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55화 (255/340)

제255화

햄스터 파 수장은 심기가 굉장히 불편했다.

“햄스터가 공식이야.”

지한이 백야의 턱을 한 손으로 받치며 얼굴을 강조했다.

“이 하찮은 눈 코 입을 봐.”

이것도 얼굴이라고 눈 코 입이 다 들어 있다는 말에 백야와 율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야는 넋이 나간 채 굳어 버렸고, 율무는 입을 틀어막으며 백야를 얼른 떨어뜨려 놓았다.

“너, 너 지한이 아니지!”

도플갱어가 틀림없다며 우리 지한이를 내놓으라 소리치는 바람에 남은 멤버들까지 모여들었다.

“모야! 싸움 났나!”

청이 다가오자 지한이 잘 왔다며 율무를 고자질했다.

“청청. 얘가 한백야 복숭아래.”

“What?! 이거 상도덕이 없네!”

“이거? 형한테 이거어? 유연아! 빨리 붙어!”

“장난해? 당연히 복숭아지.”

“염병…. 그냥 취존 해, 이것들아. 나는 햄스터 파지만.”

금세 시끌벅적해진 분위기 속에 백야만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용히 무리에서 빠져나온 백야는 스태프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개인 촬영 저 먼저 해도 되나요? 저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백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처음엔 인간이 하고 싶다며 목에 핏대 세워 가며 참전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되레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강요받았던 기억뿐이었다.

“피곤하네요.”

멤버들이 피곤하다는 건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건지. 카메라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백야는 촬영을 하러 떠났다.

찰칵-

은은한 연기가 깔린 세트장 위. 백야가 카메라를 보며 오도카니 서 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플래시가 터지며 모니터 위로 사진이 떠올랐다.

“백야 씨, 턱 살짝만 아래로.”

찰칵-

“좋아요. 이번엔 기둥을 짚어 볼까요?”

요구에 맞춰 자연스레 포즈를 바꾸는 모습이 제법 프로다웠다.

다양한 포즈로 개인 컷을 뽑아낸 백야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은 유연 씨 갈게요.”

다음 멤버를 부르는 소리에 백야가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멤버들은 아직도 모여서 격렬하게 토론 중이었다.

“대단하다 진짜.”

고개를 저으며 감탄하던 백야는 곧장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햄스터 파와 복숭아 파 중 누가 이겼는지보다 방금 찍은 사진들이 더 궁금했다.

* * *

[데이즈 유연 인기 뮤직 아무 말 대잔치ㅋㅋㅋㅋ]

너튜브를 보던 유죄 나잉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하나 받게 됐다. 이름표가 달린 마이크를 든 MC 유연의 섬네일이었다.

“맞다! 인기 뮤직!”

가족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늘 방송을 놓친 유죄 나잉이 이마를 내리쳤다.

영상을 재생하자 짧게 편집된 문제의 인기 뮤직 MC 컷이 나왔다.

연하남이 대세인 건지 M사의 우유즈가 부러웠던 건지, 새롭게 교체된 S사의 MC들도 연상 연하 커플이었다.

[유연 : 한 편의 영화 같은 무대, 하이진의 Feel Like까지 들어 보셨습니다.]

[이리나 : 유연 씨, 제가 생각해 봤는데, 저희가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유연 : 좋아요. 그럼 저희 비밀 하나씩 교환할까요?]

두 사람 다 MC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대본을 읽는 티가 많이 났다.

그래도 이런 풋풋한 모습은 한때인지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하는 법. 유죄 나잉은 뚝딱거리는 유연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유연 : 그럼 제 비밀 먼저 말씀드릴게요. 저는 잘 때 곰 인형을 이렇게 꼬옥~ 안고 자요.]

유연이 자신의 팔을 감싸며 귀엽게 대본을 소화해 냈다. 뻔뻔한 얼굴과 달리 쑥스러운지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리나 : 전 어제 멤버들 몰래 야식으로 바나나를 두 개나 먹었어요.]

이리나의 작고 소중한 비밀까지 끝나자, 유연이 멘트를 받아 다음 무대 소개에 시동을 걸었다.

