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경찰 불러억!!!]
인터폰 너머로 청의 비명이 들렸다.
“경찰 불러어~!”
고개를 비틀어 남경의 손을 떼어 낸 백야가 청의 말을 따라 했다.
제 직업이 언제 베이비시터가 됐는지 잠시 현타가 온 남경은 짧은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저 백수 될 것 같아요.’
품에서 사직서를 꺼내려던 남경은 지한의 목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남경이 형이잖아. 형, 열었어.]
도어 록이 자동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문고리를 당기자 현관 앞으로 모여드는 멤버들이 보였다.
“남경! 도둑인 줄 알았잖아!”
“놀랐잖아, 형. 왜 그러고 있어?”
“야, 됐고. 얘 기절을 시키든지 재우든지 너희가 알아서 해라.”
남경이 손을 떼자 만취 개복치의 봉인이 해제됐다.
“경찰 불러어~!”
“얘 왜 이래?”
“유여나아~ 내가 맛있는 거 사 와써어~”
고삐 풀린 개복치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집에 가야 한다고 울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에 남경이 혀를 내둘렀다.
“내가 왜 입을 막고 있었는지 이제 알겠냐.”
민성이 황당한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놀란 토끼의 눈에는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염병…. 술 마셨니?”
“내가, 내가 이거 유여니 주려고 사 왔는데에~ 아저씨가 50마리 안 된다 그래서 이거밖에 없어.”
“뭐라는 거야. 어우 술 냄새.”
실제로 술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의미였다.
한편 작년의 악몽이 떠오른 민성과 지한, 율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행이라면 유연과 청이 멀쩡하다는 사실이었다.
남경은 더는 이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망설임 없이 뒤돌았다.
“난 간다. 내일 10시에 데리러 올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
“어어…!”
그러나 백야가 그를 못 가게 붙잡았다.
“안 돼에~ 붕어빵 머꼬 가. 이거 먹고 나랑 같이 집에 가.”
“여기가, 네, 집이잖아.”
이를 악문 남경이 백야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제발 자라. 어?”
가까이 있던 지한의 품으로 떠넘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숙소를 떠났다.
“나 조까튼 사이 대본 리딩 하러 가야 되는데!”
“염병….”
“푸하하! 정말 우리만 보기 아까운 광경이다~”
민성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포기한 듯 보였고, 율무는 핸드폰으로 이 순간을 담고 있었다.
“내일 당백이 술 깨면 이거 보여 줘야지~”
촬영을 멈춘 율무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백야의 앞으로 다가왔다.
“당백이 여기서 잘 거야~?”
“아니야, 나 집에 가야 돼….”
“여기가 집인데?”
“아니야, 우리 집… 우리 집은….”
누나의 집을 떠올리던 백야가 멤버들을 발견하곤 술주정을 멈췄다.
“…나 언제 집에 와써?”
“남경이 형이 데려다줬잖아~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몇 잔이나 마셨냐는 말에 백야가 손바닥을 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나… 두울… 세엣….”
다섯을 넘어가자 유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정색했다.
“구라 치지 마.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주량이 갑자기 늘었다고?”
“뭐, 이씨. 나보다 못 마시면서…. 술찌리는 조용히 해.”
취하면 진심이 나오는 법이라고 백야는 유연을 얕잡아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참고로 그의 주량은 맥주 한 잔이었다.
“야, 너나 나나 도긴개긴이지.”
“당근 하지! 우리 다 비슷해!”
“넌 빠져. 어딜 끼려고.”
청이 은근슬쩍 둘 사이에 끼려 하자 유연이 선을 그었다. 청의 주량은 맥주 한 모금이었다.
“What? 멤버끼리 야박하네! 한국 인심이 이것밖에 안 되나?”
“어. 이건 자존심 문제야.”
내버려 두면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질 기세에 결국 형들이 나서기로 했다.
