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79화 (279/340)

제279화

* * *

“우와….”

손에 나잉봉을 든 유경과 재현이 올림픽 공원에 등장했다.

“그러니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우리 백야를 보러 온 거잖아.”

“그렇지.”

“이 자식… 성공했구나.”

유경이 우는 척 미간을 짚었다.

집에서부터 나잉봉을 들고 온 두 사람은 지하철에서 꽤 많은 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티켓 잘 챙겼지?”

“당연하지.”

백야는 복숭아라며 분홍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두 사람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참이었다.

“야, 근데 이거 보이겠냐?”

재현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산 3천 원짜리 휴대용 망원경을 의심했다. 유경은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쯧쯧. 자고로 콘서트란 현장감을 느껴야 하는 거란다. 플라스틱 쪼가리에 의존할 생각하지 말고 분위기를 즐기란 말이야. 따라와.”

시계를 확인한 유경은 입장 시간이 다 되었다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2층 초대석에 앉은 두 사람은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단아를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 미친! 야, 단아…!”

“개새끼야, 목소리 낮추라고. 쳐다보잖아.”

마지막 날 콘서트인 만큼 초대석의 라인업 또한 화려했다. 연예인이 나타날 때마다 구역 전체가 술렁거려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러다 금세 어두워진 공연장.

팬들을 꿈속으로 초대하는 백야의 미성이 울리고, 자욱한 안개와 함께 성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 율무 콘서트 시작하자마자 솔로 댄브에서 단추 하나 날려먹음. 대흉근... 완벽... (유기농 율무 프리뷰.jpg)

└ 단추야!!! 믿고 있었다!!

- 백야 오늘은 가방에 진짜 뭐 넣어옴! 심지어 멘트할 때 하나씩 까 먹었어ㅋㅋㅋㅋ (어린이 멀티 비타민 사진.jpg)

└ 약국에서 산 건가? 아픈 거만 생각하면 맴찢인데 또 지 같은 거만 먹어서 귀여워 돌아버림

- 자기 하나도 안 아프다고 옷 안에 복근 숨어 있다는 복숭아ㅋㅋㅋ 근데 유연이가 콧방귀 낌 (동영상)

└ 유연 : 제가 봤는데 없어요

백야 : 야!

유연 : 말랑말랑한 게 딱 저희 조카 배

백야 : 아니야, 저 운동 진짜 열심히 해요오... (찡찡)

유연 : 열심히는 하는데 아기라서 그런가, 배도 아가 배예요

- 유연이가 자기는 복근 있다면서 티셔츠 들랑 말랑하더니 데이드림은 15세 관람이라 안 된다 함ㅠㅠ 존X 폭스ㅠㅠㅠ

- 스탠딩 오신 나율무1, 2씨 찾는 찐 율무ㅋㅋㅋ 삼당백으로 성공한 자리라면서 어깨 으쓱함 (동영상)

- 오늘 WANT ME 오프닝 백야 자는 척하다가 청이 오자마자 웍! 하면서 자기가 먼저 일어남ㅜㅜㅜ 귀여워서 오열

- 오늘은 키링 부르면서 민성 백야 손잡고 돌아다님ㅠㅠ 소동물즈♥

└ 그냥 돌아가면서 다 같이 백야의 키링이 되기로 한 거야?

- 야화 이거 지한이가 얼굴로 찢고 랩으로 찢고 춤으로 찢고 다 찢는 노래임?

[정보를 수집한 다음 자동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66% 완료)]

세 번째 섹션의 마지막 무대를 하던 중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는 퍼센티지에 조마조마하는데, 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숫자가 깜빡이며 잠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허윽!”

이제 막 곡의 1절을 넘긴 구간.

2분을 넘게 버텨야 하는 상황에 백야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격한 안무에 숨을 헐떡이는 듯한 모습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멤버들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백야에게 과호흡이 온 걸 제일 먼저 눈치챈 유연이 손을 잡아 주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손이 조금은 진정됐다.

- 백야 좀 이상하지 않아?

- ㅁㅊ 유연이랑 백야 손잡는 거 방금 본 사람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평소와 달리 유독 힘들어하는 백야의 모습은 눈에 띄었다.

원래는 백야의 솔로 파트인 부분도 민성이 화음을 깔아 주며 음정이 흔들리는 걸 커버해 주었다.

- 노래 잘만 하는데?

- 콘서트 3일차라ㅠㅠ 애기 체력이 많이 약하긴 한가보다

다행히 상태창의 숫자가 바뀌며 과호흡 증세는 완화되었다. 대신 또 코피가 흘러내렸다.

- 코피???

- 백야 코피 나는데??

빠르게 훔쳤지만 흐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렇게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를 2분이 지나고, 공연장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백야가 주저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호흡이 가쁜데 코로 숨을 쉬지 못하니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기분이었다.

