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화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할 게 있어요. 서버를 업데이트 전으로 돌리면 퀘스트도 리셋될 수 있어요.”
백야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돌려 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퀘스트는 어떻게든 막아 보죠.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뭐가요?”
“백야 씨가 하는 일에 멤버분들이 휘말리진 않겠다는 거요. 조명이 멤버분한테 떨어질까 봐 많이 걱정하셨잖아요.”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의 일부만 들었을 뿐인데 에러가 났고, 결국 해당 부분에 관한 기억은 소거됐다.
서버를 복구하고 퀘스트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멤버들이 다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네. 다행이에요.”
지난밤 대화를 회상하던 백야는 주먹을 꾹 쥐었다.
조명은 어떻게든 피해 보지 뭐.
* * *
- 데이즈 컴백 하반기로 미뤄짐
└ 엥 컴백 왜 미뤄짐?
└ 백야 건강 때문인 것 같던데
- ㄷㅇㅈ 멤 한 명 사생 때문에 정병 와서 미쳤다는 소문이 있던데ㅋㅋㅋㅋ
- [단독] 데이즈 백야, 불치병 진단으로 1년 선고받았다... 데이즈 완전체 활동 비상 (링크)
└ 이거 찐임???
- 아니.... 아니 시X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 깨물하트 시한부라고???
- 난 공식 올라오기 전까지 안 믿을 거야. ㅅㅂ 이거 진짜면 나도 따라 죽음
- 지금 시한부로 난리 난 분 남녀 아이돌 통틀어서 피부 하얀 거론 탑이었는데 걍 아파서 창백한 거였음ㅜㅜ
- 방송국에서도 몇 번 쓰러졌다던데, 생긴 게 예뻐서 병약미로 소비된 거지 일반인이었으면 걍 당장 입원해야 하는 환자였네
└ 얘 이번에 콘서트 중에 코피도 터졌었음. 병원 목격담도 이번이 처음은 아닌 거 같던데
- 백야 스케줄 솔직히 말도 안 되게 많았던 건 사실. 초반에 깨물하트로 인기몰이하면서 그룹 멱살 잡고 뛰었고, 지금까지도 갠활동 제일 많음
- 무주 때부터 애가 갑자기 처연해 보이고 부서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는데.... (무주 니트 백야 사진.jpg)
└ 이 사진 레전드였는데 이제 마음 아파서 못 볼 것 같아ㅠㅠㅠ
- 정병 와서 멤도 못 알아본다던데 그럼 치매임?ㅋㅋㅋㅋ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회사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공식 기사를 발표했지만 쉽게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 갑자기 하반기 컴백 예정? 원래 5월이었잖아
- 기사 찐인가 본데? 내 친구가 방송국에서 일하는데 데이즈 스케줄 조정하다가 불발됐다 그랬음
- 콘서트에서도 애들이 >곧< 본다 그랬는데....
- 오피셜 떴다. 해석해 줌
백야의 건강 이상설은 사실무근이다 = 백야가 원래 약하긴 하지만 우리도 갑자기 아플 줄은 몰랐다
데이즈는 하반기 컴백 예정이다 = 일단 컴백 미루고 머리 굴려 봐야 한다
- 백야 아파서 빠지고 새 멤버 추가 영입된다는 말도 있던데? 뮤비 다시 찍어야 해서 컴백 미뤄진 거랬음
ID의 대응은 가십 기사의 신빙성을 높여 주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덕분에 백야는 합법적 강제 외출을 하게 됐다.
“나가서 사진 몇 장 찍히고 한두 명 사인도 좀 해 주면 될 것 같은데.”
“진짜 나가요?”
“응. 병원이랑 약국만 아니면 다 돼.”
팀 내 인기 멤버 1순위와 합법적 외출이라니. 지원자가 속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햄스터랑 세트야! 우리는 막내니까!”
“무슨 소리야~ 사람 몰렸을 때 들고 튀려면 나랑 가는 게 제일 안전하지.”
청과 율무가 은근한 신경전을 벌였다.
민성은 지한이 신경 쓰이는지 숙소에 남는 쪽을 택했고, 이미 백야와 두 번이나 외출을 다녀온 유연은 양심껏 빠져 주었다.
“그냥 다 같이 나가면….”
“안 돼.”
한 명만 고르기 힘들었는지 백야가 협상을 시도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어차피 한 번으로 안 돼. 또 나가야 하니까 한 명씩 해.”
남경은 목격담 한 번으로 가라앉을 분위기가 아니라며 두 번의 외출을 약속해 주었다.
