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 * *
- 지식 창고에 이 사람 찾는 글 왜 이렇게 많이 올라오냐 (백야 여장 사진.jpg)
└ 오 귀엽다ㅋㅋㅋ 그래서 누구?
└ 몰라 id 비공개 연생 같던데? 정보가 없음ㅠ 존X 내 스타일인데
└ 쟤 남자임
└ 지랄하지 마
└ 진짠데
└ 저 얼굴이면 게이도 가능ㅋ 그래서 누구냐고
- 얘들아 사진 더 있는 거 아니까 좋은 건 같이 좀 보자ㅜㅜ
- 짹에서 주웠는데 이 뽀짝이는 누구야? 아는 사람? (여장 백야 캡처.jpg)
- 백야 여장 사진 본 남사친 반응 (대화 캡처.jpg)
└ 24년 만에 찾은 성 정체성 뭔데ㅋㅋㅋㅋ 개 웃기네ㅋㅋㅋ
- 백야 도화살 있다더니 보는 사람마다 다 홀리고 다님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 광고는 B급 감성으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특히 얼마 안 되는 분량으로 스치듯 지나간 백야의 여장이 화제였는데, 당사자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신재현 : (사진)]
[신재현 : 누님도 데뷔하셨어? 광고 같이 찍은 거 맞지?]
[신재현 : 지난번에 뵀을 땐 단발이었는데 머리 엄청 기르셨네]
[김유경 : ㅋㅋㅋㅋㅋㅋㅋㅋ]
[김유경 : 멕이는 거냐 아님 진짜 모르는 거냐ㅋㅋㅋㅋ 개 웃기네]
[신재현 : 왜 또 시비야]
팬들의 반응은 물론, 친한 친구들의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연락과 부모님의 메신저 상태 명까지.
[울 귀염둥이 막내~♥]
[나도 딸 부자]
백야도 처음 보는 고화질 사진을 떡하니 프로필로 설정해 놓은 부모님 덕분에 민망함은 두 배가 되었다.
“끼잉….”
처음에는 SNS에서만 떠돌던 게 각종 커뮤니티로 확산되면서 급속도로 퍼진 게 화근이었다.
“당백아~ 대환이 형이 네 사진 더 있는 거 안다고 보내 달라는데 보내도 돼?”
“아니!?”
쌓여 있는 연락들을 보며 부들거리던 백야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치켜뜬 눈이 퍽 다급해 보였다.
그러나 살짝 혓바닥을 내민 율무는 미안함을 담아 배시시 미소 지었다.
“벌써 보냈는뎅.”
“뭐라고…?”
“어쩔 수 없었어. 우리 앨범이 인질로 잡혀 있어서.”
흑화한 개복치가 한달음에 달려가 헤드록을 걸었다.
“크헙…!“
“넌 죽었어! 이 망할 놈.”
10cm에 달하는 키 차이 때문에 율무는 반으로 접힌 채 이리저리 휘둘렸다.
그러는 사이 소파에 기대듯 누워 있던 청과 민성은 커뮤니티에서 찾은 지식 창고 모음 글을 소리 내 읽고 있었다.
“이 여자 누구죠? 빨리 좀 알려 주세요. 유유유. 민성! 이 사람 엄청 울고 있어!”
“동생이 예쁘냐고 걸그룹 사진 보여 줬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와요. 겜박스 아이돌 게임 광고에 나오는 여자입니다.”
함께 있던 유연과 지한은 피식거리며 미소 지을 뿐이었다.
“씨이…. 너희가 안 한다 그래서 내가 한 거잖아!”
“어? 백도 방금 욕하려 그랬다.”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저거 대환이 형한테 이상한 거 배워 와 가지곤 아주 일진 다 됐어.”
“아니라고!”
약이 오른 백야가 솜 주먹으로 유연의 가슴팍을 밀쳤다. 그러나 유연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히려 백야가 휘청거리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너 뭐 하냐….”
“야, 양말이 미끄러워서 그래!”
백야가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유연의 팔을 홱 떼어 냈다.
씩씩거리며 지한의 옆자리로 다가간 그는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 게 심통이 제대로 난 것 같았다.
