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괜찮아?! 일단 병원부터 가자.”
“아, 아니에요. 저 봉합 안 해도 돼요. 그냥 밴드만 붙이면….”
그러나 남경의 무서운 얼굴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사실 괜찮은 척했지만 손가락이 잘려 나간 것처럼 화끈거렸다. 생각보다 깊게 베인 상처는 여전히 피를 뱉어 내고 있었고, 백야는 제가 손을 떨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어나.”
손수건으로 상처 부위를 감싼 남경은 백야를 데리고 가까운 종합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응급 환자로 분류되어 곧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냥 수면 마취해 달라고 하면 안 돼요? 저 진짜 못 하겠어요….”
엄살이 하늘을 찔렀다.
약 2년 전, 손바닥을 꿰매 본 적 있는 백야는 그때의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취 주사 맞았잖아. 괜찮을 거야. 네 바늘만 꿰매면 된다니까 조금만 참자.”
“네 바늘만이라니요? 네 바늘씩이나 된다고요….”
울멍울멍한 눈이 남경을 올려다보자 그는 죄책감을 느꼈다.
“형이 미안하다. 내가 실언했어.”
멀쩡한 손으로 옷자락을 움켜쥔 백야는 떨고 있었다.
눈앞에 수술복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마스크를 끼고 바늘에 실을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지수 낮추지 말걸.’
병약미 패시브 때문에 경계 단계가 5분만 지속돼도 기절할 수 있었는데. 괜히 낮췄다며 후회했다.
“히끅.”
공포에 질린 백야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바로 꿰맬게요. 보면 더 아프니까 다른 곳 보고 계세요.”
“혀어엉. 살려 주세요….”
눈을 꼭 감은 백야는 남경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이마를 박았다.
백야가 움직이지 못하게 팔을 고정하고, 간호사가 엄지손가락을 잡으며 한 번 더 움직임을 봉쇄했다.
“선생님 살살해 주세요. 제발 살살요.”
“네~ 따끔해요.”
“끄악!”
뾰족하고 차가운 게 살을 꿰뚫는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통증은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엄살을 부린 덕에 국소 부위 마취를 제법 넓게 했기 때문이다.
“거의 다 됐어요. 마지막 따끔~”
바늘이 처음 살을 뚫은 순간부터 숨을 참고 있던 백야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숨을 토해 냈다.
“푸하-”
“다 끝났어요. 수고했어요. 하나도 안 아팠죠?”
백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픈 것보다도 살을 꿰매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져 모든 순간이 끔찍했다.
이를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턱관절이 다 뻐근했다.
“물 들어가면 안 되니까 붕대 감아 드릴게요. 김 간호사.”
“드레싱 먼저 할게요. 이틀에 한 번씩 소독하셔야 하고요. 2주 동안은 상처 부위에 물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네에….”
병원을 빠져나온 백야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 * *
- 백야 손가락에 붕대 뭐야? 출근길 때만 해도 없었는데??
- 오늘 백야 안색 너무 안 좋던데ㅜ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 남매랑 중간 외출했는데 병원 다녀왔다는 말이 있음
└ ○○병원 목격담 떴다가 지금은 내려감. 커터 칼에 베여서 응급으로 수술받고 갔다던데
- ID 갑자기 데이즈 개인 편지, 선물 일절 안 받는다고 공지 올라옴
- 백야 다친 거랑 관련 있나?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개뜬금 공지가 올라올 이유가 없는데?
- 손가락 절단됐다고???
- 1위 앵콜 나오고 무대 내려갈 때 백야 큐카드 놓치면서 붕대 감은 쪽 손목 잡음 (쇼플리 캡처.jpg)
- 오늘 유난히 창백해 보였는데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아프지 마 내 복숭아ㅜㅜ
- 시X 미친 거 아니야? 봉합수술한 애를 생방에 그대로 세워?
- 저번에도 아픈 애 팬싸에 그대로 세우더니 빡치네 진짜... 대형 소속사다 뭐다 팬들이 빨아주니까 복에 겨웠구나
- ID 불 지르러 갈 파티원 구함 (1/8700000000)
백야의 부상은 손가락 절단 봉합수술로 부풀려져 SNS에 퍼지고 있었다.
그러다 생방송이 끝날 무렵.
마취가 풀리며 통증이 다시 시작된 백야는 무대를 내려오며 큐카드를 전부 놓쳐 버렸다.
손가락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끄흑.”
“백야야, 약 먹을래? 거기 글로브 박스 열어 보면 물 있어.”
끄응.
백야는 대답할 힘도 없는지 신음을 삼키며 몸을 웅크렸다.
“왜 자꾸 너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그야 여기는 망겜 속이고 저는 운 나쁜 개복치니까요….
이유라도 알아서 조금은 덜 억울했다.
손을 더듬으며 글로브 박스를 연 백야는 물을 찾았다. 그러나 서랍 안에는 물티슈뿐이었다.
“형, 없어요….”
“어? 아닌데, 물 거기 있었는데?”
