 이 뒤로도 X나 다양한 매력의 존잘들이 뒤따라 내렸음. 그러다 마지막에 내 앞에 떨어진 복숭아 하나...

└ 왜냐면 얘가 차에서 내리다가 진짜 넘어졌거든.. 웃으면 안 되는데 솔직히 비련의 여주인공 포즈여서 웃겼음ㅋㅋㅋㅋㅋㅋㅋ

└ 자기도 어이없는지 입꾹 하면서 웃음 참는데ㅋㅋㅋ 좀 무섭게 생긴 애랑 매니저가 금방 일으켜서 데리고 들어감

└ 아직 촬영 중인지는 모르겠음. 좀 보다가 사람 몰려서 나옴

민성의 백성이 올린 글은 나잉이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알티를 타고 있었다.

그 시각, 열일 중인 그녀의 왕자님은 민트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며 끼를 부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트 초코 하나 주세요.”

제일 앞에 선 민성의 뒤로 멤버들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주문을 마친 민성이 옆으로 빠지자 농구공을 들고 있던 율무가 ‘점핑스타’를 주문했다.

이어서 나타난 유연은 보조개를 지으며 ‘사랑에 빠진 바닐라’를 주문했고, 지한은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이상한 나라의 외계인’을 주문하곤 사라졌다.

“초코초코볼 주세요!”

뒤이어 나타난 또 다른 냉미남은 매장의 중심에서 초코를 외쳤다.

주문을 마친 청이 옆으로 사라지자, 이번에는 우유 냄새가 날 것 같은 백야가 등장했다.

“어떤 맛으로 드릴까요?”

“저는…….”

백야가 고민하자 점원이 살며시 웃으며 분홍색 미니 스푼을 내밀었다.

“고민되시면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이후의 콘티는 ‘헤븐 플레이버에 오면 원하는 맛을 모두 먹어 볼 수 있다’는 카피와 함께 멤버들이 주문한 베스트 5 제품 컷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해당 부분은 데이즈와 관련이 없으니 현장 촬영에서는 생략됐다.

“이번에는 청 씨가 대사를 하면 백야 씨가 한입 베어 무는 거예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대사는 정말 단순했다.

멤버들은 정면을 보며 앉아 있고, 가장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골라 온 백야가 신제품을 먹으며 리액션을 하는 장면이었다.

“레디, 큐!”

감독의 사인에 카메라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야가 앵글 안으로 들어왔다.

찹쌀떡처럼 생긴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자 청이 관심을 보였다.

“그건 모냐.”

“말랑 아이스.”

떡을 오물거리는 백야의 볼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던 청이 백야의 볼을 꼬집으며 준비하고 있던 대사를 쳤다.

“오. 말랑말랑.”

“나도!”

“나도~”

멤버들이 앞다투어 백야와 아이스크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케이. 컷!”

멤버들의 열연에 단체 촬영은 금방 종료됐다. 이제부터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개인 클로즈업 촬영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유연 씨 먼저 갈게요~”

“네.”

수정 메이크업을 받던 유연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연스레 쉬는 시간을 얻게 된 다른 멤버들은 빈자리에 앉아 촬영을 지켜봤다.

픽업대 위에 걸터앉은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카메라 앞에서 컵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있었다.

“음~ 부드러운 미소~”

“…….”

“보조개 방긋~”

감독의 부담스러운 요청에도 유연은 훌륭한 표정 연기를 선보이며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했다.

다음 순서로 불려 간 율무는 스태프에게서 아이스크림콘을 하사받았다.

“율무 씨 크게 한입. 옳~지. 앞에 보면서 행복한 미소~”

186cm의 거구를 어린아이 다루듯 대하는 감독님 때문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어지는 촬영을 구경하던 백야는 점점 과해지는 감독님의 요구 사항에 고개를 돌렸다. 차마 율무의 애교는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윽….”

저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민성도 앞을 보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좀 어지럽네.”

