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65화 (265/340)

제265화

“이번 주?”

복쑹이 되묻자 룸메는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금요일에 친구랑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지방에 사는 친구라 늦게 마치면 잘 곳이 없어서.”

“콘서트?”

제가 알기로 이번 주에 열리는 콘서트는 데이즈뿐이었다.

‘설마 이 언니…?’

코앞에 나잉이를 두고 몰라보고 있었던 건가.

복쑹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데이즈…?”

“어? 어떻게 아는…?”

“미친. 언니! 나도 그거 가!”

복쑹에게 덕밍아웃을 당한 룸메는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너도 데이즈 좋아해?”

“너도라니, 난 복숭아 데뷔하자마자 잡았지. 와 소름. 미쳤다. 콘서트 언제 언제 가? 나는 올콘!”

“올콘?”

“금, 토, 일, 다 간다고.”

시윤뷘의 특강으로 복쑹은 진정한 덕후로 거듭난 지 오래였다.

“대박. 표 어떻게 구했어?”

“표? 그냥… 친구랑 남동생이 도와줬어.”

무려 멤버 초대석이라고, 잘하면 애들이랑 인사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자랑하고 싶었으나, 저도 얹혀 가는 처지에 혹 하나를 더 붙일 수는 없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좋겠다. 나는 금요일 공연만 가.”

“언니, 현판 뛰어. 무조건 풀린대. 나도 첫콘 티켓 못 구하면 뛰려 했거든?”

“현판? 그게 뭔데?”

“현장 판매 티켓.”

복쑹은 첫째 날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줄을 서면 거뜬히 건질 수 있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니? 언니 애들 실물 보잖아? 마음 무조건 바뀜. 내가 전 재산 건다.”

“줄을 어디서 서는데?”

“올림픽 공원이지. 다음 날 아침 9시? 그때까지만 서 있으면 돼.”

밖에서 밤샘을 해야 한다는 말에 룸메가 경악했다.

“그건 노숙이잖아.”

“생각보다 시간 금방 가. 언니 첫 콘 구역이 어딘데?”

“3층. 앉아서 볼 수 있어.”

하나님 석을 들고도 이렇게 해맑다니. 이 언니 아무것도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이거 무조건 스탠딩으로 교환해.”

“스탠딩? 아니야, 나는 앉아서 보는 게 좋아.”

“언니, 최애가 누구야?”

“나 백야!”

소름 돋게 최애까지 겹치고 난리였다.

“여기선 백야 뒤통수는커녕 머리카락도 구경 못 함. 아니다. 그냥 내가 바꿔 올 테니까 무조건 스탠딩으로 가.”

* * *

“쓰리, 투, 원, 고.”

“잠깐만! 잠깐만요옥!”

떼구루루-

리프트를 타고 날아오른 백야가 착지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지자 율무가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

“힝. 내가 잠깐만이라고 했는데….”

“아~ 귀엽다 진짜. 우리 당백이 겁먹어쪄요~?”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도 웃음을 터뜨리며 백야를 놀려 댔다. 앉아 있는 자세가 비련의 여주인공 포즈라 더 우스웠다.

“네가 겁먹어서 그래~ 타이밍 맞춰서 올라올 때 같이 뛰어야지.”

“그게 안 되는데 어떡해.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예요?”

백야가 울상을 지으며 슬퍼하자 청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 도전!”

공연을 이틀 앞둔 데이즈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리프트 등장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대로면 콘서트 당일에도 혼자만 나동그라질 것 같았던 백야는 진심으로 심각해졌는데. 이때 우등생이 시범을 보여 주겠다며 나섰다.

“잘 봐, 햄스터야!”

“쓰리, 투, 원, 고.”

그러나 카운트가 끝났음에도 청의 리프트는 올라오지 않았다.

“왜 안 올라와?”

백야가 의아해하며 청이 사라진 리프트 쪽을 바라봤다.

“청 씨, 올려도 돼요?”

“Oh my god. Wait!”

아래서 뭘 하는지 청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이야!”

“3번 리프트 다시 갈게요. 쓰리, 투, 원, 고.”

두 번째 시도 만에 리프트가 올라왔다.

그러나 높이 튀어 오르며 등장할 거란 기대와 달리 얌전히 나타난 청은 케이크를 든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햄스터~”

오늘은 5월 3일.

멤버들이 준비한 백야의 깜짝 생일 파티였다.

“뭐야? 아침에 숙소에서 해 줬잖아.”

“이건 스태프분들이 준비해 주셨지.”

유연이 주위로 몰려든 스태프들을 가리키자 백야의 턱에 호두 한 알이 자라났다.

“너무 감사해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러나 감동은 5분을 채 가지 못했다.

“복숭아 케이크~”

손가락으로 생크림을 떠 백야의 볼에 묻혀 버린 감동 브레이커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눈물 한번 뽑아 보겠다고 앞장서서 몰래카메라를 기획했을 텐데. 코앞까지 다가온 콘서트에 다들 여유가 없긴 한 모양이었다.

“나율무, 그만하고 앉아. 이거 먹고 잠깐 쉬었다 하래.”

어디선가 나무젓가락을 받아 온 지한이 케이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편하게 앉았다.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앉은 데이즈는 전투적으로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맛있다. 이거 어디 거야?”

“몰라? 덕진이 형이 줬어.”

다들 허기졌는지 케이크는 금세 바닥났다.

