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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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깜짝 발표! 데이즈 새 멤버 소개(햄스터 이모티콘)]
침대에 누워 SNS를 하던 뱁쌔는 유앱 알람을 보고 잠이 쏙 달아났다.
‘새 멤버라니?’
관종끼 낭낭한 제목에 그녀는 얼른 유앱을 실행했다.
그러자 웬 포도 상자 안에 든 햄스터 한 마리가 보였다.
[청 : 백야랑 똑같아!]
[지한 : 한백야. 너는 얘 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백야 : 왜?]
[지한 : 도플갱어는 마주치면 죽잖아.]
[백야 : 내가 어딜 봐서 얘랑 닮았어…. 그러는 너는 길냥이 보면 죽어?]
[지한 : …….]
멤버들은 라이브 방송이 켜진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한 : 얘는 팔다리가 짧고 동글동글하잖아.]
[백야 : 뭐라고?]
[율무 : 푸핫! 너희 뭐 해? 아~ 너무 웃겨.]
[민성 : 저기 얘들아? 방송 나가고 있단다.]
민성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백야는 나잉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력을 행사할 뻔했다.
움켜쥔 앞발을 풀은 백야는 몰래 노려보며 복수를 다짐했다.
- 팔다리 짧고 동글동글ㅋㅋㅋㅋㅋ 왜 너희끼리 디스하냐고
- 갑자기 웬 햄스터야???
- 새 멤버라고 해서 개 놀랐음 진짜;; 애들한테 낚였다ㅜㅜ
- 유기 햄스터 주운 건가? 울 사촌 언니 길에서 토끼 주워 와서 키우는뎅
팬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새 멤버라는 낚시성 제목에 1차 놀람. 포도 상자에 담긴 작고 귀여운 햄스터에 2차로 놀랐다.
[유연 : 저희 새 멤버예요.]
[청 : 오늘 이사 왔어!]
단아가 받은 상자 속 햄스터는 다행히 살아 있었다.
털에 묻어 있던 붉은색은 피가 아닌 틴트 종류의 화장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나 재빠른지 민성과 30분을 넘게 뛰어다니며 겨우 잡은 놈이었다.
[청 : 햄스터 어디서 왔냐고? 민성이랑 백야가 연습실에서 잡았어!]
[유연 : 우연히 주웠는데 마땅히 보내 줄 곳도 없어서 그냥 같이 살기로 했어요.]
[율무 : 이름은 에드워드 코코 드 햄릿 3세입니다~]
[민성 : 너무 길다니까.]
낮에 작은 소동이 있고 난 뒤, 별다른 이견 없이 햄스터를 키우기로 한 멤버들은 새 멤버의 이름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율무 : 저희가 낮에 이름 지어 준다고 투표했었거든요~ 햄릿은 지한이, 코코는 민성이 형이 지었고,]
[청 : 에드워드 나야! 멋있지!]
세 개의 이름이 각각 2표씩 동점이 나오는 바람에 세 가지를 합쳐 버렸다고 했다.
[민성 : 등에 털이 하트 모양이잖아. 그러니까 코코. 얼마나 귀엽니?]
[지한 : 얘 남자애라며. 햄릿 해.]
[백야 : 그냥 재투표해…. 아니면 팬분들한테 지어 달라고 할까?]
[유연 : 그게 낫겠다.]
나잉이 대장이 부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나잉이들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 백도! 백야 도플갱어니까ㅋㅋㅋ
- 햄치즈, 엣햄, 햄버거
- 햄무라비 법전
- 햄백야? 줄여서 햄야ㅋㅋㅋㅋ
- 햄여름밤의 꿈
채팅창을 보던 백야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백야 : 여러분….]
[민성 : 푸하하! 야, 이거 봐. 햄무라비 법전이래.]
[유연 : 햄야가 제일 많은데?]
[청 : 흥냐?]
[지한 : 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니까. 똑같이 생겼어.]
[백야 : 저는 나잉이들 믿었는데….]
[율무 : 엣햄, 햄야, 마음에 드는 게 너무 많은데? 역시 나잉이는 천재야~]
반응은 뜨거웠다.
- 흥냐는 뭐냐ㅋㅋㅋㅋ 청이 발음 안 되는 거 개 귀엽네 진짜
- 백야 울리고 싶다......
- 이 맛에 백야 놀리는구나?
- 복숭아 울겠다ㅋㅋㅋㅋㅋ 나잉이들 이제 그만 놀리고 진짜 이름 지어 줘요
- 그냥 햄야 하자! 햄야!
