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화
“와 주셔서 감사해요.”
눈부신 미소에 복쑹은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아악! 마이 아이즈!
눈을 질끈 감은 복쑹이 허공에 팔을 저으며 허우적거리자, 은오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쪽팔려….”
“파핰! 너무 귀여우신데?”
“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지가 진짜 귀여운 줄 안다고.”
혈육의 내숭을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은오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기둥 뒤에서 끌어냈다.
“아, 좀 나오라고. 보고 싶어 했잖아.”
“그래도 내가 어떻게 민성이를….”
“뭘 어쩌라는 게 아니잖아. 하는 꼴 보니까 좋아하는 사람은 보지도 못하겠네.”
친구의 말에 민성이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누구 제일 좋아하시는데?”
“미, 민성이!”
“복야.”
선의의 거짓말을 한 복쑹과 이름을 헷갈린 은오 환장의 콜라보였다.
“푸하하! 복야?”
민성이 박장대소했다.
뭐랑 헷갈린 건지 대충 알 것 같았던 토끼는 눈물을 훔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백야를 찾는 것 같았다.
“저기 있네, 복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복야 뭔가 이상한…. 헉. 백야!”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은오가 경악했다.
“미안. 진짜 미안. 하도 복숭아라고 들어서 내가 잠깐 헷갈렸나 봐. 미안해서 어떡하냐.”
“괜찮아. 그러지 말고 우리 사진이나 찍자. 형, 저희 사진 좀 찍어 주세요.”
기분 좋게 웃어넘긴 민성이 덕진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복쑹과 은오의 사이에 섰다.
“백야랑은 제가 이따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아, 아니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제발. 전 이대로 먼지처럼 사라지겠습니다. 역시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제 주제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제가 너무 욕심을 냈습니다.”
“미친. 즉즉 흐르그 즈블….”
은오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성과의 대화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복쑹은 얼른 이 자리를 떠야겠다고 결심했다.
지인 백으로 대기실에 들어가는 것들은 다 찢어 죽여야 된다며 극대노하던 시윤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 말에 함께 동조했으면서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내로남불이 따로 없었다.
“안녕히 계세요, 민성 님. 생에 다신 없을 영광이었습니다.”
허리를 90도로 굽힌 복쑹이 민성의 어깨 너머를 슬쩍 훔쳐봤다. 마지막으로 최애의 모습을 눈에 담고 떠날 생각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그러던 그때, 율무가 백야의 옆으로 달려가며 살갑게 인사했다.
부부가 뒤를 도는 순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에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귤?”
그 순간 당황한 남자의 눈도 흔들렸다.
“…아버님?”
“당백이를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부터 받으세요!”
“미쳤어?”
냅다 무릎부터 꿇으려는 율무를 백야가 뜯어말렸다.
절을 하지 못하게 허리를 부둥켜안자 극성 맘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왜? 하지 마?”
“하지 마. 하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은밀하게 쥐어지는 솜 주먹에 율무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럼 안 해야지. 아유~ 귀여워. 우리 당백이 울어쪄요? 눈 부은 것 좀 봐.”
제우스의 인정을 받은 청은 그의 옆에서 ‘햄스터의 용맹함과 귀여움’에 대해 떠들고 있었는데, 율무가 백야의 목을 끌어안으며 볼을 비비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아악! 햄스터 찌그러진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모습에 백야의 부모님은 흐뭇한 미소를, 복쑹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X발. 심봤다.
* * *
기숙사로 돌아온 복쑹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백야랑 셀카도 모자라서 데이즈랑 단체 사진이라니.’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거리자 이불 더미가 펄럭댔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시X 미쳤어! 미쳤다고!”
작은 액정 위로 상큼한 분홍색 머리가 브이를 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옆으로 보이는 합성 같은 제 얼굴까지.
쿵! 쿵!
벌떡 일어난 복쑹이 벽에 이마를 박으면서 이상 행동을 이어 갔다.
먼저 기숙사에 도착해 있던 룸메와 유죄는 미쳐버린 복쑹을 경계하며 치킨 포장을 뜯었다.
‘자랑하고 싶다. 너무 자랑하고 싶어!’
그러나 자랑할 수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나 자신과 맹세했으니까.
비록 내로남불이 됐을지언정 눈새까지는 되지 않기로 한 복쑹은 조용히 사진을 잠금 했다.
‘보고 싶을 때마다 몰래 봐야지. 흑.’
마침내 이불을 걷어 낸 복쑹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잉-
그 순간, 세 사람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유앱 라이브 방송을 알렸다.
[DASE|제1회 받아쓰기(병아리 이모티콘)]
멤버들이 중간 멘트에서 약속했던 청의 받아쓰기 유앱 라이브였다.
“미친. 진짜 켰어?!”
첫 콘서트라 힘들었을 텐데, 잊지 않고 약속을 지켜 줬다는 사실에 세 사람은 감동받았다.
[청 : 나잉아! 우리 왔다!]
[지한 : 집에는 잘 들어가셨나요?]
[유연 : 아직 가고 계신 분들도 많은가 봐요.]
멤버들은 잠시 댓글 창을 보며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야 : 갓이즈 팬 사랑 최고? 아닌뎅… 나잉이가 더 최곤데.]
백야의 혼잣말에 댓글 창은 잠시 눈물바다가 됐다.
- 받아쓰기 빨리하고 자!
- 피곤할 텐데 유앱 켜줘서 고마워ㅜㅜ
- 우리랑 받아쓰기 내기하자!!
팬들은 자신만만해하는 청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율무만큼이나 승부욕이 있는 청은 좋다며 받아들였다.
[청 : 나는 당근히 100점이지!]
