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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11화 (211/340)

제211화

멤버들은 늦은 저녁이 돼서야 돌아왔다. 현관문이 열리며 백야를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형! 백도는?”

“백야!”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란에 백야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어. 왔어? 고생했다. 저녁은.”

홀로 거실에 있던 남경이 막 들어선 멤버들을 반겨 주었다.

“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백야는?”

민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백야를 찾았다.

“같이 안 왔어? 병원에 있어? 입원해야 한대? 아님 누나네 집으로 갔어?”

“야, 야. 대답할 틈은 좀 줘라. 지금 방에서 자고 있어. 안 그래도 저녁을 못 먹여서 깨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율무가 곧장 방으로 향했다.

벌컥-

급한 마음에 문이 꽤 과격하게 열렸다.

어두운 방 안에 미등을 켜자 잠들어 있는 백야가 보였다. 보일러를 틀었는지 방 안에는 적당한 훈기가 감돌았다.

멤버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남경은 작은 목소리로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떨어지면서 사다리에 부딪혔는지 가슴 쪽에 멍이 들었대. 피를 토한 것도 그 충격 때문일 거라고….”

최대한 가볍게 말했음에도 멤버들의 얼굴은 좀처럼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전해 줄 소식이 더 남았는데 벌써 분위기가 이러면 어떡하지….

입술을 달싹이던 남경은 용기 내어 말했다.

“그래서 전치 4주를 받았는데….”

“뭐?”

분위기가 한층 더 살벌해졌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 없대. 그래도 가슴 타박상은 갈비뼈 골절이랑 치료 방법이나 기간이 비슷하다고….”

의사의 소견을 전달해 줄 뿐인데 남경이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당분간 연습은 못 할 것 같다. 팔 드는 것도 힘들어해. 너희가 많이 도와줘.”

그 말에 유연이 백야의 파자마 위로 손을 뻗었다. 멍이 들었다는 부위를 확인해 보려는 듯했다.

“으응….”

백야는 잠이 깊이 들었는지 저를 건드리는 손길에도 얌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잠옷을 펼치자 가슴 위로 선명하게 난 보라색 멍 자국이 드러났다. 보기만 해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미친….”

상처를 확인한 멤버들은 경악에 찬 얼굴로 굳어 버렸다.

“얘 정말 괜찮은 거 맞아?”

“CT랑 다 찍어 봤어. 안정 취하는 것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대.”

“하…….”

처참한 상태에 정신이 어지러운 듯 유연이 눈을 감았다.

드러난 상처에 멤버들이 더 동요하자 율무가 다시 옷을 여며 주었다. 그는 묵묵히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답답함에 한숨을 쉰 민성은 주저앉듯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순간 괴상한 닭 비명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꾸에에에엑!

“아 씨…! 뭐야?”

엉덩이에 닿는 물컹한 촉감에 민성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인지 표정들이 우스웠다.

“…으응.”

어수선한 분위기에 잠들어 있던 백야도 눈을 떴다. 그는 잠에서 깨기 무섭게 율무와 눈이 마주쳤다.

“…나율무?”

“어. 깼어?”

율무가 어색하게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표정이 굳어 있었다.

곁에 있던 멤버들도 괜찮냐며 앞다퉈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나 백야는 느릿하게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약에 취해 정신을 금방 못 차리는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야는 가슴께에서 사부작거리는 손길을 느꼈다.

“…너 뭐 해?”

“아~ 이거 단추 때문에. 잠깐만.”

그러다 시선 끝에서 잠옷 단추를 풀고 있는 나쁜 손을 발견했다.

“이 새끼가….”

“어? 아니야, 그거 아니야. 당백이 지금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옷을 잠가 주려는 거야.”

그렇다. 벗긴 놈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있는 힘껏 미간을 찡그린 백야는 앞니를 드러내며 하악질에 시동을 걸었다.

“이, 이거 유연이가 한 건데?! 나 진짜 아닌데?”

“내가 언제.”

율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유연을 바라봤다. 그러나 사기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 진술을 늘어놨다.

덕분에 애먼 율무만 덤터기를 쓰게 됐다.

“아니, 와~ 어이가 없네? 당백아 저거 다 거짓말이야. 물론 네 몸이 궁금하긴 했지만, 아니 이게 아니라.”

“야 이 변태 새끼야….”

“몸이 궁금한 게 아니라 너 다쳤다 그래서 멍이 얼마나 들었나 확인하려고….”

“넌 죽었! 아야….”

급하게 상체를 일으키던 백야가 가슴을 짚으며 몸을 웅크렸다.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아파하자 줄곧 뒤에 서 있던 청과 지한이 나섰다.

“나와.”

지한은 일단 율무의 뒷덜미를 잡아 끄집어냈고.

“백야 괜찮아? 이제 숨 쉬어?”

남은 촬영을 하면서 줄곧 한마디도 하지 않던 청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나 괜찮….”

습관적으로 괜찮다 말하려던 백야는 멈칫했다.

고개를 올려 보자 멤버들과 매니저 형들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답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다.

“안 괜찮아. 나 진짜 아파.”

* * *

진짜라는 말은 하지 말걸….

그냥 괜찮다고 할걸….

충동적으로 뱉은 한마디가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백야는 절대 말하지 않았을 거다.

“뭐 줄까. 이거? 이거?”

“형…. 그냥 내가 알아서 먹을게.”

“지금 반찬 투정하니?”

“아니, 그게 아니라….”

“됐고. 그냥 주는 대로 먹으렴.”

