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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68화 (268/340)

제268화

그러나 가방 안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뭐야. 없잖아.”

“뻥인데~!”

“햄스터, Nice!”

멤버들을 속이는 데 성공한 막내즈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했다.

“백도가 많이 컸네요. 저희를 다 속이고.”

“맞아요. 저도 성장했습니다.”

백야는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뿌듯해했다. 그러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준비한 멘트를 이었다.

“사실 무대에 올라오기 전에도 엄청 떨렸는데, 여러분 앞에 서니까 더 떨리는 것 같아요.”

백야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부끄러워하자 심장 통증을 호소하는 팬들이 속출했다.

“저희 진짜 준비 열심히 했으니까, 다치지 말고 무대 끝까지 함께 즐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민성을 건너뛰고 유연이 넘겨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데이즈 유연입니다. 저희의 첫 번째 콘서트 데이드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야광봉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는 VCR 영상에 대해 언급했다.

“영상 속 데이즈는 저희가 서로를 알게 되기 전의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저희 다 다른 교복 입고 있는 거 보셨나요?”

동시에 ‘네~’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청이 신기한 듯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러다 트럼프 카드를 받고 낯선 공간에 떨어지게 되는데, 저는 보는 내내 심장이 간질거렸어요.”

유연이 가슴께를 문지르자 청이 그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전광판에 잡혔다.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는데 저희는 오늘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고, 앞으로도 같은 추억을 공유할 사이잖아요?”

“그럼 저희는 어떤 관계죠?”

민성의 질문에 유연의 볼에 우물이 움푹 패며 예쁜 보조개가 지어졌다.

“음~ 사랑하는 사이?”

폭스의 발언에 함성이 쏟아졌다.

지한은 존경스럽다는 얼굴로 박수를 쳤고, 율무는 입을 틀어막으며 호들갑을 떨었으며, 백야는 턱을 떨어뜨리며 경악했다.

그 와중에도 청은 유연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유연이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청 씨, 왜요?”

“옷 안에 햄야 들었나?”

“너 지금 장난치고 싶지.”

“응.”

“네 차례 때 해. 그럼 오늘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가온 청의 차례.

청은 담백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I’m DASE Chung.”

팬들이 환호해 주자 부끄러운지 쑥스러워하던 그는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열심히 하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Thank you so much.”

한국어를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톤에 팬들도 환호했다.

“그런데 나 소원 하나 있는데.”

청이답지 않게 멤버들의 눈치를 보자, 민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엇이냐 되물었다.

“나잉이가 해 줘야 하는 거야.”

“뭐길래? 나한테만 먼저 말해 봐.”

“No.”

단호한 거절에 민성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하고 싶다는 거예요, 안 하겠다는 거예요?”

청의 모호한 태도에 유연이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율무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럼 당백이한테 말해~”

그러자 이번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백야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허리를 살짝 숙인 청은 백야에게만 들리게 양손을 둥글게 모았다.

속닥속닥.

그의 소원을 들은 백야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 해도 돼?”

“되지 않나…?”

반려동물의 허락에 집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도대체 뭔데?”

민성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백야의 어깨를 두드리자, 백야가 민성에게 귓속말해 주었다.

“푸핫!”

막내의 귀여운 소원을 들은 민성은 웃음이 제대로 터지고 말았다.

“한번 해 봐.”

“해도 돼?”

“응. 해.”

리더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청이 해맑은 얼굴로 외쳤다.

“나잉이 소리 질러!”

“꺄아아악!”

“오! 엄청나다!”

만족스러운 반응에 청이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온 민성의 차례에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안녕하세요. 데이즈 리더 민성입니다.”

“우와아~ 우리 리더~”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 그는 ‘너무 보고 싶었다’며 흔들리는 팬 라이트를 아련하게 바라봤다.

“저희가 다섯 달 만인 가요?”

“네에~”

백야가 호응해 주자 민성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안 보이는 동안 연습도 굉장히 많이 하고, 멋있는 무대를 많이 준비했거든요.”

“뭘 준비하셨나요?”

유연의 질문에 민성이 능청스레 대답했다.

“정말 많은데 딱 하나만 힌트를 드리자면, 최초.”

“최초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 시각 SNS에서는 타이틀곡과 연말 무대에서 했던 커플링 곡을 제외하면 모든 게 최초 무대가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럼 여러분의 데이드림, 백일몽은 이제 시작이니까요. 저희와 함께 달콤한 꿈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다음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 * *

[Error 409]

필승과 통화 중, 민성과 지한을 마주친 뒤로 시야에서 상태창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작고 반투명한 덕분에 시야를 가리진 않았지만, 현란한 조명에 특수 장치, 설치물, 댄서들까지 있는 정신없는 환경이다 보니 상당히 거슬렸다.