[민성 : 그럼 100점 맞으면 나잉이가 청이 소원 들어주는 거예요?]
[유연 : 100점 못 받으면 네가 나잉이 소원 들어주는 거고?]
- 우리가 이기면 막콘 회식 끝나고 라방 함만 켜줘ㅠㅠ
- 100점 못 받으면 막콘에서 다 같이 섹시 댄스~
- 상대방 입술 바라보기 30초!!!
- 귀여워서 미안해 해줘 제발
나잉이들의 욕망을 100% 쏟아부은 소원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백야 : 귀여워서 미안해?]
[율무 : 그치. 당백이는 미안해해야지.]
백야가 노려보자 율무는 허허 웃으며 받아쓰기 대회를 진행했다.
[율무 : 자, 그럼! 제1회 청이 받아쓰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문제는 총 5개.
개당 20점이며 멤버들이 하나씩 직접 출제할 예정이었다.
첫 번째 출제자는 민성.
민성이 시험 문제를 적은 수첩을 들자 청이 윙크를 하며 사인을 보냈다.
[민성 : 왜 저한테 자꾸 윙크를 하세요?]
[청 : 쉬운 거, 쉬운 거.]
[유연 : 어? 청탁도 부정행위 아닌가요?]
[율무 : 부정행위 적발 시 0점 처리됩니다~ 주의해 주세용~]
유연을 노려보는 병아리의 눈빛이 제법 매서웠다.
[민성 : 자, 그럼 진짜 첫 번째 문제 나갑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다.’]
[청 : 오!]
쉬운 문제에 청의 눈꼬리가 기분 좋게 휘었다.
[청 : Next!]
[민성 : 벌써 다 적었어?]
[청 : 당근 하지!]
- 너무 쉬운데???
- 잠깐만 타임! 문제 난이도 조정해 줘!!!
- 에이... 이건 너무 쉬웠다
- 받아쓰기 난이도가 어떻게 되죠? 초등학생 정도는 돼야지ㅠㅠ
문제 난이도가 너무 낮다며 의혹이 불거지자 율무가 해명에 나섰다.
[율무 : 나잉이 진정하세요~ 초등학교 2학년 문제입니다. 첫 번째라 조금 쉬웠던 것뿐이에요.]
두 번째 출제자는 지한.
예문은 ‘자리를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였다.
처음보다 길어진 문장에 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반대로 나잉이들은 흡족해했다.
[청 : One more. One more.]
[지한 : 다시 듣기 있어요?]
[청 : Hey! 야박하네!]
[율무 : 다시 듣기 찬스 원해요?]
[청 : 당근 하지! 지한 발음이 이상했어.]
갑작스러운 디스에 지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서 발음으로 아쉬운 소리를 들어 본 적 없는 저였는데. 지한은 내심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지한 : 자리를.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청 : Good! 이제 들리네.]
소임을 다한 지한은 이를 악물며 물러났다.
[청 : Next!]
[유연 : 신의 가호가 있기를.]
[청 : God bless you?]
청이 윙크를 찡긋하며 자신 있게 필기했다.
그사이 청의 시험지를 슬쩍 훔쳐본 백야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백야 표정ㅋㅋㅋㅋ 청이 벌써 틀렸나 본데?ㅋㅋㅋㅋㅋ
- 저거 백야가 애들 눈치 보거나 이해 안 될 때 나오는 표정이잖아ㅋㅋㅋ
[백야 : 다음 문제 드릴게요.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잘 받아 적던 청의 펜이 멈칫했다.
[백야 : …다른 거로 내줄까?]
- 안 돼 안 돼! 한 번 출제한 거는 못 바꿈!!
- 아싸~ 어려운가 봐
느낌이 좋지 않았던 백야가 슬쩍 고개를 내밀자 청이 온몸으로 막으며 경계했다.
[청 : No! 나 할 수 있어! 그리고 아무리 햄스터라도 보여 줄 수 없어.]
[백야 : 그래…. 파이팅.]
다시 듣기 찬스를 두 번이나 써서 겨우 적은 청은 마지막 문제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마지막 출제자는 율무.
율무의 문제까지 받아 적은 청은 자신만만하게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1. 선이 선희의 거짓말을 하다.
2. 자리를 빛 빚내주신 뇌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3. 신의 가오가 있기를!
4. 연애인 연예인의 사생활 치매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5. 일해라 절해라 간섭하지 마.
처참했다.
단 하나도 맞는 문제가 없었다.
[지한 : 조금 너무한데….]
[청 : No! 이거 모함이야!]
[율무 : 푸하하하!]
[유연 : 네가 적어 놓고 무슨 모함이야. 이건 잘 적어 놓고 왜 바꿨냐?]
[민성 : 선희는 누구니? 친구니?]
[청 : No! 조금 헷갈린 거야!]
[백야 : 우와…. 다 틀렸네….]
이렇게 빗나가기도 쉽지 않은데.
백야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청은 시무룩해졌다. 집사는 반려동물의 반응에 민감했다.
[민성 : 그럼 딱 한 문제만 더 해 봐. 이거 맞으면 100점인 거로 해요.]
청의 기가 너무 죽어 보였는지 나잉이들도 민성의 의견에 동의했다.
[민성 : 그럼 문제는 누가 낼래?]
[율무 : 제가 내겠습니다. 사회자니까~]
[민성 : 그래, 그럼.]
대신 너무 어렵지 않은 거로 내라며 민성이 은근히 눈치를 주었다.
[율무 : 자, 보너스 문제!]
마지막 문제가 출제되고.
잠시 후, 방송 사고와 함께 유앱이 황급히 종료됐다.
6. 율무가 허리를 고추 세웠다.
0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