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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44화 (244/340)

제244화

때는 약 30분 전.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던 청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려 했다.

“왜 밖으로 나가는데?”

청과 민성의 방에는 화장실이 달려 있었다.

“다른 화장실이 더 좋아.”

“뭐?”

“Anyway. Bye.”

청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비운 지도 30분. 홀로 남겨진 토끼는 병아리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집 토끼는 제법 감이 좋은 편이었다.

몸을 일으킨 민성은 곧장 병아리를 잡으러 나섰다.

똑똑-

거실 화장실로 향한 민성이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안은 비어 있었다.

‘저 방으로 갔나?’

데이즈의 숙소에는 화장실이 세 개였기 때문에 아직 남은 곳이 있었다.

동생들의 방으로 향한 민성은 다시 한번 노크했다. 그러나 방 안에는 색색거리는 백야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얘는 왜 이불을 다 걷어차고….’

살금살금 다가간 민성이 다리 밑에 깔려 있는 이불을 빼내 제대로 덮어 주었다.

‘이놈은 어딜 간 거야.’

비어 있는 지한의 침대는 둘째 치고, 이곳의 화장실 또한 불이 꺼져 있었다.

숙소가 넓어지니까 소재 파악이 바로바로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었다.

‘영 불안한데.’

팀에는 ‘눈에 안 보일 때 불안한 멤버’가 딱 세 명 있었는데 바로 율무와 청, 백야였다.

앞의 두 놈은 하이 텐션과 왈가닥거리는 성격 때문이었고 백야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체력이 워낙 약하기도 하고, 폴폴 풍기는 단내 때문에 날파리가 워낙 꼬여야 말이지.

원래라면 무작정 ‘안 돼’를 외치고 봤을 텐데, 백야가 곤히 자고 있는 터라 무작정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그때, 가까운 곳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드레스 룸?’

귀를 쫑긋거린 민성이 가까운 드레스 룸으로 다가갔다.

문틈 사이로 귀를 대자, 몰래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면 된다는 등의 수상한 대화가 들려왔다.

벌컥-

“이놈 시키들이…!”

근처에 백야의 방이 있기 때문에 차마 큰소리는 내지 못했다. 대신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모야!”

“아, 깜짝이야.”

한편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에 두 쌍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이것들이 불도 다 꺼 놓고 무슨 짓 했어. 몰래 어딜 가?”

“No! 그런 거 아니야!”

“우리가 가긴 어딜 가.”

“됐고. 따라 나와.”

예고 없이 켜진 스위치에 막내즈가 눈을 감으며 괴로워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 앞에 선 민성은 동생들을 무섭게 바라볼 뿐이었다.

“너 때문이잖아.”

“유연이 햄스터 때렸잖아!”

막내즈가 투닥거리며 일어나는데, 마침 율무의 방에서도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야. 쉿.”

민성이 입술을 댓 발 내민 채 불만 어린 표정을 짓는 막내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곤 이번에는 율무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몰래 엿들었다.

“이번 일은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안 들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지한을 진정시키려던 말을 오해한 민성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크게 떴다.

그러다 언제 다가온 건지 함께 엿듣고 있는 유연과 청을 발견하곤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이것들이 뭘 잘했다고.”

“아야!”

“아아…!”

동생들의 귀를 쥐어뜯듯 잡아챈 민성이 방문을 열며 앞니를 드러냈다.

그리하여 다시 현재.

율무의 침대를 차지한 건 토끼 한 마리였다.

꿈나라로 떠난 백야를 제외한 네 사람은 바닥에 일렬로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뭐라고 떠드는지 다 들었으니까 머리 굴릴 생각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라. 나는 너희가 거짓말하는지 안 하는지 다 알 수 있어. 알겠니?”

근엄 토끼가 오래간만에 카리스마를 뽐냈다.

벌써 다리가 저린지 인상을 쓴 청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허벅지를 두드렸다.

“Shit.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청이 구시렁거리자 유연이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야, 너 방금 욕했지. 뭐, 쉣? 이게 어디서 형한테. 너부터 말해.”

구시렁거렸다는 죄로 청이 제일 먼저 지목당했다. 삼백안을 치켜뜬 병아리는 불량한 얼굴로 대꾸했다.

“모! 나는 햄스터 걱정한 거뿐이야! 저거 오늘 밤에 몰래 나갈 거란 말이야!”

“맞아!”

유연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맞장구쳐 주었다. 그러나 민성은 얌전한 애를 걸고넘어진다며 괘씸죄를 더했다.

“No! 진짜라니까?”

핸드폰을 훔쳐 대화 내용을 봤다는 말에 형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다른 건 안 건드렸거든?”

“당근 하지! 우리 쓰레기 아니야!”

“염병…. 그런 걸 쓰레기라고 한단다?”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면 형들도 이렇게 했을걸? 야, 그치.”

“당근 하지!”

