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42화 (242/340)

제242화

[민성 : 이만큼?]

[율무 : 조금만 더 길게.]

[민성 : 근데 우리 마음대로 이렇게 붙여도 돼?]

두 사람은 데이즈의 대기실 앞을 지나가는 스태프들과 가수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낀 듯했다.

[율무 : 좀 그런가?]

[민성 : 응. 여기는 아닌 거 같아. 안에다 붙여.]

민성의 만류에 율무가 다시 주섬주섬 종이를 챙겨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청 : 둘이 모야.]

백야의 옆에 앉아 있던 청이 수상한 행동을 감지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율무의 복숭아는 이어폰을 꽂은 채 안무 영상을 보고 있었다.

[율무 : 형. 좋은 생각 났어.]

민성의 팔을 잡은 율무가 살금살금 소파 뒤로 향했다. 백야의 눈을 피해 등받이 뒤로 숨자 청이 관심을 보이며 뒤를 돌아봤다.

[청 : 모냐.]

[율무 : 키티야, 백야가 여기 안 보게 해 줘.]

[청 : 몬데? 햄스터 괴롭히지 마.]

[율무 : 이거 붙이려고.]

율무가 종이를 들어 보이자 청의 눈썹이 와락 구겨졌다.

[청 : 백야는 햄스턴데!]

[율무 : 쉿! 쉬잇!]

율무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율무 : 이거 붙이고 사진 딱 한 장만 찍자. 어? 제발 그때까지만 조용히 있어 줘.]

[청 : 그럼 모해 주나.]

[율무 : 너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청 : 나만 믿어!]

푸쉬-

청이 다시 몸을 돌려 소파에 소리 나게 앉자, 자리가 움푹 꺼지며 백야의 몸이 기울었다.

[백야 : 뭐야?]

[청 : No. 계속 봐.]

[백야 : 뒤에 뭐 있어?]

백야가 뒤를 돌아보려 하자 율무와 민성이 허리를 굽히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지한 : 저 열정으로 다른 걸 했으면….]

지한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잠시 후, 율무가 등받이에 종이를 대보며 위치를 잡자 민성이 테이프를 떼 주었다.

[민성 : 끝이지?]

[율무 : 응! 완성~]

네 장의 종이가 소파 뒷면에 나란히 붙었다. 그리고 그 위로 동그랗게 보이는 백야의 뒤통수.

[율무 : 아깝다. 당백이가 분홍색으로 염색을 했어야 하는데.]

[민성 : 앱으로 바꾸든가.]

[율무 : 그럴까? 키티야, 잠깐만 나와 봐.]

청이 눈치껏 멀어지자 셔터 음이 울렸다.

찰칵-

그러다 뒤가 어수선한 걸 느낀 백야가 이어폰을 뽑으며 돌아봤다.

[백야 : 뒤에서 뭐 해?]

찰칵-

[율무 : 됐다! 됐어!]

[민성 : 오~ 좀 찍는데?]

[백야 : 나 찍었어?]

해당 사진은 데이즈의 SNS 공식 계정에 올라오며 실시간 트렌드를 또 한 번 뒤집어 놓았다.

[햄스터 버전]

그리고 이어지는 햄스터 파의 모에화 순간들.

첫 번째 주인공은 지한이었다.

이번에는 ‘팬 사인회 연습’ 콘셉트로 켰던 유앱 영상 중 일부분이었다.

[지한 :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백야 : 백야요. 한백야.]

[지한 : 이름이 예쁘네요.]

지한의 눈꼬리가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백야 : 저도 그림 그려 주실 수 있어요?]

[지한 : 네. 혹시 원하시는 그림 있으세요?]

[백야 : 음…. 네가 그리고 싶은 거?]

[지한 : 네. 그럼 백야 님 닮은 거로 그려 드릴게요.]

지한의 매직이 거침없이 움직이며 동그란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

[백야 : 이게 뭐야?]

납작한 찹쌀떡 형태의 동그라미에 귀와 눈 코 입이 달린 그림이었다.

[지한 : 초상화.]

[백야 : …….]

[민성 : 이야~ 이 정도면 얼굴에 대고 따라 그린 수준인데?]

또 다른 햄스터 파 멤버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편집됐다.

두 번째 영상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백야의 모습이었다.

[백야 : (욤뇸뇸)]

민성이 너튜브에서 웬 햄스터의 해바라기 씨 먹방 영상을 틀어 백야의 얼굴 옆으로 가져다 댔다.

[민성 : 야, 이거 봐. 똑같지.]

[청 : 오! 백야가 두 마리!]

영상을 확인한 백야의 눈썹 끝이 사납게 올라갔다.

[청 : 조폭 햄스터!]

이어지는 영상은 화보 비하인드 영상 중 일부분이었는데, 네 컷 사진을 찍기 전 소품을 고르는 장면이었다.

[율무 : 토끼, 토끼~ 이건 형 거.]

[민성 : 고마워.]

민성이 웃으며 머리띠를 받아 들자 옆에서 청이 백야를 불렀다.

[청 : 햄스터야!]

[백야 : 왜?]

[청 : 백야는 이거 해!]

해바라기씨 쿠션을 들고 온 청이 백야의 품에 강제로 안겨 주는 장면이었다.

[보너스 영상]

그리고 이어지는 보너스 컷.

<샌프란시스코 브이로그> 영상의 일부분이었는데, 이번 등장인물은 온몸이 검은색 털로 덮인 깜찍한 친구였다.

[유연 : 이 인형 엄청 좋아하네.]

[해피 : 으르르.]

