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 * *
- 오늘 LA 청 감히 레전드라고 말해 본다
- 백야 하이틴 때 문제 있는 마이크 성량으로 다 뚫어버리는 거 제발 들어줘 (동영상)
└ 명창 복숭아
- LA 핫가이 나율무 대유죄남 (인이어 빼는 율무.gif)
- LA에서 하이틴 떼창 소름
- 유연이 지금 뭘 입은 거야? 저거 크롭이야? 크롭티???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당장 귀국해
└ 용납 못해 이불 가져와
- XX 데이즈 귀국하면 여권 불태운다
- 떼창 볼수록 어메이징.. 이래서 영어 가사 넣는구나ㅋㅋㅋㅋㅋ 마이 하이틴에서만 소리 댕커져 (동영상)
- 데이즈는 LA를 찢어
- NAN, 놀이, 하이틴 3곡 불렀고 민성이 노래 너무 잘해ㅜㅜ 보컬 라인 목소리가 보물
- 애들 LA까지 가서 흥부 부대찌개 먹은 거 왜케 웃기냐ㅋㅋㅋㅋ 그 와중에 청이 빨간색 앞치마가 킬포ㅋㅋㅋ (데이즈 인증샷.jpg)
- 후식으로 또 헤븐 플레이버7 갔네ㅋㅋㅋ 민성이 취향 한번 지독하다.. 민초...
└ 민초 혐오를 멈춰주세요
- 쏟아지는 LA 목격담에 가슴 찢어지는 중...
- 애들 이제 한국 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인천, LA 공항과는 다른 분위기가 어색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금발의 외국인들 틈에서 백야가 자신의 캐리어를 건져 냈다.
끙차.
익숙한 금색 뒤통수를 따라가는데, 불쑥 튀어나온 손이 백야를 붙잡았다.
“백도, 어디 가는데.”
“어? 너 언제 뒤로 갔어?”
백야가 흰색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과 유연을 번갈아 봤다. 머리 색과 체격, 입은 옷까지 비슷해 자신도 모르게 착각한 것 같았다.
“…어?”
“정신 안 차리냐?”
유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쭈굴 모드가 된 백야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나 왜 조카 돌보는 기분이 드냐.”
“조카라니….”
백야가 애꿎은 캐리어를 굴리며 딴청을 부렸다.
그사이 수화물을 찾은 멤버들이 매니저와 함께 다가왔다. 민성은 대신 챙겨 온 유연의 캐리어를 내밀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캐리어 가져오겠다더니 여기서 뭐 하니? 쟤가 캐리어야?”
“얘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잖아.”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백야에게 향했다. 쟤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들이었다.
“아니, 진짜 똑같았는데….”
“Anyway.”
그때 청이 백야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왔다. 데이즈의 막내는 비장한 얼굴로 형들을 돌아봤다.
“여기부터 나를 믿어!”
오랜만에 온 고향에 청은 들떠 보였다.
양손에 쥔 대형 캐리어와 어깨에 낀 노란색 목 베개, 새로 장만한 선글라스가 말해 주고 있었다.
“Follow me!”
선두에 선 청은 게이트를 가리키며 얼른 따라오라 소리쳤다.
“천천히 가.”
지한이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선두에 선 청이 바삐 움직이자 뒤따르는 멤버들의 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화려한 플래카드를 마주했다.
[WELCOME MY SONS]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선글라스를 낀 장신의 커플이 저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청의 부모님이라기엔 젊어 보이는 외양에 긴가민가하는 찰나. 청이 캐리어 노룩 패스를 선보이며 금발의 미녀에게 달려갔다.
“Mom!”
“Oh my god! My sweet little kitty~”
여성은 흔들던 플래카드를 던져 버리곤 바리케이드를 넘어 달려왔다.
‘청이 부모님이셨구나.’
그러나 가족 상봉을 넋 놓고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 주인 없이 반대편으로 굴러가는 청의 캐리어 때문이었다.