“한백야. 삐졌어?”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
삐진 게 확실한 반응에 지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백야는 토라진 티를 내지 않으려 핸드폰을 집어 드는데, 때마침 도착한 매형의 메시지에 얼굴이 더 구겨졌다.
[매형 : (사진)]
[매형 : 이거 완전 아기 백연인데? 백연이가 두 명... 백연이가...]
누나 처돌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 팔자야.’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백야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조용히 묻히길 바랐는데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반응을 보니 쉽게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래 봬도 나름 상남자인데 이미지 타격이 너무 컸다.
‘아니야. 이렇게 된 거 콘서트에서 만회한다.’
큰 결심을 한 백야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 일어나.”
“응!”
백야가 다가오자 청이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민성이 썩은 표정으로 막내를 올려다봤다.
“염병…. 내 말에도 그렇게 반응하면 어디가 덧나니?”
“망나니?”
청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을 하자 민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됐다. 가라, 가.”
얼른 꺼져 버리라는 듯 토끼의 손이 허공을 젓자, 청이 백야의 손을 냉큼 잡아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충실한 부하를 부리게 된 백야는 청을 따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나 왜? 선물 주나?”
청은 종종 백야를 몰래 방으로 불러 손에 간식을 쥐여 주곤 했는데, 백야도 그럴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야. 그런 거 없어.”
그러나 널 위한 선물 따위는 없다는 말에 집사는 크게 실망했다.
“What? 선물인 줄 알았는데. 치….”
청이 침대 위로 누우며 어리광을 부리자 백야가 팔을 잡아당겨 억지로 앉혀 놓았다.
“장난치지 말고 앉아 봐. 우리 유닛 무대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
“Nope.”
“아니, 일단 들어나 보고….”
“Nope.”
그런데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다.
백야에게만큼은 한없이 관대한 청이지만 유닛 무대만큼은 절대 져주는 법이 없었다.
“우리 Tiger한테도 말했어. 되돌릴 수 없어.”
“아니야, 내가 물어봤어. 호랭이 형이 우리 건 다음 주부터 만든다고 그전에 이야기하면 괜찮다 그랬어.”
“Nope.”
그러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햄스터야, 나도 우리 무대는 나잉이를 위한 희생이다.”
“네가 무슨 희생을 해. 네가 희생을 알아?”
“당근 하지.”
“아니? 지금 내가 널 위해 하려던 게 희생이야. 근데 나도 이제 포기 못 하겠어!”
“햄스터야, 큰일을 위해 작은 희생은 감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야.”
불리할 때만 나오는 영어에 백야가 이마를 짚었다.
“내 앞에서 영어 금지라 했지.”
“Sorry.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반려동물은 결국 주인의 뜻을 꺾지 못했다.
한편 그 시각. 막내즈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바깥에선 작은 소란이 일었다.
네 사람은 백야의 여장 사진을 누가 올릴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에헤이~ 가위바위보 해야지.”
“그냥 형이 눌러.”
“너 또 나한테 뒤집어씌우려 그러지? 딱 보면 알지. 요, 요 여우같이 깜찍한 놈을 봤나~”
율무가 유연의 턱 아래를 간질거리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적이 있는 그는 이번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니거든? 이 형은 사람을 뭐로 보고.”
탁-
유연이 손을 쳐 내며 뾰로통한 표정을 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민성이 끼어들었다.
“됐어. 내가 올려. 이러다 애 나오겠네.”
핸드폰을 꼼지락거리던 그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렸어?”
“진짜로?”
“진짜로 올리지, 그럼 가짜로 올리니? 어우, 피곤한 놈들. 난 자러 간다. 너희도 얼른 자렴.”
쿨하게 사진을 업로드한 리더는 빠른 걸음으로 자취를 감췄다.
달칵-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민성을 수상히 여긴 지한은 재빨리 SNS를 확인해 봤다.
“풉.”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은 그때, 백야의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야아아악!”
방문이 열리며 개복치가 튀어나오자 율무와 유연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니야.”
“민성이 형이야.”
두 사람이 동시에 변명했다.
그러나 고자질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꽤 정확했다.
