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36화 (236/340)

제236화

반주가 울리며 가요대전 2부의 막이 올랐다.

청과 승진은 장난을 치며 사이드에서 무대 중앙으로 걸어왔는데. 청이 대형을 갖추기 위해 뒤를 도는 순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어엌!”

유죄 나잉도 너무 놀란 나머지 괴물 같은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천, 천이 어디 갔…!”

노예 나잉도 전광판을 가리키며 어버버하기만 했다.

- 시X 미쳤다

- 아니... 청.. 청이 옷을 누가 도려내가버렸습니다..!

- 코디님 믿고 있었다고요ㅠㅠ

등이 적나라하게 뚫려 있었다.

눈이 한계치까지 커진 나잉이들은 흥분한 상태로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One, two, three, four.

도입부를 맡은 청은 영어를 할 때만 나오는 낮은 톤으로 첫 파트의 운을 뗐다.

입만 열면 햄스터만 찾아 대는 평소의 왈가닥 같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최근에야 포지션이 랩으로 기울었다지만, 사실 청은 보컬도 무난히 소화하는 편이었다.

백야의 합류로 팀의 고음 파트가 모두 그의 담당이 된 뒤, 민성과 율무는 자연스레 서브 보컬로 밀려났다.

두 사람의 목소리 합이 좋기도 했고, 유연도 보컬에 더 적합한 멤버라 청이 맡게 된 파트 또한 자연스레 바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한과 나란히 래퍼의 이미지가 굳어진 편이었다. 물론 댄스가 주 포지션인 것에는 변함없지만.

- 청이 왜 노래 잘해요?

- 영어 할 때 톤 저세상 가는 거 진짜 치인다... 갑자기 병아리에서 늑대 됨

- 울 삐약이도 원래 보컬멤이었다고ㅠㅠ 버뮤다 라인 보컬이 넘사라 묻혔던 것뿐...

- 가사에 나오는 boy 다 girl로 바꿨네ㅋㅋㅋㅋ

남자 키에 맞게 편곡된 버전은 원곡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뉴에이지의 핫보이는 유연하고 살랑거리는 느낌이었다면, 핫보이즈의 무대는 좀 더 파워풀하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 핫보이가 추는 핫보이

- 진짜 자기 춤선에 맞춰서 쫀득하게 잘 춘다

- 강약 조절 미쳤다

그러다 뒤를 돌아 동선을 이동하는 안무에서, 파인 옷 사이로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등 근육에 함성이 쏟아졌다.

- 아 씨 코피

- 앗 뜨거

- 청이 등이..... 등 근육이...

- 이 노래 청량 아니야? 얜 너무 야한데???

현장과 마찬가지로 SNS 반응 또한 뜨거웠다.

MC석에서 지켜보던 백야도 청의 등이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큐카드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현장의 나잉이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 집사의 비즈니스를 목격한 반려 햄스터 (얼굴 가리는 백야.gif)

└ 왜 네가 부끄러워하는데ㅋㅋㅋ

- 미친 백야가 방금 핫보이 춤 조금 따라 췄어요ㅠㅠ

- 청청 방금 윙크했냐?ㅠㅠㅠ 진짜 그만 꼬셔라... 나 선량하게 살고 싶어

핫보이는 중간중간 장난을 치는듯한 안무가 많았는데, 연습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는지 표정과 분위기가 편안해, 보는 이들마저도 미소 짓게 만들었다.

- 이 조합으로 꼴랑 3분? 너무 짧아요! 300분 해주세요ㅜㅜ

- 가요대전이 만든 살상 무기 전설의 하얀 니트 청청 (핫보이 청.gif)

- 막내즈 하얀 니트 입기만 하면 레전드 찍네...

- 와.... 색기가 와...

