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 * *
숙소로 돌아온 백야는 민성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는 말에 밖으로 쫓겨난 청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안의 대화를 엿들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맞은편 방을 쓰는 유연이 방문을 열며 고개를 내밀었다.
“뭐가 들리긴 하냐?”
“당근 하지. 민성 지금 화났어.”
“그런 거 같더라.”
서로에게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으면서 말도 없이 나가다니. 이번만큼은 유연도 백야의 편을 들어 주기 싫었다.
“근데 사촌 형이라는 사람 좀 기분 나쁘지 않냐?”
“햄스터랑 하나도 안 닮았어. 못생겼어.”
“남이라 해도 믿겠던데. 그리고 누가 사촌 형을 개발자님이라고 저장하냐.”
“맞아. 무조건 이상하다.”
막내즈가 구시렁거리는 사이 방 안에서는 대화가 한창이었다.
“네가 우리한테 숨기는 게 있다는 건 잘 알겠다.”
“…….”
“팀이랑 관련 있는 거야? 아니면 개인적인 일?”
둘 다 해당되는 일이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인 일.”
“그래. 그럼 더는 묻지 않을게. 그런데 앞으로 이런 개인적인 행동은 곤란해.”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팀이기 때문에 네 행동 하나에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쓴소리가 이어졌다.
“알아…. 잘못했어.”
“목격담이라도 떠서 사람이라도 몰리면 어쩔 뻔했어.”
“미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어.”
맞는 말만 해 대는 민성에 백야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 이번엔 네가 진짜 잘못했어. 솔직히 네가 이럴 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고.”
“…….”
“근데 네가 아무 이유 없이 그랬을 거라곤 생각 안 해. 그러니까 꼭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땐 나한테라도 말하고 가. 말하기 싫으면 이유는 안 물어볼 테니까.”
네 행동이 전부 이해되진 않지만, 그래도 너를 믿는 마음만큼은 변함없다는 뜻이었다.
방심한 사이 훅 들어온 감동에 백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형은… 날 왜 그렇게 믿어 주는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니? 당연히 멤버니까 믿는 거지. 넌 아니야?”
감정이 북받친 백야가 오리 입을 만들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제가 멤버들을 믿는 것만큼이나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차올랐다.
“멋대로 나가서 미안해….”
“아무 일 없었으니까 됐어. 앞으로 거짓말만 하지 마.”
그러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물이 터져 버렸다.
“끄흐…. 내가, 내가 진짜 미안해.”
“그래, 알면 됐다. 근데 야, 네가 지금 울면 내가 혼내서 그런 것 같잖아.”
아니나 다를까 백야의 훌쩍이는 소리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애 울릴 것까진 없지 않나?”
“이 나쁜 놈! 죽어라!”
* * *
- 애들 찜질방 목격담 뭐야? 자컨인가? (데이즈 사진.jpg)
└ 청이 저기서도 백야 껌딱지네ㅋㅋㅋㅋ 지독하다 진짜
└ 쟤는 못 이겨... 백야한테 찐으로 미친놈이거든
└ 매니저도 없이 이렇게 돌아다녀도 됨? 대상 받았다고 이제 막 나가네~
└ 누가 보면 클럽이라도 간 줄 알겠네ㅋㅋㅋㅋㅋㅋ
└ 매니저 한 명 같이 있었음
- 양 모자 쓴 백야, 계란 까먹는 백야, 식혜 먹는 백야, 손목에 찜질방 열쇠 낀 백야... 제발 자컨이었으면 (기도 이모티콘)
- 데이즈 목격담 뜨는 거마다 완전 건전하고 무해하고 귀여워
- 애들 찜질방에서 뭐하고 놀았을까ㅠㅠㅠ
└ 러브 젠가
└ 아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
└ 율무 진심 킹랑스러움ㅋㅋㅋㅋㅋㅋ 사람이 이렇게 사랑스러워도 되는 걸까
└ 그게 뭐예요?ㅠㅠ
└ 유앱이었나? 너튜브에 데이즈 러브 젠가 치면 나와요ㅋㅋㅋ 애들 LA 럽콘 갔을 때 율무가 보드게임을 왕창 사 갔는데 하필 러브 젠가였던ㅋㅋㅋㅋㅋ
└ (링크)
간만에 뜬 목격담에 신나게 마음을 찍고 다니던 복쑹은 너튜브로 이동했다.
이미 본 영상이지만 멤버들의 반응이나 율무 몰이가 귀여워 지나칠 수 없는 영상 중 하나였다.
