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그 순간 율무의 낯빛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다시 찾아온 인생 최대 위기에 고장 난 로봇처럼 뚝딱거리는데, 샛별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샛별 : 우리 엄마는 매일 회사 가야 해서 엄청 바빠.]
- 샛별이 탈룰라ㅋㅋㅋㅋㅋ
- 순간 나도 너무 당황했어;;
- 탈룰라ㅋㅋㅋ 나 너무 웃어서 눈물 나 진짜ㅜㅜ 나율무 눈 개 커져서 흐를 뻔했다고
- 율무 뇌 정지 온 거 개웃기네ㅋㅋㅋㅋㅋ
- 떡잎부터 다른 k잼민의 드립
- ‘엄마 없는데’ 할 때 율무 표정 진짜ㅋㅋㅋㅋ 모든 감정을 담고 있음 (율무 캡처.jpg)
- 저 애기 너무 귀엽다ㅠㅠ
- 엄마 드립 돌았나ㅋㅋㅋ 율무 3초 만에 늙어 버렸어ㅋㅋㅋㅋㅋ
- 바닥에 웅크리고 앉는 거 넘 귀여운 거 아니야? 186cm가 이렇게 귀여울 수 있냐고ㅜㅜ
[율무 : 샛별아아…. 율무 놀랐잖아….]
[샛별 : 왜?]
- 해맑은 거까지 완벽하다ㅋㅋㅋ
- 샛별이가 율무 데리고 노는데요ㅋㅋㅋㅋㅋㅋ
- 백야야 네 스승님 찾은 거 같다
자칫 대국민 사과문을 올릴 뻔한 율무는 안도하며 샛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율무 : 아니야. 율무가 오해했어. 미안해~]
[샛별 : (어리둥절)]
이후 샛별의 주도로 백야 토크를 이어 간 두 사람은 피아노 학원에 도착했다.
사인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가진 거라곤 핫팩뿐이라 율무는 얼떨결에 학원 안까지 들어서게 됐다.
[잼민1 : 우와! 키 엄청 크다!]
[잼민2 : 샛별이 형이에요?]
[잼민3 : 여자는 오빠야, 바보야.]
[잼민4 : 나 이 사람 봤는데! 아이돌 하는 사람. 너튜브에서 봤어요.]
잼민이들에게 둘러싸인 율무는 인기 폭발이었다.
샛별이와 친구들에게 사인과 인증 사진을 찍어 준 그는 한참 후에야 미션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상암 키즈 파크]
상암동에서 꽤 큰 규모의 키즈 카페에 들어선 그는 미션을 전달받았다.
[천사의 키스 일곱 번을 받으세요.]
자극적인 지령에 율무가 스태프를 바라보며 난감해했다.
[율무 : 죄송한데 저는 임자가 있는 몸입니다.]
[율무 : 이러시면 곤란해요.]
자신에게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나잉이가 있다며 팬들을 언급했다.
그렇게 스태프들을 향해 장난을 치던 것도 잠시. 금방 암호를 해석해 낸 그는 카페 매니저를 찾아갔다.
[율무 : 혹시 제가 안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놀아 줘도 될까요?]
[매니저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락과 함께 하사받은 유니폼을 입고 나온 율무는 미션 수행을 위해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율무 : 그런데 저 아까 천사의 뽀뽀 하나는 받았으니까 여섯 번만 받으면 되는 거죠?]
[제작진 : 아까 언제요?]
[율무 : 샛별이가 저한테 뽀뽀해 줬잖아요. 1층에서.]
[제작진 : 알겠습니다. 인정해 드릴게요.]
[율무 : 아싸~]
율무는 얼른 미션을 해결하고 영업을 뛰러 가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게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곧장 어린이 볼 풀장으로 향한 그는 능숙한 저글링 솜씨로 어린이들의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 저글링 뭔데ㅋㅋㅋ 왜 잘해?
- 율무 중학굔가? 고등학교 때까지 농구했었다며ㅋㅋㅋㅋ 그래서 공 잘 다루는 듯
- 애들이 저런 거에 또 환장하지
율무는 볼풀공 하나로 단숨에 키즈 카페의 스타가 되었다.
