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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87화 (187/340)

제187화

“백야 깨는 대로 내가 데리고 들어갈 테니까…. 어? 불이 켜져 있네. 백야 일어났나?”

“남경 영어 못 해! 그냥 내가 있어!”

“일어나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왜 저러고 계시지?”

덕진이 침대 위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백야를 가리켰다.

남경과 덕진이 다가가려 하자 청이 두 사람을 말렸다. 언젠가 본 적 있는 모습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백야.”

“…….”

“햄스터!”

청은 섣부르게 백야를 건드리지 않았다.

귀를 막고 있을 게 분명한 백야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청?”

청의 노력이 통했는지, 바들바들 떨리던 이불 더미가 천천히 젖혔다.

“나쁜 꿈? Ghost?”

“…….”

“아! 설마 머리 아프나?”

백금발의 익숙한 얼굴이 자신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에 백야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에휴. 그래서 내가 곰 인형 들고 오자고 했는데.”

훌쩍-.

“처엉…….”

“But That’s Ok. 내가 민성 캐리어에 넣어 왔어. 호텔 가면 있, 흐억…!”

눈물로 범벅이 된 백야가 굴러 떨어지듯 침대 아래로 내려와 청의 팔을 꼭 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이 창백하게 질릴 정도로 옷깃을 세게 쥐고 있었다.

“눈 떴는데, 끕. 아무도 없어서…. 그래서 또 혼자인 줄 알고, 끅.”

“백야가 왜 혼자…. 아! 남경 없어서 찾았구나?”

눈물이 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백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이상한, 끅, 너희도 없고, 히끅.”

울음을 참으며 꾸역꾸역 말을 뱉어 내는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That’s Okay. 나 여기 있어. 백야 엄청 울보야!”

그 말에 백야가 눈을 치켜뜨며 노려봤다.

눈이 마주치자 청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백야는 그제야 청이 농담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 저기, 우리도 있거든?”

대화 중에 미안한데 언제까지 병풍처럼 서 있어야 되는 거냐며 남경이 조용히 다가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어오른 뺨과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남경은 속으로 ‘조졌다’고 생각했다.

“얼굴이 왜….”

이들이 병실을 비운 시간은 3분 남짓. 그 사이 누가 다녀간 걸까. 그래서 쟤가 저렇게 우나?

남경이 굳은 얼굴로 누가 다녀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백야가 도리질 쳤다.

“끄흡. 아니여….”

“근데 얼굴이 왜 그래? 맞은 것 같은데. 손자국이잖아, 이거.”

남경이 백야의 턱을 움켜쥐고 오른뺨을 살폈다.

덕진과 청도 부어오른 자국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히끅. 제가 해써여. 꿈인 줄 알고….”

“뭐라고?!”

뿌애앵!

아는 얼굴을 보자 안도감이 든 백야는 결국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게 욱해 버린 남경은 졸지에 아픈 애를 울린 파렴치한이 됐다.

쓰레기.

냉혈한.

청과 덕진의 차가운 눈이 남경을 향했다.

“아니 난….”

공연을 앞두고 얼굴을 저 꼴로 만들어 놨는데 욱할 수도 있지. 그리고 딱히 화를 낸 것도 아니라 더 억울했다.

“죄송해여. 근데 저 진짜 죽는 줄 알고, 흐으…. 막, 막 이상한 소리 들리는데 방에 아무도 없고, 끅.”

뿌애앵!

뭐에 놀란 건진 몰라도 많이 흥분한 것 같아 보이는 놈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 됐어. 다른데 아픈 덴 없고? 너 그렇게 넘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저 때문에 놀라셔쪄….”

“너만 하겠냐. 어우. 이게 콧물이야 눈물이야. 좀 닦아라.”

남경은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진심으로 안도했다.

“백야 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이렇게 놀라실 줄 알았으면 저라도 옆에 있을걸.”

이게 다 점술사가 죽는다 그래서. 아니, 시스템 때문이었다.

