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 * *
데이즈를 잃은 대신 간간이 뜨는 직캠과 자컨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있던 나잉이들.
리얼리티 마지막 화가 공개된 후, 삶의 의지를 잃었다는 나잉이들이 속출하자 ID는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자컨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데이즈 둘 셋 투어.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였다.
- 이거야말로 찐 리얼리티ㅠㅠ
- 또 준다고? 자컨을 이렇게 끊임없이 줘도 되는 거야?
- 백야 넘 귀엽... 찹쌀떡에 뽀뽀 마렵다
- 와... ID 일 진짜 잘해..
LA 케이팝 콘서트 비하인드 영상으로 시작된 1화는 여섯 남자의 휴가까지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 대체 15분짜리 영상에 킬링 포인트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알려 줄 사람?
- 청이 드라이브스루 진짜ㅋㅋㅋㅋㅋ 눈물 흘리면서 봄
└ 난 블루 토마토ㅋㅋㅋㅋ
- 3화 이제 봤는데 6만 보 실화냐고ㅋㅋㅋㅋ 저건 국토대장정 해야 나오는 숫자 아니야?
- 야경보다 우는 백야가 더 예뻐 보였다면 전 쓰레기인가요...
- 데뷔조 엎어질 뻔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애들 마음고생 꽤 심했구나 느꼈음ㅜㅜ
└ 데이즈 해줘서 고맙다고 한 지한이나 그 말에 감동받아서 엉엉 운 백야나ㅠㅠㅠ 이 순둥이들을 어쩌면 좋아
반응은 당연히 뜨거웠다.
3일에 한 편씩 공개되던 브이로그는 오늘로써 네 번째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데이즈 둘 셋 투어 : 샌프란시스코 VLOG Part. 4]
썸네일을 보니 베이킹에 도전한 것 같았다.
청과 백야가 얼굴에 밀가루를 묻힌 채 쿠키 커터로 반죽을 찍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 벌써 귀여워.”
이번 추석에는 체육 대회 대신 요리 대회를 한다던데.
이번 편으로 멤버들의 요리 실력을 파악한 뒤 ‘아요대’를 보면 더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뱁쌔는 지체 하지 않고 영상을 재생했다.
[DASE in San Francisco]
해피와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는 청과 소파에서 잠든 민성의 얼굴 위로 스티커를 붙이는 율무.
자전거를 타고 금문교를 지나는 지한과 기념품 가게에서 케이블카 모양의 장난감을 고르는 유연.
산처럼 쌓인 체리 옆에서 브이를 하는 백야와 트윈 픽스에서 야경을 바라보는 단체 모습을 담은 짧은 인트로 영상이 지나갔다.
[청 : Good Morning.]
파자마 차림의 나른한 청이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청 : 다리가 내 말 안 들어.]
율무 투어의 다음 날로 추정되는 영상 속 청은 허벅지가 아프다며 엄살을 부렸다.
거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그는 정원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백야를 발견했다.
[청 : 오! 햄스터 발견!]
[청 : 뭐 먹고 있어.]
백야의 앞에는 새빨간 체리 한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청 : 내가 햄스터 먹방 보여 준다.]
카메라를 줌인한 청은 체리를 먹느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백야의 볼을 집중해서 촬영했다.
몰래카메라의 기운을 느꼈는지, 뇸뇸거리던 백야가 한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백야 : (두리번두리번)]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정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2층 창문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백야의 관찰 캠이 좀 더 이어지다 화면이 바뀌었다.
[민성 : 어제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멤버들이 많이 지쳤어요.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청 : 우리 베이킹 할 거야!]
청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뒷모습이 도구를 꺼내 주고 있었다.
제일 맛있는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겠다 하자, 너도나도 청에게 파티 요청을 걸었다.
그러나 청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백야를 선택하며 멤버 편애를 보여 주었다.
[민성 : 됐어. 우리도 잘할 수 있어. 내가 베이킹이 뭔지 보여 주지.]
[율무 : 오~ 역시 리더.]
[지한 : 레시피대로만 하면 되잖아.]
[유연 : 형 요리 잘해?]