그렇게 데이즈 새 멤버의 이름은 ‘햄야’가 되었다. 백야만 빼고 모두가 만족스러워했다.
[율무 : 그럼 지금부터 햄야의 집을 꾸며 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
[민성 : 사실 햄스터 집 꾸미는 거 같이하려고 켰어요.]
저희가 직접 가서 고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 매니저 형들이 대신 사다 줬다며 상자를 비췄다.
그 안에는 케이지부터 시작해 톱밥, 장난감, 해바라기씨 같은 것들이 다양하게 들어 있었다.
[백야 : 뭐가 이렇게 많아? 얘 혼자 언제 다 먹어 이걸.]
[유연 : 네가 도와주든가.]
[청 : 백야 먹는 거 아니야!]
[백야 : 아니야, 먹는 거 맞아.]
[청 : No! 이거 행야 거야!]
- 햄스터용 옥수수 아닌가?
- 청 : (백야가) 먹는 거 아니야 / 백야 : (옥수수) 먹는 거 맞아
- 행야ㅋㅋㅋㅋ 아 발음 미치겠다
[유연 : 너 먹으면 안 된다고, 너.]
[백야 : …내가 바보야?]
[청 : 여기 햄스터 그림 있어서 먹을까 봐. 혹시 모르는 일이야.]
[백야 : 너 이리 와.]
햄스터용 미니 옥수수를 구경하던 백야가 청의 목을 낚아챘다.
[청 : 으악! Help!]
[민성 : 얘들아? 상자 차지 않게 조심하렴. 쟤 진짜 빨라.]
[지한 : 그냥 다른 데로 옮겨.]
[민성 : 그래야겠다.]
막내즈가 불안했던 민성은 햄야가 들어 있는 상자를 소파 위로 옮겼다.
[율무 : 햄야는 좋겠네~ 우리 숙소보다 더 좋은데?]
[유연 : 근데 이거 진짜 나무야?]
[민성 : 그럼 가짜 나무도 있니?]
원목에 전면 유리로 된 햄스터 케이지는 크고 고급스러웠다.
[지한 : 사진처럼 만들면 되는 거잖아.]
사진에는 이끼와 코코넛 껍데기 은신처, 말린 건초들이 한데 모여 숲처럼 꾸며져 있었다.
[지한 : 햄스터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먹이래.]
[율무 : 야생 본능을 충족시켜 주면서 스트레스를 줄여 준다는데? 좋았어! 많이 심어 주자.]
[민성 : 이거 백야 침대맡에도 몇 개 놔둬야 하는 거 아니야?]
[지한 : 한백야. 필요해?]
[백야 : 필요 없어!]
상자 옆에서 원목 쳇바퀴를 조립하던 백야가 발끈했다. 삐죽 올라간 눈썹 끝이 제법 사나웠다.
[민성 : 오~ 방금 햄야랑 똑같았어. 아까 연습실에서 딱 저 상태였거든.]
[율무 : 햄야 조폭 햄스터였어?]
[청 : 당근 하지! 쟤가 아까 내 손 물었어!]
[유연 : 친구 닮아서 깡패네.]
계속되는 백야 몰이에 인간 햄스터는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 매니저 안목이 좋네ㅋㅋㅋㅋ 숙소랑 잘 어울리는 거 사 온 듯
- 햄야 집 점점 그럴듯해지고 있어ㅋㅋㅋ
- 아니!!! 거기 말고 오른쪽! 오른쪽에 놓자!
- 햄야 얼른 저 안에 넣어줘ㅜㅜ 코코넛 집에 들어간 거 보고 싶다
- 나도 주워가! 찍!!! 찍찍!!
- 얘들아 거기에 백야도 넣어보자!
[민성 : 누가 한 마리는 외로우니까 백야도 같이 넣어 주라는데? (웃음)]
[유연 : 백도 낯가려서 안 돼요.]
팬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햄스터 케이지가 완성되었다.
예시용 사진보다는 조금 엉성했지만 처음 도전한 것치고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지한 : 이제 입주시켜.]
백야가 손을 내밀자 회색과 흰색 털이 섞인 햄야가 손바닥 위로 쪼르르 올라왔다.
흰색 부분의 털은 틴트에 물들어 분홍빛이었다.
- 경★ 햄야 입주 완료 ★축
- 근데 햄스터 털 왜 분홍색이야?
