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86화 (186/340)

제186화

그런데 기분이 조금 꺼림칙했다.

“…….”

13일의 금요일?

폐쇄병동?

‘원래 핼러윈 어쩌고 아니었나.’

분명히 기억하는데 업데이트 알림이 떴을 때 저런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도 아이돌 육성 게임에 저런 단어가 나와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설마…. 업데이트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개복치는 눈을 뜨자마자 스트레스를 얻었다.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주의’ 단계입니다. 59%]

이성보다 먼저 반응한 몸이 코피를 쏟아 냈다. 누워 있던 탓에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야. 좋은 생각. 좋게 생각하자.’

백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으로 대충 피를 훔쳐 내자 뺨 위로 핏자국이 번졌다.

한편 백야가 깨어난 걸 보고 신이 나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청은 놀란 모습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백야 일어났, 피, 피?!”

상체를 일으키자 허벅지 위로 붉은 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 X발.”

* * *

- 복숭아 입국 심사 완료! 뱅기 타자마자 바지 갈아입었는지 갈 때랑 다르게 편한 옷으로 내렸네♡ 잠 많이 잤는지 부었어ㅋㅋㅋ (동영상)

└ 백야 잠 덜 깬 거 같은데ㅋㅋㅋㅋ 멍해가지고 애들 뒤만 졸졸 따라다님

└ 율무랑 청이는 공항이 무슨 런웨이 같네

- 콘서트 14일이지? 애들 하루는 쉴 수 있겠다

- LA 공항 사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짜... 한국도 이렇게 질서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 (공항 사진.jpg)

- 미국은 이제 밤이지? 시차 적응 힘들겠다...

- 애들이 사진 많이 올려주면 좋겠다ㅜㅜ 유앱까진 바라지 않을게..

호텔로 이동 중인 데이즈는 백야의 코피 썰을 듣고 있었다.

“백야 호러 무비 주인공이야! 그리고 욕도 했어!”

“욕을 했다고? 쟤가?”

민성이 못 믿겠다는 얼굴로 돌아보자 백야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내가?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No! 무조건 들었어!”

“무슨 소리야. 그나저나 기내가 너무 건조하더라.”

백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청이 손등을 찰싹 때리며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No! 물 안 돼.”

“너 이씨. 나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지!”

코피가 멎고, 물을 마시던 백야가 사레에 들린 뒤로 청은 그에게서 물을 압수했다.

갈증이 나는데도 자꾸 주스나 탄산음료 같은 것만 권하는 통에 백야는 입 안이 텁텁했다.

“왜 물을 못 마시게 해.”

지한이 물병을 따서 건네자 백야가 재빨리 받아 들었다.

꼴깍 꼴깍-.

반 병을 그대로 비워 내는 개복치를 보며 멤버들이 짠한 표정을 지었다.

“불쌍해….”

“청아, 이거 햄스터 학대야~”

민성과 율무가 청을 비난하자 그의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아니야! 물 조심하라 그랬어!”

“누가.”

“마법사가!”

청이 말하는 마법사가 점술사라는 걸 아는 유연만 얼굴을 굳혔다.

“야, 그 사람 사기꾼이라고. 거기서 들은 말은 다 잊으라고 했지.”

어쩐지 늦게 나온다 했다며 유연이 구시렁거리는데, 갑자기 백야가 물을 뿜으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이거 봐라! 내가 물 마시면 안 된다고 했는데! 비행기에서도 계속 이랬는데!”

점쟁이가 그런 말을 했을 줄이야.

아무 생각 없던 백야는 그 순간부터 물을 의식하게 됐다.

‘물을… 조심하랬다고?’

들고 있던 물병이 저주받은 물건이라도 되는 양 황급히 내려놓았다.

그 사이 데이즈가 탄 차는 이틀 동안 머무를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멤버들은 룸메이트를 정했는데, 백야는 비실비실하다는 이유로 남경과 한 방을 쓰게 됐다.

“공연만 끝나면 휴가니까 컨디션 관리 잘하자. 이 손 많이 가는 놈아.”

남경이 쓰다듬듯 백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나저나 어쩌냐~ 비행기에서 그렇게 잠을 많이 자서. 또 자야 하는데 잠 오겠어?”

남경이 창문 앞으로 다가가 커튼을 쥐었다. 유리 너머로 LA의 야경과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이야~ 백야야 이것 좀 봐라.”

“우와….”

멀리서 반짝이는 빛을 응시하던 백야가 감탄했다.

가까이 와서 구경하라는 말에 백야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우연히 테이블 위의 디지털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23:59 THU]

[00:00 FRI]

때마침 숫자가 움직이며 자정으로 바뀌는 순간. 백야의 앞으로 상태창이 나타났다.

[타임 퀘스트 : 13일의 금요일]

[조건을 충족하여 튜토리얼을 진행합니다. 로딩 중….]

[스테이지를 불러오기 위해 설정값을 변경합니다.]

