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33화 (233/340)

제233화

“특히 민성이 조심하고.”

“형은 왜요?”

“팬들은 더 조심해야 하고.”

“그러니까 뭘….”

남경은 백야가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거라 생각하는지 콧방귀를 끼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짜식. 연기가 많이 늘었어.”

왠지 억울한 기분에 백야가 반박하려 하는데, 마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지잉-

기다리던 답장이 온 것이다.

‘드디어!’

백야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남경이 애잔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렇게 좋을까.”

청도 밝아진 백야를 보곤 핸드폰 화면을 곁눈질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린 백야와 눈이 마주쳤다.

청이 휘파람을 불며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자, 백야가 핸드폰을 잠금하며 흘겨봤다.

“뭐야? 봤지.”

“No! 그냥 눈 이렇게 했는데 핸드폰이 있었어.”

“그게 본 거잖아!”

“It wasn’t me.”

“뭐라는 거야.”

청이 억울하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지만 상대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되레 영어를 썼다는 이유로 괘씸죄가 추가되어 더 야멸찬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될 뿐이었다.

“저리 가. 아니, 따라오지 마!”

“치. 조폭 햄스터.”

경계 모드가 발동된 개복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 구석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개발자님 : 지금 보니까 타이밍이 랜덤이네요. 시점을 정확히 알려 드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다른 답장에 백야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알 수 없다니….’

들뜬 얼굴로 구석을 향하던 모습과 달리 급변하는 표정에 청과 남경이 쑥덕거렸다.

“야, 싸웠나 본데?”

“오호?”

[개발자님 : 이벤트가 발동되는 조건이 있는데,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퀘스트가 작동하는 구조예요.]

[개발자님 : 그래도 조건은 확인 가능합니다.]

[나 : 정말요?]

기대하던 답은 아니었지만, 발동 조건이나 앞으로 일어날 돌발 이벤트를 미리 알고 있는 정도만 해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다시 밝아지는 표정에 청과 남경이 아쉬워했다.

[개발자님 : 사다리 돌발 이벤트가 있네요.]

[나 : 그건 이미 떨어져서 죽을 뻔했는데요ㅠㅠ]

[개발자님 : 아... 그럼 이다음이 사생 이벤트겠네요.]

이것 또한 백야가 겪은 이벤트였다. 덕분에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던가.

그날의 일이 꽤 충격이었는지, 백야는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람만 봐도 흠칫흠칫 놀라곤 했다.

[나 : 그것도 이미... 다음은요?]

이 뒤부터가 저에게 닥칠 진짜 미래였다.

[개발자님 : 조명 이벤트라고 되어 있네요.]

조명 이벤트?

직업이 직업인지라 어딜 가든 화려한 조명이 백야를 감싸곤 했다.

‘이건 너무 광범위한데….’

곤란한 듯 입술을 말아 물자 이어서 답장이 도착했다.

[개발자님 : 무대 이벤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아직 접근 권한을 다 승인받질 못해서 소스를 볼 수 있는 게 제한적이거든요?]

[개발자님 : 세부 조건 확인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나 :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필승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 백야는 당분간 조명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그런데 조명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M사 가요대전을 앞둔 데이즈는 사전 녹화를 위해 방송국을 찾았는데, 이때 백야는 천장에 달린 무대 조명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도 조명.

저기도 조명.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지뢰밭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MC로서의 활약도 예정되어 있어서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촉이 온다.’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필승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자제하려 했지만, 오늘만큼은 염치 불고하고 먼저 연락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대체 그 정확한 발동 조건은 언제 알 수 있는 거냐고.

“위에 뭐 있냐?”

“그, 그냥. 날씨가 좋길래.”

무사히 녹화를 마친 데이즈는 퇴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위를 힐끔거리는 백야에 유연의 고개도 따라서 위를 향했다.

“그러네. 맨날 조명만 보다가 하늘은 오랜만에 본다.”

사는 게 뭐가 이리 바쁘냐며 피식 웃던 유연은 옆을 힐끔거리더니 백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셔터 음과 함께 곳곳에서 숨죽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너 일부러 이러지.”

“티 나?”

유연이 보조개를 만들며 미소 짓자 반응은 더 격해졌다.

어깨동무가 팬들을 의식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과감한 포즈를 취했다.

“남경이 형이 너랑 붙어 다니래.”

“으악…!”

고개를 기울인 유연이 귓속말을 하며 간지럽히자 백야가 소리를 지르며 몸서리쳤다.

간지러움에 취약한 개복치가 귀를 털어 내며 얼굴을 찡그리자, 유연이 크게 웃으며 차 안으로 몸을 숨겼다.

“너 주거써!”

폭스에게 이용당한 햄스터도 씩씩거리며 뒤따랐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앞발로 소심한 복수를 한 백야는 등받이에 머리가 닿기 무섭게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커어어-

촬영 내내 갑자기 조명이 떨어지진 않을까 긴장 상태로 무대를 한데다, 무려 4시간이 넘는 생방송 MC를 맡았다는 부담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 자냐?”

남경이 백미러로 뒤를 살피자 핸드폰을 하는 율무가 보였다.

“율무야 너도 눈 좀 붙여. 밥만 먹고 다시 돌아와야 해. 카메라 리허설 시작하면 이제 쉴 시간도 없다, 너.”

“괜찮아~ 근데 청이 이따 진짜 치마 입어? 전혀 말을 안 해 주던데.”

“글쎄. 나도 의상은 못 봐서.”

