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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75화 (275/340)

제275화

* * *

지한은 내심 당황했다.

‘쟤가 빌드 업 할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그래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지.

어떻게 연 입인데, 저 작은 머리통에 무슨 꿍꿍이가 들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한은 훌륭한 포커페이스를 선보이며 태연한 척 물었다.

“계속해 봐.”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바로 수긍하는 건 그것대로 기분이 나쁠 것 같아 백야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필승의 반응이 이상했던 거지 두 사람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불퉁한 표정을 짓던 개복치는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보여선 안 될 게 보여.”

“…너 귀신 보니?”

“형.”

지한이 이를 악물었다.

하악질에 겁먹은 토끼는 입술을 말아 물며 항복을 선언했다.

으응…. 난 그냥 닥치고 있을게.

물론 여기에는 자꾸 주어를 생략하고 말하는 백야의 탓도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귀신 말고. 게임에서 나오는 상태창 같은 거 있잖아.”

“응.”

“아니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사실 나는 원래 평범했어.”

백야는 막 제대를 한 20살 청년이었다고 한다.

사주를 본 뒤 저희가 광고하는 아이돌 게임을 설치했고, 눈을 떠 보니 이곳이라고 했는데….

시간은 고3 때로 돌아와 있었고, 남경을 만난 후부터 상태창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ID에 캐스팅된 뒤로는 온갖 퀘스트를 부여받았는데, 모두 아이돌과 관련된 내용이었으며, 목숨이 걸린 게임이다 보니 실패 시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죽는다고?”

“응….”

코피를 자주 쏟고 쓰러지는 것도 다 이 퀘스트 때문이라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죽는단다.

‘염병. 개복치야 뭐야….’

믿기 힘든 이야기에 민성이 마음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런데 마침 백야가 개밍아웃을 선언하는 게 아닌가.

“나 개복치야.”

“쿨럭! 콜록, 콜록.”

“괜찮아?”

갑자기 사레가 들린 민성을 본 지한이 한심한 얼굴로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 형은 똑 부러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갔다.

“괜, 콜록. 괜찮으니까 계속해….”

“아무튼 내 몸이 약한 건 다 패시브가 개복치라서 그래.”

“패시브가 뭔데?”

“음…. 타고난 속성 같은 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은 시스템의 농간이며 원래의 자신은 절대 이렇게 약해 빠지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했다.

“오…….”

“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두 사람은 조금 난감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게임 속이고 저희의 존재가 NPC쯤 된다는 사실을.

“…….”

여전히 구석에 몰려 있는 백야는 눈알을 굴리며 민성과 지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는 답이 없자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 진짜 안 미쳤어….”

하얗게 질리도록 짓씹은 입술.

울음을 참는 듯 떨리는 목소리.

파르르 떨리는 턱 끝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한백야.”

“됐어. 안 믿어도 상관없어. 씨이…. 말할 생각 없었는데….”

홧김에 말한 거긴 하지만, 비밀을 털어놨다는 사실에 후련하면서도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까 봐 무서웠다.

멤버들이 사라지진 않을까, 에러창이 사라지는 순간 페널티로 죽는 건 아닐까, 뒤늦은 걱정이 들었다.

정신이 불안해지자 백야의 신체가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어지러워진 시야에 순간 지한과 민성의 모습이 흐려졌다.

“허윽!”

“왜 그래?”

눈에 띄게 몸을 떨기 시작하는 백야에 지한과 민성이 당황했다.

‘혹시 이것도 그 패시브라는 거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제가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강요해서?

지한이 백야의 어깨를 조심스레 쥐며 눈을 맞추려 애썼다. 그러나 공포에 잡아먹힌 백야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한백야, 나 봐. 한백야.”

“얘 왜 이래? 몸을 왜 이렇게 떨어?”

당황한 민성이 화장실 문을 열며 청이라도 데려와야 하나 고민했다.

몸을 떨던 백야는 머리를 감싸 쥐며 웅크리려 했다. 공황이 온 듯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러려던 게 아니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백야.”

“말하지 말걸. 내가 말해서, 나 때문에. 흐으….”

숨소리가 거칠고 호흡이 불안했다.

애써 평정심을 지켜 낸 지한은 백야를 품에 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아, 아까 분명 사라졌는데. 흐려졌단 말이야. 나 때문에 너희가… 끄흑. 사, 사라지면 안 되니까, 그래서 말 안 한 건데. 흐으….”

“미안. 당황해서 그랬어. 말하라고 다그쳐서 미안해. 나 아무 데도 안 가. 네가 꺼지라 해도 옆에 있을 거니까 진정해.”

큰마음 먹고 이야기해 준 걸 텐데 반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너 안 미쳤어. 다 믿어.”

“거지, 거짓말… 끄흐….”

