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35화 (235/340)

제235화

“하, 후우-”

유연이 심호흡을 하듯 작게 입 모양을 만들었다.

숨 쉬는 법을 잊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유죄 나잉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간혹 팬들 중 저희를 보고 숨을 쉬지 않아 실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유연은 저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 잘 알았다.

물론 더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지만.

가운데 선 지한은 시니컬한 얼굴로 손뼉을 치며 카메라를 바라봤고, 청은 주위의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개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꺄악! 백야야!

청과 율무 사이에 선 백야는 발그레한 뺨을 붉히며 수줍어했고, 율무는 저를 향해 손을 뻗어 오는 팬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데이즈의 파트가 끝나자, 이번에는 본무대 쪽에서 소년천하가 등장하며 한 번 더 커다란 함성이 쏟아졌다.

노래를 마친 민성은 본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노예 나잉이 그 모습을 너무 황홀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보다 못한 지한이 리더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왜?”

“여기 앞에 좀 봐 드려.”

등잔 밑이 어두운 토끼가 시선을 내리자 노예 나잉이 입을 틀어막은 채 민성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익숙하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반응에 민성이 쑥스러워했다.

그러다가도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주는데, 그때 백야가 민성의 손목을 잡으며 입구 쪽을 눈짓했다.

이만 가 보겠다는 사인이었다.

“형.”

“어. 얼른 가.”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야가 스태프와 함께 들어왔던 문으로 빠져나갔다.

오늘 시상식의 MC를 맡게 된 백야는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나면 본무대에서 한 번 더 등장해야 했기 때문에 멤버들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백야 님, 옷 주세요.”

백야가 나오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덕진이 얼른 따라붙었다.

그의 손에는 MC용 재킷이 들려 있었는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백스테이지로 이동하면서 의상을 갈아입어야 했다.

교복 디자인의 재킷을 벗은 백야는 검은색 카라가 포인트인 흰색 재킷을 받아 들었다.

쉬지 않고 달린 덕에 늦지 않게 도착한 그는 숨을 고르며 리본 넥타이를 추가로 착용했다.

“오~ 리허설 할 때보다 더 일찍 도착했는데?”

“정말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온 보람이 있었다.

점점 끝나 가는 오프닝 곡은 전 출연진이 함께 부르는 하이라이트 구간이 진행 중이었다.

백야가 등장하기 무섭게 달라붙은 스타일리스트들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느라 분주했다.

수련에게 넘겨받은 큐카드를 움켜쥔 백야는 숨을 고르며 얌전히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MC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스탠바이라는 소리에 스타일리스트들이 동시에 물러났다.

뽈뽈뽈.

수련의 왼쪽으로 굴러간 복숭아가 허리를 곧게 펴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사이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모든 출연진이 본무대로 모이자, 율무가 마이크를 들어 오늘의 MC를 소개했다.

“20XX년 가요대전 오늘의 MC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에이틴 영삼, 로즈데이 수련, 데이즈 백야.”

스크린이 열리자 세 사람이 등장하며 팡파르가 울렸다.

MC들이 걸어 나올 수 있게 무대 중앙을 터 준 가수들은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햄스터!”

청이 지한의 팔을 흔들며 신나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한편 백야는 조금 긴장했는지 굳은 얼굴로 나란히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안녕하세요. 가요대전 사회를 맡은 영삼.”

“수련.”

“백야입니다. 가요대전에 오신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3MC의 간단한 소개가 이어지자 객석에서도 함성이 쏟아졌다.

올해 가요대전은 ‘케미스트리’를 주제로, 한 해를 빛낸 K-POP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고의 케미를 선보이려 한다는 소개가 이어졌다.

“네. 오늘은 저희와 함께하시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오늘 어떤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너무 기대가 되는데요.”

영삼이 멘트를 하며 백야를 돌아봤다.

앙다문 입술로 여유로운 척 미소 짓고 있던 백야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얼른 마이크를 들었다.

“네. 오늘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컬래버레이션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기대 많이 많이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이 많이 해도 되나요?”

“네! 많이 많이 해 주세요.”

백야가 활짝 웃으며 영삼의 애드리브를 받아 주었다.

“그럼 20XX 가요대전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3MC가 손을 뻗으며 동시에 외치자, 메인 카메라에 불이 꺼지며 미리 준비되어 있던 VCR이 재생됐다.

[가요대제전 케미 연구소]

보라색 조명의 몽환적인 연구실.

그곳에 연구원 가운을 입은 데이즈가 분주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세 명씩 나뉜 멤버들은 한쪽에서는 실험 도구들로 물약을 제조하고, 다른 한쪽은 서류철을 뒤적이며 연구가 한창이었는데.

[지한 : 20XX 가요대전을 위해 최고의 케미스트리를 찾아야 해.]

[율무 : 내가 그럴 줄 알고 훌륭한 재료들을 잔뜩 준비해 뒀지~]

율무가 진열장을 가리키자, 가요대전에 출연한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적힌 플라스크가 보였다.

삼각형부터 동그라미, 비커까지. 도구에 담긴 액체는 각 그룹의 공식 색상이었다.

[청 : 오! 찾았다!]

그때 연구 팀이면서 투명한 보호 안경을 낀 청이 책상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야 : 아니, 이건…!]

백야의 작위적인 리액션에 멤버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유연 : 트로트계의 대모, 안숙이 님과 핫 루키들을 합칠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민성 : 장르와 세대의 경계를 허물다니. 역시 유학파는 다르군.]

