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 * *
백야는 멤버들의 도움으로 돌고래의 등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돌고래를 호령한 햄스터는 바다를 제패한 뒤 녹초가 되어 늘어져 있었다.
“커어어-”
“백야, 자나?”
운전을 하던 청이 백미러로 뒤를 살폈다.
사람 혼을 쏙 빼놓을 땐 언제고, 고단했는지 입으로 소리를 내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하. 어이가 없네.”
입술을 씰룩인 민성이 잠든 백야를 보며 실소했다.
멤버들은 예정보다 일찍 첫 번째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 난리를 겪고 나니 더는 물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돌고래를 타고 나타났다고?”
“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당백이 완전 바다의 왕자~”
유연과 율무가 생생한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지한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나 생각도 하기 싫은지 눈살만 찌푸렸다.
“염병….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겠네.”
화장실 칸막이 위에 올라가 있질 않나, 고래를 타고 나타나질 않나.
저희의 메인 보컬은 보통 예사로운 놈이 아닌 듯했다.
“거기 Sometimes 돌고래 놀러 와!”
“그게 흔한 일이라고?”
“그런데 탄 사람은 백야가 처음이야! Maybe? 나도 돌고래 탄 햄스터 보고 싶다!”
청이 철없는 소리를 하자 유연이 타박했다.
“무슨 장난인 줄 아냐? 돌고래가 반대로 갔어 봐. 얘 진짜 죽을 뻔했다고.”
“나도 알아! 그래도 아무 일 없었잖아. 치.”
잔소리를 들은 청의 볼이 복어처럼 부풀었다.
뾰로통해진 막내의 모습에 율무가 웃으며 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지한이가 브이로그 열심히 찍었잖아. 거기 찍혀 있지 않을까?”
시트에 몸을 파묻고 있던 지한이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아차 싶은 얼굴이었다.
“카메라 깜빡했어.”
“아니야, 내가 챙겼어.”
민성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자 미처 털지 못한 모래가 떨어졌다.
“거기에 뭐 찍힌 거 없어? 봐봐.”
“안 그래도 궁금해서 뒤져 봤는데 없어.”
튜브를 탄 백야가 안전선 근처까지 떠내려가 있는 모습만 3초 정도 담겨 있을 뿐이었다.
“찍혔으면 대박이긴 한데. 멀쩡히 돌아온 게 어디야. 백야 무사하니까 됐어.”
“그건 그래~”
잠자코 대화를 듣던 지한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브이로그 망했어.”
“왜~ 그래도 앞부분은 쓸 수 있잖아. 말 나온 김에 계속 찍자.”
율무가 카메라를 가져왔다.
“청이 운전하는 것도 찍을까? 2탄은 드라이브 브이로그~”
“오! 찍어라!”
백미러로 눈을 맞추며 개구지게 웃는 청이 화면에 담겼다. 이어서 창밖을 비추자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가 보였다.
“청아 오른쪽으로 빠지려면 이제 차선 바꿔야 하는데.”
“I got it.”
민성의 지시에 청이 오른쪽 깜빡이를 켰다.
사이드 미러를 살피며 더블 체크를 해주던 민성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런데 너희 점 보고 왔다 그랬잖아…. 거기서 물 조심하라던 거, 이거 말한 거 아니야?”
“그거 다 헛소리라니까.”
그러자 유연이 즉시 부정했다.
“바다에서 물놀이할 때 당연히 물 조심해야지. 뭐 불조심할 거냐?”
그렇지 않아도 점술사의 말이 자꾸 떠올라 찝찝하던 참이었다.
“애초에 거기는 가게 이름부터가 틀려 먹었다고.”
“뭐였길래?”
“포브스 3대 선정 점집.”
“뭐야…. 구려.”
민성이 한껏 구겨진 얼굴로 왜 그런 데를 갔냐 묻자 유연이 대답을 피했다.
“몰라. 백도한테 물어봐.”