어느새 끝나 버린 반주. 무대 위에는 다섯 명의 멤버들이 엔딩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청은 완전히 뒤돌아선 상태에서 고개와 어깨를 반쯤만 돌아본 자세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 우리 청이는 할미를 끝까지 쓰레기로 만드는구나..? 모니터 할짝

- 청청 진짜 갓지컬ㅠㅠ 청 핫보이 안 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 가만 보면 데이즈는 막내들이 더 여우같음ㅋㅋㅋㅋ

└ 유연 : 폭스 그 자체 (딱히 숨길 생각도 없음)

청 : 곰인척하는 여우 (팬들이 뭐에 환장하는지 포인트를 잘 암)

백야 : 곰 같은 여우 (자기가 여우짓 하는 줄 모름ㅠ)

└ 근데 원래 마지막 같은 애들이 빌런... 순진한 얼굴로 팬들 애태워 죽이는 부류ㅠㅠ

노래 제목대로 2부의 시작을 뜨겁게 달궈 놓은 핫보이즈의 무대가 끝나자 MC의 인사가 이어졌다.

“에너지 넘치는 청량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사로잡은 핫보이즈의 무대로 2부를 열어 봤는데요.”

“네, 4세대 보이그룹의 대표 주자들이 모여 만든 무대라 그런지 정말 반응이 뜨겁습니다.”

분홍색 슈트를 입고 나타난 백야는 수련과 멘트를 주고받으며 2부 오프닝을 능숙하게 이끌었다.

2부의 첫 번째 시상이 이어진 후, 다시 MC 컷으로 돌아온 카메라에 이번에도 백야가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가요대전 주제가 케미스트리잖아요? 이번에는 주제와 딱 맞는 것은 물론, 선물 같은 무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선물인가요?”

영삼이 귀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백야가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장르와 세대를 넘나드는 역대급 케미스트리! 오직 가요대전에서만 볼 수 있는 특급 컬래버레이션 무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쑥스러운지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그럼 지금 바로 보시죠.”

3MC가 카메라를 보며 외치자 화면은 VCR로 넘어갔다.

* * *

[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시상식 생방송이 종료되기 무섭게 나타난 상태창이었다.

퀘스트 성공에 이어 본상, 음원 대상 수상까지. 백야는 요즘 최고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신생 홈 가요대전 백야 직캠 올라왔는데 저세상 귀여움 (동영상)

└ 이건 언제예요? 처음 보는 영상인데ㅜㅜ

└ 방송은 사전 녹화 영상 나간 거고 현장에서는 MC 보던 의상으로 무대 했어요

- 백야 혼자 분홍색 옷 입고 있는 거 진짜 맹수들 사이에 떨어진 복숭아 같아서 귀여움 (분홍 슈트 백야 동영상)

└ 다른 애들 다 올블랙 제복에 멋짐 뿜뿜인데 백야 혼자 러블리ㅋㅋㅋㅋㅋ

- 어제 K사 리더즈 합동무대 사녹이야? 생방??

└ 사녹ㅋㅋㅋ 나 갔다 왔는데 민성이 생긴 건 완전 얌전해서 하는 짓마다 허당끼 장난 아님ㅋㅋㅋㅋ

- 민성이 리더즈 중에선 막내여서 그런가 사녹 땐 완전 아기 토끼 그 자체였음ㅠㅠ

- 리더즈 무대 녹화하고 당근 들고 퇴근하는 아기 토끼를 봐줘 (당근 쿠션 든 민성 프리뷰.jpg)

- 지한이 랩 개같이 치인다 (눈 위로 치켜뜨는 무대 지한.gif)

남녀 그룹 리더 8인을 모아 캐럴 무대를 선보인 K사의 가요대축제와 그룹의 랩 포지션인 멤버들만 모아 합동 무대를 펼친 S사의 가요대제전까지.

참석하는 시상식마다 음원 대상을 거머쥐며 최고의 한 해를 마무리한 데이즈는 오늘로 데뷔 2주년을 맞이했다.

“햄야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이건 선물이야.”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난 백야는 친구의 집을 제일 먼저 찾았다.

새해 기념으로 특식을 하사받은 햄야는 사탕수수 스틱에 달라붙어 앞니로 박박 긁어먹고 있었다.

“귀여워.”

유리에 바짝 달라붙어 햄야를 구경하는데,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민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지 말고 그냥 들어가지 그러니. 같이 먹자고 해.”

퉁퉁 부은 눈의 민성이 아침부터 장난을 걸어왔다.

“뭐래….”

“햄야 간식 먹고 싶어서 그러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준 거거든?”

