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화
“저… 안녕하세요. 분실물 찾으러 왔는데요.”
백야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조회해 보고 오셨나요?”
“네.”
백야가 유연의 핸드폰을 건넸다.
화면 속 관리 번호와 습득 일을 확인한 직원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동료 직원을 소환했다.
“이거 2년 전 건데 아직 있어요?”
“2년? 최대 6개월이잖아.”
불안한 느낌의 대화를 주고받던 직원은 다시 백야를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습득물 보관 기간이 최대 6개월이라서요. 이건 2년 전 습득물이라 이미 폐기됐을 거예요.”
“네? 그래도 보관 중이라고 적혀있었는데요?”
“아마 실수로 삭제가 안 된 모양이에요.”
직원이 죄송하다며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백야의 눈썹이 시무룩하게 내려가자 유연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한 번만 확인해 봐 주시면 안 될까요? 검색되는 물품은 찾는 게 가능하다고 적혀있는데요.”
“아 그게… 아마 없을 텐데.”
“부탁드려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지만 눈매만 봐도 잘생김의 기운이 느껴지는 비주얼이었다.
유연의 얼굴에 마음이 약해진 직원은 다시 자리를 비웠다.
백야는 초조한 얼굴로 직원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어?”
그때 감탄사와 함께 사무실 안쪽이 술렁거렸다.
“이게 왜 있지?”
“잘됐다. 저 애 울 것 같던데.”
백야를 힐끔거리던 직원들이 얼른 가져다주라며 소곤거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아직 분실물이 있네요. 이게 어떻게 아직까지 있지?”
보통 6개월이 되도록 분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물건은 습득자에게 양여하거나 폐기된다고 했다.
“정말요?”
“네.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여기 와서 이것만 작성해 주시겠어요?”
그게 그렇게 기쁜지 폴짝거리며 좋아하던 백야는 얼른 직원의 앞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투명한 지퍼 백을 든 백야가 쪼르르 달려왔다.
“받았어? 근데 그거 켜지긴 하냐?”
“켜져야 하는데…. 얼른 숙소 가서 충전기 꽂아 보자.”
“근데 그거 알아?”
“뭐?”
“우린 이제 죽었어.”
유연은 부재중이 찍힌 통화 내역을 보여 주었다.
[민성이 형 (40)]
현실을 마주할 생각에 조금 겁이 나는지 백야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마, 맛있는 거라도 사 갈까?”
“더 열 받으라고?”
“그럼 어떡해. 그래도 빈손보단 낫잖아….”
“뭘 어떡해. 싹싹 빌어야지.”
가출을 끝내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띠띠띠띠, 삐리릭-
도어 록을 해제한 유연과 백야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알지? 최대한 불쌍한 척.”
“응.”
너는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면서 울기만 하라는 말에 백야는 노력해 보겠다고 답했다.
“한유연, 한백야.”
얼마 안 가 인기척을 들은 멤버들이 현관으로 다가왔다. 역시나 민성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한은 여전히 자는 듯 보이지 않았고, 율무도 표정이 좋지 않은 게 화가 난 듯 보였다.
“아예 나가서 살지, 왜.”
“잘못했어.”
“잘못했어….”
“말 안 듣고 너희 멋대로 할 거면 그냥 나가. 너네 마음대로 해.”
저 때문에 유연까지 혼나는 것 같아 백야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표정이 좋지 않은 게 느껴져, 차마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호두 알을 품은 백야의 눈에선 급기야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또르르(C)> 스킬이었다.
“해, 햄스터 우는데….”
“뭘 잘했다고 울어. 네가 애야? 너 울기만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아나 본데,”
이번에야말로 막내들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겠다고 마음먹은 민성이 독하게 내뱉었다.
그러나 아련한 눈망울과 마주치는 순간, 엄청난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미아네….”
“되, 되는 줄 아나 본데!”
“아나 본데, 모….”
반려동물이 혼나자 제가 혼나는 것처럼 울상을 짓던 청이 은근히 태클을 걸었다.
‘잘한다, 백도!’
유연은 조용히 응원했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백야는 상당히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또르르(C)> 스킬은 쿨 타임이 있어서 연속으로 쓰지 못한다는 게 단점이었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혀엉…. 진짜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만 봐줘.”
눈물을 쥐어 짜내듯 세게 깜빡이자, 속눈썹에 달려 있던 방울이 통통한 뺨 위로 톡, 떨어졌다.
<연기 웅덩이(C)> 덕분에 눈물 즙을 짜려 애쓰는 모습마저 불쌍해 보여 다행이었다.
“너, 너어는 진짜…!”
“진짜 잘못해써. 나 버리지 마아. 응?”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유연의 세뇌 덕분일까.
‘불쌍한 나’에 심취한 백야가 무릎으로 기어가 민성의 다리를 붙드는 바람에, 효과는 극대화됐다.
“나 쫓아내지 마아. 응? 나 갈 데도 없단 마리야아…. 히잉.”
졸지에 악당이 된 민성은 청과 율무의 경멸 어린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당백이 그만 일어나. 너 몸도 안 좋잖아.”
“미안해 율무야. 히끅.”
“허이고. 딸꾹질까지? 유연이 너도 그만하고 일어나.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 호온~나.”
“응. 미안.”
“저, 저…!”
말을 잃은 민성이 난감한 얼굴로 막내들을 바라봤다.
“형도 너희 걱정돼서 그런 거야. 알지? 컴백 앞두고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알아.”
율무가 피식 웃으며 유연의 어깨를 꾹 쥐었다 놓았다.
민성은 차마 백야를 다그칠 수는 없었는지 타깃을 바꿔 유연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디 다녀왔는데. 옷은 또 그게 뭐야?”