그 말에 십분 공감한 백야가 작게 웃으며 매장 안을 둘러봤다.

이런 곳에 오면 가게 안쪽이 궁금하곤 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그러던 그때, 매장 입구 쪽 서비스 테이블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확히는 그 위에 놓인 전단지가.

‘저건….’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는 곧장 테이블 앞으로 돌진했다. 누군가 버린 전단지 같은데 정전기 때문에 뚜껑에 붙어 버린 모양이었다.

종이는 건드리자 쉽게 떼어졌다.

백야가 심각한 얼굴로 전단지를 내려다봤다.

“백도. 거기서 뭐 해.”

“…….”

“사주? 너 이런 거 관심 있냐?”

다가온 유연이 백야의 손에 들린 전단지를 발견했다.

구경하다 말고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나 했더니. 멈춰 선 곳이 쓰레기통 앞이라 조금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들고 있는 종이에 쓰인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포브스 선정 세계 3대 점집★

당신의 명과 운을 분석하는 강남 사주 오픈 기념 이벤트!]

“미친….”

“그러게. 진짜 미쳤네. 포브스에서 점집을 왜 선정하냐? 딱 봐도 사기잖아. 이런 데를 누가 가.”

“무슨 소리야? 여기 진짜 용해.”

“…가 봤어?”

“응.”

백야의 대답에 유연은 잠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런 전단지를 보고 진짜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유연은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반응에 백야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올려다봤다.

“여긴 진짜라니까? 내가 아이돌 될 거라는 것도 맞혔어.”

유연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어… 그래? 근데 여기는 오늘 오픈했다는데. 다른 데랑 헷갈린 건 아니고?”

이런 곳은 이름이 다 비슷비슷하지 않냐며 유연은 끝까지 부정하려 했다. 그러나 백야는 단호했다.

“아니야. 여기 맞아.”

검은색 종이에 한없이 진지한 궁서체. 그러나 색상만큼은 알록달록한 무지개 그러데이션.

거기다 멍청해 보이는 파란색 캐릭터까지. 제가 받았던 그 전단지가 확실했다.

이번 활동이 끝나면 꼭 한번 가 봐야겠다 생각한 백야는 전단지를 고이 접었다.

“그건 또 왜 챙기는데. 설마 가려고?”

“응.”

“진짜?”

“응.”

“야, 그거 아니야. 차라리 내가 봐줄게. 왜. 뭐가 궁금한데.”

유연은 멤버가 저런 말도 안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냥 점집도 아니고 ‘포브스 선정’을 운운하는 곳이라니.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혼자 보냈다간 통장에 집문서까지 바치고 빈털터리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아무튼 안 돼. 그런데 함부로 가는 거 아니야.”

“뭐래….”

“너는 진짜 나 같은 친구 없다는 것만 알아라.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이리 내.”

유연이 손을 뻗어 전단지를 빼앗으려 들었다. 물론 그럴수록 백야의 반응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눈을 게슴츠레 뜬 개복치가 눈앞의 인간을 경계하며 나쁜 손을 찰싹 때렸다.

“아. 너 지금 나 쳤어?”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말을 해. 괜한 수작 부리지 말고.”

“수자악?”

잘못된 길로 가려는 친구를 바로잡아 주려 했을 뿐인데. 졸지에 수작남이 되어 버린 유연은 기가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와…. 어이가 없네?”

“아닌 척하기는. 활동 끝나고 내가 넌 특별히 데려가 줄게.”

“너어는 진짜….”

이 눈새 어떡하지?

눈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발전했을 줄이야.

완전체로 거듭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모습에 유연의 속만 타들어갔다.

한편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지한이 관심을 보였다.

“둘이 거기서 뭐 해?”

“야, 몰라. 네 마음대로 해.”

허공에 손을 저으며 항복을 선언한 유연은 지한에게 다가가 두통을 호소했다.

“형. 나 쟤 때문에 대가리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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