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10화 (210/340)

제210화

쿠당탕-!

“방금 무슨 소리야?”

제일 먼저 반응한 율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꺄아악!”

“저거 내려요! 당장!”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자 덕진과 멤버들이 달려 나왔다.

현장은 어수선했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사다리와 모여 있는 스태프들. 그리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백야까지.

“살려 주세요오….”

백야가 창백한 얼굴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당장 와이어를 내리라는 다그침에 백야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졌다.

“백야야! 괜찮아?”

“혀엉, 저, 흐, 숨이…. 커헉.”

심장을 짚으며 괴로워하던 백야가 피를 토해냈다.

빠르게 올라가던 스트레스 지수가 90을 넘기면서 ‘심각’ 단계에 접어든 탓이었다.

“구급차 불러요! 어서!”

숨을 제대로 못 쉬고 헐떡이는 모습에 현장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사색이 된 멤버들도 스태프를 헤치고 가까이 다가왔다.

“이, 이게 무슨 일….”

“덕진아, 백야가 숨을 제대로 못 쉬어. 빨리 구급차 좀.”

피로 엉망이 된 옷과 얼굴.

호흡이 불규칙하고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를 본 청이 사색이 된 얼굴로 백야에게 다가갔다.

“배, 백야. 백야 왜 그래에….”

“허억, 수, 숨이….”

“이거 아니야. 남경 빨리 백야 누워. 눕혀야 해.”

남경의 품에서 백야를 데려온 청은 그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그리곤 봉지 같은 게 없냐며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다행히 피는 더 이상 토하지 않았지만, 숨이 안 쉬어진다는 걸 보니 일시적 과호흡 증상 같았다.

“청아, 괜히 건드렸다가 잘못되면.”

“No! 내가 학교에서 배웠어. 일단 눕혀야 해.”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응급 처치 교육이 의무였다. 얕은 지식이지만 이곳에서 청보다 더 대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백야만큼이나 놀란 것 같은 청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중얼거렸다.

“비닐봉지가 한국어로 뭐지? 아아… 기억해 내, 바보야.”

청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두드렸다.

“봉지? 비닐봉지?”

용케 청의 말을 알아들은 민성이 다급히 되물었다.

“Yes. 빨리!”

아무거나 다 괜찮다는 말에 민성과 유연이 대기실로 달려갔다.

지한은 충격에 제자리에 굳어 있었고, 율무는 초점 없는 눈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허억, 꺽, 숨을 못,”

“말하지 마!”

“청아아…. 흐으, 나 무서워….”

“It will be fine. Calm down.”

괴로운지 청의 옷자락을 움켜쥔 백야가 눈물을 흘렸다.

앞섶을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린 채 바들바들 떨렸다. 호흡은 여전히 어려운 듯 숨소리가 거칠었다.

청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괜찮을 거라며 달래 주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안전 장비를 하고 있어 크게 부상을 당한 곳은 없어 보였다.

“구급차 왔어요!”

“여기요! 환자 여기 있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율무가 손을 흔들며 백야의 위치를 알렸다.

청의 정성이 통했는지 구급 대원이 도착했을 즘에는 백야의 호흡이 거의 돌아온 상태였다.

“응급조치를 잘하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그런데 왜 눈을 안 떠요? 아까까지 눈 뜨고 있었는데, 갑자기 잠들었어요.”

“…네?”

“피, 피도 토했어요. 백야 죽어요? 살려주세요. 제발요.”

청이 줄곧 참고 있던 불안이 결국에 터져 나왔다. 그러나 영어로 쏟아 낸 탓에 대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청아, 괜찮을 거야. 덕진아 애들 좀. 백야는 내가 따라가 볼 테니까.”

“네…. 연락 주세요.”

“그래.”

계약이 뭐라고. 멤버들도 백야만큼이나 놀랐을 텐데 남은 촬영이 있어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 * *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주의’ 단계입니다. 44%]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경계’ 단계입니다. 78%]

[<병약미> 패시브와 반응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5초 뒤 의식이 소멸됩니다.]

“허억!”

식은땀에 범벅이 된 백야가 거칠게 호흡하며 눈을 떴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와이어 장비가 가슴을 세게 압박했다.

그 충격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주의 단계를 돌파했고, 순간적으로 패닉이 오며 호흡이 꼬여 버렸다. 낮춘다고 낮춰 봤지만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의’에서 금세 ‘경계’ 단계로 넘어가자, 한 번 엉켜 버린 호흡은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심각’ 단계를 기록하며 피를 토해낸 뒤론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죽은 건가.”

창백한 백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때 곁을 지키다 깜빡 잠든 남경이 목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백야야, 정신이 좀 들어?”

멍한 눈동자가 남경을 바라봤다.

“지옥인가….”

잠에 취한 건지 백야는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렸다. 썩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

남경은 얼른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겠다며 일어섰다.

다급한 와중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게 커튼을 꼼꼼히 여미고 나가는 게 직업 정신이 아주 투철했다.

“아야….”

가슴이 욱신거리는 느낌에 백야가 인상을 찡그렸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로 손을 올리려는데, 팔을 살짝만 들었을 뿐인데도 심장이 찌르르하며 갈비뼈 전체가 울렸다.

몸이 제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백야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마아….”