- 갓생 사는 햄스터... 나도 애들이 만들어 준 집에서 해바라기씨 잘 먹을 수 있는데
- 귀여워ㅠㅠ 햄야 신났다
- 제발 코코넛 집 한 번만 들어가줘ㅜㅜㅜ
- 애들 다음 팬싸 때 햄스터 용품만 오천만 개 받겠는데?ㅋㅋㅋㅋ
[백야 : 다행이다. 집 마음에 드나 봐.]
[유연 : 근데 밥 너무 많이 넣은 거 아니야? 얘가 알아서 먹겠지?]
멤버들은 방송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햄야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케이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뒤통수가 햄야만큼이나 귀여웠다.
- 사실 난 햄야보다 너희가 더 귀여워....
- 오늘 방송 보고 느낀 거 : 얘네 파면 인성 때문에 탈덕 할 일은 없겠구나
- 뭐 했다고 벌써 1시간이야? 유앱 자주 켜줘 얘들아ㅜㅜ
[백야 : 우와. 옥수수 먹는다.]
[청 : 먹는 거 완전 햄스터!]
[유연 : 햄스터니까 햄스터처럼 먹지.]
햄스터를 귀여워하는 데이즈를 귀여워하는 나잉이들은 손가락으로 울었다.
- 너희는 뒤통수도 잘생겼구나ㅠㅠㅠ
- 햄야 입에 넣고 와랄라 하고 싶다ㅜㅜ 졸라 귀여움
[백야 : 햄야를 입에 왜 넣어요?]
[청 : 햄야를… 먹어?]
주접 댓글을 이해하지 못한 막내즈가 충격에 굳어 버렸다.
[청 : No. 먹는 거 아니야….]
[율무 : 푸핫! 당연히 장난이지~]
[민성 : 요즘 저희 뭐 하냐고요? 연말 무대 연습하고 있어요.]
[지한 : 숙소에는 거의 잠만 자러 오는 것 같아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에요.]
팬들은 데이즈의 하이틴이 대상 후보에 오른 걸 알고 있느냐 물었다. 그에 멤버들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연 : 알고 있죠. 너무 감사해요. 저희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정말 영광입니다.]
[백야 : 맞아요.]
알고는 있지만 기대는 하지 않기로 말을 맞춘 듯한 모습이었다. 대상을 받기엔 소년천하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성 : 시상식은 즐기려고 모이는 자리잖아요. 멋진 모습 보여 드리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연말 무대 스포 해줘ㅜㅜ
- 걸그룹 커버 누가 나가??
[율무 : 연말 무대 스포요?]
[백야 : 스포 안 돼요….]
[율무 : 안 돼?]
[백야 : 당연하지.]
[율무 : 아깝다~ 저는 스포 해 드리려고 했는데 당백이가 안된대요.]
햄야의 건초로 백야의 턱을 살살 간지럽히던 율무는 능청스레 팬들의 요청을 넘겼다.
- 그럼 율무 생일 때는 뭐 했어?
[백야 : 율무 생일이요?]
[유연 : 몰래카메라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민성 : 쟤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안 돼.]
[율무 : 그냥 속아줄 걸 그랬네~ 그럼 내년에 재도전해 봐. 그때는 속아줄게. 알겠지?]
[백야 : 아니야, 됐어.]
[청 : 맞아, 재미없어! 우리 이해 안 해.]
[율무 : 왜 이렇게 포기가 빨라?]
[지한 : 안 되는 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막간을 이용한 율무 몰이가 이어지길 잠시.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좋은 꿈을 꾸라’는 인사와 함께 방송이 종료됐다.
“조금만 더 해주지….”
뱁쌔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SNS에 접속했다.
그러자 ‘햄야’를 비롯한 후보에 올랐던 각종 이름들이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하고 있었다.
자신도 뭔가를 올리고 싶었던 뱁쌔는 앨범에 저장된 캡처 사이에서 제일 귀엽게 나온 사진 한 장을 골랐다.
- 제 반려 햄스터 구경하실 분♡ (백야 캡처.jpg)
[지한이나라다 님이 마음에 들어 함]
친구들이 하트를 누르며 호응해 주길 잠시. 낯선 이에게서 DM이 도착했다.
[100 님이 내게 쪽지를 보낼 수 있도록 허용할까요?]
“뭐지?”
아직 읽지 않은 쪽지를 누르자….
[100 : 백야 내 건데]
[100 : 저 햄스터도 내가 준 거야]
[100 : (사진)]
눈 아래로 크롭 되어 있었지만, 유앱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햄스터에게 뽀뽀를 하고 있는 여자의 사진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