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26화 (226/340)

제226화

무대가 끝난 후에는 단 10팀에만 수여한다는 본상 수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첫 번째 본상 수상의 영광은.

“소년천하. 축하드립니다.”

이름이 호명되자 커다란 함성이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동료 가수들도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그 뒤로 이어진 신인 그룹과 BB9의 무대. 신인상과 네 번째 본상까지 발표하고 난 뒤, 헤드셋을 쓴 스태프가 조용히 다가와 유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유연 씨, 내려가셔야 해요.”

리듬을 타며 무대를 관람하던 백야가 자리에서 통 튀어 올랐다. 갑자기 들린 인기척에 많이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괜찮아?”

유연과 민성이 동시에 돌아봤다.

주먹을 꼭 쥔 채 얼어붙은 백야는 불안한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사생에게 크게 덴 뒤로 백야는 낯선 여성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괜찮아. 천천히 숨 쉬어.”

저희 쪽을 향한 카메라가 많다는 걸 의식한 유연이 백야의 앞을 막아서며 가려 주었다.

가까이 있던 성우와 백스테이지로 내려가려던 국화도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백야 어디 아파?”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백야야, 잠깐 내려갔다 올래?”

“아, 아니야. 괜찮아. 죄송해요.”

백야는 저 못지않게 당황한 스태프에게 사과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

힐끔 뒤를 돌아본 청은 검은색 옷차림의 스태프를 알아보곤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유연이 일어나며 생긴 빈 공간 쪽으로 당겨 앉았다.

“It’s okay. 이상한 사람 아니야.”

청은 백야의 떨리는 손을 덮으며 꼭 잡아 주었다.

“백야 씨, 죄송해요. 두 분은 일단 내려가서 무대 준비할게요.”

“네.”

굳은 얼굴의 유연이 백야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풀었다.

곧 무대를 할 멤버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백야는 그의 손이 떨어지기 직전, 손목을 잡으며 유연을 올려다봤다.

“잘하고 와.”

백야를 내려다본 유연은 보조개가 깊게 팰 정도로 활짝 웃었다.

“당연하지. 무대 보고 너무 멋있다고 코피 흘리지나 말아라.”

“뭐래….”

고운 손이 백야의 머리 위로 툭 올라왔다.

촤라라락-

그 순간 셔터 음이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 막내즈 손은 또 왜 잡고 있는 건데ㅋㅋㅋㅋ (막내즈 프리뷰.jpg)

└ 손잡고 있는 거였어? 청이가 백야 허벅지 위에 손 얹어 놓은 건 줄 알았는데??? 저 안에 백야 손 있다고?

- 손 크기 차이 고 자극

- 백야 손 왤케 쪼꼬매?ㅜㅜ (청 백야 손 확대컷.jpg)

└ 청이는 설레고 백야는 키우고 싶다

└ 설렌다... 한 대 맞아보고 싶다

- 하얗고 짜근 손 귀여워ㅠㅠ 인간 복숭아 손마디 부분도 분홍색ㅠㅠㅠㅠ

- 스태프 다가오니까 백야 엄청 놀라던데ㅜㅜ 사생 때문에 트라우마 생긴 거 아니야?

국화와 유연이 백스테이지로 내려간 지도 수분째. 다섯 번째 본상 수상자의 소감이 끝나고 무대가 어두워졌다.

1부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퍼포먼스가 시작된다며 장내가 어두워졌다.

공연장에 커다란 달이 뜨자 무대 위로 은은한 조명이 내려왔다.

그리고 그 아래.

맨발의 유연이 서 있었다.

- 맨발... 배우신 분...

- 카메라로 생쇼 하지 말고 제발 이대로 가만히만 냅둬 알아서 볼 테니까

정적은 길지 않았다.

공연장에는 금세 아름다우면서 슬픈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끝이 젖은 머리카락.

차분히 가라앉은 생머리.

