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45화 (245/340)

제245화

“지한아.”

길냥이를 주운 백야가 어깨를 약하게 흔들었다. 순간 지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다행히 어두워서 보이진 않았다.

“으응….”

지한이 잠든 척 칭얼거리자 백야는 완전히 속은 듯했다.

“지한아, 들어가서 자자. 응?”

어깨를 흔드는 손에 좀 더 악력이 실렸다.

“지한아.”

백야가 팔을 잡아당기자 그가 못 이기는 척 눈을 떴다. 타고난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백야?”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여기가 어디….”

지한이 모르는 척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왜 여기에….”

뱉고 보니 기억 상실증 환자 같은 대사에 속으로 이불 킥을 날렸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백야와 달리, 옆방에서 저희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화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잠깐 물 마시러 나왔다가….”

그러나 말을 할수록 백야의 오해는 커져 가고 있었다.

“쓰러진 거야!?”

“아니야. 한백야 그거 아니야.”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려던 백야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지한을 걱정하느라 심각해졌다.

“진짜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이거 절대 가볍게 생각하면 안 돼. 일어날 수는 있겠어?”

사지 멀쩡한 지한은 그렇게 백야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걸을 수 있어?”

“다리도 멀쩡해.”

“아, 물! 물 마시고 싶다 그랬지? 잠깐만.”

그러나 백야는 지한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유난을 부릴 때마다 백야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지한은 백야의 기분을 십분 이해했다.

“여기, 물. 천천히 마셔.”

지금 마시면 얼굴이 붓겠지만, 저 때문에 떠 온 물을 안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숨을 삼킨 지한은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었다. 그냥 빨리 마시고 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백야는 이 또한 오해했다.

“목이 많이 말랐나 봐. 더 줄까?”

“아니?”

백야가 컵을 가져가려 하자 지한이 빼앗기지 않으려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물은 어찌나 많이 떠 왔는지,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셨더니 토기가 밀려왔다.

“난 다시 잘 건데. 넌 왜 나왔어?”

“나?”

“응.”

“나아~도 물 마시려고.”

백야의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율무의 방 안까지 들렸다.

“그래. 그럼 마시고 들어와. 난 먼저 들어간다.”

“응! 금방 들어갈게.”

백야가 손을 흔들며 방으로 들어가는 지한을 배웅해 주었다. 덩달아 손을 흔들던 지한은 문득 현타를 느꼈다.

두두둑-

허공에 멈춘 손을 느리게 쥐자 뼈마디가 부딪히며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무조건 죽인다.”

지한이 저를 사지로 내몬 율무와 유연을 떠올리며 이를 가는데, 마찬가지로 억지로 물을 마신 백야가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 서서 뭐 해?”

“아니야. 자자.”

지한이 침대 위로 몸을 눕히자 백야도 자리로 돌아갔다.

“잘 자.”

“응. 너도.”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했다.

‘지한이가 빨리 잠들어야 나갈 텐데.’

‘자는 척을 해야 하나.’

정자세로 누워 있던 지한은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일단 눈을 감기로 했다.

빠안-

자신이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미치겠네.’

의심이 많은 햄스터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게 뻔했다. 잠시 고민하던 지한은 잠든 척 숨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사부작-

그러자 얼마 안 가 이불이 걷히는 소리와 함께 가까이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지한이 잠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듯 얼굴 위로 백야의 손이 흔들렸다.

“지한아, 자?”

“…….”

이름을 불러도 미동이 없자 개복치는 안심한 듯 손을 거뒀다.

달칵-

곧이어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며 방에는 지한만 남겨졌다.

실눈을 떠 옆자리를 확인한 그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율무에게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

[한지한 : 죽여버린다]

[나율무 : 아잉]

[나율무 : 네가 우리 중에서 연기 제일 잘하잖아♡]

[나율무 : 내가 왜 여기에..?]

[나율무 : 역시 명배우♡ 믿고 보는 한♡지♡한♡]

남발하는 하트에 더욱 열이 받은 지한은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율무의 핸드폰 자판에서 하트를 다 뽑아 버리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나율무 : 당백이 나가면 우리도 뒤따라가자! 그러니까 준비하고 있어♡]

그가 열연을 펼치는 동안 네 명이선 백야의 뒤를 밟기로 이야기를 끝낸 모양이었다.

* * *

[나: 죄송해요ㅠㅠ 지금 가고 있어요! 멤버가 깨어 있는 바람에ㅜㅜ]

[개발자님 : 천천히 오세요]

지한이 다시 깨진 않을까 걱정이 돼, 방문 앞에서 귀를 대고 기척을 감지하느라 약속 시간이 다 돼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오늘은 현관문을 여는 데 2분이나 단축했다.

개복치는 헐레벌떡 24시 불가마로 입장했다.

“개발자님!”

오늘도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백야가 필승을 향해 반갑게 달려갔다.

“생각보단 일찍 도착하셨네요. 몰래 빠져나오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식혜랑 계란 좀 드세요.”