“허억. 끄으. 끅.”

백야가 몸을 가누지 못하자 율무가 들쳐 업으려던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뛰어 올라온 스태프가 백야를 업고 내려갔다.

* * *

- 백야 코피 많이 나던데 걱정돼서 미칠 거 같아ㅠㅠ

- 몸이 그렇게 아픈데 내색 하나도 안 하고 무대 하고 있었던 거냐고...

- 지금까지 올라온 프리뷰 보니까 아픈데 참고 독기로 무대 하는 거 같아서 억장이 무너짐

- 백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평소보다 앵콜이 늦는데ㅠㅠ

- 그냥 안 올라와도 되니까 제발 큰일만 아니었으면 좋겠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2시간 30분.

데이드림은 앙코르 무대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원래라면 사랑해를 외쳐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다른 세 글자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백야! 한백야!”

백야가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본 유경과 재현도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그리고 다시 어두워진 공연장.

곧이어 본무대의 LED가 열리며 백야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불렀어요?”

창백하지만 귀여운 외모에 함성이 쏟아졌다.

를 시작으로 이어지던 앙코르 무대. 드디어 마지막 멘트 타임이 다가왔다.

멤버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콘서트 소감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조금 특별하게 청이부터 인사를 하자며 의견이 모아졌다.

전광판 가득 청의 얼굴이 잡혔다.

[청 : 태어나서 제일 행복한 3일이었어요! 여기에 나잉이랑 우리 멤버들만 있으니까 진짜 꿈같아. 콘서트 내일 또 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눈웃음을 치는 아기 늑대에 환호가 쏟아졌다.

행복하다는 말은 진심인 듯 청은 시키지도 않은 애교를 알아서 하고 있었다.

[민성 : 확실히 3번은 조금 짧은 것 같네요.]

[청 : 다음에는 10번 해!]

콘서트 횟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3층 좌석에서부터 시작된 연호가 점점 커지더니 멤버들에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벌칙! 벌칙! 벌칙!”

[유연 : 무슨 소리죠?]

[백야 : …벌 쥐?]

[율무 : 벌집이요?]

[민성 : 벌? 위이잉- 벌?]

[지한 : 여기 벌집이 있다고요?]

소리가 울리는 특성 때문에 멤버들은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청의 받쓰 벌칙을 말하는 걸 눈치챘다.

[청 : 나 어제 했는데? No.]

청이 고개를 느리게 가로저으며 거절 의사를 비췄다.

그러나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포기할 나잉이들이 아니었다.

[유연 : 나잉이가 보고 싶은가 봐요.]

[청 : 보고 싶어? 그럼 소리 질러!]

함성이 터져 나오자 청이 흡족한 얼굴을 했다.

[청 : 그럼 오늘은 나만 할게.]

[율무 : 벌칙은 뭐가 좋을까요?]

[청 : 햄스터! 나 뭐 해?]

청은 당연하다는 듯 백야에게 물었다. 백야도 당황해하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고민했다.

[백야 : 음… 공주님 안기?]

[청 : 그래!]

청이 좋다며 백야의 앞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유연이 재빨리 후드를 잡아당기며 행동을 저지했다.

다른 멤버들도 서둘러 마이크를 들었다.

[율무 : 잠깐! 잠까안~]

[지한 : 안 돼.]

[유연 : 잠깐만. 백도, 누구를 드는 건데. 너?]

[청 : 당근 하지!]

[백야 : 아니?]

엇갈리는 대답에 멤버들은 안도하고 팬들은 열광했다.

[청 : Why!]

[민성 : 백야는 안 돼.]

[율무 : 그럼 난 어때?]

[유연 : 그래. 형 안아.]

멤버들의 추천이 이어지자 율무가 양팔을 벌리며 환영했다.

[유연 : 날 가져!]

[청 : No! 무거워서 싫어!]

[민성 : 저기, 청 씨. 벌칙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원래 싫은 거 하는 게 벌칙이거든요.]

[지한 : 맞아. 한백야는 안 돼.]

백야의 상태가 나아졌다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 지한이가 애기랑 룸메라 그랬지? 결국 또양이 너도...

- 야 이 햄친놈아ㅋㅋㅋ 왜 콘서트에서 자꾸 사심 채울 생각만 하냐고ㅋㅋㅋㅋㅋㅋ

- 아픈 애는 좀 내버려 둬라...

- 햄친놈 청불허전

- 자꾸 이럴 거면 청청의 데이드림으로 콘서트 명 바꿔ㅋㅋㅋㅋ

온라인 생중계 댓글창에는 청의 속내가 빤히 보인다며 그를 귀여워하는 댓글과 은근히 비난하는 내용으로 나뉘었다.

[민성 :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네가 제정신이니?]

