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 * *
- 지한이 구양 노래 피처링한 거 너무 좋아서 고막 닳을 때까지 듣고 있음
- 역시 한지한 목소리 치트키
- 솔직히 다른 멤한테 묻혀서 그렇지 얘만한 사기 캐도 없음. ID상에 랩 하이 클래슨데 보컬 되지, 거기다 춤까지 잘 춤 (동영상)
└ 한지한 메인 래퍼, 메인 댄서, 메인 보컬, 메인 비주얼
- 리와인드 지한 소년에서 갑자기 남자가 돼서 나타남. 랩 파트 미쳤는데? (동영상)
- 지한 랩 받아쓰기도 쌉 가능한 딕션이 미쳤음...
- 31초 나왔는데 무대를 뒤집어 놓으심 (동영상)
MC석에서 지한의 무대를 지켜보던 백야는 잠시 후 1위 발표를 위해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전 출연진이 올라오고 백야의 옆에는 오늘의 1위 후보인 구양이 서 있었다.
“과연 1위는 누가 차지하게 될지, 점수 공개해 주세요.”
모니터 위로 구양과 1위 후보 그룹의 모습이 나란히 보였다.
각종 점수와 함께 생방송 투표까지 합산된 점수가 공개되자 팡파르와 함께 꽃가루가 터졌다.
“구양 씨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릴게요.”
백야가 트로피를 건네자 구양이 활짝 웃으며 받아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마크 여러분 너무 감사드리고요. 누구보다 저를 응원해 준 우리 에임 멤버들 너무 고맙습니다.”
1위를 할 거라 예상했는지 구양의 소감에는 막힘이 없었다.
짧은 소감이 끝나고 타이틀곡 체인의 반주가 흘러나오자 출연진들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야도 단아와 함께 무대를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불쑥 튀어나온 손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끄악…!”
“어딜 가려고~ 여기 있어야지.”
백야가 기우뚱거리며 팔을 파닥거리는데 맞은편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어?”
방송을 진행하느라 에임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된 백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삿대질했다.
다가오는 대환과 지한의 뒤로 모자를 눌러쓴 시윤과 연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양아 1위 축하해~”
“멋지다~!”
군인 신분이라 카메라 앞에 설 수 없는 두 사람은 계단에 멈춰 서서 팔을 흔들고 있었다.
“저기 시윤 선배님이랑 연하 선배님이야?”
“응.”
대환이 구양의 옷을 벗기며 1위 세리머니가 한창일 때, 지한과 백야는 눈치껏 옆으로 비켜나 복화술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메인 카메라의 불이 꺼지자 시윤과 연하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와아아~”
공식적인 방송은 종료됐고, 지금부터 촬영되는 영상은 쇼플리 너튜브에서만 볼 수 있기에 괜찮다는 것 같았다.
“한백야. 우리도 내려가자.”
“응.”
수줍게 박수를 치던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며 이만 내려가 보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짓궂은 선배들은 두 사람을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어딜. 연하야 쟤네 잡아라.”
“백야야, 아까 공약 같이하기로 했잖아. 대기실에서 다 봤는데?”
“네? 아니, 저는….”
연하와 시윤에게 잡힌 백야가 흔들리는 눈으로 지한을 바라봤다.
‘살려 줘!’
그러나 지한도 이들 앞에서는 힘이 없었다.
“확실히 저보다는 백야가 벗은 걸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를 팔아넘기는 모습에 백야가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나쁜…! 아악! 아니, 잠깐만요! 잠깐!”
“약속은 지켜야지~”
백야의 니트 조끼를 훌러덩 벗겨 버린 시윤은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고 있었다.
“끄악! 아니야, 이거 안 돼! 살려 주세요! 저 아직 배에 왕 자가 없… 콜록, 콜록!”
“푸하하! 얘 뭐라는 거야?”
“지금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이거, 막, 어? 막 이렇게 벗으면 팬들이 싫어할 거예요.”
어떻게든 노출을 피하기 위해 백야는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다.
“얘가 어려서 아직 뭘 모르네. 팬분들은 이런 걸 더 좋아하셔.”
“아니야! 우리 나잉이는 아니에요! 저 배에 진짜 아무거도 없…. 그, 근데 지한이는 조금 있어요. 쪼금!”
지한이는 배에 복근이 있다는 말에 에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무슨…. 저 없어요.”
“그럼 우리가 한번 볼게.”
“진짜 없어요. 야, 한백야.”
“희미하게 있어요! 쟤 거짓말하는 거예요.”
“형들이 볼게~ 보고 없으면 포기할게.”
“오, 오지 마세요.”
저를 향해 뻗어 오는 악마의 손길에 지한이 정색하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사이 풀려난 백야는 뒤돌아 자신의 배를 확인했다.
‘없어. 없어.’
복근은커녕 뽀얀 배에는 선이 생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근데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시작은 퀘스트 때문이었지만 슬슬 오기가 생기는 백야였다.
누가 볼 새라 삐져나온 셔츠를 대충 바지 안으로 쑤셔 넣은 그는 아무 일도 없던 척 시치미를 뗐다.
“야, 이…! 한백야!”
형들에게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있는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자 개복치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응. 안드끼오.’