비행기에서 눈을 뜬 뒤로 줄곧 찝찝하던 불길함이 실체를 드러냈다.

‘이, 이게 뭐야?’

에러가 난 것처럼 노이즈가 끼더니 눈앞이 흐릿해지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백야가 뒷걸음질 치며 테이블의 모서리를 짚었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자 남경이 올려 둔 물병이 넘어지며 백야의 신발과 바닥을 적셨다.

[로딩 완료. 100%]

순식간에 완료된 로딩창은 데이터에 저장된 맵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사위와 멀어지는 남경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야. 안 돼…!”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암흑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백야가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뒤로 기울었다.

“백야야!”

꽈당-!

* * *

정신을 잃은 백야가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건 역시나 상태창이었다.

[히든 맵 : <공포 게임 주인공으로 살아남기> 13일의 금요일 폐쇄 병동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백야가 플레이하던 게임은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 그러나 지금 눈앞의 텍스트는 공포 게임을 운운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제발…….”

설마 설마 했는데 업데이트가 또 말썽을 부렸다. 아무래도 게임이 바뀐 것 같았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백야의 호흡이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상한 상황에 닥치면 일단 자해부터 하고 보는 백야는 손으로 뺨을 내려쳤다.

찰싹-.

“아야.”

아픈 걸 보니 이번에도 꿈은 아닌 듯했다. 쭈굴 모드가 켜진 백야는 아린 뺨을 감싸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야…. 나한테 이러지 마. 진짜아….”

경계 상태의 백야가 울먹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두 번째 상태창이 떠올랐다.

[어둠과 공포로 가득한 새벽.

과거 폐쇄 병동으로 쓰이던 건물에서 눈을 뜬 당신.

병동에 숨겨진 아이템과 단서를 획득해 이곳의 비밀을 파헤쳐 보세요.]

‘…폐쇄 병동?’

[튜토리얼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숨겨진 진실(1) : 30년 전 이곳에 재직했던 간호사 메리의 일기장이 간호사실 어딘가에 남아 있다.

메리의 일기장을 찾아 지하실 열쇠가 숨겨진 곳을 알아내야 한다.

- 보상 : 지하실 열쇠]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상태창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건 또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아니야…. 이거 아니야.’

주먹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톱이 손바닥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창백하게 질린 백야는 떨리는 몸을 이끌고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메리의 일기장을 찾으러 가는 건 당연히 아니었고,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지하실이라니. 딱 봐도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제가 왜 간단 말인가.

그러자 상태창이 한 번 더 떠올랐다.

[알 수 없는 발소리]

[뒤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돌아보지 말자.]

끼이익-.

백야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따라왔다.

“끕.”

앞에서는 발소리. 뒤에서는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백야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 X발. 신이시여.’

백야의 몸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스트레스 지수가 진작에 100을 찍고도 남았을 상황인데 뜨지 않는 것만 봐도 지난번처럼 이상한 상황에 놓인 게 분명했다.

‘괜찮아. 침착해. 제발.’

분명 지난번처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둡기만 하지, 가구나 커튼 같은 것들은 깨끗한 걸 봐서 다행히 폐업한 정신병원 같은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비주얼마저 끔찍했다면 그냥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을지도 몰랐다.

[병실 밖은 어떤지 알 수 없다.]

문 앞에 멈춰 서자 나타난 상태창이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병원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이었는데, 의미심장한 내용을 보자 차마 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흐으….”

울고 싶지 않은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새어 나왔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백야는 병실의 불만 켠 뒤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병실이 밝아지자 줄곧 뒤를 따라오던 소름 끼치는 소리 또한 사라졌다.

분명 쓰러질 때 가방을 메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가방도 없었다.

“끄흡.”

몸을 웅크린 백야가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

‘귀신 싫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다 죽어 버렸으면.’

슬픔 5단계 중, 부정과 분노, 타협을 지나 우울 단계에 진입한 백야는 공포에 질려 눈물만 뚝뚝 흘렸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다.

‘물 조심이 그런 물이었다니. 이건 너무하잖아.’

짓씹은 입술 사이로 숨죽인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냥 개복치로 죽어도 되니까 원래대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제발.’

눈을 질끈 감은 백야가 시스템에게 기도했다. 그러자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나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기도에 대한 응답인가 싶어서 눈을 떴지만, 눈앞에 떠 있는 건 기만이었다.

[밖으로 나가기 전, 병실 안에 있을 층별 안내도를 찾아보자.]

“꺼져 버려!”

흑화한 개복치가 베개를 집어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다 이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접어들려는데, 사라졌던 발자국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진 소리는 이내 문 앞에 멈춰 서며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결국 올 게 왔구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차피 결말은 배드 엔딩.

백야는 귀신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이 공포 게임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0.001%도 없었다.

허겁지겁 시트를 들춘 백야가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제발. 제발.’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쓴 햄스터 한 마리가 공포에 바들바들 떨었다.

드르륵-

그리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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