[유연 : 왜 자꾸 사심을 채우려고 그래요? 이거 불법이에요. 벌금 물어야 된다고.]

[청 : 나 돈 있어!]

벌금을 내고서라도 율무는 들기 싫다는 청의 대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한 : 떼를 쓰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율무 : 그럼 저 거기로 가면 되나요? 율무 간다~?]

율무는 발랄한 스텝으로 잔망을 부리며 다가갔다.

[율무 : 난 준비됐어.]

팔을 크로스로 포개어 안길 준비를 마친 율무는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청은 표정 관리에 실패한 얼굴로 율무를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눈대중으로 대충 그의 몸무게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청 : 나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율무 : 에이~ 나 별로 안 무거워. 74kg.]

[청 : 무거워!]

[민성 : 그럼 나 안을래? 쟤보단 가벼워.]

결국 율무 대신 민성을 택한 청은 입술을 앙다문 채 제자리를 세 바퀴나 돌았다.

- 토끼 신났어ㅠㅠ 손 흔드는 거 봐 (도래빗 프리뷰.jpg)

- 민성이 사실은 안기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ㅋㅋㅋㅋㅋ (동영상)

[청 : 아악! 무거워!]

청이 얼굴을 찡그리며 내려놓자 민성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해했다.

이어서 유연과 민성의 소감을 지나 백야의 차례가 다가왔다.

[백야 : 오늘 콘서트 재미있었어요?]

[백야 : 아까 무대 중에 제가 갑자기 코피를 흘리는 바람에 많이 놀라셨죠. 첫 콘서트인 데다 나잉이들 만날 생각에 잠을 설쳤더니 그런가 봐요.]

백야가 뻔한 핑계로 팬들을 안심시켰다.

[백야 : 사실 이번 콘서트는 작년 연말부터 준비하던 공연이었거든요. 그래서 준비 기간도 꽤 길었는데, 벌써 끝났다고 하니까 많이 아쉬워요.]

울컥하는지 백야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백야 : 그만큼 데이드림은 저에게도 꿈같은 3일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체력 관리를 좀 더 열심히 해서 걱정 끼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백야 : 비록 콘서트는 끝났지만 데이즈와 나잉이는 더 오래도록 함께할 거니까, 그리고 저희 곧 컴백할 거거든요. 엥? 생각해 보니까 금방 만날 수 있네요?]

[청 : 바보 햄스터~]

[백야 : 바보 아니야. 아무튼 와 주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그리고 너무….]

[민성 : 아이고.]

결국 호두를 만들며 울먹이는 백야에 민성이 안아 주었다.

[민성 : 울보네, 울보.]

[율무 : 원래 애기는 자주 울어요~ 알죠, 여러분?]

백야가 눈물을 글썽이자 전광판을 보고 있던 재현도 눈시울을 붉혔다.

“아, 왜 울고 난리야….”

재현은 부끄러운지 덤덤한 척 목을 가다듬으며 옆을 돌아봤다. 그러자 목 놓아 오열하고 있는 유경이 보였다.

“왜 울어 바보같이! 따흡. 이게 마지막도 아닌데… 크흑.”

[민성 : 저희 집 애기가 이렇게 여립니다.]

[율무 : 저 방금 생각난 게 하나 있는데 말해도 돼요?]

[지한 : 뭔데요?]

[율무 : 나잉이들이 당백이가 우는 걸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올라오기 전에 애기한테 오늘도 울 거냐 물었을 땐 분명히 “안 우렁!” 이랬거든요? 그런데 지금~]

[백야 : 아니야, 나 안 우렁!]

[민성 :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백야 : 진짜 안 운다니까?]

눈물이 쏙 들어간 듯 백야가 화난 눈썹을 했다.

“한백야! 한백야!”

공연장에 다시 한번 백야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야 : 고마워요. 그런데 나 진짜 안 울어써어….]

[청 : 맞아, 햄스터 안 우는데 왜 울리려고 해? 다 나쁜 사람들이야.]

[지한 : 눈이 빨개서 우는 줄 알았어요.]

부끄러운지 백야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유연 : 하려던 말 있었잖아요. 마저 하세요.]

[백야 : 그냥… 제가 많이 좋아한다고요.]

[유연 : 와~ 멘트가 많이 늘었어요. 그렇죠?]

[율무 : 정말 장족의 발전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오늘 오신 분들은 복숭아 과즙 맛을 못 보셔서 아쉽네요.]

[민성 : 방금 흐를 뻔했는데.]

[율무 : 쏙 들어갔어요. 어제까진 정말 과즙이 흘러넘쳤거든요.]

백야가 민망해하는 것 같자 율무가 농담을 꺼내 분위기를 환기했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백야 : 저는 끝이에요. 빨리 다음 분하세요.]

<천재 아이돌(5)> 퀘스트 완료까지 남은 곡은 1곡.

끝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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