* * *
구양의 앵콜 무대가 끝나고 아래로 내려온 두 사람은 나란히 화장실로 향했다.
구양의 대기실에서는 2차 축하와 에임의 라이브 방송이 한창이었고, MC 대기실에는 단아가 있어서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거울 앞에 선 지한과 백야는 투닥거리며 각자의 모습을 정돈하고 있었다.
“한백야 그렇게 안 봤는데.”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뭐, 나잉이들은 내가 벗은 걸 더 좋아할 거라고?”
백야가 흘겨보자 지한이 뻔뻔하게 받아쳤다.
“당연한 거 아니야? 원래 너처럼 순진한 애들 벗겨 먹는 게 제일 재밌거든.”
“이 나쁜….”
빌런이나 할 법한 대사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다니.
또라이는 역시 또라이라며 백야가 질색했다.
“민성이 형한테 다 말할 거야.”
하나 마나 한 하찮은 협박에 지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건 잘만 이르겠다고 하면서 그때는 왜 아무 말 안 했을까.
지한이 시선을 돌리자 소매를 빨고 있는 백야가 보였다.
“씨잉…. 이거 협찬이라 그랬는데.”
몸부림을 치다 메이크업이 묻은 것 같았다. 비누를 묻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몰락거리는데, 마침 지한이 백야의 이름을 불렀다.
“한백야.”
“왜.”
“괴롭히는 놈 없어?”
오염된 부분을 세탁하던 백야가 얼굴을 찡그렸다.
“저번에도 물어보지 않았어?”
“네가 말 안 해 줬잖아.”
“없으니까 안 했지.”
“있잖아.”
지한의 눈엔 확신이 어려 있었다.
‘혹시 저리를 말하는 건가?’
그렇지만 그놈은 같이 처리하지 않았던가. 이 화장실에서 함께.
“혹시 저번에 그 일 말하는 거야? 그 뒤로 그런 일 없었어. 아무도 나 무시 안 해.”
오히려 친해지려고 안달이지.
그러다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진 백야가 손뼉을 치며 놀란 척을 했다.
“아! 생각났다.”
“그래? 누군데.”
“너.”
심각한 척 분위기를 잡던 백야가 혀를 내밀곤 도망쳤다. 순간 어이가 없어진 지한은 헛웃음을 치며 백야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러다 얼마 안 가 화장실 문이 다시 열렸다.
지한은 백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지만 들어서는 이는 하랑이었다.
“…….”
못 본 척 시선을 내린 그는 묵묵히 손을 씻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하랑은 그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지한에게 다가왔다.
“이제 쌩까려고?”
“원래 깠는데. 둔한가 봐.”
지한이 시선도 주지 않으며 받아치자 하랑이 입술을 짓씹었다.
“방송국에 보는 눈 많아. 이러면 너만 곤란해질 텐데.”
“비켜. 길막하지 말고.”
하랑이 지한의 심기를 어지럽히기 위해 비아냥거렸으나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방법을 바꾸기로 한 듯 하랑은 백야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백야 말이야.”
역시나 지한은 반응을 보였다.
“수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하랑의 말 한마디에 멀어질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자신과 백야를 두고 이간질을 하려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듯 지한이 살벌한 기세를 뿜어냈다.
“또 무슨 개수작인데.”
“내가 봤거든.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걸.”
“미쳤냐?”
“네 눈에는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거로 보여?”
형형한 기세로 노려보던 지한은 이어지는 하랑의 말에 잠시 망설였다.
“왜. 짚이는 게 있긴 한가 보지?”
“입 닥쳐.”
“한지한. 백야 그 새끼가 너희한테 뭘 숨기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 * *
콘서트 D-7
[호메 : (사진)]
“꺄악!”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던 복쑹은 호적 메이트의 연락을 받고 비명을 질렀다.
사진 속 손이 들고 있는 종이는 데이즈의 콘서트 티켓. 그것도 무려 ‘멤버 가족석’이라 적힌 초대권이었기 때문이다.
[나 : 미친 존X 사랑해ㅠㅠㅠㅠ]
[호메 : ?? 갑자기 기분 더러워짐]
[나 : 진짜 진짜 사랑해ㅠㅠ]
[나 : 올라만 오면 누나가 맛있는 거 다 사줄게! 말만 해 내 동생♡]
티켓팅에서 겨우 중콘과 막콘 스탠딩을 건진 복쑹은 그간 공들였던 남동생의 덕을 볼 순간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호적 메이트는 민성에게서 첫 번째 날 콘서트 초대권을 받아 오며 치킨값을 해내는 데 성공했다.
[호메 : 동생?]
[나 : 오빠♡]
물론 남동생도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30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동생 취급을 당하던 그는 복쑹과 합의 끝에 서열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따위 호칭. 2층 중앙 초대석과 바꿀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호메 : 금요일 점심 ktx 타고 올라갈 거야. 3시쯤 도착]
[나 : 그럼 나 올공에서 지인들이랑 먼저 놀고 있을게! 오면 전화ㄱ]
신이 난 복쑹이 광대를 숨기지 못하고 손가락을 놀리는데, 룸메이트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기 있잖아….”
“응!”
“혹시 이번 주 금요일에 친구 한 명만 기숙사에서 재워 줘도 될까? 밤늦게 들어와서 정말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