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196화 (196/340)

제196화

* * *

데이즈의 둘 셋 투어 2일 차.

오늘의 가이드는 율무였다.

“제군들 준비됐나~”

“Yes, Sir!”

청이 경례를 하며 율무의 콩트를 받아 주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멤버들은 준비 후 거실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지한이 보이질 않았다.

“지한이는?”

백야가 두리번거리자 율무도 어깨를 으쓱였다.

“방에 없던데?”

“나 여기.”

그때 머리 위로 선글라스를 얹은 지한이 나타났다. 계단을 한 칸씩 내려올 때마다 손에 쥔 종이가 팔랑거렸다.

“그건 뭐야?”

“오늘 일정표.”

“…일정표?”

백야가 어리둥절해하며 율무를 바라봤다.

“오늘은 네가 대장 아니야?”

“그렇지, 내가 대장이지~ 그런데 지한이가 미술관 꼭 가고 싶다 그래서 일정에 넣어 줬거든.”

“맞아. 그래서 내가 오늘 우리 일정을 간단하게 정리해 봤어.”

역시 INTJ.

계획 주의자다운 철저한 준비성에 모두가 감탄했다.

“이런 건 지한이가 잘하지.”

민성이 대견하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오늘의 일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율무가 이렇게 대답해 모두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대충 금문교 갔다가 근처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정하지 뭐~”

계획이랄 게 없는 대답에 율무는 이미 관광객들의 원성을 한차례 들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그도 지한의 등장을 몹시 반가워했다.

“일단 한 장씩 받아.”

지한이 치대어 오는 율무를 밀어내며 일정표를 돌렸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계획표>

09:15 출발

09:30 금문교 도착

- 아저씨께서 태워 주시기로 함

- 이후 일정은 대중교통 이용 (뮤니 패스포트 1일권 $23)

09:30 ~ 10:00 금문교 관광

- 자전거 대여

- 10:30까지 소살리토로 이동

10:30 ~ 12:50 소살리토 관광

- 점심 식사

- 페리 편도 ($12.5)

16:00 현대 미술관 도착

- 입장료 ($25)

21:15 ~ 22:15 트윈 픽스

- 야경 구경

“Shit! 이게 모야!”

분 단위로 표기된 숨 막히는 일정에 자유로운 영혼이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이걸 하루 만에…. 아니, 이걸 어제저녁에 만들었다고?”

백야도 나름 계획형 인간이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쉴 틈 없이 빽빽한 일정에 율무도 당황한 것 같았다.

“음…. 지한아? 오늘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이 원래 이렇게 많았었나?”

“네가 말해 준 거에 미술관만 추가한 건데.”

어젯밤.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율무는 읽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관광지>의 목차를 그대로 읽었더랬다.

팰리스 오브 파인아트, 금문교, 피어39, 시티홀, 케이블카 등.

율무가 뱉은 샌프란시스코의 명소가 한 장의 종이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Wow. 너희 오늘 엄청 걷겠다. 내일 들어오는 거 아니야?”

어느새 다가온 청의 아버지가 일정표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깐. 아빠는 왜 가?”

“나? 나는 일일 운전기사 해 주기로 했지. 금문교에 너희 떨어뜨려 주고 엄마랑 데이트 갈 거야. 지한이가 오늘은 차 필요 없다던데?”

쏟아지는 영어에 멤버들은 두 부자의 얼굴만 번갈아 봤다.

무슨 대화를 나누나 했더니 ‘여행은 걸어 다녀야 기억에 남는다’는 율무의 한마디 때문에 이동 수단마저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뭐라고?”

민성의 희번덕거리는 눈이 율무에게 꽂혔다.

“하핫! 그치~ 여행은 뚜벅이지. 우리가 또 언제 샌프란시스코를 다 같이 걸어 다녀 보겠어~”

“You! 나의 원수!”

“쓰읍. 형한테 원수라니. 청이 그런 말 쓰면 안 돼~”

“그래. 형 말 잘 들으라니까.”

아저씨가 청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듯 쓰다듬었다.

“Anyway 이거 오늘 다 못 해! 햄스터 죽어!”

“나는 또 왜 끌어들여…. 나는 괜찮은데? 걷는 거 좋아해.”

<헬린이의 역습> 퀘스트를 진행 중인 백야는 오히려 좋았다. 하루에 채워야 하는 운동량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일정을 계획한 지한도 단호했다.

“시간대로만 움직이면 가능은 해. 지도 앱으로 계산해 봤어.”

“Oh god….”

말도 안 되는 일정에 현지인은 좌절했다.

“아무튼 5분 뒤에 출발이야.”

시간을 확인한 지한은 슬슬 차로 이동하기를 제안했다.

* * *

금문교 웰컴센터 앞 주차장.

아저씨가 차에서 내린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청아, 힘들면 전화해. 바로 데리러 올 테니까.”

“Yes! 가 버려!”

오늘은 남경과 덕진도 없었다.

한국에서나 데이즈지, 미국에서는 그저 잘생긴 동양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겠다. 두 사람은 둘만의 휴가를 즐기라며 멤버들이 형들을 기어이 떼 놓았다.

“저긴 기념품 가게인가?”

백야가 빨간색 벽돌처럼 생긴 건물을 가리켰다.

“맞아. 여기서 30분 정도 둘러보면서 사진 찍다가 자전거 빌려서 소살리토로 건너가면 돼.”

지한이 다시 한번 일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혹시… AI?’

백야가 손에서 일정표를 놓지 않는 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할 말 있어?”

