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이게 대체 무슨 대화야.”
민성이 기함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사람 이름 아니고 줄임말이잖아. 이미 선택된 좌석. 한 번도 못 들어 봤어?”
지한과 백야가 살짝 의기소침해진 얼굴로 입술을 말아 물자 청이 득달같이 달려와 백야의 편을 들었다.
“왜 내 햄스터 기를 죽이고 그러나?”
“맞아.”
백야도 은근히 집사를 거들었다.
“내가 언제 기를 죽였어. 염병.”
백야와 청, 지한.
노답 삼 형제의 등장에 혈압이 소폭 상승한 토끼가 썩은 표정을 지었다.
“됐고. 너희는 떨어져서 앉아.”
팔을 저으며 세 사람 사이를 훼방 놓은 토끼는 백야만 챙겨 홀라당 튀어 버렸다.
민성은 멤버들을 잡아다가 자신의 마음대로 자리를 정해 주었다.
“여기가 네 자리.”
“어? 여기….”
실제 매니지먼트 팀이 사용하는 사무실이라 책상 위에는 개인용품이 놓여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덕진이 형 자리예요?”
“네.”
책상 한편에 놓인 액자를 발견한 백야가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덕진도 자신의 자리에 최애가 앉았다는 사실이 기쁜 듯 수줍어했다.
“너희 뭐 하냐….”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지켜보던 남경은 멤버들이 대충 자리를 정한 것 같자 촬영 버튼을 눌렀다. 티켓팅까지는 20분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촬영 시작했어. 떠들어.”
쿨한 지시에 율무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 아는 사람~”
“나! 나! 저요!”
율무의 진행에 청이 자리에서 폴짝거렸다.
“데이즈 콘서트 가려고!”
“딩동댕~”
이번 콘텐츠는 데이즈 멤버들의 콘서트 티켓팅 도전기를 담을 예정이었다.
“저희도 콘서트에 가려면 티켓이 있어야 하니까, 나잉이 여러분과 함께 도전해 보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민성의 깔끔한 정리에 백야가 박수를 쳤다.
“근데 티켓팅 해 본 사람 있어?”
지한의 물음에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만 주고받았다. 아무도 해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지.”
누가 물어봐 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유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멤버들의 앞에 섰다.
“티켓팅이 무엇이냐.”
손뼉을 치며 나름 진지한 분위기를 잡는 모습에 모두 유연에게 집중했다.
“이게 순발력이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런데 처음 도전했을 땐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하기가 힘듭니다.”
“너도 처음 아니야?”
“그래서!”
눈새가 초를 치려 했으나 유연은 못 들은 척 시선을 피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티켓팅 꿀팁을 알아 왔어요. 궁금해요?”
“당근 하지!”
“원해요?”
“네~ 원해요~”
사기꾼의 언변에 매료된 멤버들이 홀린 듯 유연을 찬양하고 있었다.
“자, 다들 받아 적으세요.”
유연이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알아 온 꿀팁을 오픈했다.
시계 켜 놓기.
미리 로그인하기.
새로 고침 하지 않기.
무통장 입금.
급하게 종이와 펜을 빌려 온 멤버들은 유연이 불러 주는 것들을 빠르게 받아 적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여러분, 전쟁에 나갈 때 제일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먹이!”
과연 명예 한국인.
반려동물의 밥부터 챙기는 모습에 유연이 크게 감탄했다.
“식량도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
총, 스피드, 갑옷 등. 수많은 대답이 나왔지만 개중에 유연이 원하는 건 없었다.
“작전을 세워야죠, 여러분.”
자신이 어느 구역을 가고 싶은지 확실하게 정해 두고,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해당 구역을 빠르게 클릭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그럼 나는 제일 좋은 구역.”
좌석 배치도를 보던 민성이 2층 중앙 구역을 집었다.
“나도 거기!”
“넌 다른 데 골라. 내가 먼저 찜했어.”
“치.”
청도 같은 구역을 탐냈으나 민성의 텃세로 인해 옆 구역으로 옮겨 갔다.
“여기가 무대랑 제일 가까운데?”
“거긴 스탠딩.”
“그럼 난 스탠딩 할래.”
백야는 스탠딩을 골랐다.
“그런데 우리가 잡은 표는 어떻게 해? 여섯 장이나 되는데?”
백야의 순진한 질문에 촬영을 지켜보던 매니저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추첨해서 나잉이들한테 줘야지~”
“그거 괜찮다.”
그렇게 각자 원하는 구역을 고른 멤버들은 5분을 남겨 두고 자신의 자리에서 집중할 수 있었다.
“…….”
책상에는 개인 캠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를 발견한 지한이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렌즈를 빤히 바라봤다.
뒤에서는 율무가 개인 캠을 두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ID에는 백야 이름을 세 번 외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요.”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
“이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여러분.”
잠깐이지만 백야가 경멸 어린 눈빛으로 율무를 노려봤다.
“주문은 당백이, 당백이, 당백이.”
아직까지 팔뚝에 물린 자국이 옅게나마 남아 있어서 가능한 깐족거림이었다.
그에 백야도 지지 않고 율무의 이름으로 장난을 쳤다.