율무는 SNS에 올라온 사녹 후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오늘 아침에 공개된 M사의 걸그룹 커버 스페셜 라인업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 이 얼굴로 청순 걸그룹 커버 무대 할 예정 (삼백안 청 사진.jpg)

- 퇴근길 청이 누가 병아리 아니랄까 봐 정수리에 새싹 한 가닥 난 것 좀 봐ㅠㅠ (정수리 머리 뻗친 청 프리뷰.jpg)

└ 마이 스윗 리틀 키티 존재 자체가 큐트♡ 걸을 때마다 뾱뾱 소리 나는 거 같아ㅜㅜ

- 데이즈 가요대전 사녹 후기

└ 무대는 매쉬업(미행+NAN) + 하이틴 했고, NAN 끝나고 율무 유연 청 댄스 브레이크 했는데 진짜 미쳤어... 미쳤다고...

└ 애들 제복 남색인데 율무만 롱 코트 같은 거 입어서 개 멋있었어ㅠㅠ 나율무 제복 박제시켜

└ 그리고 사녹 다 끝나고 들어가기 전에 백야가 캐럴 짧게 불러 줬는데 그냥 천상의 아리아... 천사가 노래를 했다니까?

기분 좋은 후기의 연속에 율무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때, 타임라인에 수상한 글 하나가 섞여 들어왔다.

- JAMA 입국한 날 새벽에 ㅂㅇ 찜질방 목격담 찐이야?

└ 걔가 거길 왜 가;;

└ 그날 새벽부터 쇼플리 겨울 사녹 찍었는데 무슨 찜질방이야

└ 사진도 있었는데?

찜질방?

그러고 보니 그날 백야와 지한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있었다.

지한이 묘하게 틱틱거리고 백야가 뒤를 따라다니면서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에이. 설마~”

“뭐가?”

“아니야, 아무것도.”

그날은 멤버 모두가 기절하다시피 잠들었지 않던가.

그렇지 않아도 턱없이 부족한 수면 시간이었다. 백야가 새벽에 일어나 몰래 찜질방을 다녀올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만한 체력이 있을 리도 없었다.

물끄러미 백야를 보던 율무는 고개를 주억이며 확신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올라온 사진 한 장에 그의 손이 멈칫했다.

└ 이 사진? (수건 머리에 뒤집어쓴 채 소금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jpg)

└ ㅋㅋㅋㅋㅋㅋㅋ아니 대체 뭘 보고 맞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 다 가렸는데 뭐가 보이긴 보여???

└ 이거 원글 내리고 튄 지가 언젠데. 지워 주세요.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백야가 아닌 거로 판명 난 모양이었지만 율무는 달랐다.

“…어라?”

당백이가 왜 여기서 나와?

핸드폰을 쥔 율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잠든 백야와 흐린 사진을 번갈아 봤다.

이거 백얀데? 백야 맞는데?

극성 맘은 내 새끼의 뒤통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쪼그마한 게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완전 범죄라 자부하며 태평하게 잠든 사이, 벌써 눈치 빠른 멤버 두 명에게나 걸린 백야였다.

* * *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온 백야는 곧장 MC 대기실로 향했다.

수련과는 같은 소속사인 데다 데뷔 초, 음악방송 스페셜 MC를 하며 합을 맞춰 본 적이 있으며, 영삼과는 호흡을 맞춰 보는 게 처음이지만 예능에서 자주 본 탓에 몇 안 되는 친한 동료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백야 어서 와.”

“오랜만이네요.”

머리에 집게 핀을 꽂은 백야가 허리를 꾸벅이며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일찍 오려고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율무가 데려다주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떼어 놓고 오느라 조금 늦어졌다.

“괜찮아. 우리도 방금 왔어.”

영삼이 의자를 빼 주자 백야가 얼른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에헤이~ 말 편하게 하기로 했으면서.”

“자꾸 깜빡해요.”

“어어?”

“…해.”

“그치. 그래야지.”

영삼이 백야의 어깨를 주무르며 친한 척을 하자 수련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빠 왜 협박을 하고 그래? 진짜 친한 거 맞아? 백야 씨 엄청 불편해 보이는데.”

“지금 둘이 같은 회사라고 편먹기, 뭐 그런 거 하는 건가?”

“뭐래…. 나 백야 씨 이번이 두 번째 보는 건데.”

“맞아요.”

“왜 그것밖에 안 돼?”

“활동도 안 겹치고 회사에서도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어.”

백야가 큐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낯을 가리자 영삼이 아주 흡족해했다.

“그럼 이 중에서 나랑 제일 친한 거네?”

“네? 네에….”

백야가 어색하게 웃으며 수련의 눈치를 봤다. 수련은 이런 영삼이 익숙한지 ‘또 저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 오빠가 이상한 거에 집착이 심해요. 백야 씨 피곤하겠네.”

“하하…. 아니에요.”

“대본은 좀 읽어 봤어요?”

“앗. 네! 저 이거 다 외워 왔어요.”

“진짜? 이거 양 엄청 많던데. 대단하다.”

수련의 칭찬에 백야의 광대가 볼록 올라갔다.

“우리 백야가 이렇게 성실하다, 수련아. 좀 보고 배우자.”

“뭐래. 백야 씨 오빠가 낳았어?”

“그러게. 내가 낳을 걸 그랬어.”

“와, 소름. 나 이 얘기 대환 오빠한테도 똑같이 들었어.”

“뭐?”

대환에게 경쟁의식을 느낀 영삼이 수련을 잡고 늘어지는 사이, 테이블에 올려 둔 백야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필승의 연락이었다.

[개발자님 : 지금 통화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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