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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이돌인데 패시브가 개복치-290화 (290/340)

제290화

[발신자 : 개발자님]

한편 백야의 핸드폰을 가져온 유연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 백야 씨? 다행이다. 전화를 너무 안 받아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어요.

“…….”

- 아무 일 없죠? 죄송해요. 제가 너무 집중하느라 바로 다운그레이드를 해 버렸어요. 쓰러진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돼서 전화한 건데.

백야가 쓰러질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에 유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애가 쓰러질 걸 알고 계셨다고요.”

전혀 다른 목소리에 필승은 당황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 백야 씨 핸드폰 아닌가요?

“맞는데요.”

- 누구시죠?

“한유연입니다. 끊지 마세요.”

필승은 저를 경계하던 소년을 기억해 냈다.

겨우 원래대로 돌려놨는데 유연이 다시 알아버렸으니 또다시 도돌이표인가.

필승은 제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 백야 씨는요?

“전화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요. 그쪽 말대로 갑자기 쓰러졌거든요. 뭐 알고 계시는 거죠?”

필승은 말을 아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답이 됐는지 유연은 만남을 요청했다.

“안 만나 주신다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 그러다 괜한 기사라도 나면 나보다는 그쪽이 더 손해일 텐데요.

“글쎄요.”

지난 콘서트 때, 멤버들은 백야의 매형에게 ‘백야와 관련된 일이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명함을 받았다.

필승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적당한 죄목은 제우스 법무 팀에서 알아서 붙여 주지 않을까.

한편 유연이 이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필승은 조금 난감해졌다.

- 백야가 알면 싫어할 텐데.

“괜찮아요. 그쪽보다는 나를 더 믿을 테니까.”

- 자신 있어요? 지금 백야 씨가 의지하는 건 그쪽보다 저 같은데요.

두 사람 사이에 은근한 신경전이 오갔다.

* * *

“키티~ 뭐 찾아?”

“햄스터.”

그 시각 연습실에서는 청이 소파 쿠션을 들어 보며 백야를 찾고 있었다.

“거기 누워 있었으면 애초에 보이지 않았을까?”

사실 율무도 백야가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어 본 참이었다. 그러나 통화 중이었다.

율무가 뭐라 하든 말든 꿋꿋이 정수기 뒤까지 살펴본 청은 곤란한 얼굴로 지한에게 다가갔다.

“지한.”

“응.”

“햄스터는? 어디 간다고 말 안 했어?”

햄스터?

지한은 잠시 고민했다.

‘숙소에 있는 햄스터를 말하는 건가?’

그러다 저에게 불량 식품을 권하곤 구석에 쪼그려 앉아 핸드폰을 하던 분홍 머리를 떠올렸다.

“핸드폰 하다가 나가던데.”

“어디? 어디 간다고 말 안 했어?”

“안 물어봤는데.”

기억을 잃은 지한은 남 일에 관심이 없었고, 낯을 지독하게 가렸다.

청은 그런 지한이 못마땅했다.

화난 듯 홱, 뒤를 돈 청은 발을 쿵쿵거리며 율무에게 돌아갔다.

뒤늦게 영혼의 짝꿍인 유연을 찾아봤지만, 전화를 받으러 나간 뒤로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직접 찾으러 나가야겠다 결심한 그때, 거울에 비친 지한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묵직한 소리를 울렸다.

쿵-

“지한아!”

사색이 된 율무와 민성이 달려가고, 청은 놀란 얼굴로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지한아, 한지한!”

“얘 왜 이래?”

“나, 나 아무 말 안 했어. 나는 그냥 햄스터 어디 있냐고….”

“네 탓 하는 거 아니야. 일단 남경이 형 불러.”

“으, 응!”

청이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 *

‘내가 왜 누워 있지?’

의식이 돌아온 백야는 온몸이 욱신거리고 얼굴도 따끔거렸다.

보통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땐 상태창이 제일 먼저 반겨 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업데이트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좀 들어?”

불투명한 상태창 너머로 대환의 실루엣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오류?’

확실히 정신이 번쩍 들긴 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던 백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오류의 여파인지, 머리가 핑 돌며 강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다시 자리에 누운 백야는 몸을 웅크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혀엉…. 저 머리가 너무, 우욱. 우웩.”

백야가 헛구역질을 하며 소파 아래로 미끄러졌다.

“야, 왜 그래. 어?”

“우욱.”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백야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말을 할 수 없음을 어필했다.

계속되는 구역질에 눈꼬리에 맺힌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토? 속이 안 좋아?”