[율무 : 강민이, 형아한테 뽀뽀~]
쪽.
그렇게 여섯 번의 뽀뽀를 받아 낸 율무는 빠르게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율무 : 근데 이게 뭐지?]
[율무 : 무슨 마개인가?]
힌트는 물건의 실루엣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생소한 형태에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율무 : 큰일 났다. 나 오늘 판매왕 돼야 하는데?]
율무가 입술을 할짝대며 곤란해했다.
그러던 그때, 강민이 다가와 율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율무 : 강민이 왜~?]
[강민 : 우리 엄마가 형아 보고 싶대요.]
율무가 고개를 들자 근처에 모여 있는 어머니 무리와 눈이 마주쳤다.
[율무 : 잘 됐다. 가 보자.]
물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판매를 개시할 시간이었다.
강민의 손을 잡고 다가간 율무는 물건이 든 철가방을 내려놓으며 살갑게 인사했다.
[율무 : 안녕하세요~ 커피 드시고 계셨나 봐요. 저는 데이즈 율무라고합니다.]
[엄마1 : 너무 팬이에요.]
[율무 : 정말요? 감사합니다~]
<판매왕>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 중이라고 소개하자 곳곳에서 알은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2 : 물건 판매해서 기부하는 거잖아요.]
[율무 : 네, 맞아요. 한번 구경해 보실래요? 제가 봤을 때 우리 누나들 이거 하나씩 꼭 필요합니다.]
- 누나요?ㅋㅋㅋㅋㅋ
- 율무 장사할 줄 아네
- 1억의 비결 = 누나
- 자신의 팬층을 정확히 알고 공략할 줄 아는 남성...
- 얘 누나 팬 개많잖아ㅋㅋㅋㅋ
[엄마3 : 누나요? (웃음)]
[엄마2 : 살게요.]
[엄마1 : 저도 하나 주세요.]
아직 물건은 공개도 전인데 능글맞은 호칭 한 번에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율무 : 그래도 제가 뭘 들고 왔는지는 보시고 구매를 결정하셔야 하니까~ 궁금한 게 있으시면 마음껏 물어보세요.]
율무가 철가방을 열자 투명한 테이프로 고정된 쪽쪽이가 공개됐다.
그러나 물건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한 그는 아무 말 대잔치로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율무 : 이 물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정에 꼭 하나씩 있어야 하는 필수템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엄마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반응을 보이자 율무는 자신감을 얻었다.
[율무 : 저희 숙소에는 이미 여러 개가 있거든요.]
[엄마1 : 이게요?]
아이돌 숙소에 쪽쪽이가 있다는 말에 한 여성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율무 : 당연하죠. 일단 저도 애용을 하고요. 주로 자기 전에, 피로를 풀고 싶을 때 찾습니다.]
- 스케줄 끝나고 애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너무 웃어서 토 나올 것 같아
- 너희가 저거 쓸 일이 어디 있어 이 바보야ㅋㅋㅋ
보아하니 물건을 정확히 모르고 설명하는 듯한 모습에 엄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율무 :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엄마4 : 그럼 이걸 언제까지 사용할 예정이세요?]
[율무 : 글쎄요~ 아마 죽기 전까진 쭉 사용하지 않을까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현장 분위기는 갈수록 달아올랐다.
[엄마2 : 혹시 멤버들도 사용하나요?]
[율무 : 당연하죠. 골고루 돌아가면서 쓰긴 하는데, 저희 지한이가 거의 중독 수준으로 좋아합니다.]
[율무 : 해외 스케줄을 나갈 때도 이걸 찾아요. 지한이가 방에 안 보인다? 그럼 이걸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마3 : 어디서 사용하는 물건인가요?]
[율무 : 음…. 뭐, 혼자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엄마4 : 같이 써 보셨나요?]
[율무 : 같이요? 와우.]
잠깐 당황스러워하던 율무는 뻔뻔하게 대답을 이었다.
