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 * *
- 이거 콘서트 좌석표 아닌가? 저 김칫국 한 사발 마시면 되나요? (유앱 캡처.jpg)
└ 미친 진짜 좌석푠데??
└ 통장 총알 장전 완료~
└ 여러분 id 공지 떴어요ㅜㅜㅜ 애들 콘서트 진짜래여ㅠㅠㅠㅠ 나 진짜 눈물나ㅠㅠㅠ
- 이 미친 콘서트 공지 떴다!!!
- 애들 유독 들떠 보였는데 콘서트 찐이었구나ㅋㅋㅋㅋ 활동기도 아닌데 연습실 왜 갔나 했더니 콘서트 연습이었음ㅜㅜ
- ID 애들이 사고 치자마자 황급히 공지 던진 거 넘ㅋㅋㅋㅋ 이런 스포는 대환영이니까 유앱 자주 켜줘
- ID 5월 대관 데이즈 콘서트였어ㅠㅠㅠㅠ 와이엠 아이 꾸라잉ㅠㅠ
- 티켓팅 벌써 무서워 제발
- 갑자기 애들 행동이 다 콘서트 스포로 보이기 시작함 (동영상)
- 애들 사고 친 게 아니라 원래 오늘 올리려고 했던 거 같은데?
- 공연명이 백일몽이요? 본새 오졌음
└ 백일몽 (Daydream) 한낮에 꾸는 꿈이란 뜻으로, ‘헛된 공상’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헛된 공상이라니.. 티켓팅 성공은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인 걸까
- 데이즈 백일몽 / 5월 5일, 6일, 7일 / 올림픽 공원 체조 경기장 / 티켓팅 4월 3일 20시
- 티켓팅 한 달 남았는데 개 떨려
“가랏! 햄스터!”
“당백이 저녁에 같이 판매왕 보기로 한 거 알지~?”
“백도, 올 때 맛있는 거.”
여느 날처럼 콘서트 연습을 하던 백야는 개인 스케줄을 위해 먼저 연습실을 나섰다.
오늘은 <가족 같은 사이>의 첫 대본 리딩이 있는 날이었다.
콘서트 연습, 컴백 준비, 음악방송 등. 빠듯한 스케줄 속에 연기 수업까지 더해진 탓에 볼이 반쪽이 됐지만, 행복 지수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남경이 형, 저 너무 떨려요….”
“잘할 거면서 엄살은.”
이런 자리는 처음이니 떨릴 수밖에.
<가족 같은 사이>의 대본 리딩은 방송국에서 진행됐는데, 백야가 제일 먼저 도착했는지 회의실엔 현장 촬영을 위한 막내 스태프뿐이었다.
“저… 안녕하세요.”
“앗. 일찍 오셨네요? 편하신 자리에 앉아 계시면 다른 배우님들도 곧 도착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인 백야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딱히 할 것도 없던지라 눈알만 굴리던 개복치는 손때가 묻은 대본집을 꺼냈다.
‘대사나 외우자.’
형광펜을 칠해 놓은 대사를 곱씹으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마침 큰누나 역할을 맡은 정아영 배우가 도착했다.
“어? 제가 일등인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
황급히 일어난 백야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백야는 시트콤 출연자들 중 가장 어린 나이로 막내였다.
“저는 데이즈 백야입니다.”
“안녕하세요.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네요. 저 정말로 팬이에요. 노래 너무 잘 듣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영이 다가와 손을 내밀자 백야가 부끄러워하며 두 손으로 맞잡았다.
백야는 이후로도 한 명씩 도착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댔다.
그 모습을 본 선배 연기자들은 신인 시절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럼 다 오셨으니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족 같은 사이>의 연출을 맡게 된 김감이라고 합니다.”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랜만의 대본 리딩인데 함께 힘내서 좋은 작품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끝나고 회식 있는 거 아시죠?”
“네. 압니다~”
“첫날부터 무슨 회식이냐며 싫어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옛날 사람이라 어쩔 수 없네요.”
