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말하는 족족 닭살이 돋는 바람에 백야는 닭이 되기 직전이었다.
“쯧쯧. 보이는구먼. 어렸을 때 집에 큰일이 있었지? 불이 났었다던가 뭐 그런.”
백야가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네! 맞아요. 저 아기였을 때 옆집에 불이 나서 큰일 날뻔한 적 있다고 했어요.”
“그게 다 귀신짓이야. 단내가 폴폴 나는데 기가 약하기까지 하니 탐스러울 수밖에.”
“…단내요? 귀신?”
“음기 말이야, 음기.”
백야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유연이 옆을 돌아봤다.
얘한테 음기는 무슨.
그러나 처연하게 내려간 눈꼬리, 흰 피부, 맑은 눈동자는 확실히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어디 보자~ 그리고 8살쯤 큰 고비가 있었는데 용케 살았구나.”
점술사는 백야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피해 간 사고를 말하고 있었다.
물론 백야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 운명이라는 게 그리 쉽게 바뀌나. 비켜간 만큼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팔자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점술사는 백야더러 ‘단명하거나 대성할 운명’이라고 했다.
“저기요. 아까부터 계속 안 좋은 말씀만 하시는 거 같은데 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 좋은 건 하나도 없어요?”
유연의 말에 점술사가 뜨끔하며 시선을 피했다.
“보자~”
서랍에서 타로 카드를 꺼낸 점술사는 카드를 몇 번 섞더니 테이블 위로 길게 펼쳤다.
“서비스. 왼손으로 세 장.”
갑자기 꺼내 든 타로에 다들 황당해했다.
“왼손 세 장.”
“네? 아….”
머뭇거리던 백야는 점술사의 재촉에 못 이겨 세 장을 골랐다.
개복치가 선택한 카드를 골라낸 점술사는 이어서 오른손으로 세 장을 더 뽑으라 했다.
“마지막으로 한 장.”
“오른손이요?”
“오른손.”
마지막 카드까지 고르자 점술사는 남은 카드를 모두 걷어 갔다. 테이블에는 백야가 고른 일곱 장의 카드만 남겨졌다.
[매달린 남자]
[황제]
[운명의 수레바퀴]
[달]
[죽음]
[세계]
[심판]
점술사는 제일 위에 놓인 카드를 가리키며 해석을 시작했다.
“남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지? 본인도 알다시피 현재 처한 상황이 썩 좋진 않아. 이건 시련 카드거든.”
“시련이요?”
“나의 마음에 불안이 있다~ 이 말이지.”
동시에 나란히 놓인 다른 카드는 대놓고 불길한 느낌이 느껴졌다.
‘데스…?’
바닥의 시체와 해골 병사. 그 아래로 ‘DEATH’라 적힌 ‘죽음’의 카드가 백야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나쁜 카드 아니야.”
점술사는 죽음의 카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불안이 커져서 나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
“헉.”
“그럼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떠냐.”
점술사는 아랫줄의 세 번째 카드를 가리켰다. 커다란 왕관을 쓴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 카드였다.
이번에는 딱 봐도 좋아 보이는 그림에 백야는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점술사의 풀이는 부정적이었다.
“굉장히 불안한 상태. 황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 갑옷을 입고 있지?”
“네.”
“갑옷은 방어적인 성향을 상징하는데, 나는 나의 울타리 안으로 타인을 쉽게 들이는 성격이 아니라고 말해 주네.”
“오!”
청이 동조하자 유연이 매서운 눈으로 흘겨봤다.
저건 당연한 거 아니야?
생판 모르는 남한테 쉽게 곁을 내어 주는 바보도 있나.
유연이 반응을 보이지 말라며 청을 흘겨보는 눈에 힘을 줬다.
“때문에 지금 나는 전환기가 될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혹시 직업이 그건가?”
“네! 가수요. 어떻게 아셨어요?”
“딱 보면 알지.”
백야는 자신의 입으로 답을 술술 불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아무래도 지금 이 공간에서 답답한 사람은 유연뿐인 것 같았다.
유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점술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카드를 가리켰다.
이번 카드는 운명의 수레바퀴.
“나는 돌아이가 될 운명이었다~ 고 카드가 말해 주네.”
“아이돌이요. 아이돌.”
유연이 이를 악물며 단어를 정정해 주었다.
“크흠. 어쨌든.”
