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84화 (284/340)

제284화

* * *

유연과 백야는 남경의 불호령에 급히 숙소로 복귀했다.

지한은 멤버들과 매니저의 성화에 못 이겨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이상 소견 없음’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병원비를 수납하던 남경의 사진이 올라오며, 동시에 한 커뮤니티의 글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백야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것이다.

===========================

[이슈] 아이돌 극한 직업이더라

추천 750 반대 55 (+242)

(스태프 조끼 사진.jpg)

일단 인증 먼저 하고 시작.

이번에 남돌 콘서트 알바 하고 왔는데 우연히 가수를 보게 됨.

데이즈 지한이랑 백야였고 둘이 비상계단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음.

솔직히 처음엔 이상한 신음 소리 같은 게 나서 오해할 뻔했는데 백야라는 사람이 피 흘리고 있더라.

대화 들어보니까 아픈진 꽤 된 것 같았고, 코피 터진 거 같았는데 바닥에 떨어진 양 보니까 좀 많긴 했음.

백야가 자기 코피 난 거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로 해달라 그랬고, 지한은 화난 거 같아 보였음.

근데 내가 이렇게 말해도 구씹이라고 할 거지 너네?

그래서 사진 가져옴ㅎㅎ

(지한 백야 사진.jpg)

급하게 찍는다고 좀 흔들리긴 했는데 바닥에 빨간 거 저거 다 피임.

당연히 무대 못 할 줄 알았는데 공연 시작하니까 멀쩡히 올라오길래 솔직히 놀랐음.

성공한 연예인은 멘탈 보통이 아니라더니 멘탈 갑 인정.

근데 저러다 결국 무대에서도 코피 한 번 터진 거로 아는데, 팬들한테는 괜찮다고 하더라.

진심 리스펙ㅋㅋㅋㅋㅋ

나였으면 오늘 공연 못 한다고 배쨌다. 근데 쟤는 무대도 안 빼고 다 하더라.

+ 다른 구역에 있던 애 말로는 중간에 과호흡 와서 업혀서 내려왔다고 하던데, 그때 분위기 살벌했다 함.

몸 상태 저 지경인데도 콘서트 3일 다 뛴 거 보면 대단하면서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고 ㅉㅉ

저 날 춤 대충 춘다고 까는 사람도 있던데 쟤가 불치병 걸린 줄도 모를 거 아님ㅠ

※ 문제시 삭제

===========================

- 무대 올라오기 전부터 상태 안 좋았었나 보네

- 불치병이라고? 근데 코피를 저 정도로 쏟았는데 병원 안 가고 뭐 했음??? (바닥 캡처.jpg)

- 괜찮으니까 콘서트 뛰었겠지~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님

- 막콘날 오전에 병원 목격담도 올라왔었잖아. 링거 맞으면서 콘서트 한 건데 티 하나도 안 낸 게 레알 대단하긴 하더라

- 마른 것 봐;; 그냥 안쓰러움

- 뼈대 자체가 얇고 말라서 (어깨 제외) 체력이 좋을 수가 없는 몸이긴 함... 병약미의 의인화

- 애가 많이 약한가 보네

- 뭐가 불쌍함? 저러고 시급의 몇천 배를 받는데

- 어쩐지 메이크업 한 걸 텐데 얼굴이 허~옇더라

- 그럼 시한부임? 개불쌍

- 소속사가 얘만 굴리긴 하더라... 다른 애들 예능 1개 할 때 얘는 3개 4개씩 나오더만

- 얘 백설이 아님?ㅋㅋㅋㅋ 가족사 개잼인데ㅠㅠㅠ 아프지 마

- ㅁㅊ 이 정도면 활동 중지하고 당장 입원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님? 지금 컴백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백야는 당분간 이 방 다시 써야겠다.”

“으응….”

민성이 백야의 베개와 핸드폰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지한과 백야를 계속 한방에 둘 수는 없으니 당분간 그가 원래 쓰던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한이는?”

“자고 있어.”

지한은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잠이 든 참이었다.

지한을 제외한 멤버들은 청의 방에 모여 있었는데,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에 방 안이 삭막했다.

“초상났니? 분위기가 왜 이래.”

하나같이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저까지 동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민성은 애써 웃으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맛있는 거나 시켜 먹자. 남경이 형도 저녁쯤에나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기회는 지금뿐이야.”

배달 앱을 켠 민성이 청의 앞으로 핸드폰을 내밀며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보라 했다.

마지못해 받아 든 청은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더니 민성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웅얼거렸다.

“배 안 고파.”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청이 고개를 도리질 치자 작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 대부분 금방 돌아온다고 하니까 지켜보자. 지한이가 콘서트 준비하느라 조금 무리했었나 봐.”

지한은 건강에는 이상이 없지만 단기 기억 상실 판정을 받았다.

드물지만 갑자기 기억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넘어지면서 물리적인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뇌가 과부하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정적이 흐르길 잠시.

고개를 든 청이 우울한 얼굴로 백야를 바라봤다.

“햄스터는? 안 아파? 어제 코피 많이 났잖아.”

“안 아파.”

백야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털어놓은 비밀인데.’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물거품이 돼 버렸다는 사실에 속도 쓰렸다.

백야가 고개를 떨어뜨리자 멤버들의 시선이 모였다.

가뜩이나 몸도 좋지 않은데, 지한까지 저러니 마음이 어지러울 만도 했다.

“당백아 괜찮아~ 한숨 자고 일어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거야. 우리 그때 복수하자.”