“어어…!”
자신의 짐을 유연에게 넘긴 백야가 캐리어를 잡으러 쫓아갔다.
금세 좁혀진 거리에 손을 뻗어 보는데, 갑자기 나타난 손이 백야 대신 손잡이를 낚아챘다.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는 게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땡큐 베리, 어?”
고개를 꾸벅이던 백야가 말을 멈췄다. 시야에 익숙한 한글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청의 어머니께서 쿨하게 던진 환영 플래카드였다.
인사를 하다 만 백야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남성에 고개를 완전히 꺾어 위를 올려다봐야 했다.
‘크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남자는 청을 많이 닮아 있었다.
“혹시…. 청이 아버님이세요?”
남자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자 백야는 확신했다. 그는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장신의 남성을 올려다보느라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더 동그랗게 뜨였다.
이곳에선 보기 드문 깜찍한 외모에 백야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감탄했다.
“What the….”
“저는 청이랑 같은 멤버인….”
“Hamster?”
“햄스터, 느에?”
그 아들에 그 아버지였다.
* * *
청의 집에 도착한 멤버들은 마당과 수영장이 딸린 저택에 한 번. 마당을 지키고 선 검은 동물에 두 번 놀랐다.
“저게 개니? 곰이지.”
“No! 우리 해피 아가야!”
민성이 창밖의 검은 생명체를 내려다보며 떫은 표정을 지었다.
청이 아직 새끼라고 주장하는 해피는 뉴펀들랜드 종의 대형견으로, 곰 같은 얼굴과 큰 발이 인상적인 개였다.
“네가 보여 준 사진이랑 너무 다르잖아. 나는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를 상상했다고.”
“No! 조금 큰 거야!”
“조금만 더 컸다간 아주 그냥 코끼리가 친구 하자고 하겠네.”
몸무게는 약 70kg으로 추정.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저 커다란 털 뭉치가 데이즈를 향해 달려드는데, 멤버들은 순간 야생 곰이 출현한 줄 알고 기절할 뻔했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구먼.”
“나 아까 당백이 잡아먹히는 줄 알고 놀랐잖아~”
“No! 우리 해피 사람 안 먹어! 사람 살리는 Dog야!”
실제로 뉴펀들랜드는 수중 인명 구조견으로 유명했다.
해피는 청의 수영 친구로 실제로도 사람을 몇 번이나 구해 내 표창장까지 받은 똑똑한 강아지였다.
그러나 민성이 해피를 박하게 평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요. 손님이 온다고 해서 묶어 두긴 했는데 줄이 조금 길었나 봐. 내가 너무 미안해서 어쩌지?”
“저는 진짜 괜찮은데….”
청의 어머니께 손을 잡힌 백야가 쭈뼛거리고 있었다.
어린 주인을 발견한 해피가 반가운 마음에 달려오는 순간, 겁 많은 햄스터가 힘없이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죽은 척한 건데 쪽팔려서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야생 곰을 만나면 죽은 척을 하라던 말이 생각나 냅다 몸을 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쓰러진 적이 두 번이나 있는 햄스터라 멤버들과 부모님은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다들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집에 뒀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봐요.”
“강아지…….”
저건 강아지보다는 곰에 가깝지 않나요.
원래도 창백한 안색은 해피가 달려든 순간 경고창을 띄우며 더욱 나빠졌다. 심장 마비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몸이 약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병원 안 가 봐도 괜찮겠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아니요.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백야는 병원이라면 이제 넌덜머리가 났다.
경고창 후유증으로 아직 머리가 어지럽긴 했지만, 백야는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인터넷에 ‘데이즈 아파 보이는 애’라고 검색해 보시면 저 나와요.”
백야는 율무의 트레이드 마크인 엄지척을 선보이며 활짝 미소 지었다.
당연히 통하진 않았다.
