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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86화 (286/340)

제286화

지한은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저런 콘셉트의 영상을 찍은 적이 있던가?’

기억에 없는 영상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한이 급하게 공간을 벗어났다.

백야가 아닌 그 누구라도 붙잡고 영상에 대해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어? 지한!”

그때 멀리서 손을 흔드는 청을 발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두운 색상의 머리를 하고 있던 그는 하루 사이 금발이 되어 있었다.

“너 머리가 왜 그래?”

난데없이 머리 색을 걸고넘어지는 지한의 말에 청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모.”

“원래 이 색 아니었잖아.”

그러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닫고 이내 질문을 바꿨다.

“엘리베이터에 나오는 영상 뭐야? 너도 봤어?”

“모?”

“Bad love. 그거 뭐야?”

“컴백 티저 말하는 거야? 오늘 공개됐대!”

“그게 컴백 티저라고? 이번 타이틀 야화 아니야?”

“야하? 나 야하다고?”

지한은 대화가 엇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한백야는?”

“누구?”

“한백야. 네 햄스터 어디 있냐고.”

자다 일어나더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해 대는 지한의 모습에 청은 조금 무서워지려 했다.

“지한… 혹시 미쳤나?”

“뭐?”

“내가 햄스터가 어디 있나.”

백야는 직원의 이름이냐며 되묻는 청의 대답에 지한은 그만 굳어 버렸다.

‘꿈인가?’

의문이 드는 순간, 지한이 자신의 뺨을 내려쳤다.

짝-

“Are you crazy?!”

청이 기겁하며 지한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나 얼얼해야 할 뺨은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꿈이라고?”

그렇다면 백야가 사라진 걸 보고 정신을 잃었다는 말이 된다.

한숨을 쉰 지한은 어서 이 거지 같은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됐어. 안 미쳤어.”

청을 떼어 낸 지한은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어, 어디 가는데? 나도 가.”

청이 눈치를 보며 쫄래쫄래 따라왔다. 아무래도 제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청청.”

“응.”

“우리 팀 몇 명이야?”

“다섯 명이잖아….”

회사 어디에도 백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 이런 개 같은 꿈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에 기분이 이상했다.

“Oh my god. 진짜 미쳤나 봐.”

안 들릴 거라 생각하는지 청은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 들린다.”

“헙.”

청이 입술을 말아 물며 핸드폰을 숨겼다.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좀 빌리자.”

청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겨 간 지한은, 자신의 머리 위로 쓰며 건물의 후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데!”

“누구 좀 만나러.”

“What?”

제자리에 멈춰 선 청은 안절부절못하며 핸드폰과 지한을 번갈아 봤다. 단체 방에 도움을 요청한 모양인데 멤버가 늦는 모양이었다.

청이 망설이는 틈을 타 건물을 나선 지한은 큰길로 향했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제우스 호텔로 향할 생각이었다.

‘꿈이라 해도 일단 찾아야겠어.’

그때 뒤에서 지한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한!”

늘 그랬듯 사옥 앞에는 소속 아티스트의 팬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꿈이더라도 저들의 눈에 띄는 순간 쫓기기만 할 것 같아 조심하려 했던 건데.

청이 지한의 이름을 크게 외친 덕분에 몇몇과 시선이 마주쳤다.

“지한! 어디 가는데!”

심지어 청은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 제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너 미쳤어? 이러고 나오면 어떡해.”

이러면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릴 텐데….

지한이 굳은 얼굴로 다그쳤다.

그러나 청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우리 인기 없어.”

“무슨 소릴….”

몰려들 팬들을 예상한 지한이 뒤를 돌아봤으나 조용했다.

이쪽을 힐끔거리며 웅성거리기만 할 뿐.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저거 다 컬러즈 보려고 모인 사람인데.”

“컬러즈?”

“지한, 오늘 진짜 이상한 거 알아? 컬러즈. 3월에 데뷔했잖아. 인기 엄청 많은데.”

컬러즈는 올해 데뷔한 ID의 신인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고 했다.

“우리도 저런 때 있었는데. 그치.”

그때 지한과 청을 가리키며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잘생기긴 개잘생겼네. 도대체 저 얼굴로 왜 못 뜨지? 푸시도 오지게 해 줬는데.”

“케미가 없잖아. 그냥 잘생기고 실력 고만고만한 애들 다섯 명 모아 놓은 느낌? 메보도 목 수술한 뒤로 성량 예전만큼 안 나오는 거 같고.”

“하랑 걔가 원래 데이즈로 데뷔할 뻔했다며? ID 나온 게 신의 한 수였네.”

“식스에이엠 노래 개좋아.”