뻔뻔한 자기 합리화에 민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며 자책하는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폭로에 형들의 얼굴은 금세 심각해졌다.

“가요대전 때 비상계단에서 백도가 어떤 사람이랑 통화하는 걸 들었어. 근데 내용이 좀 심각해야지.”

“맞아! 햄스터가 살려 달라 그랬어! 그래서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지만 여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때 짐작 가는 게 있던 율무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너는 뭔데. 말해 봐.”

발언권을 얻은 율무가 핸드폰 속 사진을 내밀었다.

“판사님? 꼭 봐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저는 이 사진을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율무의 말에 유연과 청도 사진을 함께 구경했다.

“백도?”

“햄스터?”

“백야잖아.”

멤버들은 백야를 한눈에 알아봤다.

“근데 이 옷은 또 뭐니? 찜질방 같은데. 우리가 이런 델 간 적 있었나?”

민성이 의아해하자 율무가 강하게 도리질했다.

“며칠 전에 SNS 하다가 발견했는데 이게 수상해도 너~무 수상한 거지. 그래서 내가 스모어 굽는 척을 하면서 물어봤어.”

“뭘.”

“찜질방 간 적 있냐고.”

“그러니까.”

“글쎄 고 조그마한 게 있다잖아. 그리고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

율무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양손으로 지한을 가리켰다.

“얘가 당백이가 몰래 숙소 나가는 걸 봤대.”

“뭐?”

“진짜!?”

이번에는 지한과 율무를 제외한 세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봤어. 몰래 나가는 거.”

“근데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리고 그걸 그냥 가게 내버려 뒀다고?”

“몰래 따라가려 했는데 놓쳤어.”

짐작 가는 사람은 있지만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행동을 보아하니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현관문 여는 데만 10분 넘게 걸리더라.”

답답해서 대신 열어 줄 뻔했다는 말에 민성이 이마를 짚었다.

“아무튼. 쟤가 어디로 갈지는 아는데 약속 시간을 몰라서 나율무랑 이야기하던 중이었어.”

“어? 잠깐만. 그럼 형들은 저 찜질방이 어딘지 알아?”

“24시 불가마.”

그 말에 청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감격했다.

“Oh my god.”

“우리는 날짜랑 시간만 알아서 소금방이 어딘지 찾고 있었거든.”

“정말?”

서로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단 소리였다. 정작 팀의 리더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민성은 자신에게 실망했다.

“당백이가 그 사람을 언제 만나기로 했는데?”

“오늘.”

유연의 대답에 율무와 지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며 서두르려는데, 순간 민성의 귀가 쫑긋거리며 작은 소리를 감지했다.

“다 입 닫아.”

잽싸게 불을 끈 민성이 숨을 죽이자 멤버들도 눈치껏 기척을 숨겼다.

달칵-

방문 너머로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백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지한아?”

바람난 햄스터가 두 번째 일탈을 개시하는 소리였다.

* * *

[AM 2:00]

지잉-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들었던 백야는 작은 진동에 눈을 떴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필승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개발자님 : 저 먼저 도착했어요. 천천히 오세요.]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시간은 3시. 훨씬 일찍 도착한 필승과 일찍 일어난 백야는 옆자리부터 살폈다.

그런데 침대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얘네는 피곤하지도 않나….’

아직까지 깨어 있는 멤버가 있다면 곤란했다.

제일 먼저 화장실로 향한 백야는 문을 노크하며 지한의 이름을 불렀다.

“…지한아?”

그러나 화장실은 비어 있었다.

‘물 마시러 나갔나?’

룸메이트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이길 바라며 백야가 방문을 열었다.

한편 그 시각, 율무의 방에서는 네 사람의 손이 지한을 막무가내로 일으켜 세우는 중이었다.

“끄흡!”

사랑의 손길을 듬뿍 받은 지한은 순식간에 방문 앞까지 떠밀려 왔다.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이상한 소리는 덤이었다.

‘왜! 갑자기 왜 이러는데?’

‘염병. 소리 내지 마.’

‘빨리 나가! 햄스터가 찾잖아!’

지한이 눈을 부릅뜨며 항의하자 멤버들이 이러다 들키겠다며 답답해했다.

이대로 두면 계속 문 앞에 서서 저희만 노려볼 것 같았는지, 보다 못한 율무가 문부터 열어 버렸다.

‘형, 미쳤어!?’

유연이 눈을 부릅뜨며 입 모양을 뻐끔거렸다. 이러다 갑자기 맞은편 문이라도 열리면 우스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에이 씨.’

당황한 유연이 지한의 등을 세게 밀어 버리자 방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닫혔다.

“억…!”

무리에게 버림당한 고양이가 복도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끼익-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맞은편 문이 열리며 머리통 하나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지한아?”

그 순간 지한의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 운동을 했다.

쿵-

당황한 길냥이가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잠든 척하는 소리였다.

“헉…! 지한아.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눈을 감은 지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율무, 한유연.

무조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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