“Okay. 그럼 키티랑 조금만 쉬고 있어요. 해피는 호텔에 데려다주고 올게.”
“아니에요.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는….”
“Baby. Don’t worry.”
그러나 이 집 식구들은 대체로 사람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청도 그렇듯, 한번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는 결코 무르는 법이 없었다.
“Sweet kitty. 친구 잘 챙겨 주고 쉬고 있어.”
“Yes. Mom.”
쪽-.
청에게 다가가 머리에 짧게 키스한 여자는 문을 나섰다.
“헙.”
소파 1열에서 애정 행각을 목격한 율무는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놀라움과 설렘이 섞인 얼굴이었다.
그러다 부모님께서 집을 나서자 개구진 얼굴로 청에게 다가갔다.
“우리 키티~ 깜찍한 별명을 숨기고 있었네?”
“Get away.”
엉겨드는 율무를 밀어낸 청은 백야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미안해 죽으려는 얼굴로 입꼬리를 삐죽였다.
“Sorry. 백야 개복치인데 해피가 놀라게 했어. 진짜 안 아파?”
가만히 있다 뼈를 맞은 백야는 저도 모르게 욱할 뻔했다.
“개복치라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백야가 청의 팔을 툭 건드리며 쿨한 척했다.
마침 창밖에선 검은 털 뭉치가 아저씨의 손에 끌려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형제가 없는 청에겐 해피가 형이자 동생일 텐데. 저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백야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곰, 아니 강아지 호텔로 보낸다고 하시던데.”
“어쩔 수 없어. 백야는 해피 무서워하니까.”
내색하진 않았지만 청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창밖을 힐끔거리는 시선에서 미련이 뚝뚝 흘러내리는 게 다 보였다.
“나 무섭다고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너 쟤 엄청 보고 싶어 했잖아. 안 보내도 돼.”
“No. 해피 소중한 만큼 백야도 소중해.”
청은 ‘해피는 형이고 백야는 동생이니까 이해해 줄 거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영어라 백야가 알아듣진 못했다.
“해피는 내가 보러 가면 돼.”
“아니 그러니까 내가 괜찮다고.”
“Don’t worry!”
환장하겠네.
백야는 그냥 해피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주인이 보내겠다는데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근데 쟤 뭘 물고 있는 거야?”
“오! 저거 내 선물이야!”
해피는 청이 한국에서 선물로 사 온 인형을 물고 있었는데, 하필 햄스터 모양이라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해피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를 발견한 청이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드르륵-.
창밖으로 상체를 내민 어린 주인이 해피를 향해 소리쳤다.
“해피! 내가 꼭 보러 갈게! 조금만 기다려!”
왈왈!
영어로 말한 탓에 ‘해피’ 하나만 알아들었지만, 애틋하기 짝이 없는 게 로미오와 줄리엣 같았다.
본의 아니게 사랑의 방해꾼이 된 백야는 죄책감에 양심이 찔렸다.
빠른 시일 내에 곰을 데려와야겠다 다짐한 개복치는 슬그머니 지한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웬 카메라야?”
“남경이 형이 놓고 갔어.”
가만히 보니 낯이 꽤 익은 게 지난겨울, 브이로그 촬영 때 사용했던 카메라인 것 같았다.
그를 발견한 유연도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그냥 가져왔다고는 하는데 브이로그 찍어 줬으면 하는 거 같던데.”
“아. 그러고 보니 뭘 찍고 싶으면 찍어도 된다 그랬어.”
그 말은 찍어 달라는 소리 아닌가.
‘휴가라며…. 마음껏 놀라며. 지원해 준다며!’
그 지원이 이런 지원인 줄은 몰랐지.
그래도 생각해 보니 멤버들과의 첫 해외여행을 영상으로 남겨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팬분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도 있고.
그리하여 시작된 긴급 가족회의.
주제는 ‘브이로그에 관하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