[유연 : 미국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거요? 저는 멤버들이랑 논 것도 재밌었지만 LA에서 열렸던 러브 케이팝 콘서트요.]
해당 에피소드는 샌프란시스코 여행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유연의 LA 콘서트 언급으로 시작됐다.
[민성 : 맞아. 무대에 올라갔는데 가사를 따라 불러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율무 : 소리도 엄청 컸어~]
각자 회상에 잠겨 그날의 무대를 떠올리는데, 지한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난 듯 눈썹을 찌푸렸다.
[백야 : 왜?]
[지한 : 그 이상한 보드게임 생각나서.]
[백야 : 아… 쟤가 가져온 거?]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율무가 들뜬 얼굴로 되물었다.
[율무 : 왜? 뭔데? 내 이야기야?]
[백야 : 응. 네가 가져온 쓰레기.]
말랑 복숭아가 저렇게까지 격하게 말하는 모습은 처음 본 나잉이들이 술렁였다.
[민성 : 아~ 그거?]
[유연 : 그거 불태웠잖아.]
[지한 : 응.]
[율무 : 잠깐만. 타임. 율무는 진짜 억울하다?]
[청 : 나잉아, 이거 변태다.]
청이 율무에게서 백야를 떨어뜨려 놓으며 은근히 막아섰다.
[율무 : 아니, 그렇게 말하면 우리 나잉이 여러분이 오해하시잖아. 저는 변태가 아니라 순수한 피해자입니다.]
[유연 : 아니? 형이 모르고 샀을 리 없어.]
[율무 : 진짜 몰랐다니까? 진짜. 거짓말이면 내 통장 너 가져.]
[유연 : 얼마 들었는데?]
[지한 : 월 말이라 별로 없을걸. 한 15만 원?]
[백야 : 그거로 뭐해?]
[율무 : 아니, 15만 원이 작아?]
[민성 : 역시 제우스. 쟤는 우리랑 클래스가 다르잖아.]
[백야 : 아니, 왜 또 그런 얘기를 해….]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던 대화는 다시 젠가로 돌아왔다.
[율무 : 저희가 다른 팀보다 출국을 일찍 했거든요~ 그럼 자연스럽게 호텔에 머무르는 기간이 늘어나겠죠?]
[율무 : 그래서 그동안 멤버들이랑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민성 : 길어.]
민성이 손으로 목 언저리를 끊으며 짧게 하라며 율무 몰이를 시작했다.
[율무 : 그때 보드게임이 딱! 생각나서 그냥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았죠. 그런데 순위권에 젠가가 두 개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율무 : 두 개 중에 고민하다가 당백이하면 또 분홍색이니까 저는 예쁜 거로 골랐죠.]
[백야 : 내 핑계 대지 마.]
[율무 : 핑계가 아니라 진짜야. 여기에는 네 책임도 어느 정도 있어.]
[백야 : 와……. (어이없음)]
[율무 : 파란 거는 전체 이용이고 분홍색은 어른용이라길래, 또 우리는 어른이니까~]
율무가 러브 젠가를 산 게 아니냐며 술렁이던 채팅창은 ‘어른용’이라는 말에 폭주하기 시작했다.
데이즈는 저희가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유연 : 아니야. 그건 모를 수가 없어. 상자부터 진짜 이상했다고.]
[청 : 맞아!]
해당 방송을 라이브로 달리고 있던 나잉이들도 멤버들처럼 두 개의 파로 나뉘었다. 율무가 ‘노린 거다’와 ‘정말 몰랐던 것 같다’로.
[민성 : 우리가 널 모르니?]
[율무 : 진짜야. 나 진짜 몰랐어.]
내 말이 거짓말이면 전 재산을 주겠다는 말에도 멤버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이즈는 백야만 빼고 율무가 ‘노린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 애들 말이 맞음ㅋㅋㅋ 러브 젠가는 애초에 상자부터 달라서 모를 수가 없어ㅋㅋㅋㅋ 백퍼 율무가 장난치려고 노린 거다
- 축하합니다. 세계 최초 러브 젠가 아이돌♡
- 성인용이라고 쓰여 있지 않아? 율무야 이건 실드 불가다
대부분의 나잉이들도 러브 젠가는 상자부터 다르다며 멤버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반면 ‘진짜 몰랐던 것 같다’인 율무 지킴이들은 백야와 같은 말로 피의 실드를 쳐 주었다.
