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화
D-1
골든 레코드 어워즈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남은 시상식은 두 개.
연초에 열리는 가장 큰 시상식으로, 시스템이 말한 권위 있는 시상식일 가능성이 큰 스케줄이었다.
‘본상 받을 수 있겠지?’
모두가 인정하는 성적으로 그간 참여한 시상식마다 대상을 받아 온 데이즈였다. 그러니 본상쯤은 무난히 받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긴장되냐?”
“조금.”
“왜. 또 대상 받을까 봐?”
유연의 농담에 백야가 피식 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제일 유명한 시상식이잖아. 그냥 상 못 받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대충 둘러대자 유연이 고개를 주억이며 공감하는 듯한 시늉을 했다.
“나도 긴장돼.”
“진짜?”
“그럼 진짜지, 가짜냐? 나는 뭐 사람 아니야?”
“너처럼 완벽한 애도 걱정을 하는구나….”
백야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유연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완벽해?”
“응.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잘생겼고, 키도 크고….”
“야, 그만해 그만.”
듣고 있자니 쑥스러운지 유연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태연한 척 콧잔등을 긁적이던 유연은 다른 멤버들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 슬쩍 플러팅을 날렸다.
“근데 왜 그런 애랑 무대 안 해? 나랑 하자.”
햄야의 톱밥 갈이를 민성에게 뺏긴 후, 멤버들은 틈만 나면 백야를 꾀어내려 갖은 수를 썼다.
그때 잠시 연습실을 비웠던 율무가 돌아와선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유연 못지않게 눈치 100단인 그는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기류만 보고도 상황 파악을 마친 듯했다.
“어어?! 떨어져, 떨어져!”
“아, 뭐야. 또 형이야?”
너는 틀렸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멤버들에게 포기하라는 소리를 듣는 율무지만 그는 꿋꿋이 버티는 중이었다.
“어디서 간사한 세 치 혀로 우리 순진한 애를 홀리려고…!”
“혓바닥 간수 제대로 못 하는 형보단 낫거든?”
유연의 팩트 폭력에 뼈를 맞은 율무가 휘청거렸다.
며칠 전, 새해 기념 라이브 방송에서 가족들에게 축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율무가 말실수를 하며 백야의 비밀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일이 있었다.
“60만 명이 보는 앞에서 집에서 ‘애기’라고 불린다고 말하면 얘 기분이 어떻겠어?”
어떻긴 뭘 어때. 죽고 싶겠지.
“…….”
백야가 차갑게 식은 얼굴로 죄인을 노려봤다.
입이 무겁다며 자기만 믿으라 할 땐 언제고. 유닛 같이 안 하겠다고 조금 튕긴 거 가지고 복수한 게 틀림없었다.
“조, 조용히 안 해? 우리 당백이 이거 좋아하지? 짠! 딸기 라떼~”
“글쎄. 오늘은 별로 안 당기네.”
흥.
딱복 모드로 돌변한 백야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 그치~? 오늘은 딸기 라떼 기분이 아니지? 내가 눈치가 없었네.”
“그러게. 근데 널 보니까 갑자기 율무를 박박 갈아서 뜨거운 물에 타 먹고 싶은데. 율무차는 없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백야가 너무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정을 아는 멤버들은 백야가 착해서 저 정도인 줄 알라며 오히려 율무를 타박했다.
“나였으면 쟤 죽였어.”
이번만큼은 지한도 율무를 감싸주지 않았다.
율무의 말실수 후, 해당 일화는 빠르게 퍼져 아이돌 판에 몸 담그고 있는 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져 버렸다.
- 복숭아 집에서 아직도 애기라고 불리는 거 듣고 얼마나 사랑둥이인지 느껴진다♡
- 백야 어렸을 때 자기 이름 “애기”인 줄 알았을 것 같아서 넘ㅠㅠ
- 아직까지 집에서 애기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 있다... (오리 입 백야.jpg)
깨물 하트에서 국민 애기가 돼 버린 백야는 수치스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매형만으론 부족해서 이제는 팬에 회사 사람들, 동료 연예인까지 백야를 ‘애기’라고 불러 댔다.
