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3화
* * *
“백야 씨.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쉿. 저는 지금 에임을 맞히는 중이에요.”
사격 선글라스를 낀 백야가 단아의 옆에서 분홍색 장난감 총으로 앞을 요리조리 조준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에임 구양의 솔로 무대 인터뷰를 위한 빌드 업이었다.
“아잇. 그만! 그만하세요.”
“왜요오….”
“백야 씨가 맞혀야 할 에임은 그 에임이 아니라고요.”
시무룩해하는 백야와 열심히 대본을 읊는 단아 사이로 구양의 얼굴이 보였다.
“그럼요?”
“바로바로~ 킹 갓 에임에서 더욱더 스페셜하게 솔로로 돌아온 구양 씨를 만나 볼 차례라고요.”
“구양 선배님이요? 얼른 만나 봐요!”
“어서 오세요~”
우유즈가 옆으로 비켜서며 자리를 터 주자 구양이 흐뭇한 얼굴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구양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구양 선배님. 에임에서 솔로로 데뷔하신 기분이 어떠세요?”
능청스레 질문하던 백야는 구양과 눈이 마주치자 수줍어했다.
“어~ 일단 첫 솔로라 그런지 조금 떨리고 긴장되지만, 그래도 우리 마크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하고 기쁩니다.”
구양은 정면 카메라를 향해 손 하트를 만들며 능숙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사이 큐카드를 본 단아가 질문을 이어받았다.
“네. 그럼 구양 씨의 스페셜한 솔로 데뷔곡, 체인(Chain)은 어떤 곡인가요?”
“타이틀곡 체인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R&B 곡이고요. 상대방에 대한 집착과 강한 이끌림을 성숙하게 표현한 곡입니다.”
“와우~ 정말 굉장합니다.”
구양의 곡 소개가 끝나자 백야가 기다렸다는 듯 리액션을 취했다.
그러나 너무 성급했는지, 다소 기계적으로 느껴져 구양과 단아가 실소를 터뜨렸다.
“저기, 백야 씨. 정말 굉장한 거 맞아요?”
구양이 백야의 어깨를 짚으며 농담하자 백야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네? 네! 정말 굉장한….”
“아닌 것 같았는데?”
“아니에요! 정말 굉장해요!”
백야가 도리질 치며 격하게 부정하자 구양이 폭소했다.
‘리허설 할 때는 이런 멘트 없으셨는데…?’
백야는 잠시 멘붕이 왔다.
저를 놀리는 구양과 얼른 다음 멘트를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갈등하던 백야는 이내 큐카드를 들어 올렸다.
“퍼, 퍼포먼스 하시면 구양 선배님이시잖아요? 그리고 1위 데뷔와 동시에 솔로 후보, 아니….”
“미안해요. 안 놀릴게요.”
말실수를 한 게 부끄러운지 백야가 큐카드로 얼굴을 가렸다 떼어 냈다.
“데뷔와 동시에 1위 후보에 오르셨는데요. 만약 1위를 하게 된다면 어떤 세리머니를 보여주실 건가요?”
빠르게 페이스를 되찾은 백야가 꿋꿋이 대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놀리지 않겠다는 말은 거짓이었는지 구양의 입꼬리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했다.
“오늘 1위를 하게 된다면 무대 위에서 하나씩 벗겠습니다. 백야 씨와 함께.”
“느에?”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공약에 백야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단아도 그런 백야의 반응이 우스운지 웃음을 참으며 힘겹게 다음 멘트를 이었다.
“그럼 구양 씨의 무대 스포를 안 볼 수가 없겠는데요. 혹시 이번 무대의 안무를 직접 배워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백야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구양은 포인트 안무를 가르쳐 주었다. 치명적인 느낌이 가득한 웨이브 동작이었다.
“바로 해 볼까요?”
구양의 목소리에 곡의 하이라이트 구간이 재생됐다.
곡이 시작되자 표정이 돌변하는 구양과 달리, 백야와 단아는 수줍은 웃음을 띤 채 웨이브 동작을 소화했다.
“우와아~”
“와~ 너무 멋있습니다~”
우유즈가 영혼을 가득 담은 리액션을 보이자 구양이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또 첫 솔로 앨범이라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앨범을 들을 때 여기에 집중하면 더 좋다! 하는 포인트는 어떤 게 있을까요?”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돌아보자 구양이 미소 지었다.
“개인적으로 데이즈 지한 씨와 함께한 곡이 이번 앨범의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쇼플리에서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니까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와~ 정말 기대되는데요. 그럼 구양 씨의 무대는 언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그전에, 갓식스의 무대를 먼저 만나 보시겠습니다.”
“뮤직~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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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 놀리는 거 세젤잼
- 선배분 백야 놀리는 거 봐ㅋㅋㅋㅋㅋㅋ (동영상)
- ID 단체로 복숭아에 미쳤다는 게 업계 정설 (동영상)
- 구양 체인 챌린지 지한이 백야랑 같이 췄네ㅜㅜ 근데 말랑 복숭아는 어디 가고 음기 딱복이;;
- 빵실빵실 웃다가 노래 시작하니까 표정 바뀌는 거 미쳤다 (백야 갭 차이 짤.gif)
- 음기 그 잡채에 낀 양기 (구양 사진.jpg)
- 구양 님 연차 높다고 방송국에 고양이 막 데리고 와도 돼요? (지한 구양 셀카.jpg)
- 선배분 무대 하려면 아직 멀었지? 씻고 와야겠다
구양이 컴백 스테이지 인터뷰를 하러 간 사이 지한은 홀로 남아 있었다.