이어서 역방향의 달 카드를 놓은 점술사는 다행히 주변의 기운으로 ‘위험의 덫에 빠질 뻔한 것을 알게 되어 위험을 피해 간다’고 설명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게 뭐냐.”
나체의 모습을 한 여인이 보라색 천을 몸에 두른 ‘세계’ 카드를 가리켰다.
“성공. 이 힘든 여정을 얼른 끝내고 싶어. 여행의 끝은 임무의 완성이고 이는 새로운 시작이야.”
지금의 고난을 털어 내고 얼른 새 삶을 살고 싶어 한다며 백야의 눈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 모든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점술사가 마지막 카드를 가리켰다.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는 ‘심판’ 카드였다.
“고생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 헤어진 연인에게서 다시 연락을 받거나 재회를 하게 된다. 자, 질문.”
헤어진 연인이라는 대목에서 유연은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흐흐흐.”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어깨를 들썩거리는 게 실성한 사람 같았다.
반면 점술사의 언변에 단단히 매료된 개복치는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쏟아 냈다.
“그럼 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어요? 천사 카드 나왔으니까 안 죽어요?”
“그건 하기 나름이지. 성과는 노력 여하에 따라 나뉘니까.”
“그럼 불안해도 그냥 지금이 좋으면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나오네. 정 불안하면 내가 방패 부적 한 장 적어 주고.”
부적이라는 말에 백야가 귀를 쫑긋 세웠다.
“부적은 얼만데요?”
“5…, 10만 원.”
카드도 되냐며 백야가 지갑을 꺼내려 하자 결국 유연이 폭발했다.
“야, 일어나.”
“왜?”
“글쎄 일어나라고.”
아까부터 부정적인 얘기만 늘어놓는데 얘는 기분이 안 나쁜가?
유연은 자신만 이 상황이 불쾌한 건지 황당하기만 했다.
“왜. 가려고? 친구는 물어볼 게 더 남은 것 같은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유연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네 친구 옆엔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 병원 냄새도 나고. 조만간 원치 않은 일에 휘말리게 될 텐데.”
“저기요!”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진짜.
결국 참다못한 유연이 큰 소리를 냈다. 청과 백야는 처음 보는 친구의 모습에 굳어 버렸다.
“안 죽어요. 안 죽는다고. 얘가 죽긴 왜 죽어요?”
“야아…. 왜 화를 내고 그래….”
“너도 그래. 왜 가만히 듣고만 있어? 기분 안 나빠?”
음….
백야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저야 시스템에게 매일같이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점술사의 말이 다 맞는 말 같았지만, 두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혼자 올 걸 그랬다.
“그냥 내가 몸이 약한 거 아시고 그런 거겠지….”
“편들지 마.”
유연이 백야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점술사를 노려보며 백야가 들은 악담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러니까 손님이 하나도 없지.”
손목을 잡아 끌자 백야가 힘없이 딸려 왔다.
어느새 문을 열고 나가 버린 두 사람에 점집에는 청만 남겨졌다.
“어어…!”
남겨진 청이 우왕좌왕 거리며 짐을 챙기는 사이 점술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 친구 물 조심하라 그래.”
“물?”
점술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딸랑-.
청은 멍하니 선채 점술사를 바라보는데, 문이 다시 열리며 유연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빨리 나와!”
“가, 간다! 나 간다.”
청이 허겁지겁 뛰쳐나오자, 유연은 두 사람을 데리고 맞은편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금을 들고 나온 유연은 청과 백야를 세워 놓고 마구 뿌려 댔다.
“끄악! 따가워…!”
“모야! 모, 퉤! 짜!”
별안간 소금 세례를 받게 된 두 사람이 파닥거리며 날뛰었다.
“가만히 있어! 귀신 쫓아내는 거니까.”
재수 없을 땐 소금만 한 게 없었다.
100% 적중률은 개뿔.
저 집은 조만간 망할 거라며 악담을 퍼부은 유연은 기분이 많이 언짢아 보였다.
“너 예전에 왔을 때도 이랬냐? 그때도 안 좋은 얘기만 했어?”
“그때는 딱히….”
“여기 다시는 오지 마.”
“으응….”
몰래 혼자 올 계획을 품고 있던 백야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한편 일방적으로 혼나는 백야를 보던 청은 유연의 손에서 소금을 빼앗아 왔다.
투둑-.
커다란 소금 입자가 유연의 티셔츠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야?”
