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82화 (282/340)

제282화

놀란 지한이 방 안의 불을 켜고 샅샅이 뒤졌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건가 싶어서 침대 아래, 화장실, 책상 아래도 살펴봤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이불이 젖혀진 흔적도 없이 정말 사람만 사라졌다.

‘미친.’

짝-

지한이 자신의 뺨을 내려쳤다.

‘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가?’

그렇다기엔 몇 잔 마시지 않았다.

‘꿈인가?’

그사이 잠이 들었다기엔 내려친 뺨이 얼얼했다.

텅 빈 침대를 내려다보길 잠시. 지한은 언젠가 하랑이 했던 불쾌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백야 말이야. 수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내가 봤거든.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걸.’

그리고 바로 어제, 백야가 비밀이라며 했던 말들도.

‘여기는 게임 속이야.’

‘나 진짜 안 미쳤어….’

‘오류 복구 중이래! 그런데 조금 걸리는 게 있어. 완료되면 자동으로 다시 시작된다는 문구가 수상하단 말이지.’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지한이 주저앉았다.

민성이 형을 불러와야 하나?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인가?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멋대로 뒤엉켰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패닉이 온 것도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건 백야였다.

‘이대로 안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얼른 민성에게라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생각한 지한은 바닥을 기며 문으로 다가갔다.

[AM 4:00]

그 순간, 탁상 위에 올려 둔 전자시계가 4시로 바뀌며 백야가 다시 나타났다.

동시에 지한의 의식이 끊어졌다.

* * *

[v.1.4 업데이트 안내

- 오류 개선]

[오류 보상 도착!

이용에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 <스킬 (S)>

- 스타 포인트 100점]

잠에서 깨자마자 눈앞에 흐릿한 창이 보였다.

‘뭐지…?’

눈을 비비며 다시 떠 보자 보상이라는 단어와 함께 <스킬 (S)>가 제일 먼저 보였다.

“옼!”

너무 흥분한 나머지 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혹시 지한이 깰까 봐 뒤늦게 입가를 가려 보았지만 침대는 이미 비어 있었다.

역시 부지런함의 아이콘.

100%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닫기를 누르자 이번에는 다른 알림이 떠올랐다.

[<천재 아이돌(5)> 완료!]

[조명 이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R)>이 지급됩니다.]

‘됐다!’

보상으로 <스킬 (R)> 뽑기를 줄 정도면 대체 얼마나 거지 같은 퀘스트였던 걸까.

갑작스러운 오류에 위기가 들이닥친 줄로만 알았는데 기회가 될 줄이야.

운이 좋았다.

백야는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개발자님께도 알려야 하지만 그래도 지한과 민성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일어나기 무섭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한을 발견했다.

“지한아!”

놀란 백야가 한달음에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지한아. 한지한.”

어깨를 살살 흔들며 깨우자 금방 반응이 왔다. 바닥에 엎드린 자세가 쓰러진 모습이라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다.

“너 왜 이러고 있어? 여기서 잤어?”

지한은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찡그렸다.

“괜찮아?”

백야는 지한이 몸을 일으켜 앉는 걸 도와주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순간.

“…누구?”

지한이 백야를 경계하며 그가 잡고 있던 팔을 떼어 냈다.

처음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던 백야는, 이내 지한이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술 덜 깼어? 네가 장난치니까 신선하긴 하다.”

그러나 백야를 향한 무심한 눈빛은 여전했다.

방 안을 둘러보는 얼굴에서도 이곳을 진심으로 낯설어하는 게 보였다.

“지한아, 왜 그래에….”

백야가 손을 뻗으며 지한의 손목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찰싹-

단호하게 쳐 내는 손길에 백야의 손이 허공에 내쳐졌다.

미안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낯선 이의 손이 닿는 게 불쾌하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비슷한 타이밍에 방문이 열리며 멤버들이 나타났다.

백야의 비명을 듣고 달려왔는데, 마찰음과 함께 백야의 손이 내쳐지는 모습이 보이자 멤버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싸웠어?”

그렇다고 해도 지한이 저렇게 날을 세워 가며 손찌검을 할 애는 아닌데, 의아하다는 얼굴들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민성은 얼른 다가가 둘 사이를 중재했다.

“뭔데. 왜.”

“형은 아픈 애를….”

민성을 지나친 유연은 얼굴을 굳힌 채 백야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으응.”

손등이 붉었지만 별것 아니었다.

한편 민성의 무서운 얼굴을 본 율무는 지한에게 다가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 보려 애썼다.

“아이고~ 우리 지한이 자다가 굴러떨어졌어? 왜 여기 이러고 있어?”

율무를 발견한 지한은 조금 전과 달리 고분고분한 자세로 대꾸했다.

“나율무. 여기 어디야?”

“…응?”

예상 못 한 대답에 율무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갸웃거렸다.

청은 자다 깨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지한을 노려봤다.

“지한 술 취했나?”

저 조그마한 애를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그렇게 쳐 내다니. 집사는 악당 리스트에 지한을 1순위로 올리기로 결심했다.

“여기 어디냐고. 저 사람은 누구고.”

“음~ 뭐지?”

율무가 애써 웃으며 백야와 지한을 번갈아 봤다.

다른 멤버들도 당황스러운 듯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아! 알겠다!”

