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89화 (289/340)

제289화

* * *

한편 필승은 인생 첫 패배를 맛보는 중이었다.

핸드폰을 복구해 어찌어찌 앱을 실행하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게임이 접속되지 않았다.

‘회원 번호를 알아야 뭐라도 시도해 볼 텐데.’

시작부터 맞닥뜨린 난관에 당황하던 차였다.

[Error]

[Error]

[Error]

에러창이 뜨더니 갑자기 무한으로 늘어나며 화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쾅!

책상을 내려치며 이마를 짚은 필승은 화를 참는 듯 길고 깊은숨을 쉬었다.

지잉-

그때 핸드폰이 진동하며 미리 보기가 떠올랐다.

[백야 : 개발자님, 저쪽 지한이는 성격이 나쁜 것 같아요. 제 마X쮸도 안 받아 주고ㅠㅠㅠ]

[백야 : 꼭 고쳐 주셔야 해요ㅠㅠ 꼭이요]

백야의 연락이었다.

마X쮸면 저희 조카가 환장하는 과일 맛 캐러멜이 아니던가.

올해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친구를 사귀는 데 꼭 필요하다고 해서 세 상자나 사 줬던 기억이 났다.

‘얘도 몇 통 사 줘야 하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백며 든 필승은 의식의 흐름대로 마X쮸를 검색했다.

주소를 알고 있었기에 고민 없이 열 상자를 숙소로 보내 놓았다. 그리곤 다시 결심한 듯 비장하게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백야가 코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갑자기 전투력이 상승했다.

타다다다-

검은 화면 위로 어지러운 영문자가 빠르게 입력되더니, 시스템 알림들이 떴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필승은 코드를 뜯어보며 허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마침내 틈을 발견했다.

“됐다.”

그의 입꼬리가 빙긋 올라갔다.

* * *

“넌 왜 연습실 놔두고 여기에 있어?”

“몰라요.”

대환의 작업실로 도망 온 백야는 큐브 장난감을 만지며 소파에 누워 있었다.

곡 작업이 한창이던 대환은 백야가 신경 쓰이는지 뒤를 힐끔거리다가 이내 가까이 다가왔다.

도르르-

바퀴 달린 의자가 백야의 앞에서 부드럽게 멈췄다.

“싸웠어?”

“아니요.”

“그럼 아파?”

“저 아프냐는 말 금지예요. 믿기진 않으시겠지만 태어나서 제일 건강한 상태예요.”

“그럼 뭔데.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닐 테고.”

“형 보고 싶어서 온 거 맞는데.”

“거짓말하지 마.”

대환이 백야의 이마 위로 손가락을 튕겼다.

“아야.”

“지한이 때문이잖아.”

“알면서 왜 물어봐요? 가만히 보면 형도 성격 진짜 나빠요.”

“너 많이 컸다? 눈도 못 마주치던 게.”

삐죽, 오리 입을 만든 백야가 이마를 문질렀다.

대환도 떠도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지한이 미쳤다는 소문부터 인기 좀 얻었다고 연예인 병에 걸렸다는 직원들의 험담까지.

“근데 걔 진짜 미친 건 아니지?”

“혀엉!”

“장난이야. 성질내기는.”

백야가 윗입술을 씰룩이자 대환은 막대 사탕을 까, 입 안에 밀어 넣었다.

“궁상 그만 떨고 온 김에 가이드나 녹음하고 가라.”

“시러여.”

“응. 나도 싫어.”

들어올 때는 네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며 대환은 직접 녹음실 문을 열어 주었다.

조금 전까지 끄적거리던 가사지를 내밀자 백야가 투덜거리면서 다가왔다.

“이게 뭔데요. 부르면 저희 줘요?”

“하는 거 들어 보고.”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백야의 눈이 커다래졌다.

“진짜요?”

“빨리 들어가.”