감독의 농담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이어서 배우들의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삼 남매의 아빠, 설주석 역할을 맡은 설주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설한별 역할을 맡은 신한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열심히 박수를 치던 백야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얼른 일어났다.
“설백야 역할을 맡은 한백야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백야가 맡기로 한 역할의 이름은 도하였으나, 이는 캐스팅되기 전 대본 집필을 위해 임의로 쓰이던 이름일 뿐이었다.
백야가 출연을 확정 지은 지금은 그의 이름으로 변경되어 설백야로 거듭나게 됐다.
“그럼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 * *
[EP 02 #12 신선 고등학교]
종례가 끝난 교실.
하교 준비를 하는 백야의 옆으로 재욱이 다가왔다.
“내일 뭐 하냐?”
“내일? 집에 있어.”
“그럼 나와. 피시방이나 가자.”
내일은 5월 5일.
고등학생이 된 백야가 두 번째로 맞는 어린이날이었다.
“안 돼. 파티 있어.”
교과서를 챙기느라 생각 없이 대답한 그는 뒤늦게 자각하며 숨을 멈췄다.
“파티? 누구 생일이야?”
“…누나.”
“큰누님 생일은 지난달 아니었나? 네가 같이 선물 골라 달라 그래서 백화점 갔었잖아.”
“…작은누나.”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지. 월요일에 보자.”
가족 행사라는 말에 재욱은 의심 없이 순순히 물러났다.
[EP 02 #17 주석의 집]
설가네는 아침부터 파티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경☆백야의 날☆축]
“풍선도 달까?”
“애기는 파란색 좋아해.”
“조용히 해. 애기 깰라.”
이 집에 어린이가 있냐 하면 No.
이 집의 어린이는 올해로 18살이 되는 백야뿐이었다.
큰누나와는 10살 차이, 작은누나와는 7살 차이가 나는 백야는 설가네의 금지옥엽 막내아들이었다.
방문 너머로 들리는 소란스러움에 설가네 애기는 결국 잠에서 깨고 말았다.
뿌에엥!
울고 싶었지만 백야는 꾹 참았다.
‘성인이 되면 제일 먼저 어린이날 파티부터 없애야지.’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소원으로 어린이날 파티는 그만두자고 했지만 기각됐다. 아직 미성년자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빠, 케이크는? 예약했어?”
“당연하지. 딸기 케이크.”
“엥? 울 애기는 초코 좋아하는데!”
“내 새끼지 네 새끼냐? 애기 입맛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백야는 딸기를 제일 좋아해.”
애기의 취향을 논하는 소리가 들리길 잠시. 작은누나인 한별이 케이크를 찾아오겠다며 현관문을 나섰다.
“애기 슬슬 깨워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깨울게.”
방문 앞에서 소리를 엿듣던 백야는 엄마와 큰누나의 목소리에 침대로 몸을 날렸다.
철퍼덕-
불편한 자세로 눈을 감자, 문이 열리며 백야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백야야 일어나~”
“으응….”
막 깨어난 척 눈을 비비던 백야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얼른 세수하고 나와. 밥 먹어야지.”
“응. 나갈게.”
“어쩜 우리 애기는 순하기도 하지~ 다른 집 애들은 방에 들어오면 그렇게 성질을 부린다던데.”
백야의 볼을 토닥인 엄마가 먼저 방을 나섰다.
“애기야! 어린이날 축하해!”
잠시 후, 방문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아영이 막내를 끌어안으며 백야를 축하해 주었다.
“고마워 누나.”
“얼른 씻고 와. 한별이가 케이크 사 오면 파티 시작할 거야.”
“으응….”
잠시 후, 뽀송해진 백야가 테이블의 상석에 앉았다.
[경☆백야의 날☆축]
소파 뒤로 걸린 알록달록한 벽 장식과 풍선이 눈에 띄었다.
‘해가 지날수록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작년보다 장식이 화려해졌다.
‘괜찮아. 밖으로 새어 나가지만 않으면 돼.’
