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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85화 (285/340)

제285화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상가 2층의 오래된 미용실이었다.

“염색하자고? 안 돼. 그럼 우리 진짜 죽어.”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잠자코 따라오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 유연은 디스플레이용 가발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이건 좀….”

버섯 같은데.

잠시 후 백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눈썹을 가리는 일자 앞머리에 가지런한 생머리.

뿔테 안경만 쓰면 옛날의 한백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귀여운데.”

“좀 바보 같지 않아?”

“잘 어울린다니까. 아님 내 거랑 바꿀래?”

남성용 가발을 백야에게 양보한 유연은 단발 기장의 여성용 가발을 착용할 예정이었다.

저건 더 안 되겠는지 고개를 도리질 치자 유연이 피식 웃어넘겼다.

“둘 다 너무 잘생겼다~ 금용고 다녀요? 아이돌 연습생 하는 친구들인가?”

“네.”

“어쩐지~ 너무 잘생겼더라. 예쁜 학생도 여기 앉아 봐요.”

백야는 가발을 착용하는 유연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씌워 놓고 보니 원래 머리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마네킹에 씌워 놔도 거지 같던 걸 200% 소화해 내는 사기적인 얼굴에 사장님도 박수를 쳤다.

“브라보~!”

미용 인생 30년 만에 이런 비주얼은 처음 본다며 사장님께서 박수를 치자, 백야도 따라 치며 감탄했다.

“우와~”

“너는 왜 치는데?”

사장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백야의 반응이 어이없던 유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잘 어울려. 너 나중에 이 머리 꼭 해라. 팬드, 아니 나잉이가 좋아할 것 같아.”

“어머~ 나인이가 여자 친구?”

“네. 뭐….”

유연의 얼굴에 감명받은 사장님은 도전 의식이 불타올랐는지 약간 손을 봐주겠다며 가위를 집어 드셨다.

그리하여 훈훈한 고등학생으로 거듭난 유연과 백야.

두 사람은 다시 교문으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인지 교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잘됐네. 어디부터 갈까?”

“교실부터 가 보자.”

조금 전까진 유연이 앞장섰다면 이번에는 백야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교실로 향하는 백야와 달리, 유연은 한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여유롭게 걸었다.

“빨리 와.”

“저기가 급식실이야? 와~ 쟤 진짜 빠르다.”

“지금 그게 중요해?”

“저번에 왔을 때 구경 못 했단 말이야. 여긴 음악실이 어디야? 무용실 같은 건 없지?”

“…너 놀러 왔어?”

걸음을 멈춘 백야가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봤다.

“미안. 신기해서.”

“빨리 따라와.”

“알겠어.”

백야는 유연이 다른 길로 새지 못하게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저기야.”

두 사람은 무사히 교내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내빈용 슬리퍼도 야무지게 챙겨 신은 백야는 3-2 팻말을 가리켰다.

“가자.”

유연이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학생 무리를 마주쳤다.

태연한 유연과 달리, 백야는 화들짝 놀라며 잡고 있던 손목을 힘껏 당겼다.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 유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다.

“아, 왜!”

“사람, 사람.”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복도에는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마침 축구를 하러 나가는 길인지, 2반에 남아 있던 남학생 무리가 우르르 나오는 게 보였다.

“이 쫄보가 진짜.”

“너 얼굴 엄청 튄다고.”

“너도 장난 아니거든?”

“아니야. 네가 거울을 안 봐서 그래. 여기서 네 얼굴밖에 안 보여, 지금.”

뜻밖의 칭찬에 유연은 기가 차서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백야의 어깨를 그러쥐고는 부드럽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무, 뭐 하는…!”

당황한 백야가 벗어나기 위해 몸을 살짝 비틀자, 유연이 양팔을 뻗으며 벽을 짚었다.

“가만히 있어.”

계단 앞 복도.

두 남성이 마주 보는 자세로 붙어 있었다.

“미, 미, 미쳤어!?”

“가만히 있으라고. 삥 뜯는 척하는 중이니까.”

마침 경계하던 남학생 무리가 두 사람 곁을 지나가며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우우우~웩.”

“미친. 쟤네 뭐 하냐?”

“사귀냐? 얼레리 꼴레리~”

“쟤네 누구야?”

“몰라? 1학년 같은데.”

듣기 민망한 말들에 백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고 있길 잠시. 남학생 무리가 완전히 지나가고 나자 유연이 팔을 풀어 주었다.

“비켜! 이 미친놈아.”

“왜 내가 미친놈이야. 이게 도와줘도 난리네. 너랑 나랑 둘 다 튄다니까? 잡혀가기 싫다며. 그럼 얼굴 가려야 할 거 아니야.”

“누, 누가 삥을 이렇게 뜯냐고!”

“아. 이거 아니야? 드라마 보니까 다 이렇게 뜯던데.”

유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앞장서서 걸었다.