“나, 나 아닌데 당백아. 왜 내 쪽으로 오지? 왜, 왜지…?”
방향이 자신을 향하는 것 같자, 율무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얘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하하….”
“넌 진짜 죽었다.”
백야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데이즈의 공식 계정 화면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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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저는 나율무입니다. (백야 여장 사진)(+9장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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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즈 홈마 중에 율무 이길 사람 아무도 없다ㅠㅠ
- 미친 10장을 냅다 풀어버리네ㅋㅋㅋㅋㅋ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니까 (율무 손 크기 사진.jpg)
- 대한민국 21세 청년의 양 갈래 (가발 쓰고 머리 묶는 중인 백야.jpg)
- 그냥 걸그룹도 데뷔해ㅜㅜ (데이즈 여장 합성.jpg)
└ 유연이랑 민성이도 여장 잘 어울릴 것 같다곤 생각했는데 미쳤네...
└ 단아가 왜 저기 있어?ㅋㅋㅋ
- 콘서트 때 한 번 더 가자!!!
- 콘서트 카더라 보긴 했는데 너무 조용하다ㅠㅠ 그냥 빨리 컴백이나 했으면
- 김 감독님 보고 계세요? 제발 시트콤에서 백야 여장 한 번만 더 시켜주세요
- 근데 얘네 이제 3년 차인데 개인 활동보단 그룹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나? 누가 보면 그룹에 쟤만 있는 줄
└ 혼자 좀 많긴 함
└ 그룹 인지도를 쟤가 끌어올렸잖아
└ 222 이러면 팀 케미에 문제 생길 수밖에 없음. 다른 멤버들 티는 안내도 속으로는 빡칠 거 같은데
└ 그래서 쟤 왕따 아니야? 그 얼굴 청순하게 생긴 애가 운동 안 하냐고 대놓고 꼽주던데
└ 팀 케미 좋기만 한데? (백야 둘러싼 채 우쭈쭈하는 멤버들.jpg)
- 민성 : 뮤직 스테이 MC / 유연 : 인기 뮤직 MC / 율무 : 단독 예능 출연 / 지한 : 에임 구양 솔로 앨범 작업 참여 기사 뜸 / 청 : 디X 앰버서더
└ 다른 애들도 개인 활동 잘만 하는데??
- 그냥 백야 귀여운 거나 보고 가지 이때다 싶어서 까빠 안티 죄 다 몰려와서 또 개소리 시전ㅋㅋㅋ 어휴 지겨워
- 근데 율무 자기 공로 인정해달라고 저렇게 올린 건가? 귀여워 죽겠네ㅋㅋㅋㅋ
└ 백야한테 물릴 거 같은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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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에게 눈뜨고 코를 베인 율무는 조폭 햄스터에게 제대로 물어 뜯겼다. 팔뚝에 남은 푸른 잇자국에 메이크업을 해 주던 실장님이 눈을 크게 떴다.
“어머. 개한테 물렸어?”
“에이~ 강아지 치열이 어떻게 이렇게 가지런해요. 복숭아한테 물렸어요.”
율무가 핸드폰 액정을 건드리자 백야의 여장 사진이 나타났다.
“요놈 치악력이 얼마나 좋은지 반팔 입고 있었으면 저 살점 뜯겨 나갔을걸요? 하하하!”
“세상에…. 그래도 그렇지 팔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싸운 거 아니고 제가 조금 과하게 놀렸어요. 아시잖아요, 저 4절까지 하는 거.”
저희끼리 있을 때는 서로에게 토라지더라도 바깥에선 멤버들을 안 좋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미안하다고 이거 챙겨 줬어요. 너무 착하죠~”
율무가 주머니에서 밴드를 꺼내 자랑하듯 보여 주었다. 밴드에는 백야의 필체로 보이는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호오~ 얼른 나아♡]
자신이 불러 준 대로 적어 준 거긴 했지만, 멤버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사정을 모를 테니 상관없었다.
해피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지난날들 모두 안녕!
오늘 녹화에서 이 밴드로 어그로를 끌 생각에 관종은 기분이 좋아졌다.
움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