달갑지 않은 이름에 지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진 모르겠지만,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꿈속이었다.

이번에는 완벽히 낯선 장소.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웬 사내의 뒷모습과 커다란 모니터가 여러 대 보였다.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꿈에 버려지다니….’

모니터에는 이해하기 힘든 영어와 기호들이 열을 이루고 있었다.

벽 위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외계인과 우주 사진. 산처럼 쌓인 테이크아웃 컵과 라면 용기, 빈 과자 봉지들.

‘누구지?’

남자는 과자를 집어 먹으며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만… 키보드 위로 음료를 엎어 버리고 말았다.

“아, 씨! X 됐다.”

벌떡 일어선 그는 휴지를 가져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몸집에 가려져 있던 중앙의 작은 모니터가 보였다.

‘한백야?’

그 안에는 교복을 입은 백야와 유연의 모습이 보였다.

지한이 가까이 다가가려던 순간, 자리를 비웠던 남자가 돌아와 모니터를 가렸다.

“에이 씨.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쏟아진 음료를 치우던 남자는 틈틈이 모니터를 확인하며 백야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뭐지?’

지한은 모니터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시야가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류는 또 왜 이렇게 많아? 미치겠네, 진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히스테리를 부리던 남자는 뒤돌아 책상에 걸터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드러나는 남자의 얼굴.

지한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천재 아이돌로 살아남기>의 핵심 멤버인 겜박스 개발자, 김필승.

제가 아는 얼굴보다 다크서클이 좀 더 짙고 머리도 길었으나 분명 그자가 맞았다.

* * *

지하철 출입구로 들어온 백야는 곧장 안내 센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백야의 목소리에 역무원이 작은 창을 열어 주었다.

“저 혹시 2호선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분실물 신고된 게 있을까요?”

“언제 잃어버리셨는데요?”

“그게… 2년 전?”

2년 전이라는 말에 분실물 기록부를 뒤지던 역무원이 행동을 멈추며 감탄했다.

“아이고~ 빨리도 오셨네.”

“하하….”

“그렇게 오래된 거면 아마 없을 텐데. 일단 여기에는 없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봐야 할 거예요.”

“홈페이지요? 어떻게요?”

백야를 힐끔 본 남자는 뒤에 서 있던 유연을 불렀다.

“거기요.”

“저요?”

“서울 교통 공사 홈페이지 들어가면 유실물 찾기라는 메뉴가 있어요. 거기 들어가서 잃어버린 날짜 검색하면 그맘때 들어온 분실물이 등록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찾아봐요.”

“아… 네. 감사합니다.”

백야는 두 사람의 대화를 멀뚱멀뚱 지켜봤다.

‘질문은 내가 했는데 왜?’라는 얼굴이었다.

“가자.”

“응.”

유연이 걸음을 옮기자 백야가 쫄래쫄래 뒤를 따랐다.

“근데 저 아저씨 왜 나한테 말 안 해 주고 너한테 대답해 주지?”

유연이 백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가지 머리에 세상 순진한 얼굴.

아마도 역무원은 백야를 몇 살 어린 동생으로 착각한 듯싶었다.

“그러게. 왜 나한테 말하지.”

말하면 백야가 싫어할 걸 알았기에 유연은 피식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역사를 벗어나 한적한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유연의 핸드폰으로 유실물 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언제쯤이라고?”

“줘 봐.”

유연의 핸드폰을 가져온 백야가 꼬물거리며 기간을 입력했다.

상세 분류를 ‘지하철’로 설정한 뒤 검색을 누르자 다섯 개 정도의 목록이 나타났다.

개중 핸드폰은 하나였다.

“헉!”

흥분한 백야가 게시글을 누르자 액정이 박살 난 구형 스마트폰 사진이 나타났다.

“이거! 이거 내 거야!”

흥분해 소리치자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앉아, 좀. 네 거 확실해?”

“응! 근데 씨이…. 액정 깨졌네.”

“케이스도 다 박살 났는데.”

“아니야, 이건 원래 이랬어. 여기 하트 스티커를 민지가 붙여 줬는데, 이거 때문에 검은 수염이 밀어서 넘어지는 바람에 깨진 거야.”

“검은 수염? 그 새낀 또 뭐야?”

자신의 핸드폰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생각 없이 뱉은 말들은 너무 TMI였다.

살벌한 눈빛에 단번에 쭈굴 모드가 켜진 백야는 아무튼 제 핸드폰이 맞다며 웅얼거렸다.

“너 맞고 다녔냐?”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해. 일단 빨리 찾으러 가자. 민성이 형 전화 계속 와, 지금.”

두 사람은 세 번째 목적지인 시청 유실물 센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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