대기실 모니터에선 구양의 장난에 쩔쩔매는 백야가 생방송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기가 빨리는 것으로 치자면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연하야. 나 여기 숨어 있을까? 우리 휴가 나온 거 말 안 했지?”
“안 했어. 그러지 말고 우리 몰래카메라 할래? 지한아, 구양이 들어오면 네가 갑자기 쓰러져라.”
“…….”
대기실에는 구양의 솔로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에임 멤버들 때문에 지한이 곤란을 겪고 있었다.
군인 신분의 시윤과 연하는 멤버의 스케줄에 맞춰 휴가를 나온 참이었다.
“꽃 다 떨어지잖아.”
“괜찮아~ 꽃다발인 거 알아보기만 하면 됐지.”
꽃다발을 든 채 소파 뒤에 숨었다, 옷장에 숨었다를 반복하는 시윤 때문에 바닥엔 꽃잎이 수북했다.
“지한아, 줍지 말고 그냥 둬.”
“아니에요. 바닥 더러워지잖아요.”
원래도 말이 없는 편인 지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꽃잎만 줍고 다녔다.
“이 아저씨들이 왜 애를 괴롭히고 그래. 너 이리 와.”
“어쭈~ 대환이 이제 선배 됐다 이거야?”
“그러고 보니까 너 얘네한테 곡도 줬더라? 뮤비 대박이던데?”
“내 마음이야.”
그래도 일곱 명 중 세 명만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멤버들까지 있었더라면 이 정도 소란은 소란도 아니었을 테니까.
“…….”
그렇게 E 사이에 낀 I처럼 지한은 점점 말라 가고 있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실시간으로 기가 빨려 나가는 모습이 보이는지, 보다 못한 남경이 도와주었다.
“지한이 너 무대 올라갈 준비해야지. 화장실 안 다녀와도 돼?”
“다녀와야 해요.”
대기실을 벗어날 수 있는 찬스에 순간 지한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냉큼 구원의 손길을 잡은 지한은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백야도 없는 지금, 남경마저 없었더라면 기가 다 빨려 무대에 올라가 가사를 절 뻔했다.
‘손이나 씻자.’
시윤이 흘린 꽃잎을 하도 줍고 다녔더니 손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게 보였다.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방송국 복도를 걷는데, 순간 맞은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는 식스에이엠과 매니저가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주하가 선뜻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가볍게 고개를 숙인 지한은 그대로 지나쳐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러나 주변 시선을 의식한 하랑이 슬쩍 지한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지한아, 뭐가 그렇게 바빠. 여기는 어쩐 일이야? 백야 따라왔어?”
하랑이 친한 척 말을 걸자 그제야 지한의 눈길이 그에게 닿았다.
‘언제더라. 지난주쯤이었던가.’
<판매왕> 녹화를 끝내고 밤늦게 돌아온 율무는 지한과 민성에게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백야가 하랑에게 꽤 오랜 시간 괴롭힘당해 왔다는 사실을.
“그게 사실이야?”
“누구한테 들었는데.”
“금일이. 에이 씨. 난 그것도 모르고 당백이 앞에서 그 형 인사 다 받아 주고, 등신같이 웃기나 하고.”
짜증이 나는지 율무가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얼굴을 구겼다.
뒤늦게 합류한 백야가 저희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뒤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친한 척을 하나 했더니 속셈이 있었네.”
곱씹을수록 괘씸한지 민성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화를 삭였다.
“그래서. 나율무 넌 오늘도 바보처럼 실실 웃다 왔고?”
“아니? 이거 왜 이래~ 나도 한 성격 해. 감히 당백이를 건드려?”
율무가 주먹을 쥐며 으스대자 지한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하랑이 ID에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새로 들어온 연습생들. 특히 어리고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을 못살게 굴곤 했다.
ID 연습생 중 하랑에게 당하지 않은 자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민성이 유일했다.
“율무야. 유연이랑 청이한테는 말하지 마.”
“안 해. 그래서 형이랑 지한이만 부른 거야.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특히 외국어 능력까지 갖췄던 청은 하랑에게 집요하게 괴롭힘당해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민성이 유독 청이에게만 약하게 구는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뻔뻔한 새끼.’
하랑이 얼마나 여우 같은 놈인지 아는 지한은 그의 욕심 많은 눈을 지긋이 바라봤다.
다른 애들이야 마음이 약해서 인사를 받아 줬을지 몰라도, 지한은 단 한 번도 그의 인사를 받아 준 적이 없었다.
‘이놈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 앞에서 자신을 붙잡았다는 건, 저도 제 앞에선 어쩌지 못할 거라는 확신 때문인 건가, 기분이 나빠졌다.
지한이 잡힌 손목을 내려다보자, 하랑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 콘서트 한다며. 당연히 초대해 줄 거지? 우리 애들까지….”
그러나 지한은 손목을 비틀어 빼며 하랑의 말을 끊었다.
“티켓은 저희 매니저 형한테 물어보세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주변이 싸늘해졌다. 친한 척 떠들던 하랑도, 그의 곁에 어색하게 서 있던 멤버들까지도.
그러나 지한만큼은 태연했다.
“아. 그리고.”
하랑의 어깨를 짚어 제 쪽으로 당겨 온 지한은 그의 귓가에 나직이 경고했다.
“백야 한 번만 더 건드려 봐.”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이 하랑의 속을 꿰뚫어 보듯 뜨겁게 꽂혔다.
“…뭐?”
“알아 들었잖아. 나도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해.”
“너…!”
“친한 척도 좀 작작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