“아니에여. 제가 겁이 많아여….”

백야가 눈물을 닦으며 웅얼거렸다. 그만 울고 싶은데 살았다는 안도감에 자꾸 눈물이 났다.

“미끄러지셨다면서요? 얼마나 놀랐는지. 다행히 정말 정말 정말 가벼운 뇌진탕이래요.”

정말을 세 번씩이나…?

저렇게 강조할 정도면 그냥 뇌진탕이 아닌 거 아닐까.

의사도 딱히 할 말이 없으니까 가져다 붙인 것 같았다.

하긴. 튜토리얼 진행을 위해 시스템이 강제로 의식을 셧다운시킨 거였으니 이들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냥 입원 처리했어요. 날 밝으면 그때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토할 것 같거나 머리가 아프면 바로 내원하라고,”

“아니!”

“네?”

“아니에여. 저 하나도 안 아파여. 그러니까 지금 가여.”

“지금요? 지금 새벽 4시인데….”

네 시라는 불길한 숫자에 백야는 더욱 동요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상태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끕…. 저 앞구르기도 할 수 이써여.”

백야가 정수리를 바닥으로 향하게끔 고개를 숙이자 세 사람의 손이 동시에 뻗쳤다.

“Stop!”

“어어…!”

“제발! 제발 가만히 있어!”

가만히 보면 얌전하게 생겨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놈이 백야였다.

남경이 이마를 짚으며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고 애원했다.

“호텔로 돌아가요…. 네?”

눈물은 그쳤지만 속눈썹에 달려 있던 방울이 때마침 떨어졌다. 울먹이는 모습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 없었다.

“Okay.”

“어?”

청의 대답에 남경이 눈을 크게 떴다.

“Anyway 여기 다 못 있어. 그냥 백야도 같이 가.”

백야가 어렸을 때 많이 아팠다는 사실을 아는 청은, 백야가 병원에 대한 큰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But You need to calm down. Okay?”

대신 진정해야 한다며 청이 백야의 어깨를 잡아 눈높이를 맞췄다.

영어만 썼다 하면 낮아지는 톤은 몇 번을 들어도 어색했다.

“…으어?”

“백야 진정해야 우리 여기 나갈 수 있어. 알았나?”

“응. 알겠어.”

백야는 일어나면서도 옷깃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 공포 게임이 진행 중인 상태였다. 손을 놓는 순간 청이 사라져 버릴까 봐 섣불리 놓을 수 없었다.

“빨리 나가자. 빨리….”

물론 이 같은 행동은 백야를 더욱 안쓰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백야를 빤히 보던 청은 자신의 모자를 벗어 백야의 머리 위로 씌워 주었다.

“Wait. 지금 사진 찍히면 못생겨서 큰일 나.”

목격담이 언제, 어떻게 올라올지 몰랐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했다.

백야를 챙겨 병실을 나온 세 사람은 곧장 데스크로 향했다.

“친구가 정신을 차려서 집으로 돌아가서 쉬려고요. 물어보라고 하셨던 증상은 없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백야는 그 옆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정말 괜찮다는 나름의 어필이었다.

그렇게 청의 도움으로 퇴원 절차를 밟은 백야는 드디어 병원을 탈출할 수 있었다.

[경고!]

[지역을 이탈했습니다.]

[13일의 금요일 폐쇄 병동 튜토리얼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게임 진행을 원하신다면 올바른 장소로 이동해 주세요.]

‘조까! 다 뒤져 버려!’

게임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멤버들이 있는 건진 모를 일이지만, 이 사실 만으로도 백야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청을 등에 업은 백야는 시스템을 향해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청이 구원자라도 되는 것처럼 딱 붙어 있던 백야는 병원을 향해 소심한 발차기를 날렸다.

‘내가 다시는 업데이트 하나 봐라.’

게임이 망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제일 큰 문제는 개발자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업데이트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인간들이 모여서 만든 게임이니 망할 수밖에.

