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17화 (217/340)

제217화

* * *

- 복숭아한테 웬 망상병 환자 하나 붙었던데

- 이상한 뎀 나도 받았음. 근데 햄스터는 진짜 똑같아 보이는데?

- 계정 들어가 보면 가관이던데ㅎㅎ 정신병원이 시급함

기분 나쁜 쪽지는 뱁쌔만 받은 게 아니었다. 해당 계정은 며칠 사이 나잉이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다.

100이라는 사람이 작성한 글을 본 팬들은 아티스트가 위험한 게 아니냐며 백야의 안전을 걱정했다.

몇몇은 소속사 측에 경호를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는데. 대체 무슨 글을 써 놨길래 이런 반응들이 나오는지 뱁쌔는 조금 궁금해졌다.

- 백야가 무대 준비 중이라고 보내 준 사진. 이날 무대 중간에 인 이어 빠져서 엄청 놀랐다고 찡찡 (백야 교복 셀카.jpg)

- 꼬리치는 년이 너무 많다

- 나는 네가 자꾸 웃어 줘서 그런 것 같은데... 아니지? 그래. 우리 백야가 나를 두고 그럴 리 없지

- 부재중 전화 30통. 괘씸해서 전화 안 받았더니 지금 당장 집으로 오겠다고♡ 내가 질투하는 게 보고 싶었대 (부재중 목록 캡쳐.jpg)

- 화 풀라며 보내 준 애교 셀카. 나만 보라고 했지만 너무 예뻐서 안 올릴 수가 없잖아 (백야 볼하트 셀카.jpg)

- 함께 가서 고른 우리 아기♡ (햄야 사진.jpg)

“이거 완전 미친X 아니야?”

욕이 뇌를 거치기도 전에 튀어나왔다.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은 백야가 모두 공식 계정을 통해 올려 준 것들이었다.

ID에 팩스를 보냈다는 팬들을 보고 ‘오버 아닌가’라고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지만 이 사람은 확실히 위험했다.

‘근데 햄스터는 너무 똑같은데.’

원래라면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는 글이었으나 햄야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었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기 햄스터가 아니냐’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 정병 온 애가 회사로 택배 보낸 거 애들이 그냥 키우기로 한 거 아님? 동물이 무슨 잘못이야. 쟤를 버릴 수도 없잖아

└ 이거 같음

└ 연습실에서 잡았다는 거 보면 선물 상자에 넣어서 준 것 같은데

└ 유연이도 주웠다 그랬잖아

100과 백야가 정말 아는 사이며, 둘 사이의 반려 햄스터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00도 이 사실을 아는지 머지않아 불쾌함을 드러냈다.

- 너희가 부정해 봤자 진실이 변하진 않아^^

물론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야기를 율무가 모를 리 없었다.

“일찍 일어났네~”

“응. 남경이 형 곧 도착한다 그래서.”

개인 스케줄을 가기 위해 거실로 나오던 백야가 방 앞에서 율무와 마주쳤다.

“당백이 요즘 별일 없지? 이상한 문자라든가 전화 같은 거 오진 않고?”

“갑자기?”

백야가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봤다.

며칠 전 햄스터 사건으로 단아에게 백야의 극성팬이 붙었다는 사실은 멤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스페셜 스테이지의 남은 연습은 백야가 단아의 회사로 가는 것으로 스케줄이 조정됐는데. 오늘은 그날 이후 처음으로 단아를 보는 날이었다.

“그냥~ 나는 또 번호 털렸나 봐. 새벽에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 와서 한숨도 못 잤어.”

“…너도?”

“아무래도 같은 사람 같은데.”

“야, 나도!”

슬쩍 말을 흘리자 개복치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알아서 핸드폰을 꺼낸 백야는 문자를 찾는 듯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난 이 사람. 차단해도 계속 번호 바꿔 가면서 와.”

율무가 백야의 핸드폰을 가져왔다.

[백야야 난 너밖에 없고 넌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야♡]

[백야야 답장 한 번만 해 주면 안 돼? 그게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왜 전화 안 받아?]

[백야야 왜 메신저 이름도 없고 프사도 다 내렸어? 혹시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이 SNS에서 봤던 것과 똑같았다. 자신들은 찍은 적 없는 햄야의 사진.

“역시.”

“왜? 너도 이 사람이야?”

고개를 든 백야가 율무를 빤히 올려다봤다.

“어? 아니, 이 사람 아니야. 그런데 프사 보니까 단아 누나한테 햄스터 보낸 사람 같은데.”

율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햄야를 너무 생각 없이 공개한 것 같다며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됐어. 이미 다 보여드렸는데 뭐. 그래서 너는 누군데?”

“나? 난 한국인 아니고 외국인 같아. 국제 전화로 걸려 오더라고.”

저런….

확실히 이런 건 데뷔 초, 인기 없을 때가 좋았다.

“그냥 번호 바꿀 때 된 거지, 뭐~”

“안 그래도 난 오늘 바꾸려고.”

그래 봤자 일주일도 가지 않아 금방 털릴 테지만, 그 일주일만이라도 편해지고 싶었다.

“그래? 그럼 번호 바꾸면 단체방에 올리기~”

“응. 너 없는 단체 방에 올릴게.”

“나 없는 단체방? 그런 게 있어?”

백야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돌았다. 그러자 율무가 졸졸 따라오며 반응을 보였다.

“에이~ 거짓말.”

“믿기 싫으면 믿지 마.”

“…진짜? 진짜로 나 빼고 단체방 만들었다고?”