눈물이 핑 돌며 부모님과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잠깐만.

‘통증이 느껴진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 아닌가?’

눈물이 쏙 들어간 백야는 지금 당장 확인이 필요했다.

“…상태창?”

Lv.12 백야 (동기화 중)

스트레스 : 60%

그러자 눈앞에 백야의 정보가 떠올랐다.

스트레스 지수는 아슬아슬하게 ‘주의’ 단계에서 멈춰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포인트를 마구 들이부은 보람이 있었다.

언제 ‘경계’ 단계로 올라갈지 모르는 수치에 얼른 포인트를 사용하는데, 옆에서 얼떨떨한 목소리가 들렸다.

“백야야…. 상태창이라니?”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온 남경이 충격받은 얼굴로 굳어 있었다.

함께 있던 선생님도 진료 차트를 뒤적이며 ‘머리엔 이상이 없었는데….’라며 중얼거리고 계셨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병원?”

“네, 응급실 맞습니다. 혹시 떨어질 때 머리를 부딪쳤다거나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나요?”

“저 떨어진 게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사고 전 상황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

“그런데 방금 하신 말씀은 뭐죠?”

“…뭐가요?”

“상태창을 외치셨잖습니까.”

아악!

백야는 수치심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두 손을 꼭 모아 쥔 남경은 제발 정상적인 대답이 나오길 기도하는 사람 같았다.

“…꿈을 꾼 것 같아요. 아주 긴 꿈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아련한 눈빛이 허공을 향했다.

다행히 정상 참작이 됐는지 의사는 순순히 고개를 주억였다.

“안전 장비가 가슴을 압박하면서 많이 놀라신 것 같네요.”

다행히 이상은 없으며 같이 계시던 분이 응급조치를 잘해 주신 것 같다고 했다.

“호흡이 불편하진 않으시고요?”

“네…. 그런데 저 숨 쉬는 건 괜찮은데 팔이 안 올라가요.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 전체가 아파요.”

백야가 울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의사를 올려다봤다. 턱의 호두가 선명했다.

진료 차트를 살펴본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혔다.

“멍든 부위가 갈비뼈 부근이네요. 사다리에서 떨어졌다고 하셨죠? 그 과정에서 부딪히신 것 같습니다. 심한 경우 호흡 부전, 폐렴으로 발전될 수도 있으며….”

“폐, 폐렴이요?”

“네. 그래도 검사 결과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네요. 일단은 타박상 전치 4주 나오셨고요.”

“전치 4주….”

남경과 백야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웬만하면 누워 계시고 무리한 활동은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아마 하고 싶어도 못 하실 거예요.”

“끕.”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쉬기가 불편하면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하고요. 얼음찜질 자주 해 주세요.”

“전치 4주….”

“진통제 처방해 드릴게요. 오늘은 바로 퇴원하셔도 되고, 좀 더 안정을 취하다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에 남경은 곧바로 퇴원하겠다고 답했다.

“그럼 댁에 돌아가셔서 꼭 안정 취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는 눈이 많은 병원보단 숙소로 돌아가서 편히 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수납하고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알겠지?”

“네에….”

외투를 둘러 주며 모자까지 씌워 준 남경은 백야의 얼굴을 철저하게 가렸다.

“사진 찍히면 안 돼. 알지?”

“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그런 말 하지 마.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래도….”

사다리가 갑자기 미끄러진 건 저 때문일 게 분명했다. 고개 숙인 백야가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촬영장은 어떻게 됐는지, 멤버들은 괜찮은지 걱정이 들었다.

“저…. 형.”

백야가 막 커튼을 열고 나서려는 남경을 붙잡았다.

“멤버들은요?”

“애들은 지금 남은 촬영하고 있지.”

저 때문에 촬영이 엎어진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애들도 촬영 마무리하고 곧장 숙소로 오라 그랬어. 너는 다시 안 가도 돼.”

“네에….”

백야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파 보이는 앤데, 진짜 아프기까지 하니까 곧 죽을 것처럼 보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금방 다녀올게.”

* * *

숙소로 돌아온 백야는 남경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누웠다. 약을 먹고 나니 통증이 가라앉아 움직이는 게 한결 쉬워졌다.

“다른 거 더 필요한 건 없어?”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저, 백야야. 일단 회사에는 말했는데 너희 누나분께도 말씀을 드려야겠지?”

“아니요?! 절대 안 돼요!”

백야가 단호하게 외쳤다.

그러다 순간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웅크렸다.

“괜찮아? 너 말 많이 하면 안 되겠다.”

“끄응…. 형, 누나가 알면 저 이 일 못 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절대 말하면 안 돼요.”

다행히 병원에서 찍힌 사진도 없고 촬영장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도 않았다. 회사에서만 조용히 해 준다면 이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회사 믿고 너 맡겨 주신 걸 텐데, 괜히 숨겼다가 나중에라도 알게 되시면….”

“회사 잘못이 아니잖아요. 네? 그냥 제가 운이 나빴어요.”

백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남경이 극구 말렸다.

“일단 알겠어. 나는 거실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그래, 이거 눌러.”

남경이 지한의 침대에 꽂혀 있던, 누르면 소리가 나는 닭 인형을 손에 들려주었다.

닭의 왼쪽 다리를 쥔 채 멍을 때리던 백야는 저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