유저의 신랄한 리뷰가 이어졌다.

‘그런데 나 이제 어떡해.’

갑자기 바뀐 인생 장르에 뭐부터 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다.

이대로 공포 게임에 갇히는 건가.

멘탈이 나간 백야는 슬픔 5단계의 첫 번째 스텝을 다시 밟으려는데, 시스템이 다급하게 상태창을 띄웠다.

[긴급 업데이트 알림!]

[v.1.3.700 업데이트 (서버 복구)]

▶ 업데이트

‘서버 복구?’

미, 믿고 있었다구!

* * *

[업데이트 준비 중… 47%]

그럼 그렇지. 믿기는 개뿔.

‘이 새끼는 꼭 이러더라.’

쓸데없는 건 빨리 되고, 빨리 돼야 하는 건 정작 함흥차사였다.

병원에 갇혀 꼼짝없이 귀신의 밥이 될 뻔한 백야는 한층 야윈 얼굴로 불량함과 무기력함의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의사소통 때문에 매니저들과 동행했던 청도 수면 부족으로 고생 중이었다.

“청이는 자던데 너도 눈 좀 붙이지…. 마실래?”

민성이 오렌지 주스를 내밀며 백야의 옆으로 다가왔다.

데이즈는 내일 있을 콘서트를 위해 아침 일찍 공연장을 찾았다. 그러나 1차 리허설 중 음향에 문제가 생겨 잠시 중단된 상태였다.

“괜찮아. 그리고 지금 자면 못 일어날 거 같아.”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지금, 백야의 인생 장르는 여전히 공포였으니까.

잠들었다 일어났는데 다시 그 병실이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미칠지도 몰랐다.

“그럼 리허설 마치고 눈 좀 붙여.”

“응.”

눈은 아직까지 조금 부은 상태였지만 얼굴만큼은 멀쩡했다. 어디선가 아이스팩을 공수해 온 남경의 지극정성 덕분이었다.

내일쯤이면 눈도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많이 울었어?”

“울기는 무슨. 청이가 과장한 거야.”

말하기 부끄러운 지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민성이 작게 웃었다.

모르는 척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 그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너랑 청이 것만 적으면 돼.”

“이게 뭔데?”

“공연장 측에서 요청한 서류. 아티스트도 공연 출입증을 따로 신청해야 한대. 방송국 측에서 제출했다는데 중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 됐나 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경이 들고 돌아다니던 것이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우게 돼 민성이 대신하고 있었다.

서류에는 국적과 이름, 소속 등 간단한 항목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야? 이름을 한자로도 적어야 해?”

이름 칸 옆으로 한문이 적혀 있었다.

“그러게. 왜 있는 건진 모르겠는데 칸이 있더라고. 아시아 국가라고 만들어 놨나?”

“엥.”

“나는 혹시 몰라서 일단 적긴 했는데 모르겠으면 그냥 비워 놔.”

“난 한글 이름인데….”

백야의 이름은 ‘지지 않고 항상 밝게 빛나라’는 뜻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리자 다가온 율무가 생글생글 웃으며 장난을 걸어왔다.

“정 적고 싶으면 내가 작명해 주지. 흰 백에 밤 야 어때?”

“그럴듯하긴 한데…. 굳이?”

“그건 그래~”

율무가 웃으며 남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청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청이는 매실 청 씨인가~?”

“매실 청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럼 나는 포도 도 씨니?”

“포도래 푸하하! 나는 그럼 바나나 할래~”

민성의 개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율무가 몸을 크게 젖히며 웃어댔다.

그리고 그 시각.

LA 러브 케이팝 콘서트에 함께 초대된 식스에이엠도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막내 주하가 한자를 적다 말고 하랑에게 말을 걸었다.

“하랑이 형. 형은 ‘하’ 자 무슨 한자 써요? 저는 여름 하 써요.”

“나는 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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