가족들이 행복하다는데 이 정도쯤이야. 친구들만 모르면 됐다.
“애기 고깔모자 써야지~”
아들 바보 주석이 어디서 잔망스러운 고깔모자를 가져와 막내의 머리 위로 씌워 주었다.
그러던 그때, 케이크를 찾으러 간 한별이 도착했다.
“나 왔어~ 애기 일어났어?”
“누나!”
모자를 쓴 백야가 방긋 웃으며 현관으로 마중을 나갔다.
“나랑 같이 가지. 심심하진 않았어?”
“큽. 내 새끼…. 역시 내 생각 해 주는 건 울 애기밖에, 아 맞다.”
눈물을 훔치는 척하던 한별이 뒤를 돌며 현관 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문틈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요 앞에서 애기 친구 만났어. 우리 파티하는 거 알던데? 네가 말해 줬다며.”
“……?”
“안녕하세요~ 백야 친구 재욱입니다. 초대받아서 왔어요.”
재욱은 한별의 케이크를 대신해서 들고 있었다.
“모자 예쁘다?”
재욱의 등장에 백야는 사색이 됐다.
“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나, 나가! 일단 나가서 이야기해.”
백야가 재욱을 현관 밖으로 밀어내며 당황해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눈에 띄어 버린 그를 쫓아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어머. 백야가 친구도 초대했어?”
“뭐? 우리 애기가 친구를!?”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이 집 애기의 하나뿐인 절친 이재욱입니다.”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들어와요.”
“넵. 그럼.”
재욱은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발을 벗었다.
“아니야, 벗지 마. 다시 신어. 신으라고 이 미친놈아.”
그러나 재욱은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들어오라고 하시잖아. 어른들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애기지?”
“…미쳤냐?”
“백야 애기~ 어린이날 축하해. 형아가 빈손으로 오긴 그래서 케이크는 내가 들고 왔어.”
“…….”
“이뽀 딸기 공주 케이크야.”
* * *
대본 리딩은 유쾌하게 끝이 났다.
이어지는 전체 회식은 상암동 근처의 고깃집에서 진행됐다.
서로 친분이 있는 선배 연기자들도 꽤 있었지만, 절반이 이번 작품이 데뷔작인 신인 배우들이라 분위기가 얼어 있었다.
“백야 님, 저희 같이 앉아요.”
“네. 좋아요.”
리딩을 하며 안면을 튼 재욱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이따가 셀카 한 장만….”
“지금 찍어요. 그리고 형인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럼 저희 같이 말 놓을까요?”
“좋아요.”
그렇게 시작된 회식.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많이 친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촬영장에서 뵙게 될 텐데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의 건배사가 끝나자 곳곳에서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알코올에 약한 개복치는 맥주 반 잔을 30분째 홀짝이고 있었다.
그사이 테이블을 돌며 술을 따라 주던 김 감독이 어느새 백야의 테이블 앞까지 다가왔다.
“제 술 한 잔씩들 받으셔야죠.”
신인 감독도 아니고 김 감독 정도면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될 텐데. 그도 이번 작품이 부담이 되긴 하는 모양이었다.
배우들이 공손히 잔을 내밀자 백야도 남아 있던 술을 재빨리 비운 뒤 내밀었다.
“백야 씨는 소주, 맥주?”
“저는 맥주요.”
감독의 거침없는 손길에 백야의 잔은 거품 하나 없이 노란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어디 그뿐이랴.
아슬아슬하게 찰랑이는 잔에 재욱이 ‘감독님께서 너를 많이 아끼시나 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복치는 감독을 향한 원망을 숨길 수 없었다.
‘씨이…. 너무해….’
몰래 감독을 노려보던 개복치는 그의 건배사가 시작되자 능숙하게 눈알을 컨트롤했다.
“자, 이번 잔은 무조건 원샷입니다. 건배!”
“건배~!”
원샷이라는 말에 질끈 눈을 감은 백야는 냅다 식도로 들이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