백야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잠깐만. 저기 편의점 보인다. 형이 금방 가서 사 올게.”
“네에….”
손가락 좀 베였다고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아프다니. 통증을 느낄 때마다 크게 뛰는 스트레스 지수 때문인 것 같았다.
‘손가락이 베여서 죽는 건 너무하잖아….’
마땅히 차를 세울 곳이 없어 골목길까지 들어온 벤은 편의점과 조금 떨어진 곳에 멈췄다.
“얼른 다녀올게.”
남경이 내리자 창문에 머리를 기댄 백야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인적 드문 골목길이라 그런가 바깥도 차 안도 고요했다.
부스럭-
그런데 순간 차 뒤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트렁크 쪽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형?”
눈을 뜬 백야가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뒷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
‘뭐지? 분명 무슨 소리가 났는데.’
백야가 갸웃거리며 몸을 바로 하려던 때였다.
[경고!]
[사생 주의!]
경고창이 떠오르며 트렁크에 걸린 의상들 사이로 저를 지켜보는 한 쌍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 나온다던데, 지금이 딱 그랬다.
발끝까지 소름이 돋으며 귀신을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시스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경고창을 띄워 냈다.
[경고!]
[스트레스 지수가 ‘주의’ 단계입니다. 51%]
[<병약미> 패시브와 반응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주르륵-
코피가 흘러내렸다.
한동안 시달리던 이상한 문자와 햄스터, 그리고 편지 사건까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빌드 업임이 틀림없었다.
‘일단 내려야 해.’
남경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단둘이 차 안에만 있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못 본 척 몸을 돌린 백야는 안전벨트를 풀어내려 했다. 코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왜 안 되는 거야.’
철컥, 철컥-
그러나 가끔 말썽을 부리던 조수석 벨트가 하필이면 오늘 또 고장 난 듯했다.
버클은 아무리 눌러도 고리를 뱉어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야가 초조해하는데 뒤에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야야.”
“…….”
“나 봤지?”
“…….”
“봤으면서 왜 못 본 척해?”
차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럴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백야는 반응하지 않으려 애쓰며 못 들은 척 다시 버클을 눌렀다.
툭-
그 사이 뒷좌석을 넘어온 사생은 백야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백야야.”
좀. 제발!
다가온 사생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순간 안전벨트가 풀렸다.
철컥, 드르륵-
자유의 몸이 된 백야는 얼른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낯선 손이 운전석의 잠금장치를 누르는 게 더 빨랐다.
달칵-
잠금장치가 걸리며 결국 사생과 단둘이 차 안에 갇혀 버렸다.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나는 상황에 백야가 얼굴을 굳히며 옆을 돌아봤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당장 내리세요.”
제법 무섭게 소리쳤으나 여자는 오히려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괴한지 백야는 한 번 더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웃음은 얼마 가지 못해 금세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백야야. 어디 아파? 피가….”
여자가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탁!
반사적으로 손을 쳐낸 백야는 손등으로 코피를 훔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날이 선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백야는 여자를 경계하면서 계속해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두 번을 연속으로 당기자 수동으로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러나 동시에 반대편 손목을 잡혔다.
“백야야, 나야….”
“이거 놔!”
“왜? 놓으면 다른 년한테 가려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트레스가 빠르게 올라가며 속이 울렁거리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대화가 통할 것 같지도 않은 데다, 한마디도 더 섞고 싶지 않았던 백야는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차 문이 열리며 차가운 공기가 뺨을 에워쌌다.
“이거 놓으라고!”
거칠게 뿌리친 백야가 차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렸다.
털썩-
차체가 높다 보니 그 과정에서 엉덩방아를 세게 찧었다.
“아으으….”
바닥을 짚으며 다친 손가락에 무게가 실렸는지, 뇌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울렸다.
붉어진 눈시울에 눈물이 고였다.
“아파….”
얼굴을 찡그린 백야가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라 일단 차에서 멀어져야 했다.
그때 마침 벤으로 돌아오던 남경이 먼저 백야를 발견하고 불렀다.
“너 왜 나와 있어?”
그는 데운 인스턴트 죽과 물을 고이 안고 있었는데, 백야가 고개를 드는 순간 엉망인 몰골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야, 너 얼굴은 또 왜 그래? 코피 났어?!”
“형, 차에 누가 있어요.”
그 순간 뒷좌석 문이 열리며 마스크를 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경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었다.
“야! 너 뭐야!”
“에이씨.”
사생은 곧장 줄행랑쳤다.
들고 있던 물건을 팽개친 남경이 그 뒤를 쫓아가고, 골목을 지나던 중년의 여성이 다가와 백야를 부축해 주었다.
“어머. 학생 괜찮아요? 웬 코피를 이렇게 흘려.”
“감사합니다.”
“해코지당했어요? 아유 어쩌다가….”
부모님 나이대로 보이는 여성이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쥐여 주려 했다.
흠칫.
그러나 백야는 손을 숨기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괘, 괜찮아요.”
백야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