“야, 야. 떨어져. 왜 현관에서 이러고 있어. 너도 정신 차리고 빨리 들어와.”
“아니야!”
“그럼 여기서 날 샐래?”
민성이 이를 악물자 율무의 눈알이 도르륵 굴러갔다.
“당백이 일어나자~ 토끼 형 화나면 무서워. 알지? 아이고 무섭다~ 일어나, 읏차.”
이대로 놔두면 붕어를 한 마리씩 꺼내 바닥에 늘어놓을 기세에 결국 율무가 그를 들쳐 메기로 했다.
“들어서 옮기자. 내가 얘 들 테니까 네가 이것 좀 들어.”
“우옼!”
붕어빵 봉지를 유연에게 넘겨준 율무는 백야를 짐짝처럼 들쳐 멨다.
“나 토하꺼 같아….”
“형, 형! 얘 토할 거 같다는데?”
“뭐?”
“우욱….”
“아, 씨 미친! 토하는 거 아니야? 빨리 내려, 빨리!”
백야가 헛구역질을 하자 유연이 질색하며 소파를 가리켰다. 율무도 토는 무서운지 백야를 소파 위로 내동댕이쳤다.
“으갹.”
“아악! 햄스터!”
청이 비명을 지르며 백야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험하게 다룬 악당들을 향해 가만두지 않겠다며 삐약거렸다.
그러나 그의 반려동물은 멀쩡한 걸 넘어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커어어-
“햄스터 자…?”
청이 백야의 볼을 꾹꾹 눌러 보았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스케줄을 하러 나간 지 몇 시간 만에 술이 떡이 되어 돌아온 멤버에 모두들 기막혀했다.
“얘 없었으면 우리 심심해서 어쩔 뻔했냐.”
유연의 말에 모두가 주정뱅이를 바라봤다.
확실히 저희 팀의 분위기는 백야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큰 편이었다.
“됐고, 이리 와서 붕어빵이나 먹어. 방송도 곧 시작 아니니?”
“햄스터는?”
“자게 둬. 아까 그 텐션 감당할 수 있으면 깨우든가.”
민성의 어디 한번 깨워 볼 테면 깨워 보라는 협박에 청은 조용히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렇게 함께 보기로 했던 <판매왕>을 위해 거실에 모인 멤버들.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상태긴 했지만 백야도 함께이긴 했다.
“근데 왜 붕어빵이 아홉 마리밖에 없냐.”
한 마리씩 집고 나니 네 마리가 남았다. 유연이 의아해하자 지한이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오다가 흘린 거 아니야?”
좀 전의 추태를 봐선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붕어빵을 한 마리씩 들고 백야까지 보이게 인증 샷을 남긴 율무는 곧장 SNS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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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_Official]
데이즈는 다 같이 <판매왕> 본방사수할 준비 완료! 나잉이도 같이 봐요~ #오늘 밤 10시 본방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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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붕어빵 백야가 사 갔다는 그건가?ㅋㅋㅋㅋ
- 햄스터 취했다더니 뻗었네ㅋㅋㅋ 입 살짝 벌리고 자는 거까지 넘 귀엽다
- 담요도 덮어줬네ㅠㅠ 우리 애들은 천사야 증맬루..♡
- 뭘 팔았길래 1억씩이나 벌었냐... 근데 솔직히 저 얼굴이면 비닐봉지에 공기 담아서 5만 원에 팔아도 살 듯
└ 율무가 마셨던 공기 삽니다
- 예고편 이 장면 댕웃겼는데 드디어 볼 수 있다! 잼민이한테 아기 취급당하는 나나 귀여운 율무ㅋㅋㅋㅋ (동영상)
율무의 탑시드 홈마 유기농 율무는 간만의 스케줄 소식에 기분이 좋았다.
비록 따라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으나, 지인을 통해 그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장식품이나 다름없던 TV를 오랜만에 켜 보았다.
‘좋은 건 무조건 크게 봐야지.’