백야의 의견을 무시한 민성이 자기 마음대로 고등어 살을 발라서 밥그릇 위로 얹어 주었다.

그를 본 숙소 이모님은 ‘사이가 너무 좋다’며 흐뭇해했다.

이곳이 에임의 숙소였을 때부터 계시던 이모님은 데이즈로 바뀐 지금까지 쭉 담당해 주고 계셨다.

“백야 아파서 어쩌니…. 부모님께서 많이 속상하시겠네.”

“걱정하실까 봐 말씀 안 드렸어요.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니라….”

아무렴 죽는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나름 선방한 셈이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많이 먹어야 얼른 낫지. 이모가 다 만들어 줄게.”

“감사합니다.”

백야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런데 아침에는 율무가 챙겨 주더니. 점심에는 민성이 차례인가 봐?”

“네. 얘 팔 움직이는 게 힘들다고 해서요. 약 먹고 다시 누워야 해요.”

무슨 말을 해도 들어 줄 것 같지 않은 민성에 백야는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사실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당백이 아~”

“제발.”

“아~”

“내가 먹을게. 나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쓰읍. 아~”

밥까지 먹여 주겠다며 숟가락을 뺏어 가는 율무나.

“뭐야? 왜 들어와?”

“씻는다며.”

“근데?”

“도와주려고.”

“아니야, 괜찮아.”

“왜. 오리 인형 없어서 그래?”

이 또라이가?

“장난인데. 너 속으로 욕했지.”

“아, 아니이? 아닌데?”

“거짓말 진짜 못하네.”

머리 감는 걸 도와주겠다며 욕실로 따라 들어오는 지한이나.

“오늘 이야기는 ‘No Eric’이야!”

“청아,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Shh. 나 시작해. 백야는 아이스 팩에 집중해.”

재워 주겠다고 매일 밤마다 찾아와 동화책을 읽어 주는 청이가 있었다.

무려 직접 서점에 가서 사 왔다는 책은 아동용 외국 원서였다. 그것도 만 6세 이하.

영어를 못하는 백야에게 딱이라며 이참에 영어 공부도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데.

영어만 했다 하면 낮아지는 목소리에 솔직히 잠은 잘 오긴 했다. 수치스러운 게 문제지.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벗어.”

“…어?”

“왜. 벗겨 줘?”

쭈뼛거리는 백야 앞으로 유연이 성큼 다가왔다.

“아악! 오지 마!”

“왜 이래? 혼자 옷 못 갈아입는다며.”

“그건 그런데…. 보고 있을 거야?”

2주가 넘도록 숙소에 혼자 있었더니 백야는 심심해 미칠 지경이었다.

잠시 숙소에 들른 유연을 마주쳐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러나 백야에게는 <병약미> 스킬이 있었다.

그냥 눈썹 끝 좀 내리고 시무룩한 척 ‘혼자 있기 싫다’고 하니까 그는 금세 동요했다.

그렇게 겨우 허락을 얻어 냈건만. 회사에는 잠옷 차림으로 갈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새삼스럽게 왜 이래. 벗은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흉해서 보여 주기 좀 그런데….”

“아, 빨리 벗어! 덕진이 형 밑에서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알겠어. 벗는다고….”

잠옷을 벗자 푸른 멍 자국이 탁한 보라색으로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유연이 멍하니 백야의 몸을 바라봤다.

“내가 흉하다 그랬잖아…. 징그러우니까 보지 마.”

백야가 보여 주기 싫어하는 것 같자 유연은 눈치껏 시선을 돌렸다.

“멍이 다 그렇지 뭐.”

비교적 입기 편한 셔츠를 꺼내 온 유연은 틱틱거리면서도 조심히 옷을 입혀 주었다.

“…안 아파?”

“처음보다는 덜 아파.”

“챙겨 준 보람이 있네. 빨리 나아.”

“응.”

“하…. 내가 조카 옷도 이렇게 안 입혀 봤는데. 나 같은 애 없다 진짜. 넌 나 잘 만난 줄 알아.”

“알아. 고마워.”

그리하여 옷을 입혀 주는 놈까지 등장하게 됐다.

“분명히 말하는데 너 춤 연습 절대 안 돼. 네가 눈으로만 보겠다고 해서 데려가 주는 거야.”

“응.”

“아…. 너 데려왔다고 다들 난리 칠 것 같긴 한데.”

백야 대신 음악방송 스케줄을 하고 온 유연은 잠깐 숙소에 들렀다가 혹 하나를 붙이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유연이 백야와 함께 내려오자 덕진이 펄쩍 뛰며 승차를 거부했다.

“절대 안 돼요!”

“아무것도 안 할게요. 가만히 앉아서 애들 연습하는 거 구경만 할게요.”

“아니요? 아무리 백야 님이라도 이건 들어드릴 수 없어요.”

“아아~ 혀엉.”

계략 복숭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활용해야 효과적인지도 알게 됐다.

“진짜 안 되는데….”

덕진은 쉽게 넘어왔다.

그러나 멤버들은 덕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유연과 나타난 백야를 보고 금세 얼굴을 굳혔다.

“모야? 햄스터가 왜 거기서 나오나?”

“너희 제정신이니?”

“한백야. 환자가 어딜 와.”

“유연아~ 잠깐 나 좀 보자.”

딱히 못 올 곳도 아닌데 두 사람을 향해 온갖 질타가 쏟아졌다.

“그럼 어떡해. 애가 심심해 죽겠다는데. 강아지도 집에 혼자 두진 않잖아.”

비유가 조금 이상했지만 백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불쌍해 보이는 표정은 덤이었다.

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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