“다른 버전도 있어요, 여러분. 나율무 바보, 바보, 바보.”
이제 누구의 주문이 더 효과가 좋은지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며 두 사람 사이에 귀여운 신경전이 오갔다.
[19:59:00]
어느덧 1분만을 남겨 둔 시간.
개인 캠을 향해 홀로 떠들던 멤버들도 긴장이 되는지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서버 시간을 알려 주는 페이지에서 정각 알림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9:59:58]
띵~!
[20:00:00]
버튼이 활성화되자 동시다발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들렸다.
* * *
- 좌석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 이선좌 15번은 더 당한 듯
- 대체 건진 사람이 있긴 해? 내 주변엔 망한 사람뿐인데???
- 지은 언니 덕분에 플로어 올콘 성공ㅠㅠ 사랑해 진짜♡
- 올콘 가는 사람? 일단 나 (청이 손 든 사진.jpg)
- 이선좌 한 번 당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포도알 사라지는 거 목격
└ 포도알이... 있긴 했어?
- 너희도 티켓팅해서 성공하면 무대 올라가ㅠㅠ 그럼 데이즈 없는 데이즈 콘서트가 되겠지...
- 티켓팅 망함 0.1초 컷이었음
- 대기 순서 20070번 실화냐ㅋㅋㅋㅋㅋ
- 시제석이라도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백야 뿌에엥 짤.jpg)
티켓팅이 끝남과 동시에 수많은 후기가 올라왔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은 건, 다음 날 올라온 데이즈의 콘서트 티켓팅 영상이었다.
[데이즈 콘서트 티켓팅 도전기]
제목은 평범했으나 섬네일이 심상치 않았다.
[이선좌가 뭐야? 대단한 사람이지~]
방패즈가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뒤로 보이는 ‘이선좌는 없다!’ 종이가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눌러 보지 않아도 섬네일에 합성된 자막은 저 둘의 대화가 틀림없었다.
[민성 : 드디어 데이즈의 첫 번째 콘서트. 데이드림 판타지! 무슨 뜻이죠?]
[백야 : 환상적인 꿈?]
[민성 : 맞습니다. 지금 저희가 방금까지도 콘서트 연습을 하다가 올라왔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상태가 조금….]
[율무 : 잘생겼는데요?]
[민성 : 합격. 100점 드립니다.]
[율무 : 감사합니다~]
드립이 마음에 들었는지 민성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연의 강의가 이어지고 본격적인 티켓팅 준비가 시작됐다.
[지한 : 저는 혹시 모르니까 핸드폰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미리 앱을 설치해서 로그인까지 마쳐 뒀다는 그는 개인 캠을 향해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청 : 오! 오! 1분 남았다!]
[유연 : 파이팅~]
[율무 : 당백이, 당백이, 당백이!]
왁자지껄하던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똑같은 창을 여러 개 띄워 놓은 백야의 모니터가 화면에 잡혔다.
[백야 : 들어가서 날짜, 시간, D. 날짜, 시간, D.]
백야는 자신이 해야 할 동작을 중얼거리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민성 : 5초, 5초!]
[민성 : 3초!]
[민성 : 2초!]
[민성 : 1초!]
돌덕들 PTSD를 오게 만드는 서버 정각 알림 음과 함께 마우스를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야 : ……?]
그러나 예매하기를 누름과 동시에 하얗게 변해 버린 창에 백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절대 새로 고침을 하지 말라던 조언에 따라 아방한 얼굴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백야 탈락]
- 아니 백야야ㅋㅋㅋㅋ 창을 여러 개 띄워놓으면 뭐 하냐고ㅋㅋㅋ
- 바부야 다른 거도 예매 눌러야지ㅜㅜ 나도 망해놓고 누구한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 존X 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
[민성 : 됐어. 됐어. 됐어.]
같은 시각 민성은 대기 번호가 뜨며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대기 번호 8500번.
예상 대기 시간은 1시간 12분 10초였다.
[민성 : 1시간 기다려야 해요?]
그러나 1분이 지났음에도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초조해진 민성은 새로 고침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말았다.
달칵-
그렇게 F5를 누르는 순간 눈에 띄게 줄어든 대기 번호 7012번.
순식간에 천 명이 줄어들었지만 그의 페이지는 다시 로딩되며 48995번이 되었다.
[예상 대기 시간 8시간 31분 54초]
[민성 : 아악!]
망했음을 깨닫고 뒤늦게 소리를 질러 보지만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민성 탈락]
멤버들을 놀리는 것 같은 발랄한 자막이 떠올랐다.
- 나 민성이랑 똑같이 망함ㅋㅋㅋㅋㅋㅋㅋ
- 백야 아직도 모니터만 보고 있냐고ㅋㅋㅋ 아니 이쯤 되면 너는 새로고침 한번 눌러볼 때 되지 않았니..?
└ 티켓팅 못해도 되니까 걍 들고 튀고 싶다ㅠㅠ
- 아니 근데 청이랑 율무 개 시끄러워ㅋㅋㅋ 입으로 티켓팅하냐고
[청 : 아악! 악! 제발!]
[율무 : 212! 198!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