“조만간 큰 거 간다. 딱 기다려라.”
“당백아아….”
“이거 놔.”
율무가 다리를 잡고 늘어지자 백야가 다리를 털며 떼어 냈다.
쪼그마한 게 뒤끝이 제법 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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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골든 레코드 수상 결과
추천 458 반대 9 (+794)
<대상>
음반 : 소년천하
디지털 음원 : 데이즈
<본상>
음반 : 소년천하, 데이즈, 임페리얼, BB9….
디지털 음원 : 소년천하, 데이즈, 글래시, 블라썸….
수상자 모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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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은 역시 소천이네
- 소천이랑 데이즈가 다 씹어먹었네ㅋㅋㅋㅋ 에임 군대에서 눈물 좀 훔치겠는데
- 글래시, 뉴사운드보다 앨범 못 팔아놓고 BB9 음반 본상 실화?
- 데이즈가 소천 음원상 뺏었다는 애들은 대체 몇 살이냐? 골든 레코드 역사상 단 한 번도 음원/음반 대상 동시 수상한 전례는 없었음
- 줄 만한 애들만 줬는데?
- 데이즈 3관왕 축하해♡♡♡
- 근데 데이즈 왜 이렇게 울보야? 대상 처음도 아닌데 겁나 울어ㅋㅋㅋ
- 얘네 눈 부어서 내려가는 거 진짜냐고ㅋㅋㅋㅋ (막내즈 캡처.jpg)
└ 오른쪽 세상 차갑게 생겨서 입만 열면 뺙뺙 거리는데 누가 수상소감을 그렇게 귀엽게 하냐... 배려가 너무 없어 진짜ㅜㅜ
└ 왼쪽은 존재 자체가 큐티♡
이변은 없었다.
[<천재 아이돌(4)> 완료!]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1 스타 포인트]
본상 수상에 호명되자마자 퀘스트 완료 창이 뜨며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백야는 본상에서부터 눈물을 퐁퐁 흘려 댔는데. 음반 본상에 음원 대상까지 수상하며 붕어눈이 돼 버렸다.
“햄스터 자나?”
“안 자거든….”
“Sorry. 눈 안 떠서 몰랐다.”
“뜬 거거든!”
개복치가 발끈하자 청이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오! 전혀 몰랐다!”
“씨이….”
찡그린 백야가 미지근하게 식은 숟가락을 챙기며 일어나는데, 마침 유연이 다가와 안대를 내밀었다.
“누워 봐.”
“그게 뭐야?”
“아이스 팩 안대. 숟가락으로 어느 세월에 부기 빼냐? 내일 광고 촬영도 있는데.”
유연이 백야의 어깨를 누르며 소파에 억지로 눕혔다.
“햄스터, 다리 펴.”
소파의 가장자리로 비켜 준 청이 백야의 종아리를 자신의 허벅지 위로 올리며 편한 자세를 만들어 주었다.
“15분 정도 그러고 있어.”
“고마워.”
사고 이후 멤버들에게 챙김 받는 게 익숙해진 백야는 유연의 호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근데 숙소에 이런 게 있었어?”
어제저녁, 급하게 주문해 새벽 배송으로 받은 상품이었지만 유연은 능청스럽게 그렇다고 답했다.
“난 왜 못 봤지?”
“구석에 있었어.”
“그렇구낭.”
시야를 차단당한 백야는 두 손을 배꼽 위로 가지런히 모았다.
백야의 수면 시그니처 포즈였다.
안대를 잘 착용했는지 꼼꼼히 확인한 유연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들자, 청이 백야의 허리 옆으로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그렇다.
이들은 꿍꿍이가 있었다.
두 마리의 짐승은 백야의 핸드폰을 노리고 있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숨까지 참아 가며 심혈을 기울이는데.
“근데 있잖아.”
“뜨합!”
“…무슨 소리야?”
집게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올리는 순간, 백야가 말을 걸자 청이 놀라는 소리였다.
“으, 어? 무슨 소리?”
“방금 누가 소리 질렀는데?”
백야가 안대를 벗으려 하자 유연이 다급하게 손을 붙잡았다.