[율무 :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지한이가 싫어할 것 같아요. 저희 애가 보기와 달리 유교남이라~]
- 쪽쪽이에 유교까지 나와야 하냐고ㅋㅋㅋㅋ 쟤 지금 자기가 파는 물건이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 율무 지금 지한이한테 맞고 있다에 100원 건다ㅋㅋㅋㅋ
- 대체 이런 허술한 방법으로 어떻게 1억 매출을 올린 거야ㅋㅋㅋ
설명을 할수록 욕조 마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율무가 입술을 할짝댔다.
그렇게 엉성한 호객 행위 끝에 쪽쪽이를 5개나 판매한 그는 기분 좋게 미션 장소를 벗어났다.
[율무 : 시작이 좋은데요? 저 벌써 9만 원이나 벌었어요~]
- 물건 금액이 정해진 게 아니구나ㅋㅋㅋ 그냥 구매자가 내고 싶은 만큼 내는 거였네
- 그럼 저거 100원 내고 사도 되는 거네?
- 얼굴로 1억 모았다는 게 학계 정설
<판매왕>은 ‘기부’라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구매 금액은 구매자의 자유였다.
철가방을 든 율무가 쫄래쫄래 상암동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주친 두 번째 고객.
이번에는 여고생 무리였다.
[여고생1 : 꺄악! 미친!]
[여고생2 : 나율무 아니야? 나율무?!]
서로를 때리며 호들갑을 떨던 학생들은 율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율무 :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판매왕>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 중인데 잠깐 물건 좀 보고 가실래요?]
[여고생3 : 살게요!]
[여고생2 : 저도요!]
[율무 : 아이참~ 그래도 물건은 보고 구매하셔야죠.]
[여고생4 : 필요 없어요! 살게요!]
얼굴의 효과는 대단했다.
[율무 : 물건에 대해 궁금한 건 없으세요? 저한테 질문하실 수 있는데.]
율무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여고생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길 가다 최애를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로또인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여고생3 : 물건이 뭔데요?]
기다렸다는 듯 쪽쪽이가 공개되자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율무 : 일단 이 물건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숙소에도 여러 개 있….]
[여고생1 : 꺄아악!]
[여고생3 : 미쳤나 봐악!]
설명을 하면 할수록 격해지는 반응에 율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욕조 마개에 반응이 이렇게 좋을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급격하게 자신감을 잃은 그는 말을 좀 더 두루뭉술하게 하기 시작했다.
[율무 : 있… 을지도 모르는 물건으로써, 저보다는 저희 멤버들이 애용하는 물건이죠.]
- 갑자기 멤버 팔이ㅋㅋㅋ 뭔가 쎄함을 느낀 거지ㅋㅋㅋㅋ
- 애들은 무슨 죄야ㅋㅋㅋㅋㅋ
이 자리에 없는 멤버들을 팔기로 한 그는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여고생2 : 멤버 누구요?]
[율무 : 멤버? 어…….]
고민하던 율무는 제일 만만한 사람의 이름을 댔다.
[율무 : 백야가 이거에 미치죠. 이게 없으면 잠을 못 자요.]
반쯤 마음을 비운 율무는 이제는 아무 말이나 막 뱉고 보기 시작했다.
- 당백이 이름 나올 줄 알았다ㅋㅋㅋㅋㅋ 너 이제 백야한테 주거따
- 근데 좀 잘 어울릴지도..?
- 애기 애기하니까 백야가 진짜 애긴 줄 아나;; 저런 드립은 좀 안 쳤으면 좋겠는데
└ 물건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
[여고생1 : 미친. 존X 귀여워.]
[율무 : 제가 나오기 전에도 이걸 쓰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저희 당백이 귀여움의 비결이 바로 이거예요.]
그 순간 ‘데이즈 백야, 귀여운 비결은 쪽쪽이인 것으로 밝혀져…’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율무 : 어떻게, 좋은 일에 동참하시겠어요?]
율무가 윙크를 하자 나잉이들의 지갑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