율무가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몰래카메라구나?”

연기를 잘하는 두 사람이라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며 율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제가 이런 걸로 속을 사람처럼 보이냐며 허리 위로 손을 짚었다.

그러나 백야의 심각한 표정도, 지한의 싸늘한 눈빛도 풀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야? 이거 아니야?”

쯧.

한심하다는 얼굴로 혀를 찬 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 보는 곳인데.”

“아침부터 뭐 하자는 거야.”

민성도 백야와 지한이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는지 정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 상실 뭐 그런 콘셉트니? 가지가지 한다 진짜. 놀랐잖아, 이것들아.”

민성은 그렇지 않아도 숙취 때문에 힘든데 이런 이벤트로 거들지 않아도 된다며 허공에 손을 저었다.

질 나쁜 장난에 어울려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리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지한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형이야말로 장난치지 마.”

민성이 뒤를 돌아보자 지한과 눈이 마주쳤다. 흔들림 없는 눈빛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진심이야?”

“어. 여기 뭔데? 어디냐고.”

지한은 슬슬 짜증이 나는 듯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Are you crazy?”

청은 진심이냐는 듯 물었고 율무는 턱을 떨어뜨렸다.

“백도. 형 왜 저래?”

유연이 백야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자 백야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일어나 보니까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호, 혹시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거 아닐까?”

“뭐?”

놀란 유연이 지한을 바라봤다.

“형, 머리 괜찮아? 여기 쓰러져 있었다는데?”

“내가?”

그러고 보니 바닥에 엎드려 있긴 했었다. 몸도 뻐근한 게 그 자세로 꽤 오래 방치된 듯했고.

대충 목을 돌려보던 지한은 딱히 불편한 곳은 없는지 괜찮다며 일어섰다.

“가자. 나 피곤해.”

묘하게 날이 선 반응에 멤버들은 확실히 그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지한이 잠깐만~ 뭐 어딜 가려고. 그러지 말고 나랑 방에 가서 이야기 좀 할까?”

싸늘한 시선이 율무를 향했다. 여기에 네 방이 어디 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만하라고 했음에도 끝나지 않는 장난에 민성도 얼굴을 찌푸렸다.

“마지막이야. 진짜 그만하라고 했다. 나와서 밥이나 먹어. 백야, 몸은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백야는 지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를 느꼈는지 지한도 백야를 돌아보았다.

“회사 사람? 새로 온 매니저님?”

지한이 이렇게까지 백야를 쌩깔 수 있을까?

아무리 장난이라도 이런 식으로까지 상대방을 무시할 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즉.

“너 진짜 모르겠어?”

“몇 번을 말해.”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는 걸 깨달은 율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크게 부딪친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기억 상실이 올 수 있나?

다른 멤버들도 율무와 마찬가지로 말문이 막힌 듯한 얼굴이었다.

‘설마.’

백야가 허겁지겁 알림함을 켜자 그동안 울렸던 알림들이 시간순대로 쌓여 있었다.

[v.1.4 업데이트 안내]

오류 수집이 완료되는 즉시 자동으로 다시 시작된다더니, 자는 동안 업데이트가 된 모양이었다.

지한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는데 혹시 그것 때문에 잘못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색이 된 백야가 민성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혀, 형. 형은 나 알지? 그치?”

“얘는 또 왜 이래.”

지한이 아는 내용은 민성도 알고 있었다. 민성의 팔을 잡은 손이 작게 떨렸다.

떨리는 손을 발견한 민성은 백야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일단 나와 봐.”

백야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 민성은 그를 침대에 앉히며 물었다.

“싸웠어? 사실대로 말해.”

“아니야, 안 싸웠어.”

“그런데 왜 저래?”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백야가 민성을 올려다봤다.

“형. 내가 콘서트 날 계단에서 했던 말 기억해?”

“무슨 말.”

“내가 여기 게임 속이라고 했던 거.”

[경고!]

[운영 정책을 위반하는 대화 시도가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적발되면 제재될 수 있습니다. (1/3회)]

“갑자기 무슨 게임 타령이야.”

처음 보는 알림에 백야가 잠시 멈칫했다.

제재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한의 상태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지한이랑 같이 들었잖아. 나 믿어 준다고 그랬잖아…. 퀘스트 때문에 내가 막 불안해하니까 형이 형 조명 다 가져가라고….”

“퀘스트? 뭔 소리야.”

민성은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반응했다.

“기억… 안 나?”

“네가 무슨 말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꿈꾼 거 아니야?”

“계단에서 내가 코피가 나서….”

“코피는 무대 하다가 터졌지.”

[경고!]

[운영 정책을 위반하는 대화 시도가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적발되면 제재될 수 있습니다. (2/3회)]

경고창이 한 번 더 떠올랐다.

지한의 장난에 저희 못지않게 놀란 거라 생각한 민성은 백야를 진정시켰다.

“싸운 거 아니면 됐어. 지한이가 장난이 심하네. 형이 이야기해 볼 테니까 넌 여기에 있어.”

백야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민성이 나가고 나서도 멍하니 앉아 있는데, 마침 유연이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백도. 형이 조금….”

방문 너머로 답답해하는 지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왜 여섯 명이야. 나야말로 묻자. 이거 몰래카메라야? 그래?”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백야는 유연을 밀치고 그대로 숙소를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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