TV 뒤로 걸린 율무의 액자가 시선을 강탈했다. 그녀 인생의 최대 역작인 작년 NAN 쇼케이스 율무였다.
깔끔하게 넘긴 포마드 헤어스타일에 제복, 차가운 표정까지. 갓벽 그 자체였다.
그사이 마지막 광고가 끝나며 방송이 시작됐다.
[MC : 오늘 저는 이곳에 조명을 한 100개 정도 달아 놓은 줄 알았어요. 매번 오프닝을 찍는 곳인데 이렇게 밝았던 적은 처음입니다.]
오늘의 판매왕은 아이돌 특집이라는 자막과 함께 게스트들이 등장했다.
[율무 : 지친 삶에 비타민 같은 활력이 필요하신가요? For your day! 데이즈 율무입니다~ 안녕하세요~]
- 순수 무해 청정 무농약 무항생제 얼굴 공격에 정신 못 차리는 중 (율무 사진.jpg)
- 역시 나의 자양강장 boy..☆
최애의 등장에 핸드폰을 든 그녀는 스크린을 촬영해 SNS에 주접을 늘어놓았다.
- 유기농 율무 주접 오짐ㅋㅋㅋㅋ
└ 얘 홈 로고도 찐 유기농 마크잖아ㅋㅋㅋ
- 자기소개부터 끝났다...
- 살게요
- 쟤 ㅎㄹ이랑 같이 데뷔조 준비하지 않았나? 어째 금일이랑 더 친해 보이냐
[MC : 한 분씩 앞으로 나오셔서 마음에 드는 상자 앞에 서 주시면 됩니다.]
- 미친ㅋㅋㅋ 저래서 키즈카페 갔구나
- 어머니들 맞춤 공략
- 쪽쪽이 공개되자마자 실트 올리는 나잉이들 대단하닼ㅋㅋㅋ
게스트들이 물건 선택까지 마치자 SNS에는 율무의 상품을 언급하는 글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 달리기도 개 빨라ㅋㅋㅋㅋ
- 나율무 다리 이메다
그렇게 미션 장소로 향한 율무는 상가 입구에서 한 초등학생을 만났다.
[샛별 : 박박! 나율무?!]
[율무 : …으응?]
[샛별 : 나나 커! 짜짜 잘생겼잖아?!]
잼민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동공 지진이 온 율무와 그런 그를 귀여워하는 9세 나잉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샛별 : 내 동년배들 다 데이즈 좋아하는데.]
[율무 : 동년배? 아홉 살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 동년배 돌았나ㅋㅋㅋ 저 애기 몇 살이야? 나 율무 저렇게 당황한 거 처음 봐서 너무 웃겨ㅋㅋㅋㅋ
- 눈도 커서 눈알 흔들리는 거 진심 빠질 거 같아 가지고 무서움;;
- 짜짜? 나나, 박박이 뭔데?
└ 진짜, 존X, 대박~
- 율무 애기한테도 존댓말 하는 거 개 치인다ㅠㅠ
- 샛별이 매력 쩐다... 나율무를 정신도 못 차리게 하네ㅋㅋㅋㅋ
이어서 율무는 헤어지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샛별을 위해 음악 학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평소 멤버들을 챙기는 모습만 봐도 그의 다정함을 알 수 있었지만, 섬세하기까지 한 모습에 유기농 율무는 또 한 번 치이고 말았다.
[율무 : 우리 손 잡을까?]
[샛별 : 응!]
- 결혼해 줄 거 아니면 나 그만 꼬시라 했다....
- 나율무 존X 무기징역
SNS에는 그녀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나잉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는데, 이도 잠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샛별이 또 한 번 율무의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
[샛별 :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가 학원 데려다주는데.]
[율무 : 아~ 샛별이도 원래는 어머님께서 데려다주시는구나?]
[샛별 : 아닌데. 나는 엄마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