백야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은 율무는 시무룩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애써 웃었다.

남경에게 혼난 뒤로 말수가 적어진 백야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여 자꾸만 신경 쓰였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는지 민성이 타이르듯 말을 걸어왔다.

“너도 좀 자는 게 어때?”

백야는 당연히 거절하려 했다.

잠은커녕 이대로 3일 밤도 새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유연의 대답이 조금 더 빨랐다.

“내 방에서 자.”

옆을 돌아보자 방문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는 유연이 시선을 마주쳐 왔다.

그는 눈썹을 까딱이며 말을 맞추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으응…. 좀 자야 할 것 같아.”

남경의 전화만 아니었더라면 백야는 지금쯤 유연과 핸드폰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햄스터, 여기서 자! 우리가 조용히 할게.”

청이 자신의 침대를 정리하며 흔쾌히 자리를 내주려 했다.

그러나 백야는 적당히 거절한 뒤 유연의 방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유연 : 지금 나가. 택시 불러 놨으니까 먼저 타고 있어.]

[유연 : 내 모자랑 마스크도 좀 챙겨 줘. 나는 5분 뒤에 나갈게.]

[유연 : 아]

[유연 : 지난번처럼 나가는 데 30분 걸리면 죽는다.]

문자를 확인한 백야는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방문을 열자 개복치의 콩알만 한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거실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지만 괜히 긴장된 나머지 저절로 까치발을 하게 됐다.

살금살금.

유연의 협박 때문이었을까.

최단 시간으로 현관을 돌파한 백야는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 *

“기사님 출발해 주세요.”

잠시 후 유연이 합류한 택시는 숙소를 벗어났다.

“어떻게 나왔어?”

“물 떠 온다 하고 바로 나왔어.”

“그런데 우리 혼나는 거 아니야? 민성이 형한테는 말할 걸 그랬나 봐.”

“말하면 퍽이나 잘 다녀오라 하겠다.”

“그래도….”

“됐어. 내가 대충 쪽지 써 놓고 나왔으니까.”

그 시각, 방에서 물 셔틀을 기다리던 멤버들은 5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유연에 의아함을 느꼈다.

“어디서 물을 길어 오나…. 왜 이렇게 안 와?”

기다리다 지친 민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앉아 ‘단기 기억 상실에 좋은 음식’을 검색하던 율무가 고개를 들어 민성을 올려다봤다.

“화장실 간 거 아니야?”

“있어 봐. 갑자기 느낌이 안 좋아.”

거실로 나간 민성은 부엌에 유연이 없는 걸 확인했다.

화장실도 비어 있었다.

“이런, 씨.”

불길함을 감지한 민성은 곧장 유연의 방으로 달려갔다. 당연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백야도 보이지 않았다.

백야 대신 놓여 있는 건 사슴 인형과 그 위에 붙은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이었다.

[저녁 전까진 돌아올게

전화해도 안 받음♡]

사인회 덕분에 하트를 붙이는 게 습관이 된 유연은 간단한 메모를 적을 때도 무의식중에 하트를 그리곤 했다.

그려 놓고 아차 싶었지만, 쪽지를 다시 쓸 시간이 없었던지라 그대로 숙소를 빠져나왔는데. 이 하트가 민성을 더욱 열 받게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포스트잇은 토끼의 손안에서 무참히 구겨졌다.

“이 새끼들 돌아오기만 해 봐.”

민성의 분노를 목격한 청은 숨을 죽인 채 오들오들 떨었다.

* * *

금용 고등학교.

학교 앞에 내린 유연과 백야는 ‘교내 외부인 출입 금지’ 천막이 걸린 입구를 올려다봤다.

“이런 게 있었나? 원래 아무나 들여보내 줬는데…?”

데이즈 백야의 모교라는 소문이 나면서 극성팬들의 무단 침입이 여러 번 발각되자 학교에서 내린 조치였다.

예전에는 없던 보안 부스까지 설치해 놓은 걸 보면 그냥 들어가긴 힘들 것 같았다.

“개구멍 같은 거 없냐?”

“모르겠어.”

그런 건 지각 많이 하는 애들이나 아는 거지. 학교생활에 성실했던 모범생은 알 리 없었다.

‘들어가야 하는데….’

과거로 돌아온 백야가 제일 먼저 눈을 뜬 곳은 학교였다.

지금 와서 찾기엔 많이 늦은 감이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교실 어딘가에 핸드폰이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교무실 분실함에 보관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냥 들어가자. 이름 밝히고 당당하게 핸드폰 찾으러 왔다고 하면 되지.”

“안 돼!”

“왜?”

“여기에 없으면 다른 데 또 가 봐야 한단 말이야. 벌써부터 우리의 행적이 노출돼선 안 돼.”

유연은 이미 민성에게 들켰을 텐데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민성이 먼저 회사에 고자질하진 않을 테니, 남경에게 잡혀가지 않으려면 백야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따라와 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연은 백야를 데리고 한곳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데?”

“학교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어차피 마음 편히 돌아다니려면 지금 옷보단 교복이 더 낫겠지.”

유연이 향한 곳은 학교 앞 상가 단지에 위치한 중고 교복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노년의 사장님 부부가 두 사람을 반겨 주었다.

“학생이에요?”

“네. 금용 고등학교요.”

이곳에서 금용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학생 머리가 그게 뭐냐’며 사장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확실히 두 사람의 머리는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상당히 눈에 띄는 색이었다.

모자를 쓰고 나온 유연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백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리 와.”

“또 어디 가는 데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