[청 : 엣헴!]

국어책을 읽는 듯 일정한 톤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백야 : 소년천하 선배님들의 깜짝 유닛도 있잖아?]

[지한 : 그런데 이건 뭐지?]

지한이 테이블 위에 놓인 흰색 상자를 가리켰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검은색 새끼 토끼 여섯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백야 : 귀여워….]

[율무 : 가요대전을 위해서 내가 특별히 준비했지~]

[유연 : 형 친구들 아니야?]

[청 : 민성, 토끼 말 해 봐.]

[민성 : …어?]

애드리브였는지 율무와 지한이 웃음을 참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율무 : 내년이 계묘년이잖아~ 검은 토끼의 해라길래 토끼띠인 멤버들만 특별히 모아봤어.]

[청 : Hey! 걸그룹 스페셜 스테이지도 빠지면 안 돼!]

[백야 : 그럼 이 자료들로 얼른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 보자.]

화면이 바뀌며 멤버들이 스포이트로 액체를 섞는 등, 열심히 연구하는 척을 했다.

펑-!

그러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한 : 콜록 콜록.]

[청 : 모야! 누구야!]

얼굴에 검댕이가 묻은 지한이 까맣게 타 버린 삼각 플라스크를 허망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플라스크 앞에는 <걸그룹 스테이지>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지한 : 미안. 깜빡하고 남자 그룹으로 조합해 버렸어.]

[유연&율무 : 뭐라고?!]

서로를 보며 눈을 크게 뜬 두 사람이 동시에 카메라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때, 율무가 초보 연기자들이 쉽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유연의 웃음이 터져 버렸다.

과장된 몸짓이었다.

율무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오버액션을 취했는데, 그 모습에 유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진심으로 반응했다.

[유연 : 아. 왜 이래, 진짜.]

[율무 : 뭐라구우~?]

NG라 생각한 유연은 도망치듯 프레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율무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원샷을 만끽했다.

입에 바람을 넣어 두 볼을 부풀리는가 하면, 주먹 쥔 양손을 턱 아래 받치며 눈을 깜빡거렸다.

[율무 : 우웅~]

[민성 : 안 되겠다. 끌어내.]

[백야 : 푸하하!]

다시 나타난 유연과 청에게 양팔을 잡혀 연행당하는 율무의 모습 아래로 자막이 깔렸다.

[가요대전에서만 볼 수 있는 빵 터지는 케미스트리! 지금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사이, 메인 카메라에 불이 꺼지고 영상이 나가는 동안 가수들은 무대 아래로 움직였다. 사이드 쪽에 마련된 가수 대기석으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어느새 텅 비워진 본무대에는 첫 번째 무대를 시작할 그룹이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 * *

시상식 시작과 동시에 최애를 코앞에서 영접한 유죄 나잉과 노예 나잉은 반쯤 넋이 나간 채 1부를 관람했다.

2부를 준비하며 맞은 잠깐의 쉬는 시간. 대기석에 있던 아이돌과 MC들도 모두 무대 아래로 내려간 뒤였다.

“노예님, 백야 대본 다 외운 것 같지 않아요? 큐카드를 거의 안 보는데요?”

“그쵸! 연습 많이 했나 봐요. 진짜 너무 귀여워….”

뭔들 안 귀엽겠냐만, 백야는 진짜였다.

다른 응원 봉을 들고 있는 타 팬덤에서도 백야가 멘트를 하거나 애교를 부릴 땐 유독 현장 반응이 좋았으니까.

잠깐 들어가 본 SNS에는 백야의 진행 실력을 칭찬하는 글과 2부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글들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 2부 오프닝 남돌 걸그룹 커버 무대!! 청이 긴 생머리 날리는 거 볼 수 있나요ㅠㅠ

- 백야 진행 잘한다ㅋㅋㅋ 처음엔 긴장 많이 한 것 같아 보였는데 쇼플리 짬바 어디 안 가네~

- 그러고 보니 가요대전 MC들 한 번씩 음악방송 맡았던 애들이야ㅋㅋㅋ 뜻밖의 3사 대통합

└ 백야만 현역ㅋㅋㅋㅋ

- 뉴에이지 핫보이 남돌 커버라니요ㅜㅜ 2부 빨리

유출된 큐시트에 따르면 이들이 커버할 걸그룹의 무대는 뉴에이지의 Hot boy.

순수하고 청량한 콘셉트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었다.

“걸그룹 커버 청이라 그랬죠?”

“네. 저 이 노래 진짜 좋아하는데.”

“저도요.”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곧 2부를 시작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조명이 세팅되며 무대를 할 멤버들이 나오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꺄아아악! 승진아!”

“청아! 청아아악!”

곳곳에서 자신의 멤버를 부르짖는 비명과 고함이 들렸다.

씨익-

가볍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준 청은 무대의 왼편에 BB9의 승진과 마주 보며 섰다.

“어떡해, 미쳤나 봐…. 너무 잘생겼어요.”

“와, 크롭…. 개 부럽다….”

커버 무대답게 의상 또한 스포티한 룩이었다. 카고 팬츠, 농구 유니폼, 헤어밴드, 저지.

몇몇 멤버들은 크롭 한 기장감이 인상적인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승진이었다.

노예와 유죄 나잉이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옆집 남성의 배를 보며 침을 흘렸다.

‘저 옷을 우리 청이가 입었어야 했는데.’

모든 나잉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아쉬워했다. 그러나 청의 의상은 무대가 시작한 뒤에야 비로소 진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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