시선이 위를 향할 때마다 유연의 청순한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하늘거리는 소재의 흰색 셔츠는 손짓에 따라 우아하게 흩날렸다.

- 방금 켰는데 웬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음? 아니네 자세히 보니까 달의 요정이었네

- 다 가렸는데 자기주장 강한 핫바디 때문에 마라 맛 5단계 됨

키 182cm의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고 유려한 춤 선으로 동작의 연결이 매끄러웠다.

제자리에서 사뿐히 턴 동작을 선보인 그가 몸을 웅크리며 바닥을 짚자, 이번에는 무대의 반대편이 밝게 비쳤다.

그 아래에는 유연과 비슷한 착장을 한 국화가 음악을 이어받아 안무를 하고 있었다.

- 다 국화 유연 보러 감? 내 탐라 갑자기 정전됨

- 무대 하라니까 왜 화보를 찍고 계세요... 왜...

- 국화 치트키 썼네. 앞머리 깜

유연과 마찬가지로 현대 무용을 전공했다는 국화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완벽한 강약 조절.

파워풀하면서도 부드러운 춤 선은 정확했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피아노 반주로 시작된 곡은 현악기 사운드가 더해지며 점점 고조되어 갔다.

그러던 순간.

무대 중앙으로 달려간 국화가 높게 도약했다.

그는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며 착지하는 하우스 턴을 선보였는데. 발이 바닥에 닿자 바닥의 스크린 영상이 은하수로 물들며 클라이맥스가 터져 나왔다.

- 국화 진짜 미친놈

- 몸무게 1g이야?

- 와.... 이걸 미쳤다고밖에 표현 못 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유연도 다시 등장했다.

마주 선 두 사람은 거울을 보듯 같은 안무를 반대로 소화했는데, 이어진 끈적한 페어 안무는 공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유연의 턱 끝을 쥐어 올린 국화가 뺨에서부터 목선까지 몸을 훑어 내리자, 눈을 느릿하게 감는 유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흘러넘치는 색기에 SNS 또한 불바다가 되었다.

- 한유연 졸라 폭스....

- 아기가 저런 표정 지어도 되는 거야? 이제 미자 아니라고 대놓고... 와..... 와...

- 엄마 쟤가 나 꼬셔ㅠㅠㅠㅠ

- 유연 : 죽여줄게 / 나잉 : 죽을게 (유연 캡처.jpg)

- 국화는 이제 폭스 아니고 광공임. 눈알이 돌았는데?

- 누가 누가 더 폭스인가...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시상식을 뒤집어 놓은 두 사람의 콜라보 무대에 팬들의 함성은 식을 줄 몰랐다.

물론 대기석에서 지켜보던 소년천하와 데이즈의 반응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오! 오!”

“…….”

청은 놀라움과 충격이 섞인 얼굴로 단발의 감탄사만 내뱉었고, 민성은 멍하니 입만 벌린 채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유교남은 정신이 혼미한 듯했다.

한편 백야의 표정도 민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얼어 버린 복숭아는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리허설 할 때는 이런 분위기 아니었지 않나?’

어제 봤을 땐 이런 숨 막히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유연의 새로운 모습에 백야는 진심으로 놀랐다.

“이야~ 우리 유연이가 언제 저렇게 커서.”

율무는 눈물을 훔치는 척하며 대견해했고, 시니컬한 얼굴로 말없이 지켜보던 지한은 유연의 표정 연기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 입꼬리를 올렸다.

‘저놈 봐라?’ 하는 얼굴이었다.

“국화가 저런 거 참 잘해. 그치?”

소년천하는 턱을 괴거나 다리를 꼰 여유로운 자세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사이 서서히 잦아드는 피아노 반주. 다가오는 엔딩에 두 사람은 등을 맞대고 섰다.

유연은 달빛을 올려다보고 국화는 바닥을 내려다보는 포즈로 약 3분 동안 이어진 무대가 끝이 났다.

- 이건 길이길이 남을 예술이다...