“그럼 오늘은 율무랑 나갈게요.”
“아싸아~ 드디어!”
율무가 무릎을 꿇으며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반면 청은 자신이 1번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뭔 세상씩이나야. 넌 내일 나가면 되잖아.”
유연이 혀를 차며 한심해했다.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냐는 듯한 얼굴은 분명 가진 자의 여유였다.
* * *
- 울 엄마 일하는 데에 백설이 왔다 갔대ㅠㅠ
키 멀대 같고 약간 까무잡잡한 남자랑 햄스터 간식이랑 톱밥 사 갔다 했는데, 키 크고 까만 사람 = 율무였음ㅋㅋㅋㅋ
(백야 율무 인증 사진.jpg)
└ 미친 어머니 성덕.....
└ 햄야 거 사러 갔었나봐ㅠㅠ
└ 둘이 햄스터 유리관 앞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 구경하다 갔대요ㅜㅜ 햄야 친구들이라고ㅜㅜㅜ
- 애기 아프다면서 저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야?
- 백야 내 눈에만 멀쩡해 보이나?
- 톱밥이랑 해바라기씨? 백야 여름 이불이랑 저녁밥 사러 나왔나 보네ㅠㅠ 귀여워 디져벌임
- 엥 근데 아프다는 사람이 저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 헐! 나 오늘 디마트 갔다가 연예인 봤어!!! 사인도 받음ㅠㅠㅠ 진짜 개 개 개 잘생겼고 성격도 좋으심! 나도 오늘부터 나잉이야
(백야 율무 사인.jpg)
└ 볼 캡 쓴 키 큰 남자분이 하얗고 작은 사람한테 자꾸 시식용 음식 먹이던데ㅋㅋㅋㅋ
└ 작은 사람한테 “맛있어?” 물어보고 고개 끄덕이면 물건 바로 카트로 직행ㅋㅋㅋ 젊은 사람이 시원시원하다고 시식 코너에서 인기 짱이었음
└ 초면에 죄송합니다! 키가 작고 복숭아같이 생긴 사람 안 아파 보이던가요?
└ 앗 혹시 아프신 분인가요? 너무 밝으셔서 전혀 몰랐어요ㅠㅠ
- 오늘 건대 디마트에 백설이 떠서 아줌마들 난리 남ㅋㅋㅋㅋ 이쁘장하니 귀엽게 생겼다고 자꾸 먹여서 볼 빵빵해져서 나감
- 백야 오늘 율무랑 데이트 요란하게 했네ㅋㅋㅋㅋ 대체 목격담이 몇 개야?
- 헐 나도 오늘 봤는데 애들한테 피해 갈까 봐 내일 올리려 했지... 근데 이미 소문 다 났길래 올려봄 (햄스터 구경하는 율무 백야 직찍.jpg)
└ 율무가 햄야 친구 한 마리 데려갈까? 했는데 백야가 햄야랑 멤버들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ㅅㅂㅠㅠㅠㅠ 귀여워서 대가리 깰 뻔
- 둘이 마트 안에 있는 네 컷 사진 찍고 갔다던데 제발 올려줘.....
이틀 뒤에는 청과 백야, 유경, 재현의 목격담이 올라오며 한 번 더 타임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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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데이즈 막내즈 목격담 (사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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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백야 사인.jpg)
12시에 샤브샤브 집에서 청이랑 백야 봤어요!
백야 친구들이랑 총 네 명이었고, 채소 뜨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 들려서 보니까 백야ㅠㅠㅠ
불편해할까 봐 아는 척 안 하려고 했는데, 자꾸 눈이 마주쳐서 백야가 먼저 눈치채고 말 걸어줬어요!
백 : 혹시… 나잉이세요?
나 : 네네! 저 진짜 팬이에요ㅠㅠ
백 : 감사합니다. (수줍)
친구분은 옆에서 역시 연예인이라면서 저희 계속 신기하게 쳐다보시고ㅋㅋㅋㅋ
근데 백야가 아무것도 안 담고 서 있길래, 나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런 줄 알고 얼른 비켜드리려니까 갑자기 “저기…” 하면서 부르는 거예요ㅜㅜ
나 : 네? (동공 지진)
백 : 저기… 이거 진짜 맛있는데. (고구마 치즈 떡 가리킴)
나 : 헉. 알죠, 알죠!
백 : 그리고 저거도 맛있고 저거도 맛있어요. (청경채랑 배추)
최애가 먼저 말을 걸어준다?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백야가 가리키는 거 다 주워 담음.