앞발로 햄스터 인형을 꼭 쥔 해피는 유연을 경계하고 있었다.

[유연 : 얘 나 싫어하는 거 같아.]

[청 : 유연 바보는 아니네.]

[유연 : 뭐라고?]

청이 유연을 놀리며 개구지게 웃었다. 헤드록을 하며 마당을 뒹구는 두 사람의 옆으로 민성을 앞세운 백야가 다가왔다.

그러자 힘없이 늘어져 있던 꼬리와 귀를 쫑긋거리며 해피가 몸을 일으켰다.

[백야 : 쟤 묶여 있어?]

[청 : 당근 하지!]

목줄이 채워져 있는 걸 확인한 백야가 용기 내 다가가자, 해피도 다가올 수 있는 만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곤 툭-

자신의 보물 1호를 백야의 앞에 내려놓으며 ‘앉아’ 자세를 취했다.

[강아지도 인정한 인간 햄스터]

[햄스터 파 승]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앓는 사람조차 몇 없는 외길 인생을 걷는 오목눈이 파의 뱁쌔. 그녀는 어쩐지 씁쓸해졌다.

“백야는 피부가 하야니까 당연히 오목눈이 아닌가….”

뱁쌔는 끝까지 소신을 지키기로 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오늘은 데이즈의 2차 콘서트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Day Dream : Fantasy]

지난 회의를 통해 기획 팀에서 준비해 온 콘서트 콘셉트는 ‘백일몽’이었다.

“저희 그룹명이 합성어긴 하지만 이중적인 의미로도 쓰이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요.”

“또 콘서트라는 게 규모도 크고 가수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무대잖아요. 그만큼 끝났을 때의 여운이 상당한 편인데, 저희 아티스트들이 매번 하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공연이 끝나면 허무하다’.

사실 이는 팬들도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아예 행복한 꿈을 콘셉트로 잡아 봤어요.”

“팬과 가수가 동시에 느끼는 감정을 함축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고, 하룻밤 꿈이기 때문에 더 화려하고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획 팀에서는 Day Dream이라는 타이틀을 시리즈처럼 가져가면 좋겠다고 어필했다.

“첫 공연인 만큼 신비한 느낌이면 좋을 것 같아서 부제목을 판타지로 지었고요. 아무래도 밝은 콘셉트의 곡이 많은 만큼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내면 어떨까 하는데. 연출가님은 어떠세요?”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호랭이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가 순순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기획 팀장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때 민성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의견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동화 같은 콘셉트라고 하셨는데, 저희 이번 콘서트에서 컴백 곡 선공개하는 거 아닌가요?”

타이틀곡의 녹음은 이미 마친 상태며 수록곡 또한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 단계였다.

이번 컴백은 동화와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콘셉트다 보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팀장은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희 다음 콘셉트가 동양풍이잖아요. VCR을 전래 동화나 사극처럼 연출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이 부분은 호랭이 님께서 전문가시니 잘 해 주실 거라 믿는다며 그를 띄워 주는 멘트까지 완벽했다.

팀장이 내비친 신뢰에 호랭이도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2부 오프닝 때 분위기 반전으로 선공개하고 다시 원래 흐름으로 돌아와도 되고. 방법은 많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돼.”

명쾌한 답변에 멤버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아무튼 나는 콘셉트 괜찮은 것 같은데, 너희는 어때?”

기획 팀에서 준비해 온 참고 자료와 아트웍을 뒤적이던 호랭이가 데이즈에게 물었다.

“저는 너무 좋은데요?”

“저도요.”

다행히 멤버들도 마음에 드는지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그럼 세트 리스트를 구성해 봐야겠네. 이 부분은 제가 다음 회의까지 준비해 올게요.”

볼펜을 딸깍거리던 호랭이가 노트에 지렁이를 휘갈겼다. 그러다 번쩍 고개를 들어 백야를 바라봤다.

“아, 맞다. 너희 유닛 무대.”

공연의 방향이 잡혔으니 이제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할 단계였다.

무대 구성을 위해서는 멤버들이 어떤 콘셉트의 유닛을 꾸리고 있는지도 들어 봐야 했다.

“그게….”

“설마 아직도야?”

백야가 눈치를 보며 대답을 망설이자 호랭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데이즈가 유닛 무대를 두고 백야에게 목을 매고 있다는 것 정도는 관계자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가 아직도 못 정한 거냐며 쓴소리를 하려는데, 순간 청이 행복 100%의 얼굴로 소리쳤다.

“햄스터 내 거야! 내 거예요!”

병아리의 탈을 쓴 늑대는 불쌍한 척으로 햄스터의 간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쟤가 왜 네 거야. 잠깐 무대만 같이하는 거지.”

“그게 그거야!”

“백도, 넌 기분 안 나빠?”

“난 이제 익숙한데. 얘가 이렇게 말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나의 성공 시대, 주입식 교육으로 시작됐다!

드디어 자신을 받아들인 반려동물에 햄스터 광인은 더욱 기뻐했다.

“밤비야. 나도 마음 아프지만, 이제 당백이는 포기하고 나한테 집중해 주면 좋겠어.”

“이 형은 또 뭐라는 거야.”

누구보다 속이 쓰릴 율무가 유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아기 사슴은 질색하며 손을 튕겨 냈다.

조금 어수선해진 것 같은 분위기에 테이블을 두어 번 두드린 민성은 얼른 장내를 정리했다.

“백야랑 청이, 유연이랑 율무, 나는 지한이랑 하기로 했어.”

저희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춘 것 같은 조합에 호랭이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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