한편 여전히 카메라를 촬영 중이던 율무는 앞 좌석을 비추며 오늘의 가이드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키티야~ 우리 지금 어디 가?”
데이즈를 태운 차는 해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물놀이를 3시간 넘게 했음에도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아직 한낮이었다.
“우리 피자 먹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게야!”
“피자? 피자 좋지~”
청이 로컬 맛집을 데려가 주겠다 하자 율무가 환호했다. 민성과 지한도 마침 배가 고팠다며 반색했다.
“그런데 우리 커피는 언제 마셔?”
언제 일어났는지 모를 백야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 여러분~ 바다의 왕자가 일어났습니다. 당백이 여기 보고 인사해.”
“…브이로그야?”
“응.”
백야가 앉은 자세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관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그는 등받이를 짚으며 헤드레스트 옆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청, 나 커피…. 피곤해 죽을 것 같아.”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도 가시질 않는 피로에 백야가 긴급 카페인 수혈을 요청했다.
그러고 보니 출발하기 전부터 커피를 찾았는데 돌고래 이야기에 깜빡 잊고 있었다.
“Oh my god!”
청이 깜빡했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민성이 황급히 말렸다.
“내가 찾을게, 내가! 넌 앞만 봐, 제발.”
민성이 다급히 내비게이션을 조작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처에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카페가 있었다.
“오! Drive-Thru?”
청도 발견했는지 허리를 곧추세우며 반응했다.
“저거는 안 내려도 되는 건데?”
“응. 그런데 우리는 거기로 안 갈 거야. 청아, 직진.”
애초에 드라이브스루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민성은 다음 카페로 안내했다.
아직까진 무난하게 주행하는 청이지만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운전 브이로그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DT의 등장에 율무가 흥분했다.
“당연히 드라이브스루 아니야? 청아 Go! 남자라면 노 빠꾸지~”
“Go?”
“Go!”
“Go!”
갑자기 텐션이 달아오르며 차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야, 너 드라이브스루 가 봤어?”
“당근 하지! 한국에서 많이 갔어!”
“아니. 네가 운전해서 가 본 적 있냐고.”
“No! 처음이야!”
이럴 줄 알았다.
언뜻 봐도 좁고 혼잡해 보이는 대기 줄에 백야의 눈빛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청아, 그럼 그냥 저기 주차장에 대고 잠깐 걸어갔다 오면….”
그러나 직진맨의 사전에 후진이란 없었다. 멤버들을 태운 차는 망설임 없이 드라이브스루 입구로 진입했다.
“오! 성공!”
“이제 시작인데 무슨 성공이야!”
유연이 버럭 소릴 질렀다.
회유에 실패한 민성도 눈을 감은 채 이마를 짚고 있었다.
즐거워하는 이는 율무와 청. 두 사람뿐이었다.
“아니야,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빠져나가면….”
뒤를 돌아보던 지한은 말을 잇지 못했다.
뒤따라오던 매니저 형들의 차가 바짝 따라붙었음은 물론. 그 뒤로 낯선 차량까지 꼬리를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못 해. 그냥 가.”
데이즈 호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넌 왜 커피를 마신다 그래서.”
“끄악! 미안흐에엑.”
유연이 백야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악력에 팔랑거리는 개복치의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앞차를 졸졸 따라가던 청은 설레고 있었다.
“No problem! Dad가 차 부서져도 괜찮다 그랬어!”
“우리가 안 괜찮아!”
멤버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Oops.”
“야, 가. 이대로만 가.”
“청청. 오른쪽으로 더 가도 돼.”
앞차가 출발하자 차 안의 모든 창문이 내려갔다.
인간 사이드 미러를 자처한 멤버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청을 조종하려 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직진맨은 듣지 않았다. 그저 첫 번째 스크린의 등장에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나 할 뿐이었다.
“오! 여기 메뉴 있어!”
“청이 나이스 드라이빙~ 나는 맛있는 거 먹을래. 뭐 있는지 한번 볼까?”