그니까 백야도 신나는지 계속해서 자기가 맛있게 먹은 거 알려 주길래 걍 다 퍼담음ㅠㅠㅠㅠ
사실 배불러서 마무리하려고 칼국수 면 가지러 간 거였는데, 애기가 맛있다는 거 다 담다 보니까 접시 두 개나 나와 가지고....
자리로 돌아가니까 친구들이 돌았냐고ㅎㅎ 욕까지 먹어서 더 배불렀음!
퍼 담은 건 다 먹어야 해서 억지로 먹었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었다ㅠㅠㅠ 내 생애 최고의 샤브샤브
혹시나 하고 진짜 용기 내서 사인 요청했는데 청이까지 데려와서 사진도 찍어줘서 진짜ㅠㅠ 이 글 쓰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음
아! 그리고 몸은 좀 괜찮냐고 물었는데 건강하대요!
백 : 저 아파 보여요? (눈 커짐)
나 : 네? 아니요?! 그냥 콘서트 때 코피….
백 : 아~ 무대 아래가 엄청 건조하거든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괜찮아요.
청 : 햄스터 고기 3인분이나 먹었어요! 신기록! (갑자기 신나서 자랑함)
나 : 우, 우와~ 정말요?
청 : 내가 계속 줬어! 내가 주는 건 다 잘 먹어요.
나 : 역시 햄친ㄴ, 아니 청이가 주는 거라… 하하….
청 : 당근 하지! 그리고 나 다시 햄스터랑 같은 방 써요! (끝나지 않는 자랑)
나 : 세상에! 너무 축하드려요~
청 : Thank you. (씨익)
백야랑 룸메 됐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ㅠㅠㅠ 청이 진짜 입만 열면 삐악거린다는 말이 뭔지 알겠고요ㅠㅠ
나 : 저 컴백 기다리고 있을게요.
백 : 감사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게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컴백하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팬싸 가고 말겠다고 결심함ㅠㅠ
사진은 제 얼굴 가리고 올려용!
(청 백야 인증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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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이 정도면 걍 팬싼데? 진심 부럽다.
- 애기 요즘 잘 돌아다니네~
- 아 미친 저기 지난주에 갔었는데ㅜㅜ 덕계못....
- 고기 3인분이 신기록이야? 샤브샤브 고기는 얇잖아... 햄야도 너보단 많이 먹겠다ㅠ
- 하긴 백야가 불치병이었으면 제우스가 저대로 내버려 두진 않았을 것 같음! 당장 병원에 입원시키고 1인실에 가둬 놨을 것 같은데
- 건강하다니 다행이다ㅠㅠ 나 진짜 처음에 기사 떴을 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 건강 이상도 아니면 컴백은 왜 밀림?
└ ID 새 남돌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거 때문일 수도?
└ 언제는 새 멤버라며ㅡㅡ
└ 그걸 믿음? 걍 일 못 해서 플랜 밀린 거
- 청이 다시 백야랑 방 써? 갑자기 자랑하는 거 개 웃기네ㅋㅋㅋㅋㅋ 안물이지만 궁금했어요, 감사합니다
계획대로 백야의 건강 이상설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들에겐 해결해야 할 커다란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노래부터…. 아니, 춤부터 해야 하나?”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된 지한과 합을 맞춰 보는 일이었다.
지한의 상태를 아는 이는 회사 내에서도 소수였고, 그들에겐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멤버들이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백야와 지한 사이의 어색한 기류까진 숨기지는 못했다.
- ㅈㅎ ㅂㅇ 싸워서 서로 말도 안 한다던데
- 오늘 사옥 출근길에 백야 넘어질 뻔했는데 지한 그냥 쳐다보고 마는 거 실화? (데이즈 출근길.gif)
- 청이 룸메 다시 백야라던데 싸워서 방 바꾼 거였나 보네
팬들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버려 두곤 있었지만 속상한 건 사실이었다.
‘힝.’
댓글을 읽으며 시무룩해하던 백야는 고민했다.
만약 필승이 실패하면 지금의 지한과 지내야 할 텐데, 자신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 보자!’
백야는 고민 끝에 새 학기 필승 아이템을 들고 찾아갔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저기… 지한아, 마X쮸 먹을래?”
“난 됐어.”
“으응….”
결국 대화는 한마디도 못 나눠 보고 돌아와야만 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내향인은 연습실 구석으로 다가가 찌그러졌다.
‘한지한 바보. 멍청이. 똥개.’
훌쩍.
개복치는 눈물이 찔끔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