늑장을 부리던 백야가 얼른 부스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보면대에 가사지를 올려놓으며 헤드폰을 끼려는데, 갑자기 상태창이 나타났다.

[업데이트 제거를 위해 시스템을 재시작합니다. (1초 전)]

‘업데이트?’

그러나 제대로 된 글자를 읽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이 기울었다.

쿠당탕-

넘어지기 직전, 보면대를 짚는 바람에 쇳덩이도 함께 기울며 백야의 몸을 짓눌렀다.

한편 대환은 잠시 한눈을 파느라 백야가 넘어지는 걸 보지 못했다. 소파 쪽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 때문이었다.

[발신자 : 개발자님]

“백야야, 너 전화 오는데…. 한백야?”

백야의 핸드폰을 집어 든 대환이 뒤를 돌며 부스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텅 빈 부스 안.

유리 너머 풍경도 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백야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대환은 콧방귀를 끼며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한백야.”

녹음실과 연결된 버튼을 눌러, 한 번 더 백야를 불러 봤지만 조용한 적막만이 맴돌았다.

장난이라도 치고 싶은 건지, 실소를 머금은 대환은 결국 장단을 맞춰 주려는 듯 녹음실로 다가갔다.

그러나 문을 열기 무섭게 바닥에 쓰러진 백야를 발견했다.

“한백야!”

넘어지면서 보면대에 긁혔는지 생채기와 함께 오른쪽 광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백야를 안아 든 대환은 일어서며 잠시 휘청거렸지만 금방 중심을 잡았다.

일단 소파로 옮긴 후, 그는 남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야가 갑자기 쓰러졌어.”

- 뭐?! 너 어디야. 백야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작업실.”

- 바로 갈게.

통화를 종료한 대환은 백야의 인중 위로 손가락을 갖다 대 보았다. 미약한 숨결이 느껴지는 게 죽은 것 같진 않았다.

‘숨은 제대로 쉬는데…. 얘 진짜 멀쩡한 거 맞나?’

백야의 건강 이상설을 처음 접했을 때, 대환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사람이 그렇게 코피를 자주 흘릴 일은 없으니까.’

다만 시한부라는 표현은 불쾌했다.

백야가 얼마나 이 일을 즐기고 있는지 알았고, 콘서트 때 보여 준 열정은 결코 작지 않았으니까.

구양과 함께 마지막 날 콘서트를 관람한 대환은 백야가 친구들과 얼싸안고 얼마나 울었는지도 보았다.

뭐가 그렇게 서럽냐고 물었더니, 자기 때문에 콘서트를 망쳐버릴까 봐 무서웠다고 말하던 놈이었다.

‘근데 진짜 죽을 날 받아 놓은 건 아니겠지?’

백야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약골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안색이 훨씬 안 좋아 보이긴 했다.

심각한 얼굴로 굳어 있던 대환은 남경을 추궁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벌컥-

그때 작업실 문이 열리며 남경이 나타났다.

“애는!”

“저기.”

소파를 가리키자 창백한 백야가 누워 있었다.

남경은 백야의 부어오른 뺨을 보고 경악했다.

“때렸어!?”

“미쳤어? 얘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근데 애 얼굴이 왜 이래!”

“놀러 왔다 그러기에 녹음이나 하라고 들여보냈더니 갑자기 쓰러졌어. 얼굴은 보면대에 맞아서 저렇게 됐고.”

“아 씨. 미치겠네.”

그렇지 않아도 지한과 불화설이 솔솔 나는 참인데, 얼굴까지 이렇게 됐으니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커뮤니티가 활활 타오를 게 뻔했다.

“근데 얘 진짜 아픈 거 아니야?”

“응. 의학적으로는 이상 없대.”

“…….”

“그 눈빛 뭐지? 왜. 병원 진단서라도 보여 줘? 그걸 공계에 올려야 사람들이 너처럼 의심을 안 할까?”