[지한 : 그냥 하는 거지.]
[유연 : 뭐지? 이 멋짐.]
이때까지만 해도 율무와 유연은 몰랐다. 두 사람의 악마 소환술에 저희가 이용당할 줄은.
[율무 : 대장, 대장. 우리 초코칩 마들렌 만들 거라고 하지 않았어?]
[민성 : 그러려고 했는데 저 또, 아니 지한이가 초콜릿 다 가져가서 안 내놔.]
민성이 커다란 볼에 담긴 초코칩 한 알을 보여 주었다.
조금 나눠 줄 만도 한데 시작부터 온갖 반칙을 일삼는 바람에 두 사람은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였다.
[민성 : 됐어. 심플 이즈 베스트야. 우리는 맛으로 승부한다.]
[율무 : 역시~ 사람이 멋있어.]
율무는 민성이 뭘 하든 멋있다며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민성 : 달걀, 설탕, 가루, 버터, 레몬 오일 다 넣고 섞으면 끝? 뭐야. 뭐가 이렇게 쉬워?]
그렇게 만든 반죽을 1시간 동안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틀에 부어 구워 내면 끝이라고 적혀 있었다.
[율무 : 형, 찢었다. 벌써 이겼어.]
[민성 : 율무야, 1시간 동안 뭐 하고 놀 건지나 생각해 놓으렴.]
[율무 : 그럴까? 그럼 우리 엄마랑 같이 해피 데리러 갈까?]
[민성 : 곰?]
[청 : 곰 아니야!]
한편 유연&지한 팀.
입으로 베이킹 중인 율무, 민성과 달리 두 사람은 착실히 브라우니 반죽을 시작했다.
[지한 : 먼저 계란, 설탕, 밀가루를 한곳에 넣고 섞으래. 이건 내가 할게.]
[유연 : 그럼 내가 초콜릿 중탕? 이거 하고 있을게.]
시작은 순조로워 보였다.
베이킹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밸런타인데이 때마다 누나들이 초콜릿을 만드는 걸 봤던 유연은 ‘중탕’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다.
[유연 : 너희 이거 쓸 거야?]
[백야 : 아니. 가져가도 돼.]
냄비와 작은 볼을 든 유연이 인덕션 앞으로 향했다.
냄비에 물을 부어 데우던 그는, 물 위로 초콜릿을 담은 볼을 띄워 천천히 녹이기 시작했다.
한편 브라우니 반죽을 맡은 지한은 조용히 난관에 봉착한 상태였다.
[지한 : 버터 100g.]
새초롬하게 올라간 눈이 포장지도 뜯지 않은 새 버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한 : 버터가 1kg이니까…. 10등분 하면 이 정도인가.]
코앞에 전자저울이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꼼지락거리며 손으로 대충 10등분을 나눈 그는 과감히 버터를 도려냈다.
[지한 : 다음은 설탕 70g.]
70g을 제가 어떻게 아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버터와 같은 방법을 써 보려 했으나 이미 개봉된 상태라 그 방법은 쓸 수 없었다.
[지한 : …….]
[지한 : 어쩔 수 없지.]
봉지를 집어 든 그는 대충 감으로 넣기로 했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70g이었기를.
[청 : 다했어!]
그리고 정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백야&청 팀.
반죽을 완성한 청이 손등으로 뺨을 훔치자 얼굴이 엉망이 됐다.
어째서인지 옆에서 보조를 하던 백야도 밀가루로 얼굴이 지저분했다.
[백야 : 너 진짜 잘한다.]
[청 : 당근 하지! 조금 기다렸다가 쿠키 커터로 찍으면 돼!]
[민성 : 아니 근데…. 너희는 얼굴로 반죽했니? 밀가루랑 싸웠어?]
[청 : 모!]
[백야 : 뭐!]
청 팀과 마찬가지로 냉장 숙성을 앞둔 민성이 상대 팀을 견제했다.
못 찾는 건지 없는 건지, 보이지 않는 아몬드 가루를 대신해 대충 아몬드를 빻아 넣고, 레몬 오일 대신 레몬즙과 오일을 섞어 넣은 마들렌 반죽은 벌써부터 색깔이 수상했다.