“몰라.”

“진짠가 본데…? 왜? 아니, 나 왜? 내가 말 너무 많이 해서? 아님 이모티콘으로 도배해서?”

연기 스킬 덕분에 율무를 속이는 게 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던 백야는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 * *

남경을 기다리는 동안 율무에게 붙잡혀 있던 백야는 어쩐지 기가 빨린 모습이었다.

“백야 무슨 일 있어?”

“네? 아니요?”

“표정이 안 좋아 보이길래.”

“아…. 율무 좀 놀려 보겠다고 장난쳤다가 귀에서 피날 것 같아요.”

‘아직도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며 농담하던 백야는 거울에 비친 단아를 힐끔거렸다. 단아는 미안해할 것 없다고 했지만 자꾸 눈치를 보게 됐다.

대기실 한편에서 두 매니저들이 하고 있는 검수 작업만 봐도 그랬다.

두 사람 앞에는 출근길에서 받은 각종 편지와 상자가 가득 쌓여있었다.

햄스터 사건 이후로 매니저들은 편지를 제외한 선물은 먼저 확인 후 넘겨 주곤 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단아 씨랑 매니저님께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니요. 그런 뜻에서 말씀드린 게 아닌데….”

백야의 매니저라는 이유로 남경 또한 죄인이 됐다.

기분이 가라앉은 백야는 시무룩한 얼굴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멤버들도 연습을 시작했는지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순간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지잉-

모르는 번호였다.

[번호 바꿨네? 바꾸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백야야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

번호 바꾼 지 얼마나 지났다고….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에 백야가 찡그리듯 눈을 감았다.

그때 팬레터 뭉치를 든 남경이 다가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냥 좀 머리가….”

번호를 차단한 백야는 핸드폰을 종료했다.

“그거 다 제 거예요?”

“아, 이거? 응. 받아 주지 말라니깐.”

“편지는 괜찮잖아요. 형, 그거 저 주세요.”

“머리 아프다며. 그냥 나중에 봐.”

“아니에요. 지금 볼래요. 이것 좀 맡아 주세요.”

대신 골치 아픈 핸드폰을 넘겨 버렸다.

‘이래서 에임 선배님들이 사생이라면 치를 떠는구나.’

가만히 있으면 자꾸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될 것 같았던 백야는 팬레터로 손을 뻗었다.

헤어 세팅을 하는 동안 편지라도 읽는 게 기분전환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냥 쉬지….”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다른 생각 하게 돼요.”

“그래, 그럼.”

남경이 순순히 편지를 건네주었다. 대체로 복숭아나 햄스터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백야는 가장 위에 있는 것부터 뜯어 보았다.

[To. 백야♡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비타민이 되어 주는 백야야 노래해 줘서 고마워!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확실히 기분이 나아지는 게,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편지를 뜯으며 차례대로 내용을 확인했다.

맞추기라도 했는지 ‘노래를 해 줘서 고맙다’는 문장이 빠짐없이 등장해 심장을 간지럽혔다.

“기분 좋아졌네, 우리 복숭아.”

“네.”

백야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음 편지를 들었다.

이번 건 빨간색 봉투였다. 햄스터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이 팬은 햄스터 파인 듯했다.

백야도 자신의 팬덤이 복숭파와 햄스터 파로 나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편지지가 찢어지지 않게 접합 부분을 잡아 힘을 주었다.

“아.”

그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며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을 파고들었다.

칼날이 깊게 들어왔다 빠져나간 자리에 핏방울이 맺혔다.

놀란 백야가 반사적으로 상처 부위를 움켜쥐었지만, 엉망으로 쥔 탓에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삐이이-

겨우 칼에 베인 것뿐인데 귀에선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하얗게 보였다.

얼른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백야 괜찮아?”

스타일리스트도 종이에 베인 것치곤 떨어지는 방울이 굵어 보이자,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백야야. 한백야.”

난데없는 소란에 남경이 다가왔다.

“무슨 일…. 야, 너 손 왜 그래?”

“매니저님, 저 편지요. 저거 뜯자마자 이렇게 됐어요.”

스타일리스트가 바닥에 떨어진 빨간색 편지 봉투를 가리켰다.

남경이 편지를 집어 들자 봉투의 접착면 부분에 피 묻은 칼날이 붙어 있는 게 확인됐다.

편지를 꺼내 보자 섬뜩한 혈서가 적혀 있었다.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

“이런 미친.”

남경이 욕을 읊조렸다.

소름 끼치는 내용에 많이 놀란 듯 단아도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단아야, 오지 마.”

그녀의 매니저가 백야의 곁으로 다가왔다.

“백야 씨 잠시만 손 좀 떼 보실래요? 이렇게 쥐고 있으면 안 돼요.”

“못 떼겠어요…. 너무 아파요.”

백야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도리질 쳤다.

손을 움켜쥐기 직전, 살이 적나라하게 벌어진 모습을 봐서 그런가, 손을 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깊게 베였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경계’ 단계입니다. 66%]

삐이이-

귀에서는 여전히 이명이 들리고 식은땀이 났다.

“남경 매니저님, 피 흐르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봉합하러 가셔야 할 것 같은데.”

“아오 씨.”

힘들게 고생한 애들이 이제 겨우 빛을 보겠다는데, 무슨 놈의 악재가 이리도 겹치는지. 남경이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짓씹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제 가방에서 밴드 하나만….”

백야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의 가방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두 발로 딛고 서기 무섭게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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