“어? 아니야. 없어.”

“혹시라도 일정에 없는 행동을 하고 싶을 땐 나한테 말해.”

분명 오늘의 가이드는 율무였는데 어느 순간 지한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신이 주도권을 빼앗긴 줄도 모르는 바보는 차에서부터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서두르자. 일정이 꽤 빡빡해.”

지한이 멤버들을 챙겨 앞장섰다.

관광지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사람이 꽤 많이 보였다.

“백도, 가자.”

“응.”

제자리를 돌며 감탄하던 백야가 얼른 유연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러자 순간 떠오른 오랜만의 퀘스트 알림.

[새로운 퀘스트(히든)가 도착했습니다!]

[Q. 행운의 편지 : 이 퀘스트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를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더 보기)]

뜬금없는 타이밍에 등장한 뜬금없는 퀘스트였다.

백야가 걸음을 멈추며 멍청한 소리를 내자 유연이 옆을 돌아봤다.

“으엥?”

“왜 그래?”

“어? 아니….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

“여기에 네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그치? 잘못 봤나 보다. 가자.”

게임에 동기화된 지 2년 차.

갈수록 거짓말 실력만 늘어 가고 있었다.

“둘이 모해? Hurry up! 지한이 자꾸 시간 세!”

청이 뒤처지는 둘 앞으로 달려왔다. 유연과 백야의 팔을 잡아 막무가내로 끌자, 앞장서 있던 세 사람을 금세 지나쳤다.

“Hey! 늦게 오는 사람이 선물 사 주기!”

형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한 청이 입구를 향해 달렸다.

“선물? 질 수 없지. 지한아, 뛰어!”

“나는 별로, 흐억.”

율무가 지한의 손목을 잡고 달리자 민성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저, 저, 썩을 놈들.”

떼잉….

리더는 외로운 자리였다.

* * *

금문교에서 단체 사진 촬영.

자전거를 대여해 건너간 소살리토에서는 아저씨께서 추천해 주신 현지인 맛집을 방문했다.

메뉴는 당연히 1인 1 랍스터.

“당백이 접시는 방금 나온 거야? 왜 그대로인 것 같지~”

“야. 이게 가재야? 고래지.”

어쩐지 점원이 너무 많을 거라며 뜯어말리더라.

제 허벅지만 한 크기에 살은 또 얼마나 실한지. 포크로 열심히 파먹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45분이야. 다 먹었으면 슬슬 일어나자. 페리 타러 가야 해.”

“나 Coke 남았는데!”

“가서 또 사 줄게. 일어나.”

“으으….”

청은 한국식 스파르타 강행군에 버거워하고 있었다.

“가자. 아직 일정이 하나, 둘, 셋, 넷…. 여덟 개나 남았어.”

백야가 청의 후드 모자를 잡아당기자 그가 순순히 일어났다.

페리를 타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멤버들의 다음 장소는 피어39와 피셔맨스 와프라는 곳이었다.

율무가 선착장에 누워 있는 물개 떼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귀여워~ 청이 친구들 안녕~”

엉엉!

율무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물개 한 마리가 울음소리를 냈다.

“이동.”

지한의 리드에 안쪽으로 이동하자 이번에는 알록달록한 외국 상점이 즐비해 있었다.

벌써부터 핼러윈을 준비하는 듯한 분위기는 축제 거리 같았다.

달가닥, 달가닥-.

어느 상점을 지나는데 유리관 안으로 해골 인형이 춤을 추고 있었다.

시선을 빼앗긴 백야가 홀린 듯 바라보며 멈춰 서자, 청이 크게 웃으며 해당 모습을 촬영했다.

“햄스터 영혼 뺏겼어!”

“이동.”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케이블카 안이었다.

“이동.”

이번에는 시티홀.

“이동.”

SFMOMA 현대 미술관.

그 결과 멤버들은 ‘이동’이라는 말에 극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유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기간이라 미술관은 평일임에도 사람이 많았다.

“이거 아까 봤던 그림 아니니?”

죄다 비슷해 보이는 그림에 민성이 의문을 품었다.

그림을 진지하게 감상 중인 유연에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어이없었다.

“몰라. 유명한 거라니까 그냥 따라다니는 거지. 지한이 형한테 물어봐.”

“떼잉….”

그림에는 영 관심이 없는 민성은 작품을 보는 둥 마는 둥 따라다니기에 급급했다.

“너 다리 안 아파?”

“그냥 좀 뻐근한 정도? 왜, 형 다리 아파?”

“어. 난 좀 쉬어야겠다.”

하루에 16시간씩 춤 연습을 할 때도 아픈 적 없던 다리가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어디 앉을 곳이 없나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 멀리 이미 의자에 앉아 있는 백야가 보였다.

“나 백야랑 있는다. 보고 와.”

“어.”

백야의 옆으로 다가간 민성이 털썩, 소리 내어 앉았다.

“어? 형도 왔네. 다리 아프지.”

“나 지금 허리 밑으로 감각이 없어. 우리 오늘 몇 보 걸었니.”

민성이 핸드폰을 꺼내 건강 앱을 켰다.

[49,200보]

“사만 구천….”

살면서 처음 기록해 보는 숫자에 민성의 턱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런데 이보다 놀라운 건 아직 남은 일정이 세 개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친….”

민성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슥 다가온 백야가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동?”

“아악! 그마, 웁.”

괴성이 울려 퍼지자 백야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형, 형…! 조용히.”

“우웁.”

그나마 미술관 내 한적한 곳이라 주변에 관람객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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