[민성 : 얼굴이 그게 뭐니. 이리 와 봐.]
키친타월을 물에 적셔 온 민성이 청의 얼굴을 잡아 벅벅 문질렀다.
[청 : 끄악! Stop it!]
[민성 : 야, 굳어서 잘 닦이지도 않는다. 가서 세수하고 와. 백야는,]
[백야 : 아니야! 난 됐어.]
민성의 레이더망을 피해 빠져나간 백야는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동안 마들렌 반죽을 살펴보던 율무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율무 : 형, 근데 반죽 색이 갈수록 탁해지는 것 같은데, 아몬드 때문인가?]
[민성 : 빵은 다 갈색 아니야? 그래서 그런가 보지.]
[율무 : …어?]
기적의 논리에 율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브라우니 팀.
지한의 반죽과 유연의 초콜릿이 합쳐지며 반죽이 완성됐다. 다른 팀과 달리 별다른 숙성이 필요 없는 브라우니는 그대로 오븐으로 직행했다.
[지한 : 180도 20분.]
[유연 : 대박. 우리 완전 잘 만든 거 같아.]
유연과 지한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미리 자축했다.
그러나 10분 후.
[청 : Oh my god!]
브라우니 반죽에서 엄청난 연기가 피어올랐다. 놀란 청이 오븐을 열자 자욱한 연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백야 : 119! 11, 콜록콜록.]
[유연 : 너 나와. 몸도 약한 게.]
[민성 : 무슨 일이야! 불났어?!]
[율무 : 불은 아니고 브라우니에서 나는 연기 같은데, 콜록콜록.]
소란을 듣고 달려온 아줌마가 반죽을 꺼내 밖으로 가져가며 상황은 수습됐다.
아줌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집을 태워 먹을 뻔한 지한과 유연은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이 집 냉장고에는 아직 폭탄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민성 :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우리 마들렌 나눠 줄게.]
[율무 : …….]
두 번째 악마 소환술이 시작됐다.
마들렌 틀에 걸쭉하게 부어진 반죽이 오븐으로 입장했다.
[민성 :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랄 거다 이놈들아.]
그 사이 쿠키 팀은 반죽을 밀어 커터로 동물 모양을 찍어 내고 있었다.
[백야 : 야, 브라우니! 너희도 몇 개 만들어 볼래?]
[청 : Come on.]
쿠키 팀도 유연과 지한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 20분 뒤.
오븐을 연 율무가 불안한 얼굴로 마들렌 틀을 꺼냈다.
[율무 : 역시.]
봉긋하게 솟다 못해 넘쳐흐른 마들렌은 괴상한 모양으로 부풀어 있었다.
[민성 : 뭐야, 이게.]
[율무 : 이게 뭐긴~ 대단한 마들렌이지~]
까맣게 그을린 게 지옥에서 온 마들렌 같았다.
[유연 : 안 먹을래.]
[지한 : 나도.]
[청 : 푸하하! 망했어!]
[백야 : 저거 먹으면 암 걸릴 거 같아….]
마들렌은 빠르게 손절 당했다.
브라우니 팀과 달리 마들렌은 한 사람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율무 : 형.]
[민성 : 아니, 나는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거든? 내가 뭘 빼먹었나?]
빼먹은 게 아니라 전혀 비슷하지 않은 재료를 대신해서 넣고, 퓨전이랍시고 레시피에는 없는 재료를 더 넣은 게 문제였다.
그나마 막내즈의 쿠키는 성공적이라 다행이었다.
[백야 : 우리는 절대 요리 프로그램 나가면 안 되겠다.]
[유연 : 나갈 일 있겠냐.]
[백야 : 그건 그래.]
영상이 끝나기 전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 플래그 세게 세웠네ㅋㅋㅋㅋ
- 이들은 한 달 뒤 아이돌 요리 대회에 나가게 되는데...
- 민성이랑 지한이 지독한 똥 손이다ㅋㅋㅋㅋ 딱 봐도 갱생 불가능
- 마들렌 겉탄속촉..
- 데이즈 아요대요? 망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