“내가 모르고 청이 발을 밟았어. 야, 괜찮냐?”
“No! 심장 터지는 줄!”
청의 맞지 않는 대답에 유연이 눈을 부릅떴다. 발을 밟혔는데 심장이 왜 터지냐며 입모양을 뻐끔거렸다.
“많이 아파? 어디 봐.”
백야가 다시 팔을 움직이려 하자 이제는 청까지 손을 뻗어 그를 말렸다.
“Nonono! I’m Okay!”
“그래. 세게 밟은 것도 아닌데 엄살은. 너는 하던 거 마저 해.”
개복치는 이번에도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오! 걸릴 뻔!’
‘죽을래? 똑바로 안 해?’
‘Sorry. Sorry.’
청이 코를 찡긋하며 뻔뻔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잠시 후, 다행히 들키지 않고 핸드폰을 훔쳐 낸 두 사람은 손쉽게 잠금 화면을 해제했다.
비밀번호는 0321.
백야의 음력 생일이었다.
‘오?’
사람 자체가 단순해서 금방 풀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첫 번째 시도에 바로 풀리자 청도 당황스러운 듯했다.
‘줘 봐.’
청이 멍청한 얼굴로 유연을 올려다보자 그가 핸드폰을 가로채 갔다. 나쁜 행동이란 걸 알지만 방송국 계단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어쩔 수 없었다.
지난주 토요일.
M사의 가요대전이 있던 날의 통화 기록을 살펴보자 세 명의 용의자가 추려졌다.
첫 번째는 ‘엄망’.
통화 중 존댓말을 쓰기도 했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엔 조심스러운 상대였다.
‘이거 No! Pass!’
청이 손을 파닥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두 번째 후보는 ‘에임 김대환 형’.
과연 같은 팀 멤버를 ‘데이즈 유연’이라고 저장해 놓은 사람다운 정 없는 네이밍이었다.
‘그래도 난 성은 안 붙어 있는데.’
그 와중에 유연은 조금 으쓱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후보는 ‘개발자님’.
백야가 얌전히 누워 있는지 확인한 유연은 얼른 메신저 앱으로 넘어갔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가득한 목록 사이로, 두 유력 용의자의 것만큼은 모두 읽음 처리가 되어 있었다.
[대환 : (파일 : 가이드.m4a)]
[개발자님 : 네. 거기서 봬요]
보기만 하는 게 답답했는지, 청이 손을 들어 대환의 프로필을 눌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가이드 곡 파일과 녹음 일정에 관한 이야기만 가득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
두 사람은 ‘개발자님’의 프로필을 누르고 나서야 원하던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나 : 개발자님! 저 본상 받아서 살았어요!! 대상도 받았어요ㅠㅠ (신난 복숭아 이모티콘)]
[개발자님 : 축하해요]
[나 : 혹시 다음 주 시간 괜찮으세요? 이번 주는 광고 촬영이랑 스케줄 때문에 매니저 형이 계속 숙소에 있을 것 같아요ㅜㅜ]
[개발자님 : 네. 편한 시간 알려주세요]
[나 : 그럼 다음 주 월요일 3시요!]
[나 : 지난번처럼 소금방에서 만날까요?]
[개발 : 네. 거기서 봬요]
소금방?
서로를 동시에 돌아본 유연과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금방이 모냐.’
‘내가 어떻게 알아.’
소금방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대화 내용을 검색하려는데, 그때 백야가 손을 움직였다.
“15분 안 지났어? 나 눈이 너무 차가워. 그만할래.”
백야가 안대에 손을 올리는 순간, 앱을 강제 종료한 유연이 화면을 잠그며 백야의 옆구리 사이로 폰을 던졌다.
“악!”
그러나 조준에 실패했다.
청의 어깨를 명중한 핸드폰은 백야의 허리에서 한참 떨어진 허벅지 옆으로 떨어졌다.
“자꾸 무슨 소리야?”
안대를 벗은 백야가 고개를 들어 아래를 바라봤다. 청이 오른쪽 어깨를 쥔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왜 그래?”
“야, 괜찮냐?”
“Fux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