- 역시 아시아 최고 권위 대중음악 시상식 JAMA

- 국화 유연 얼굴합 천상계

- 뭐해? 둘이 당장 유닛 내지 않고... 국화X유연 한 글자씩 따면 국유니까 유닛명은 ‘국가유산’이 좋겠다

└ 본 투 비 인간문화재

└ 유네스코에도 등재시켜

- 솔직히 합동 무대 얼레벌레 하는 느낌 조금씩 있었는데 이 둘이 기강 제대로 잡고 가네ㅋㅋㅋㅋ

- 무대 리액션 너무 극과 극 아니냐고ㅋㅋㅋㅋ 소년천하는 막내 재롱잔치 보는 느낌인데 데이즈는 아기 강쥐들 같어ㅋㅋㅋ

└ 옹기종기 모여서 멤버 실수하진 않을까 바들바들

└ 데이즈 내가 낳을걸...

1부가 끝나자 대기석에 앉아 있던 가수들도 모두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광고가 나가는 동안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지만, 2부 오프닝을 앞둔 데이즈는 지금부터 빠르게 준비해야 했다.

대기실로 가자 슬리퍼 차림으로 무대 의상을 갈아입고 있는 유연이 보였다.

“어. 왔어?”

유연의 주위를 에워싼 멤버들이 무대 감상을 쏟아 냈다.

“꺄악 오빠~ 너무 멋있어요! 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세요~”

“아, 이 형 또 시작이네.”

율무가 촐싹거리며 주접을 떨었다.

“No! 유연 진짜 멋있어!”

청은 다음번엔 자신과 무대를 하자며 강제로 약속을 받아 냈다.

멤버들이 유연을 칭찬 감옥에 가둔 사이 민성은 다친 곳은 없냐며 그를 한 바퀴 돌려 보았다.

“다치긴. 우리 무대 해야지. 이게 더 중요한 건데.”

멤버들의 관심이 기분 좋은지 유연의 보조개가 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 자! 한 명씩 빨리 옷 갈아입고. 떠드는 건 이따가 호텔 가서 해.”

남경이 손뼉을 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했다.

* * *

- 데이즈 본상 발표 빠르게 부탁

- 곧 2부 시작인데 애들 왜 안 보이지ㅠㅠ 무대 준비하러 갔나?

- 제발 제복 입고 나와라 (NAN 뮤비 제복 캡처.jpg)

- 2부 시작하자마자 애들 나오면 좋겠다... 울 애들 오프닝 줘

“재현이 귤 잘 먹네~”

“이거 백야네 거죠? 저희 집은 벌써 다 먹었어요. 가족들이 귤 엄청 좋아하거든요.”

“안 보내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매번 챙겨 주시네.”

“저희 집도요.”

이 집이나 저 집이나 귤과 사랑이 넘쳐났다.

제 앞에 수북이 쌓인 귤껍질을 치운 재현은 ‘JAMA 2부 5초 전’이라는 자막을 보고 유경을 불렀다.

“야, 뭐 해? 곧 시작해.”

“백야 나오면 불러!”

유연과 국화의 무대를 넋 놓고 감상하던 유경은 광고가 나오자 짜장 라면을 끓여 오겠다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10분이 넘게 이어지던 광고는 에임의 침대 광고를 마지막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2부는 VCR 영상으로 시작됐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교복을 입은 인영이 교문을 통과하자 익숙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들렸다. 백야였다.

[낮과 밤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계. 이곳의 아이들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나와는 달랐다.]

화면이 전환되자 가방끈을 움켜쥔 백야가 등장했다.

“어머~ 백야는 여전히 아기 같네.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다.”

“김유경 백야 나왔어!”

“나왔다고?! 에이씨.”

옷소매로 냄비 손잡이를 쥔 유경이 급하게 달려왔다.

VCR 오디오와 별개로 현장의 함성 소리도 작게 들렸다.

[이곳으로 전학 온 지도 벌써 2주. 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길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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