“너도 재수 없어!”
“난 됐어.”
“No! 우리는 팀이니까 똑같이 해!”
청이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소금 병의 뚜껑을 완전히 열었다.
“야, 잠깐. 아오, 저게 진짜…!”
조금 전의 설움을 대갚음해 주듯 소금이 통으로 뿌려졌다.
등을 돌리며 소금을 피하던 유연이 근처에 있던 백야를 끌어당겼다.
“너 이리 와.”
“흐억!”
개복치의 어깨를 잡은 유연이 방패 삼아 앞으로 내밀자 백야의 비명이 울렸다.
“끄아악! 이 나쁜 놈!”
“네가 제일 재수 없으니까 그냥 많이 맞아!”
귀신 쫓는 액땜이라 생각하라니까 발버둥 치던 백야가 얌전해졌다.
“Good! 끝!”
청이 뿌듯한 얼굴로 손바닥을 털며 근처의 카페를 가리켰다.
“귀신 죽었으니까 이제 가! 더우니까 저거 먹고 숙소 가.”
청은 멋대로 앞장을 서서 걷기 시작했다.
* * *
- 얘들아(0명) 나 오늘 연예인 본 거 같아
└ 엥 누구? 유명함??
└ 가게 맞은편에 존나 아무도 안 갈 거 같은 점집 하나 오픈했거든. 이름도 포브스 3대 점집이라 볼 때마다 킹 받음
└ 저기로 사람 들어가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오늘 첫 손님 입장함. 셋 정도 우르르 들어가길래 “와 저 호구들은 뭐지?” 싶어서 창문 기웃거렸음
└ 근데 금방 나오더니 갑자기 한 명이 편의점 안으로 돌진하는 거야
└ 내가 훔쳐본 거 들켰나 싶어서 매대에 대가리 박고 담배 정리하는척하는데 녀석이 날 부름
└ 조때따 싶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뒤 돔. 다행히 녀석은 허브맛 솔트를 계산해 달라고 카드를 내밀고 있었음 (마스크 끼고 있었는데도 존잘의 기운이 느껴짐)
└ 친구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글라스 낀 흰머리 졸라 잘생겼더라
└ 아무튼 값을 지불한 녀석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둘한테 소금을 냅다 뿌리기 시작했음. 추측인데 점집에서 안 좋은 말을 들었나 봄ㅠ
└ 서로 소금 존나 뿌리더니 지금은 옆집에 커피 마시러 감. 소금 턴다고 잠깐 마스크 벗은 거 봤는데 남자가 봐도 존잘이었다
└ 한 명은 낯이 좀 익었는데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음
└ 사진 찍었어야지 등신아... 개 궁금하네
└ 아까 카페에서 나오는 거 찍긴 찍었는데 막 올려도 됨?
└ ㅇㅇ 올려봐
└ (사진)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유연의 금발과 분홍색 버킷햇을 쓴 백야. 볼캡을 거꾸로 쓴 백금발의 냉미남은 누가 봐도 청이었다.
“너희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좀 뜨니까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어?!”
“다시는 안 그럴게.”
“I’m sorry.”
“잘못했어요, 형….”
그 결과 막내즈는 숙소 거실에서 남경에게 혼나는 중이었다.
완전범죄를 꿈꿨으나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세 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동생들을 말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함께 소환된 민성도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매일 회사랑 집만 다니니까 애들이 답답했나 봐. 그냥 커피 사 먹으러 잠깐 나간 거….”
“커피를 강남까지 가서 사 먹냐?”
“거기가 맛집…일걸?”
그래도 동생이라고 피의 실드를 치는 민성을 보며 남경이 기막혀했다.
“사람이라도 몰리면 어쩔 뻔했어. 어?!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인 거 알아, 몰라!”
“알아요….”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에 백야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개 숙인 백야가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는데, 갑자기 속눈썹이 떨어지며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이물질의 침입에 착실하게 반응한 몸뚱어리는 금방 눈물을 만들어 냈다. 생리적 현상이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너희 진짜!”
“백도… 울어?”
“아니, 그게 아니라 눈에 뭐가 들어갔어.”
“운다고?”
눈을 찡그리며 남경의 말이 끝날 때까지 버티려던 백야가 참지 못하고 눈을 비볐다.
그 순간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즙 한 방울에 정적이 흘렀다.
“Oh my god. 남경이 울렸어.”
청이 남경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