유연은 이렇게 될 걸 예상한 듯 준비한 답변을 내놓았다.
“백도 신경 쓰여서 방에 들어가니까, 애가 막 울고 있잖아.”
제가요?
백야가 황당한 얼굴로 돌아봤다.
“왜 우냐니까 아까 나갔을 때 지갑을 잃어버렸대. 근데 그걸 또 고등학생이 주워 갔다네? 그래서 받으러 갔지. 근데 또 외부인은 출입 금지라잖아. 그래서 위장 잠입한 결과랄까.”
“거짓말 같은데….”
“레알 진짜야.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 주신 거라 너무너무 소중한 거라는데 그럼 어떡해.”
부모님이라는 단어에 민성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해한다는 듯 인자하게 웃은 유연은 오히려 민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래 주었다.
“걱정 마. 찾았어.”
민성은 한숨을 쉬며 유연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
“네가 저놈 것까지 대신 맞아.”
“아!”
유연이 맞은 부위를 짚으며 억울해했다.
사고는 백야가 쳤는데 수습은 제가 다 하고, 혼나는 것도 저만 혼났다.
유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율무와 청의 품에서 귀여움 받는 백야를 노려봤다.
“그냥 내가 울 걸 그랬어.”
유연은 구시렁거리던 청의 곁으로 다가갔다.
“야. 지한이 형은.”
“계속 자. 안 일어나.”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자.”
지한의 방이 있는 쪽을 쳐다보자 율무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냥 자게 두자~ 많이 피곤하겠지.”
백야를 기억 못 하는 지금, 지한이 차라리 잠들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백야는 몰래 화장실에 숨어 필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 핸드폰 찾았어요!]
[개발자님 : 잘됐네요. 켜 봤어요?]
[나 : 아니요ㅠㅠ 맞는 충전기가 없어요.]
[개발자님 : 괜찮아요. 저한테 웬만한 케이블은 다 있으니까.]
[개발자님 : 혹시 잘 거예요? 잠깐 내려올 수 있으면 지금 핸드폰 가지러 갈게요.]
답장을 하던 백야는 잠깐 멈칫했다.
다시는 몰래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이번에 나갔다가 또 걸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나 : 저... 오늘 나간 거 걸려서 엄청 혼났거든요ㅠㅠ 숙소에 매니저 형도 와 있고.]
[개발자님 : 그럼 주소 알려줘요. 제가 올라갈게요.]
백야는 또 한 번 멈칫했다.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주소를 마음대로 알려 줘도 되나?’
그러나 고민은 금방 끝났다.
필승이 떠벌리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현재로선 유일한 아군이었기에 믿는 수밖에 없었다.
* * *
- 애들 바로 컴백하는 거 아니었나??
- 콘서트에서 선공개했으니까 이번엔 쇼케 안 하겠지?ㅠㅠㅠㅠ
금방이라도 컴백할 것처럼 굴던 데이즈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컴백 티저는 물론, 연습실 출근 목격담도 없었고, 홍보 예능을 녹화했다는 소식도 없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라곤 고정 스케줄이 있는 멤버들의 개인 활동과 백야의 시트콤 촬영 목격담이 전부였다.
‘그야 멤버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지한은 백야만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데뷔곡과 앨범을 제외한 노래는 아예 처음 들어 보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안무는 당연히 몰랐다.
그나마 아는 안무도 동선이 엉망이라 ID는 비상 회의가 열렸다.
“햄스터. 우리 이러다 컴백 못 하는 거 아니야?”
청과 백야는 연습실에 나란히 앉아 회의에 참석한 멤버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설마….”
“No. 옛날에도 이랬단 말이야.”
왜 두 사람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냐 하면 청 때문이었다.
생긴 것만 사납지, 마음은 한없이 여린 병아리가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티를 폴폴 냈기 때문이다.
“옛날?”
“백야 오기 전에.”
청은 데뷔조가 엎어질 뻔했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야. 우리 뮤직비디오 촬영도 다 했고, 리패키지 녹음 일정까지 나왔잖아. 남경이 형도 별일 없을 거라 했으니까 진짜 괜찮을 거야.”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 봤자 컴백이 조금 밀리는 정도이지 않을까.
최애의 위로에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던 청은 백야의 허리를 안으며 품에 파고들었다.
“안아 줘.”
“덩치도 큰 게. 네가 애기야?”
“No. Baby는 백야야.”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 걸 보니 눈물이 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것 같았다.
말없이 청을 안아 준 백야는 한 손으로 등을 토닥여 주었다.
‘개발자님이 성공하셔야 할 텐데….’
어젯밤.
백야는 집 앞으로 찾아온 필승과 복도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이 핸드폰으로 뭘 어쩌시려고요?”
“붙어야죠.”
“뭘… 붙여요?”
자칭, 타칭 천재 개발자는 이름 그대로 필승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해했다.
“백야 씨가 있는 서버를 역으로 추적해서 권한을 빼앗아 올 거예요. 업데이트 후부터 지한 씨가 이상하다 그랬죠?”
“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요. 어쩌면 원래 세계의 지한이가 아닐까 하는데….”
“409 에러는 아마 멤버분들 때문에 난 걸 거예요. 지한 씨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게 됐다는 걸 알고 관리자가 데이터를 초기화시켰을 가능성이 커요.”
“그럼 어떡해요? 예전의 지한이로는 돌아올 수 없는 거예요?”
백야가 울 것 같이 말했다.
“간단해요. 서버를 업데이트 전으로 돌리는 거예요. 물론 기록이 남아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긴 한데, 대부분 백업 데이터는 관리할 테니까 있길 바라야죠.”
필승이 백야의 머리 위로 손을 얹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봐요. 이래 봬도 살면서 실패란 건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