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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23화 (223/340)

제223화

견학 프로그램은 구내식당에서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이후 스튜디오로 이동해 지면 촬영을 마친 데이즈는 곧장 연습실로 복귀했는데. 지한의 도움으로 연락처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백야는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하아….”

명함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선뜻 연락을 취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몰래 번호 알아내서 연락하는 게 사생이랑 다를 게 뭐야….’

백야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니 연습 내내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한백야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죄송합니다.”

“다 나았다며. 네 입으로 괜찮다 그러지 않았어?”

“넵….”

“그런데 언제까지 멤버들이 너 배려해 줘야 해. 어!? 긴장 안 하지!”

결국 호랭이에게 된통 혼이 났다.

원래라면 자정쯤 끝났어야 할 연습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안무가가 음악을 끊기 무섭게 멤버들이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하나같이 땀에 젖어 기절하기 직전의 모습들이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보자.”

“그래 봤자 다섯 시간 뒤….”

천장을 보며 숨을 고르던 민성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를 본 호랭이가 피식 웃었다.

“너희 데뷔조 때는 이것보다 더했어. 아냐?”

“와……. 그때는 하루에 두 시간 잤나? 너무 피곤해서 보컬 트레이닝 받으면서 졸았는데.”

다시 하라 그러면 왠지 못 할 것 같다며 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율무가 낮게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아~ 생각난다. 형이랑 청이 기면증 생겨서 약도 먹었잖아.”

“맞아. 쟤랑 나랑 제일 고생했지. 안 그렇니, 청아.”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몰래 웃던 백야가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청이 보였다.

“청아, 자?”

“…잔다고?”

몸을 일으킨 민성이 백야의 건너편을 바라봤다. 그곳엔 이미 꿈나라로 떠난 지한과 청이 보였다.

낮에 스케줄도 하고 온 애들인데. 오늘은 너무했다 싶었는지, 호랭이가 내일 연습 시간을 조정해 주었다.

어차피 내일 또 나와야 하는 거, 그냥 연습실에서 자자며 율무가 소신 발언했으나 단번에 묵살되었다.

“여기 귀신 나오잖아. 형은 쟤 까무러치는 거 보고 싶냐?”

유연이 정수기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백야를 턱짓했다.

언제 갈 준비를 마쳤는지,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다 ‘귀신’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듯, 눈을 뜨며 주위를 살피는 게 경계하는 미어캣 같았다.

“백도, 일어나.”

“이제 가?”

가방을 멘 백야가 멤버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벤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작은 머리통 안에는 ‘연락을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온종일 고민한 끝에, 백야는 침대에 누워서야 결정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데이즈 백야라고 합니다. 여름쯤 일본에서 만나 뵌 적 있는데 혹시 기억하실까요?]

그런데 씹혔다.

문자를 보낸 지 10시간이 넘었는데도 답장이 없는 걸 보면 씹힌 게 틀림없었다.

‘어째서? 왜?’

사칭 문자처럼 보였나?

하긴. 요즘 피싱이 기승을 부리니까….

‘그래도 일본에서 진상을 부린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텐데?’

백야도 본인이 한 게 진상짓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문자를 한 번 더 보내 볼까 했지만 너무 질척거리는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아니야. 오늘까지만 기다려 보자. 엄청 바쁜 일이 있어서 확인을 못 했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일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백야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5분에 한 번씩 확인을 해 대는 꼴에 이제는 멤버들도 수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지한아~”

“나도 몰라.”

“내가 뭘 물어볼 줄 알고 모른대?”

“한백야 여자 친구 생겼냐고 물어볼 거잖아.”

“우리 지한이 귀신이네~”

율무가 팔을 흔들며 엉겨 붙자 지한의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든가.”

“이미 물어봤지~ 분명 뭐가 있는데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널 찾아온 거 아니겠어? 둘이 같은 방이잖아.”

눈이 마주치자 율무가 한쪽 눈을 깜빡거렸다. 촐싹거리는 윙크에 헛웃음이 다 튀어나왔다.

“진짜 몰라.”

“에이. 너는 아는 줄 알았는데. 당백이가 보기보다 치밀하네.”

사실 지한은 백야가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지 알고 있었다.

그 개발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정도로 간절한 걸 보면 꽤나 중요한 일일 게 분명했다.

“그냥 신경 꺼.”

“차갑다, 차가워.”

겨울이 오긴 왔나 보다며 율무가 양팔을 문지르며 돌아갔다.

* * *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

12월의 첫날부터 찾아온 강추위에 전 국민이 롱패딩을 찾는 때에, 나잉이들 만큼은 아이스크림케이크를 찾았다.

바로 오늘 아침에 공개된 데이즈의 헤븐 플레이버7 광고 때문이었다.

[헤븐 플레이버7] 아이스크림 요정의 크리스마스트리_full (60")]

모두가 잠든 밤.

선반 위, 트리 오르골에 불이 들어왔다.

태엽이 돌아가며 오르골이 재생되자, 하얀 눈발이 날리며 깜찍한 내레이션이 얹어졌다.

[백야 : 올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아이스크림케이크가 어울릴까?]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오르골 안을 비추자 눈밭 위, 아이스크림 요정들이 나타났다.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민성과 청이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서 아이스크림 볼을 굴리며 나타났다.

아래는 초코 맛, 위에는 민트 초코 맛으로 만들어진 2단 눈사람.

그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선물 상자에서 아이스크림콘과 초콜릿 칩을 꺼내 눈사람을 장식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지, 청은 턱을 쥔 채 유심히 눈사람을 노려봤다.

[청 : 오!]