[백야 : 아니야. 그래도 얘가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닌데…. 상자는 평범하지 않았어?]
눈새는 분홍색에 하트만 그려져 있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 맞아ㅜㅜ 나도 잘못 산 적 있어
- 우리 율무한테 왜 그래?ㅠㅠ 정말 분홍색이 예뻐 보였을 수도 있잖아...
- 애가 백야 때문에 분홍색 샀다잖아. 좀 믿어라
- 러브 젠가도 단계별로 있어서 낮은 수위는 정말 별거 없어요~
그러나 정작 본인이 실드를 다 튕겨 냈다.
[율무 : 그래! 내가 100번 양보해서 노리고 샀다 치자. 거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야?]
[유연 : 형이 제일 잘 알겠지.]
[민성 : 네 불순한 의도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니?]
[청 : 율무 때문에 지한은 나무도 먹었어!]
[유연 : 푸핫! 맞아. 형 젠가 먹으려 했잖아.]
[지한 : …….]
러브 젠가 사태의 유일한 벌칙자였던 조또. 그는 나무토막에 적힌 파렴치한 지령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이기도 했다.
지한이 말없이 율무를 바라보자 채팅창이 술렁였다.
- 지한이 눈으로 욕하는데요
- 율무 뚫리겠다 지한아ㅋㅋㅋㅋ
- 깊은 빡침이 느껴짐ㅋㅋㅋ
[율무 : 어어? 우리 지한이 그 눈빛은 뭐지? 다른 애들도 아니고 네가 그러면 율무는 정말 똑땅해.]
[백야 : 어휴. 저놈의 똑땅. 똑땅.]
누가 자꾸 율무의 혀를 반 토막 내냐며 백야가 질색하자 청이 더 해 보라며 눈을 빛냈다.
- 청이는 햄스터 광인에서 그냥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 오늘도 졌다. 청청 당신은 대체...
[민성 : 그래서 지한이 벌칙 뭐였냐는데? 저희는 못 봤어요. 백야랑 지한이만 봐서.]
[백야 :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지한 : 기억나지 않습니다.]
[민성 : 물어봐도 절대 안 알려 주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 민성이 검색해 봤다에 100원 건다ㅋㅋㅋㅋㅋㅋ
- 뭐길래 저 순둥이들이 칠색 팔색하는지 궁금하네ㅋㅋㅋ
[백야 : 그런데 나잉이가 지한이 젠가 왜 먹었냐고 물어보시는데?]
[유연 : 형이 벌칙 뽑자마자 백도한테 던졌는데 그걸 백도가 또 던졌거든요.]
다시 지한에게 돌아온 젠가 조각에 모두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사수해 낸 지한은 곧 빼앗길 것 같자 냅다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고 했다.
[율무 : 저런….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지한 : 다 너 때문이잖아.]
평정심을 유지하던 지한이 눈을 사납게 뜨며 발끈했다.
- 지한이 이 악물었는데요
- 아 오늘 유앱 개웃기네ㅋㅋㅋ
- 브이로그 비하인드로 시작해서 러브 젠가 토크ㅋㅋㅋㅋ 이 무슨 혼파망인지
[유연 : 이 형 진짜 씹어 먹었잖아요. 치아 깨지는 소리 나서 저희가 포기했어요.]
[민성 : 개야 뭐야…. 진짜 얘만 한 또라이도 없, 헉.]
말실수를 한 민성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백야의 뒤로 몸을 숨겼다.
- ????
- 민성이 방금 욕했는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한이 또라이라고?ㅋㅋㅋㅋㅋ
- 예전에 유연이가 지한이 별명 조용한 또냥이라 그랬는데 또라이였구나ㅋㅋㅋㅋ
당황한 멤버들이 눈알을 굴리며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하는 사이, 민성의 말실수를 듣지 못한 청이 토크를 이어 갔다.
[청 : 그때 햄스터도 소리 질렀어! 아악! 당장 불태워! 이렇게. (웃음)]
청이 백야를 따라 하자 채팅창은 금세 키읔으로 도배되며 민성의 말실수는 빠르게 묻혔다.
[청 :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집에서 젠가 캠프파이어 했어!]
[지한 : 화형식으로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치워 버렸습니다.]
[율무 : 한 번밖에 못 해 봤는데…. 그때 제 마음도 같이 타 버렸어요. 흑흑.]
율무가 우는소리를 내며 눈물을 닦는 척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 명만 제외한 해피 엔딩에 나잉이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 유앱을 켰어야지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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