인간 햄스터가 발끈하자 민성이 낮게 웃으며 손등으로 눈을 꾹 눌렀다.

“나 앞이 반밖에 안 보여.”

“냉동실에 숟가락 얼려 놨어.”

“역시. 우리 팀에서 믿을 건 너밖에 없구나.”

민성이 백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곤 부엌으로 향했다.

“형 나도. 나 눈이 안 떠져. 이거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119 불러 줘?”

“에이, 농담이지~”

비슷한 타이밍에 밖으로 나온 율무도 비척거리며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수상 소감을 말할 때마다 우는 바람에, 그룹 전체가 울보라는 별명이 붙은 데이즈는 하나같이 몰골이 좋지 않았다.

민성에게서 숟가락을 받은 율무가 한쪽 눈을 가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햄스터 케이지 앞에 앉아 있는 백야를 발견하곤 큰 소리를 냈다.

“어?!”

“왜?”

햄야를 구경하던 백야가 무해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당백이가 왜 나와 있지?”

“눈이 일찍 떠졌,”

“아이참~ 여길 어떻게 나온 거야. 친구는 이렇게 얌전한데.”

“이게, 이씨.”

봉지에서 햄야의 사탕수수를 꺼낸 백야가 율무를 향해 던졌다.

“나이스 캐치~”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 했더니 정말 건강하게만 자란 동생의 모습에 민성이 착잡한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참…. 새해부터 매를 버는구나. 유닛은 아예 포기한 거니?”

툭-

그때 시원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사탕수수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유닛은 까맣게 잊고 있던 모양이다.

“아, 안 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원래의 크기를 되찾았다.

“견제하는 게 아니라 내가 봤을 때 넌 진짜 가망이 없어. 포기하면 편하단다.”

율무의 커진 눈을 보며 119는 안 불러도 되겠다 농담한 민성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딸기 우유 하나를 꺼내 백야에게 다가갔다.

“우리 백야, 아침 우유 먹었니?”

“아, 맞다.”

“그럴 줄 알고 형이 챙겨 왔어.”

친절하게 빨대까지 꽂아 주자 감동이라도 받은 듯 백야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마워.”

“뭐 이런 걸 가지고. 오늘 스케줄도 없는데 햄야 톱밥이나 갈아 줄까?”

“진짜? 안 그래도 갈아 주려고 꺼내 놨는데. 유연이랑 지한이도 도와준다 그랬어.”

바보가 아닌 이상 주변에 널브러진 햄스터 용품만 봐도 백야가 뭘 하려고 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아니, 당백아. 넌 누가 봐도 톱밥 갈려던 사람이잖아.”

율무가 황당해했다.

그러나 아무도 반응해 주지 않아 그냥 혼잣말을 크게 중얼거린 사람이 됐다.

“나도 도와줄게. 먼저 천천히 하고 있으면 애들도 나오지 않을까?”

약삭빠른 멤버들은 율무가 잊고 있는 사이 꾸준히 물밑 작업을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찍힌 몸. 여기서 더 점수를 까일 수 없었던 율무는 자신도 도와주겠다며 서둘러 나섰다.

“당백아, 그럼 나도…!”

“네 명이서 하면 금방 하겠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 무섭게 선이 그어졌다.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던 율무는 얼른 냉장고 문을 열어 백야를 유혹할 만한 음식이 없는지 칸을 뒤지기 시작했다.

부스럭, 부스럭-

그때 등 뒤로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화가 들려왔다.

“백야야, 햄버거가 무슨 색인지 아니?”

“햄버거? 갈색.”

“아닌디. 버건디.”

백야의 호감을 얻기 위한 민성의 비장의 무기, 아재 개그였다.

저 형이 제정신인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무덤을 파는 민성에 율무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런데 백야가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재밌지, 재밌지!”

“응! 또, 또! 이따 유앱 켜서 나잉이들한테도 해 주자.”

“오. 그럴까?”

누구한테 뭘 해?

경악에 찬 율무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삐삐삐-

비상 상황에 귓가에 경고음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는데, 그 순간 민성이 무심히 뒤를 돌아봤다.

“율무야, 냉장고 문 닫으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