이내 좋은 생각이 난 듯 민성이 목에 두른 목도리를 마구 풀어냈다. 민성이 과장된 몸짓으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 준 청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씩 미소를 지었다.

BGM으로 깔린 캐럴은 점점 경쾌해졌다.

화면이 전환되며 이번에는 트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네 사람이 보였다.

율무는 바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뭉치고 있었다.

그가 뭉친 아이스크림을 건네면 유연이 핀을 꽂아 트리 장식 볼을 완성시켰다.

그렇게 한가득 만들어진 장식은 백야와 지한이 정성껏 매달았다.

높다란 사다리 위에 앉은 백야가 트리를 건드리자 나뭇가지에 쌓여 있던 눈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후드득-

장식 볼을 매달다 눈 폭탄을 맞은 지한이 놀란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콩-

백야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볼이 떨어지며 한 번 더 지한의 정수리를 맞혔다.

의아한 지한이 위를 올려다보자, 까르르 웃던 백야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잠시 후.

민성이 바닥에 달린 스위치를 밟자, 사위가 어두워지며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들이 나타났다.

끙차-

사다리를 밟고 선 백야가 개중 가장 커다랗고 예쁜 별을 땄다.

반짝이는 별을 트리 꼭대기에 꽂자 화면이 전환됐다.

멤버들이 만든 것과 똑같은 트리, 눈사람 모양의 아이스크림케이크가 비치며 다시 한번 내레이션이 깔렸다.

[지한 : 올겨울도 어김없이 달콤한 겨울. 크리스마스니까.]

[단체 : Happy holidays! Heaven flavor7.]

아이스크림케이크를 하나씩 든 채 트리 앞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광고는 끝이 났다.

- 미쳤나 봐 진짜ㅠㅠㅠㅠ 헤플 사랑합니다ㅠㅠ 또 먹으러 갈게요

- 헤플 이런 식이면 매출 성장률 1000%밖에 못 찍어...

- 청이 댕웃기네ㅋㅋㅋ 왜 자기 목도리 놔두고 민성이거 눈사람 주냐고ㅋㅋㅋㅋㅋㅋ

└ 백야였으면 자기 목도리 벗었을지도ㅋㅋㅋㅋ

└ 막내온탑!!!

- 빨리 메이킹 내놔

- 우리 동네 헤플 알바 갑자기 구한다 싶었더니 데이즈 때문이었나ㅋㅋㅋ 탈주하신 거였구나...

- 내일부터 헤플 아이스크림 사면 데이즈 포카랑 포스터 준대요 (데이즈 헤플 포카.jpg)

└ 율무 귀에 트리 볼 장식 뭐야ㅋㅋㅋㅋ 누가 화보를 저러고 찍냐고ㅋㅋㅋㅋㅋㅋㅋ

└ 그 와중에 너무 해맑아ㅋㅋㅋ

- 저 트리 오르골은 안 파나?ㅠ

- 아이스크림케이크 구매 시 트리 오르골 6,900원! 근데 한정판이야ㅜㅜ 못 구하면 죽음뿐...

- 트리 진짜 크다... 겁도 많은 애가 저길 어떻게 올라갔지? (별 따는 백야 캡처.jpg)

- 가만 보면 팀 내에 작은 멤버들은 꼭 어디 올라가 있거나 앉아있음ㅋㅋㅋㅋ

- 트리에 양말 거는 게 이렇게 예쁠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유연이 옆모습 특히 보조개 들어갔을 때의 옆모습은 국보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연 캡쳐.jpg)

- 헤플 광고 의도 = 지한이도 귀여울 수 있다 (눈 맞고 놀란 지한 .gif)

업계 1위 아이스크림 브랜드에서 TV 광고로 연말 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시스템은 퀘스트로 본격적인 시상식 시즌을 알려 왔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뜬 퀘스트 창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퀘스트보다 돌발 경고창이 더 자주 떴던지라 몸이 멋대로 반응했다.

“아이, 깜짝이야.”

움찔거리며 멈춰 선 백야가 움켜쥔 주먹을 내밀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찮은 앞발이 적을 경계했지만 상대는 미동조차 없었다.

[Q. 천재 아이돌(4) : 한 해를 빛낸 소수의 팀에게만 주어지는 본상.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하세요!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평범한 퀘스트창인 걸 확인하자 금세 주먹이 풀렸다.

‘본상 수상?’

백야도 사람인지라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었다.

아직까지 음악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하이틴’은 솔직히 본상을 넘어 대상까지도 기대해 볼 만한 성적이었다.

물론 소년천하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반 판매 100만 장은 진작에 넘은 데다, 볼콕 안무는 유행처럼 번진 지 오래였다.

각종 시상식에서 데이즈에게 내어 준 무대 시간과 스페셜 스테이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피를 말렸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무난히 퀘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시스템이 말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이라는 게 어떤 걸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JAMA가 아닌 건 확실한데.’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시상식이었지만 JAMA는 규모가 크고 화려한 데 비해 역사가 깊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음악 시상식, 골든 레코드.

매년 1월 초쯤 열리는 그 시상식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에이, 뭐. 본상은 받겠지.’

대상도 아니고 본상이라는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 연말은 아무 걱정 없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는 개뿔. 왜 답장이 안 오냐고오.’

개인 보컬 레슨을 받고 연습실로 돌아가던 백야는 답답한 마음에 벽에 이마를 박았다.

콩, 콩, 콩.

‘딱 하나만 더 보낼까? 아니야. 너무 스토커 같잖아.’

머리를 찍으며 괴로워하던 백야는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그치마안….’

연락을 기다리느라 하루하루 말라 가는 반건조 복숭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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