[유연 : 두 개씩이나요? 그럼~ 이리나 씨 저한테 반하나?]

유연이 꽃받침을 하며 예쁜 척을 하자 이리나가 냉큼 무대를 소개했다.

[이리나 : 다음 무대를 얼른 만나 봐야겠어요. 핑크펀치의 반하나.]

무대 컷으로 화면이 전환되기 전까지 약 3초 동안 유연이 계속해서 잔망을 부렸다.

[유연 : 바나나? 안 바나나?]

그런데 화면이 전환되지 않고 계속해서 MC석을 비추자 유연의 동공에 지진이 일기 시작했다.

이리나도 카메라 너머를 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금방 전환될 줄 알았던 화면은 계속해서 딜레이 되었고, 스태프 쪽에서도 시간을 끌라는 사인을 보내 왔는지 유연이 꽃받침을 풀며 마이크를 올렸다.

[유연 : 어……. 반하나~를 만나 보기 전에, 이리나 씨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바나나잖아요? 저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가 백도거든요.]

드디어 시작된 아무 말 대잔치.

이리나는 유연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호응해 주고 있었다.

[유연 : 백도가 엄청 달고 맛있는데, 이게 여름 과일이잖아요? 바나나는 열대지방에서 나는 대단한 과일이고요. 저는 이 바나나랑 복숭아가 대단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나오는 멘트가 어이없는지 유연의 입꼬리도 스멀스멀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연 : 마침 핑크펀치의 무대가 바나나랑 발음이 비슷하네요.]

[이리나 : 네에~]

이제 더는 할 이야기가 없는 유연이 카메라 너머를 힐끔 쳐다보는 게 보였다.

다행히 오케이 사인이 돌아왔는지 유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리나 : 네, 그러면 바로 핑크펀치를 만나 보실까요?]

[유연, 이리나 : 반하나~]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는 백도거든요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복숭아는 백야거든요

└ 저는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진짜 근본 없는 멘트ㅋㅋㅋㅋ

- 바나나 열대 과일인 거 저희도 아는데요ㅋㅋㅋㅋ

- 대단한 과일 개웃겨ㅜㅜㅜ

- 왜 고장났냐고ㅋㅋㅋㅋㅋㅋ

- 대처 잘했는데 왜ㅠㅠ

- 내가 다 수치스럽다... 또 이렇게 내 항마력을 키워주는구나...

- 옆에서 침착한 이리나 때문에 더 웃김ㅋㅋㅋ 나였으면 웃음 터져서 방송 불가였다고

- 내가 발표하다가 멘탈 나갔을 때 같아서 웃을 수가 없다ㅠ

- 애들도 이거 봤겠지? 율무랑 청이가 개같이 놀렸을 거 같은데ㅋㅋㅋㅋㅋ

팬들 분위기도 좋았고 모두 유연을 귀여워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댓글은 읽자마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율무와 청이라면 그냥 넘어갈 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쯤, 데이즈의 유앱 알람이 울렸다.

[DASE|대단한 바나나 비하인드 (바나나 이모지)]

라이브 방송에 입장하자 연습실 거울 앞에 모여 있는 데이즈가 보였다.

[청 : 나는 단아!]

[민성 : 제정신이니?]

[청 : 어쩔 수 없어. 민성 가위바위보 졌으니까 무조건이야.]

[민성 : 아, 다른 거 해.]

[청 : 햄스터 광고 촬영할 때 쓴 가발 있으면 Perfect인데!]

[민성 : 펄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나도 안 닮았거든?]

[청 : Nope.]

단호하게 부정한 청은 어디서 고무줄 두 개를 가져와 율무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청 : 율무, 이거 묶어.]

[율무 : 어디서 났어?]

[청 : 치킨.]

[율무 : 오케이~ 내가 단아 누나로 변신시켜 주지.]

[민성 : 야악! 이 염…!]

[지한 : 유앱.]

민성이 비속어를 쓰려 하자 지한이 방송이 시작됐음을 알려 주었다.