“진짜야. 네 말은 다 믿을 거라 했잖아.”

지한은 백야를 세게 안아 주었다.

갈팡질팡하던 민성도 백야가 조금 진정하는 것 같자 곁으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힘들게 얘기해 줬는데 미안해. 형도 네 말 다 믿어.”

“나, 난 이제 두 사람 잘못돼도 몰라. 흐으… 진짜 몰라.”

“그럴 일 없어.”

지한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 * *

눈이 퉁퉁 부은 백야는 메이크업도 하지 못한 채 아이스 안대를 하고 앉아 있었다.

“어제 울어서 부은 거라고?”

“으응….”

유연이 의심의 눈빛을 보냈지만 민성이 그렇다며 우겨 댔다.

옆에 앉아 있던 청은 백야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자, 어디선가 마시멜로 과자를 가져와 입 안에 넣어 주는 중이었다.

“햄스터, 아.”

“…아.”

우울했는데 그래도 단 게 들어오니까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우물거리며 초콜릿을 씹던 백야는 아침의 흑역사가 떠오르는지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하아….”

“햄스터 왜? 무슨 일이야!”

“처엉….”

“응!”

“힝. 나 너무 슬퍼….”

아침의 일이 감정을 제대로 건드렸는지 틈만 나면 눈물이 나오려 해 큰일이었다.

에러창은 여전히 그대로고, 이제 지한과 민성도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다.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발자님은 연락도 안 되고….’

비밀을 제일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젠 개발자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성과 지한도 얽혀 버렸으니까.

“끄흐….”

“Oh my god. 왜, 왜지? 과자가 맛이 없나?”

뿌애앵!

결국 눈물을 터뜨린 백야가 안대를 벗어 던지며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뭐야?”

무음 카메라로 백야를 몰래 찍던 율무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저런 애가 아닌데…?

백야의 급발진에 모두가 황당한 얼굴로 얼어붙었다.

“나… 나 때문인가?”

율무가 낭패 어린 얼굴로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망했다. 나 때문인 것 같아.”

율무가 손바닥을 짚으며 좌절하고 있는 와중,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지한이 뒤따라 일어났다.

“내가 가 볼게.”

“나도,”

“너희는 여기 있어.”

청도 뒤따라 일어서려 했지만, 따라오지 말라며 선을 긋는 바람에 차마 나설 수 없었다.

한편 무작정 복도로 뛰쳐나온 백야는 엄마를 잃은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복도에 스태프가 없기에 망정이지, 있었더라면 이상한 소문이 날 뻔했다.

“흐어엉.”

비상계단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백야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냥 슬펐다.

‘오늘 죽을 거 같아.’

그냥 막연하게 오늘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명이 떨어지고 말 거야.’

민성이 형이나 지한이 위로 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더 무서웠다.

‘괜히 말했어.’

지한이 무서워도 조금만 더 참아 볼걸, 후회가 됐다.

“망해써! 허어엉!”

망했다며 목 놓아 우는데 비상문이 열리며 지한이 들어왔다.

“한백야, 너 진짜….”

“다 틀렸어. 끄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뭐가 틀려. 내가 있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저게.

나야 여기서 죽으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끝이라고 소리치자 지한은 반응이 없었다.

그냥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그게 다야…? 네가 나 대신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게임 속이라며.”

자신을 달래려고 하는 말인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저 알 수 없는 눈깔은 도통 속내를 모르겠다.

훌쩍-

백야가 코를 먹으며 빤히 바라보자 지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NPC는 안 죽어. 죽일 수도 없고. 너 게임 많이 안 해봤지.”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백야가 소매를 들어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애들이 너 찾아. 가서 마시멜로가 슬퍼서 울었다고 해.”

놀리는 척 위로해 준 지한이 손을 내밀었다.

“가자. 콘서트 해야지.”

“지한아…. 나 근데 진짜 무서워.”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

백야가 입술을 달싹이며 손을 잡길 망설이자 지한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끝내 입술이 떨어졌다.

“퀘스트가 뜰 거라 그랬어.”

“퀘스트? 어떤 건지 물어봐도 돼?”

“돌발 이벤트라고 갑자기 사고 같은 게 나는 건데….”

이때 잠깐 에러창이 사라지며 시야가 깨끗해졌다.

“…어?”

“왜.”

근심거리 중 하나였던 에러창이 사라지자 백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삐이이-

[경고!]

[스□레스 지수가 ‘심□’ 단계입니다. 78%]

[<병약미> 패시브와 반응해 시^??지 □과를 일?Eu킵니다.]

이번에는 이명과 함께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 * *

같은 시각 텅 빈 공연장.

쿵, 챙그랑-

본무대의 조명 하나가 떨어지며 커다란 파열음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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