오른편에 앉아 있던 율무가 몸을 기울여 메뉴를 보려 했다. 그러나 스크린은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가고 없었다.
잠시 멈추거나 천천히 지나도 되는 걸 청이 그대로 지나쳐 버린 것이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갔지?”
율무의 카메라에 당황한 백야의 얼굴이 담겼다.
“초코 어쩌고를 보긴 했는데….”
“초코 뭐…?”
“그, 그냥 율무차나 마셔.”
백야는 못 들은 척 율무의 시선을 피했다. 그사이 차는 두 번째 스크린 앞에 멈춰 섰다.
“어서 오세요. 스타 커피입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아이스 초코 한 잔이랑요. 어… 잠시만요.”
어떻게 도와드릴까 묻는 직원의 말에 청이 자신의 몫을 먼저 주문했다. 그리곤 백미러로 백야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백야 뭐 먹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랑 지한이 형도.”
놓칠세라 냉큼 끼어든 유연이 지한의 몫까지 주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이랑요.”
“나 민초. 스무디 같은 거 있잖아.”
민성이 청의 팔을 두드리며 자신의 메뉴를 말해 달라 요구했다.
“혹시 얼음에 간 민트 초코 음료가 있을까요?”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그거 한 잔이랑요.”
청이 율무를 돌아봤다.
“율무!”
“나는 맛있는 거 아무거나~”
‘아무거나’라는 말에 청이 미간을 찌푸렸으나 금방 말을 이었다.
“아이스 초코 두 잔으로 바꿀게요. 모두 그란데 사이즈로 부탁드립니다.”
창가에서 결제를 도와드리겠다는 말에 청이 다시 한번 페달을 밟았다.
아직까지는 나름 순조로웠다.
그러나 이들에겐 음료 픽업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조심히 커브를 돌아 앞으로 나가자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여기 카드.”
“아니야. 이거로 해.”
백야가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으나 민성이 카드를 쥐여 주는 게 좀 더 빨랐다.
사랑이 넘치는 모습에 뒷좌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야~ 훈훈하다, 훈훈해.”
“형이 쏘는 거야? 역시 리더.”
“뭐 해? 박수 안 치고.”
짝짝짝짝!
“하핫. 넣어 둬, 넣어 둬.”
민성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즐기고 있었다.
카드와 영수증을 돌려받은 민성은 이어서 음료를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핸들을 잡은 청이 그대로 출구를 향해 돌진하는 게 아닌가.
“야, 야. 왜 가?”
“계산했어!”
“아니, 음료 안 받아?”
아니나 다를까. 창밖으로 몸을 내민 직원이 데이즈가 탄 차를 부르고 있었다.
“Take your coffee!”
사이드 미러로 뒤를 확인한 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오! 깜빡했다!”
“아니,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어떡하나?”
“어쩌긴 뭘 어째! 다시 뒤로 가!”
기어를 후진으로 바꾼 청이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하필 커브 길인 데다 대형 SUV인 탓에 운전이 쉽지 않았다.
“더, 더. 조금만 더 왼쪽으로.”
“더?”
“아니, 멈춰!”
부웅, 끼익-!
“으갹!”
“야, 이…! 살살 밟으라고!”
액셀을 밟았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차체도 멤버들도 크게 휘청였다.
우여곡절 끝에 낑낑거리며 다시 창구로 돌아온 데이즈호.
그러나 커브를 너무 크게 도는 바람에 팔을 뻗어도 손이 닿질 않았다.
“그냥 내가 받아 올게….”
결국 차에서 내린 백야가 픽업대 앞으로 다가갔다.
“Here you are.”
“땡큐. 빠이.”
백야의 양손에 캐리어가 들렸다.
다시 차로 돌아가려는데, 순간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에 올라타려던 백야가 옆을 돌아보자 남경이 창밖으로 핸드폰을 내밀고 촬영하고 있었다.
“푸하하하! 너희 내려서 받아 갈 거면 드라이브스루는 왜 들어왔냐?”
“씨이…. 몰라요! 찍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