하필이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차에 들어올 건 뭐람.

첫 번째 섹션이 끝나고 VCR이 나가는 동안 데이즈는 다음 의상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역시 안 믿겠지…?’

두 사람에겐 게임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며 둘러댔지만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때마침 터진 코피와 저희를 찾으러 온 덕진 덕분에 상황은 그대로 마무리됐으나, 지한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도 했다.

‘힝.’

머리를 손질하던 백야가 입술을 삐죽거리자 실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아파?”

“네? 아니요. 눈이 침침해서….”

메이크업 때문에 눈을 비비지도 못하고 질끈 감았다 뜨기만을 반복했다.

“아까 또 코피 났었다며. 너 정말 괜찮겠어?”

“끄떡없어요.”

“아침보다 안색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실장은 무대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말해야 한다며 당부했다.

옅은 미소를 지은 백야는 ‘올라가야 한다’는 스태프의 외침에 지정된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어지는 무대는 뮤지컬 섹션.

VCR에서 꿈의 요정이 된 멤버들이 별과 달을 따다 예쁜 꿈을 만드는 내용이었다.

콘서트 포스터 촬영 때 입었던 파스텔 톤의 의상을 입은 데이즈는 무대 아래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3, 2, 1. 업.”

의 Inst 버전이 흘러나오자 민성의 리프트가 제일 먼저 올라갔다.

바닥에 앉아 커다란 선물 상자를 끌어안은 그는 뚜껑에 기대어 잠든 척을 하고 있었다.

상자는 VCR에서 멤버들이 꿈을 담던 상자와 같은 모양이었다.

“꺄아아아악!”

팬들의 함성을 듣고 잠에서 깬 민성은 하품을 하는 척 손바닥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하암~”

그러다 낯선 공간을 발견하고는 토끼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 여기가 어디….”

두리번거리는 토끼의 뒤로 두 번째 섹션의 무대가 드러났다.

영상의 마지막에서 멤버들이 꿈 배송지로 골랐던 아기자기한 방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데이지 꽃 리스가 걸린 문과 침대, 소파, 인형의 집까지.

“우리 집이 아닌데?”

민성의 어설픈 대사가 한 번 더 이어지자, 초록색 문이 열리며 유연이 등장했다.

“배달 왔습니다~”

“저 치킨 안 시켰는데요?”

“여기 나잉이 집 아니에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두 사람은 야심 차게 준비한 콩트를 천연덕스럽게 주고받았다.

“서울시 아이디구 데이즈동. 여기 나잉이 집 맞는데? 그쪽은 누구신데요?”

“저요? 저는 데이즈 민성이요.”

“가족분이세요? 그럼 대리 수령 가능해요. 여기 사인 좀.”

유연이 손바닥을 내밀자 민성이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척 사인을 하려 했다.

“아잇. 진짜.”

유연이 진심으로 놀라며 손을 빼자 민성도 웃음이 터졌다.

“왜요? 사인하려는데.”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웃음을 참는 듯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사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지한이 소파 등받이를 짚고 풀쩍 뛰어올랐다.

“안녕?”

묵직하게 울리는 낮은 저음에 함성이 쏟아졌다.

뒤이어 초록색 문이 한 번 더 열리며 이번에는 청이 나타났다.

그는 빈 햄스터 케이지와 잠자리채를 들고 나타나 팬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내 햄스터 없어졌다!”

햄친놈의 등장에 장내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햄야를 데리고 온 거냐며 팬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길 잠시. 카메라가 침대를 비추자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동그란 머리통 하나가 보였다.

“오! 찾았다! Shh.”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공연장은 금세 고요해졌다.

침대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간 청이 이불을 들추자 곤히 잠들어 있는 백야가 보였다.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잡는 척 시늉을 하던 그는 이내 바닥에 내려놓고 대신 허리를 굽혔다.

그리곤 카메라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백야의 볼에 입술을 붙였다 떼어 냈다.

쪽-

“꺄아아아아악!”

엄청난 함성이었다.

폭발적인 데시벨에 청을 제외한 멤버들이 놀란 눈을 떴다.

당연히 협의되지 않은 돌발 행동이었다. 순결을 뺏긴 개복치가 뺨을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 이, 미친놈이?!’

백야만큼이나 당황한 유연은 도망가는 청을 잡아 세우며 정색했다.

“야.”

그러나 뻔뻔한 새끼 늑대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Why. 나잉이가 시켰어.”

이어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탓에 청의 만행을 놓친 율무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왜! 왜! 무슨 일이야!”

햄친놈의 만행을 알 리 없는 율무는 멤버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 졸라 댔지만, 다들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의 당도 100% 복숭아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청이 무슨 짓을 한 것 같긴 한데. 그게 기습 뽀뽀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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