자신은 초조해 죽겠는데 주머니에 꽂은 손이며,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가 은근히 열 받았다.

“씨이….”

도도도 달려간 백야는 유연을 홱 밀치며 먼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넌 여기서 애들 오나, 안 오나 확인해. 알겠지?”

“내가 보초야? 너 은근히 나 부려 먹더라.”

“알겠어. 나도 나중에 네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게.”

“오케이. 접수.”

유연에게 당근을 약속한 백야는 청소 도구함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졸업한 지 2년이나 지난 후라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교실 구석구석을 뒤져 봤으나 얻은 건 먼지뿐이었다.

“백도, 누구 온다.”

“헉. 진짜? 가자, 가자.”

교탁 밑에서 기어 나온 백야가 유연의 등을 떠밀며 교실을 벗어났다.

“근데 넌 어디 쓰레기통에라도 들어갔다 나왔냐? 머리가 이게 뭐냐.”

유연은 틱틱거리면서도 머리에 묻은 먼지를 떼어 주었다.

“찾았어?”

“아니. 없어.”

“그럼 이제 어디 갈 건데.”

“교무실.”

“거기는 몰래 들어가기 힘들지 않냐? 네 핸드폰이 있다 해도 누가 들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분실물 보관함이라고 있어. 거기만 확인하고 나오면 돼. 이거 갖다 놓는 척하고.”

“그건 또 언제 챙겼대.”

백야는 3학년 2반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가자.”

동그란 뒤통수가 다시 한번 앞장섰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축 늘어진 어깨로 돌아오는 백야의 모습에 유연이 웃음을 삼켰다.

“없어?”

“응….”

3년이 다 돼 가는데, 있을 리가 있나.

유연은 높은 확률로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장단을 맞춰 주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분명 아무 이유 없이 저러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어딘데?”

“이번에는… 지하철?”

“거긴 좀 낫네.”

백야의 어깨에 팔을 두른 유연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이곳보다 보는 눈이 많아지기 때문에 노출의 위험은 올라갔지만, 그럴싸한 변장 덕분에 걱정되진 않았다.

“이러고 다니니까 진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인데.”

“넌 학교 다닐 때도 유명했다며.”

“뭐… 없진 않았지.”

유연이 빙긋 웃으며 보조개를 지었다. 본인도 본인이 잘생긴 걸 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우리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갈까? 너희 학교 밥 맛있냐?”

“놀러 왔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어째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 유연의 모습에 백야가 곁눈질로 흘겨봤다.

삐진 듯 얼굴을 찡그린 백야는 거침없이 교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본인의 위장 신분을 잊고 당당히 교문을 통과하려다 딱 걸리고 말았다.

“거기!”

두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자, 순찰봉을 든 경비 아저씨가 다가오고 있었다.

“조퇴야? 조퇴면 조퇴증 보여 주고 나가야지.”

순간 당황한 백야는 어버버하며 유연을 바라봤다.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게 어떡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반면 유연은 능청스레 주머니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는 척 대꾸했다.

“아~ 조퇴증이요.”

“그래. 보여 주고 가야지.”

움푹 팬 보조개가 상대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켰다.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로 경비 아저씨를 보던 유연은 복화술로 속삭였다.

“야. 튀어.”

“…어? 끄악!”

백야의 손목을 낚아챈 유연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잠든 지한은 꿈을 꾸고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낯선 천장.

지한은 그곳이 연습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분명 숙소였던 것 같은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상체를 일으켜 편한 자세로 앉은 지한은 이마를 짚은 채 한참이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두통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는데, 지한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백야를 찾는 것이었다.

‘자는 사이에 연습실로 옮겨 놓은 건가?’

보나 마나 율무가 옮겨 놨을 게 뻔했다.

‘그냥 깨우면 될 거를.’

지한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도 잠이 오다니.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고개를 털어 상념을 떨쳐 낸 지한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퍽 믿기 힘든 현상이라 지금은 백야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꿈이었을지도 몰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 없으니 꿈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상하게 정신이 맑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지한은 일단 연습실 문을 열고 나섰다.

‘밥 먹으러 갔나?’

연습 벌레들이 연습실을 비울 때는 화장실을 갈 때와 카페, 식당을 찾을 때가 전부였다.

이렇게 다 같이 비우는 경우는 식당일 확률이 높았으므로 지한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금방 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의심 없이 올라탄 지한은 층수를 누르며 벽에 기댔다.

‘핸드폰이라도 두고 가든가.’

그렇다면 이렇게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을 텐데.

초조한 마음과 달리 천천히 올라가는 숫자에 조금 짜증이 일었다.

그때, 뭔가를 발견한 지한이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정색했다.

[DASE : BAD LOVE]

엘리베이터 내부에 달린 스크린에선 처음 보는 의상과 콘셉트의 티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영상 속 데이즈는 다섯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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