배가 부르자 노곤해진 멤버들은 하나둘씩 바닥 위로 몸을 눕혔다.

물티슈로 대충 얼굴을 닦은 백야도 발라당 몸을 뉘었는데, 그 순간 천장에 달린 수십 개의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다 몇 개야….’

저 중 하나가 떨어질 거라는 사실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왔다.

‘아니다. 하나면 다행인가.’

백야는 며칠 전에 뜬 퀘스트로 자신의 머리가 깨질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Q. 천재 아이돌(5) : 인기 아이돌의 성공 지표! 단독 콘서트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바로 공연장이라는 사실 아시나요? 그럼 부디 무사히 공연을 마쳐 보세요~ ⸜(*ˊᗜˋ*)⸝

※ 실패 시 패시브 강화]

시스템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대놓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치. 지옥에선 언제 죽을지 모르지. 이 망할 놈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백야가 머리를 감싸며 낑낑거렸다. 그러다 안 좋은 생각을 떠올리곤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근데 나 대신 애들이 맞으면 어떡하지?’

그룹이다 보니 동선이 초 단위로 바뀔 텐데, 꼭 제가 맞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자칫하다 애꿎은 멤버가 휘말리기라도 하면 그건 그거대로 큰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백야는 진심으로 심각해졌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백야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지한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냥.”

최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려 버리는 지한을 몇 번이나 목격했는지. 한두 번도 아니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심약한 개복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

백야가 땅굴을 파려는데 마침 호랭이가 그를 불러냈다.

“백야야, 이리 와 봐.”

“넵!”

분홍색 머리가 무리를 이탈하자, 지한은 금방 시선을 거두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백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장을 올려다보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 * *

D-Day

“백야!”

최애의 이름을 외치며 기상한 복쑹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는 기적을 선보였다.

오늘 수업은 자체 휴강.

자기 전 미리 골라 둔 옷으로 갈아입은 복쑹과 룸메는 아침 일찍부터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호적 메이트가 오기 전까지 끝내 놔야 할 일이 많았다.

콘서트 굿즈 구매.

무료 나눔.

포카 교환까지.

새벽부터 움직인 보람이 있는지, 한없이 가벼웠던 에코백은 어느덧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겨우 잡은 카페에 짐을 풀고 앉은 그녀들은 구매한 굿즈를 개봉하며 수다가 한창이었다.

“미친. 이거 완전 그리스 남신과 선과 아니야? 복숭아가 신의 과일이잖아.”

“백야만 분홍색 옷 입은 거 보면 빼박 복숭아다.”

“와…. 여러분, 옆 테이블에 유연이 담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너무 갖고 싶다….”

“유죄 님은 내일 표 있으시니까 아침부터 굿즈 줄 서세요.”

복쑹은 개인형 맞춤 컨설팅을 해 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복쑹 님은 오늘 남동생분이랑 같이 보시는 거예요? 동생분도 데이즈 팬?”

“네. 민성이 최애예요.”

“남팬은 보기 드문데 신기하다.”

“그렇죠. 그런데 언니, 이제 줄 서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벌써?”

“스탠딩은 원래 좌석보다 빨리 들어간대.”

복쑹은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자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얼른 유죄 님이랑 같이 가. 나는 동생이랑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보내 버린 복쑹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후, 화장을 수정하며 곧 영접할 복숭아를 위해 꽃단장을 하는데, 마침 복쑹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호메 : ㅇㄷ?]

드디어 도착하신 멤버의 지인님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쑹이 일어나자 주변을 서성이던 하이에나들이 자리를 탐냈지만, 어떻게 잡은 자리인데 벌써 내어 줄 수는 없지.

입장 시간 전까진 무조건 이곳에서 죽쳐야 하는 그녀는 짐을 모두 올려 두고 동생을 픽업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동생아!”

“야.”

“아니, 오라버니!”

급격한 태세 전환에 근처에 있던 나잉이들이 두 남매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티켓은? 잘 챙겼어? 구겨지진 않았고? 친구가 뭐래? 끝나고 어디로 오라는 말 같은 거 없었어?”

복쑹은 고작 질문뿐인데도 ‘만난다’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너 날 기다린 게 아니라 티켓 기다린 거지?”

“당연하지.”

“아오. 이 진상.”

진심으로 한심해하던 동생은 자신의 핸드폰을 툭 던져 주었다.

“보든가.”

[민성이 : 조심해서 올라오고 공연 끝나고 보자ㅋㅋㅋ 매니저 형이 데리러 갈 거야]

[민성이 : 이렇게 생긴 사람 따라오면 됨]

[민성이 : (사진)]

남경과 브이를 하고 찍은 민성의 셀카였다.

[나 : 근데 민성아, 내 동생도 데려가도 되냐?]

[민성이 : ㅇㅇ 같이 와]

[나 : 고맙다. 좀 제정신 아니긴 한데 내가 잘 관리할게. 공연 준비 잘하고 이따 보자]

[민성이 : (손 흔드는 토끼 이모티콘)]

“꺄악! 시X! 존X 귀여워!”

“미쳤어? 다 쳐다보잖아.”

“어쩜 이렇게 자기랑 똑같이 생긴 이모티콘을 쓸 수가 있어? 이거 뭐야? 나도 살래!”

“야, 내놔. 보여 주는 게 아니었어.”

원래도 돌아 있던 복쑹의 눈이 오늘따라 더 섬뜩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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