“아니에요. 저 곧 콘서트라 관리해야 해요. 그보다 퀘스트는….”

“이거 드시면 알려 드릴게요.”

필승이 계란 한 알을 까서 내밀었다.

“그럼 하나만….”

뇸.

백야가 계란을 베어 물자 이번에는 식혜가 내밀어졌다.

“제, 제가 먹을게요.”

어색하게 받아 든 개복치는 필승의 눈치를 보며 빨대를 쪽 빨아들였다. 아까부터 쳐다보는 시선이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이제 말씀해 주시면….”

남은 계란을 입 안으로 넣으며 우물거리자 필승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일단 돌발 이벤트가 제일 성가시다고 하셔서 그것들 위주로 데이터를 살펴봤어요.”

보안 때문에 일일이 적어 왔다는 필승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개발되어 있는 이벤트 내용이에요. 발동 조건이랑 예외 케이스 같은 것들은 추가로 적어 뒀고요.”

찢어진 노트에는 계단 이벤트부터 사다리, 사생 이벤트까지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 조명 이벤트. 그것부터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요. 그나마 다행인 건 텀도 그만큼 길어진다는 거.”

원래라면 타박상이나 심하면 골절상에서 그치는 정도의 위협이었지만, 조명 이벤트부터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콘서트 준비한다고 하셨죠?”

“네.”

“그 조명 이벤트, 관객 15,000명 이상이 조건이에요. 제 생각엔….”

필승은 말을 아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이걸 왜, 하…. 왜 이런 식으로 기획했는지 모르겠네.”

제가 개발한 게임이지만, 퀘스트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며 제대로 된 미션이 없다며 화를 냈다.

“아이돌을 키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필승이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자 백야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팩폭을 날렸다.

“하하…. 그러니까요. 제가 망겜이라 그랬잖아요. 그리고 이거 실제로도 망해요.”

눈새의 촌철살인에 그렇지 않아도 높은 개발자의 몸값이 2,000원 더 올라갔다.

“네. 망해도 싸네요. 아무튼 혼자서는 힘들어요. 멤버들한테 알리는 건 어때요? 저한테 털어놓으신 것처럼.”

“아니요?! 그건 절대 안 돼요.”

백야가 고개를 힘껏 저었다.

그가 필승에게 말해 보기로 결심한 데에는 일본에서의 접점과 게임의 개발자라는 확실한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퀘스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작정 도와달라고 떼를 쓸 수 있었던 건데, 멤버들은 어떠한가.

저만큼이나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지금도 오류가 이렇게나 잦은데 멤버들이 개입한다? 그날로 버그 파티가 열리며 시스템이 폭주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건, 지난번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 봐. 멤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회귀한 사실은 금기잖아요. 이런 비밀 함부로 발설하면 저한테도 안 좋고, 비밀 알게 된 사람은 막 죽고 그러던데.”

“근데요?”

“혹시라도 애들 잘못되면 어떡해요.”

그 말에 필승은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잠시만요. 저한테는 문자로 다짜고짜 미래에서 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그건….”

“나는 죽든 말든 상관없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멤버도 아니니까 내 알 바 아니다?”

백야가 쩔쩔매는 모습이 필승의 눈에는 정곡을 찔려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닌….”

백야가 안절부절못하자 필승이 막 껍데기를 깐 계란 한 알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장난이니까 이거나 먹어요. 아니, 근데 회사에서 굶겨요? 뭔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을 하고 와선.”

“아이에여. 저 지짜 잘 멍는데….”

“식혜도 좀 팍팍 마시고.”

“네엠….”

입 안에 가득 찬 계란에 백야의 발음이 뭉개졌다.

빵빵해진 두 볼이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에 필승은 이유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도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에요. 거기 뒷장 봐요.”

종이를 뒤집자 웬 쿠폰 번호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어제 막 등록 끝내 놓은 쿠폰들이에요. 스트레스 지수 낮추는 데 필요하잖아요. 말 나온 김에 지금 하나 테스트해 보든가.”

“개아짜니임….”

백야가 감동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자 필승은 쑥스러운 듯 ‘계란이나 삼키고 말하라’며 틱틱거렸다.

곧바로 상태 창을 불러낸 백야는 한 땀 한 땀 알파벳을 입력했다.

[50 스타 포인트 지급!]

▷ 현재 보유 스타 포인트 : 121]

그러자 순식간에 50포인트가 늘어났다.

“허억! 켁.”

너무 놀란 나머지 사레에 들린 백야가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괜찮아요?”

“우웩, 콜록, 콜록.”

기침을 하느라 머리에 열이 몰려서 그런지 스트레스 지수가 소폭 상승하며 코피가 흘렀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스트레스를 0까지 낮춰 놓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오늘은 지한과의 작은 소동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다.

“이봐요. 어디 아파요? 갑자기 왜 피가….”

“괜찮아요. 금방 멎어요.”

백야가 고개를 숙이고 필승이 수건으로 코 아래를 받쳐주는 순간, 문이 열리며 찬 공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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