남경은 요즘 스트레스를 받아 탈모가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얘 잠깐만 여기 두자.”

“장난해? 빨리 데려가. 그래도 병원엔 가 봐야 할 거 아니야.”

“안 돼. 그리고 내가 봤을 때 이거 한두 시간 뒤면 일어날 거 같아.”

몇 년 사이 개복치 만렙이 된 남경은 백야의 낯빛만 보고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안고 나가잖아? 건강 이상설 다시 올라온다. 그럼 얘만 더 피곤해져.”

“형이 피곤해지는 거겠지. 그럼 왜 왔는데.”

“얘 상태 보려고 왔지. 일어나면 연습실로 보내 줘. 아무나 막 들여서 얘 여기 있는 거 보여 주지도 말고.”

그렇게 대환은 백야를 돌보게 됐다.

남경은 잠시 소파만 내어달라 했지만, 아픈 애를 두고 일을 하자니 자신이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져,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얘 병원에는 데려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대환은 남경이 너무하다는 생각을 차마 지울 수 없었다.

그때 백야의 핸드폰이 다시금 진동했다.

[발신자 : 데이즈 유연]

‘얘는 받아도 되겠지.’

전화를 받자 대뜸 어디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습 안 하냐?”

- 누구세요?

“대환이. 너 연습 안 하냐고.”

- 왜 형이 받아요? 둘이 같이 있어요? 아씨. 한참 찾았는데.

“남경이 형이 아무 말 안 해?”

- 안 했는데요. 어? 지금 왔어요. (오늘은 백야 없이 해야 할 것 같다.)

수화기 너머로 남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이 왜 그래야 하냐며 되묻자, 급하게 재녹음을 하게 됐다며 대환의 핑계를 댔다.

- 형. 백도 바꿔 봐요.

“싫은데.”

- 걔 지금 전화 못 받는 거죠?

눈치 하나는 귀신같았다.

“그냥 좀 잠들었는데 깨우기 그래서 그래. 어차피 얘 없어도 연습할 수 있잖아.”

- 또 코피 났어요?

“그냥 잔다니까.”

- 쓰러졌어요!? 아 씨. 걔 진짜 뭐가 문제지? 비타민도 잘 먹이는데.

유연은 속상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때 백야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또 다른 전화가 걸려 왔음을 알렸다.

이번에도 발신자는 개발자님.

벌써 부재중 통화만 일곱 통째였다.

“야, 근데 너 개발자님이 누군지 아냐?”

- 네. 왜요?

“이 사람 아까부터 계속 전화 오는 게 급한 일 같은데.”

유연은 필승을 떠올릴 때마다 찝찝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연습실을 뛰쳐나가며 말했다.

- 제가 갈게요.

잠시 후, 작업실 문을 노크한 유연은 거친 숨을 내쉬며 앞에 서 있었다.

“계단으로 왔냐?”

“백도는요?”

백야를 발견한 유연은 눈을 사납게 뜨며 대환을 노려봤다.

“얼굴 이거, 형이 그랬어요?”

“이게 사람을 뭐로 보고.”

제 이미지가 그렇게 쓰레긴가?

남경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유연에 대환은 조금 욱할 뻔했다.

“넘어지면서 보면대에 부딪혔어. 아, 왜 왔는데.”

내 사람에게만 따뜻한 대환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꾸했다.

“백도 핸드폰 주세요.”

“네가 뭔데.”

“와…. 형 방금 청이 같았어요.”

“야, 가져가. 가져가.”

청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게 못마땅했는지, 대환은 백야의 핸드폰을 가볍게 던져 주었다.

그러자 마침 다시 걸려 온 전화.

녹음실을 빌리겠다며 통보한 유연은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부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것들이 여기가 지네 숙소인 줄 아나….”

한 놈은 퍼질러 자고, 한 놈은 무단 침입에 불법 점거까지.

대환은 이 상황이 상당히 아니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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