갑자기 얌전해진 모습에 청과 율무가 이때다 싶어 달라붙었고, 곧 그의 머리를 양 갈래로 만들어 놓았다.

[백야 : 우와~ 나 순간 단아 누난 줄 알았어. 누나 스케줄 때문에 못 나오게 되면 형이 대신해도 되겠다.]

[민성 : 되겠니?]

민성은 이를 악물며 심한 말이 나오려는 걸 참아 냈다.

토끼는 인간들에게 쥐어뜯긴 헤어스타일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백야 : 그래도 나잉이들이 귀엽대. 누나랑 쌍둥이 같대. (웃음)]

[민성 : 대단한 바나나 때문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어이, 바나나.]

[유연 : …….]

[율무 : 푸핫! 대단한 바나나~ 구양 선배님께서 바나나를 선물로 주셨어요.]

[청 : 바나나 먹을 사람!]

[지한 : 나.]

멤버들은 유연을 착실하게 놀리고 있었다.

마가 뜨는 것보다 아무 말이라도 하는 게 낫다 그랬는데 차라리 정적이 나을 뻔했나….

유연이 눈썹을 긁적이며 고민에 빠진 듯하자 백야가 유연을 격려해 주었다.

[백야 : 아니야, 잘했어.]

[유연 : 너도 놀리는 거지?]

[백야 : 아닌데? 난 진짜 칭찬인데. 대본도 없이 갑자기 그렇게 시간 끌라고 하면 나도 그랬을걸?]

[유연 : 백도오…. 역시 너밖에 없다.]

[백야 : 으악!]

유연이 감동이라며 백야를 끌어안자 댓글 창이 뒤집어졌다.

[지한 : 근데 왜 그렇게 멘트를 오래 끈 거야?]

[유연 : 다음이 생방송 무대였는데 갑자기 조명이 깨지는 바람에 지연됐어.]

[백야 : 조명이 깨졌다고…?]

유연의 품에서 겨우 벗어난 백야가 겁먹은 눈으로 되물었다.

[유연 : 그래도 다행이지. 무대 시작하고 깨졌으면 더 큰 사고 났을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제가 방송 사고를 낸 게 다행이라 하자 지한도 위로해 주었다.

[지한 : 너도 방송 사고는 아니었어.]

[유연 : 혀엉….]

유연이 또 한 번 감동 받은 얼굴로 두 팔을 벌리자, 지한은 재빨리 멀어졌다. 이 집 고양이는 사람을 가리는 편이었다.

한편 청과 율무는 너희가 그렇게 말하면 신나게 놀린 우리는 뭐가 되냐며 민망해했다.

[지한 : 쓰레기.]

[율무 : 에헤이~!]

[청 : 사실 나는 유연 잘했다 했는데 율무가 바나나라고 놀렸어. 진짜야.]

[율무 : 너 이리 와.]

유연과 민성에 이어서 청까지 저를 모함하려 들자 율무가 헤드록을 걸며 응징했다.

청이 발버둥 치며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게 일상인 듯 다른 한쪽에서는 차분히 방송을 이어 갔다.

[유연 : 대단한 바나나가 어쩌다 나오게 됐는지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켜 봤어요.]

- 옆엔 신경도 안 쓰는 것 봐ㅋㅋㅋㅋㅋㅋ 데망진창

- 한 명 걸리기만을 기다렸다가 건수 생기면 죽자고 놀리는구나ㅋㅋㅋㅋ

- 근데 이 시간에 왜 연습실이야?

- 민성이 양 갈래 아기 토끼 귀 같아서 오열 중ㅜㅜ

댓글은 다양했다.

멤버들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질문부터 유연의 의연한 대처를 칭찬하는 글들까지.

멤버들은 아무렇지 않게 소통을 이어 갔지만 유죄 나잉은 보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좌석 배치도를.

‘미친. 저거 좌석표 아니야?’

화면을 캡처한 유죄 나잉은 사진을 한계까지 확대했다.

흐려서 글자까진 알아볼 수 없었으나 돌출 무대의 형태까지는 확인이 가능했다. 이건 콘서트 좌석표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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