대환이 급하게 쓰레기통을 건네주자 그제야 손을 떼고 고개를 박았다.

“아이 씨. 그러게, 병원 데려가 보라니까.”

대환이 책상 위에 올려 둔 차 키를 챙기며 녹음실 문을 열었다.

“야, 나와. 쟤 업어.”

“네? 저 아직 통화 중….”

유연은 그제야 쓰레기통에 얼굴을 박고 있는 백야를 발견했다.

대환은 자신의 버킷 햇을 분홍 머리 위로 씌우며 눈에 띄는 머리 색부터 가렸다.

잠시 후, 백야를 업은 유연과 대환은 비상계단으로 달렸다. 대환이 남경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이 형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야, 너 점심 뭐 먹었어?”

“얘 속이 안 좋다 그래서 밥 안 먹었어요.”

“나 마X, 쮸웩. 우욱.”

먹은 거라곤 마X쮸 하나가 전부라 더 억울했다. 백야는 계속되는 헛구역질에 장기가 올라올 것 같았다.

“형, 차 가져왔어요?”

“어. 뒷자리에 태워.”

세 사람을 태운 차가 급히 사옥을 빠져나갔다.

* * *

“급체에 영양실조입니다.”

헛구역질을 하느라 얼굴이 창백해진 백야는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그런데 뭐 하시는 분들이세요?”

“…네?”

모자와 마스크로 완전 무장한 세 사람은 확실히 수상해 보였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던 의사는 이들이 도피 중인 범죄자가 아닐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해서요.”

그러다 마스크를 벗은 대환을 보곤 의심을 거둬들였다.

의사는 조금 전에도 비슷한 환자를 보고 온 참이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는 다시금 근엄한 얼굴로 설명을 이었다.

“환자분 체중 관리하시느라 안 드시는 건 알겠는데, 이대로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뭐 드셨다고요?”

“마X쮸….”

“그런 거 말고 밥 드세요. 밥.”

“네에….”

하필 딸기 맛이라 위액이 붉은색이어서 피인 줄 알고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던가.

백야는 의사 선생님께 단단히 혼이 났다. 물론 보호자들도 잔소리를 피할 순 없었다.

“먹이세요. 무조건.”

“네. 감사합니다.”

링거를 다 맞으면 돌아가도 된다는 말에 유연이 고개를 숙이며 커튼을 살짝 열어 주었다.

인색한 폭에 멈칫한 의사는 이내 꽃게 걸음으로 틈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동안 대환은 10년 경력의 스킬을 발휘해 SNS에 올라온 목격담이 없는지 서치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결성된 조합이었지만 나름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하. 영양실조?”

“…….”

“마X쮸 먹고 급체?”

지한이 그렇게 된 뒤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할 말이 없는지 백야는 슬그머니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의 반 정도를 가렸다.

“귀여운 척하지 마. 안 통해.”

“그런 거 아닌데…. 미안.”

몸이 안 좋길래 당연히 시스템의 농간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정말 아픈 거라 백야도 나름 당황스러웠다.

딱히 올라온 글이 없음을 확인한 대환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백야를 바라봤다.

“너 몸 관리 잘 못 하면 오래 못 간다. 그것만 알아라.”

“네에…. 형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그래.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니까 이제 네 목숨은 내 거야. 그렇게 알고.”

“잠깐만요, 형. 그게 무슨 논리예요? 백도가 왜 형 거예요.”

“내가 살렸잖아.”

유연이 대환과 투닥거리는데, 갑자기 커튼 사이로 투박한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눈이 휘둥그레진 백야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외쳤다.

“손!”

바깥에서도 목소리를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손이 갑자기 커튼을 젖히려 했다.

당황한 유연과 대환이 놀라운 속도로 커튼의 접합부를 움켜쥐었다.

‘뭐야? 시X.’

‘기자 붙은 거 아니에요?’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데 이번에는 그림자가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연이 볼캡을 깊게 누르며 얼굴을 가리고, 대환도 벗었던 마스크를 끼며 외부인을 경계했다.

아직 링거를 맞으려면 30분은 더 버텨야 했다.

‘갔나…?’

조용해진 사위에 슬그머니 이불을 내린 백야가 눈만 빼꼼히 드러냈다.

‘야.’

‘빨리 안 올려?’

호다닥-

그러나 대환과 유연의 부릅뜬 시선을 맞닥뜨리곤 금방 얼굴을 가렸다.

조여 오는 긴장감에 백야는 이불 안에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나가서 이야기해 볼 테니까 넌 백야랑 같이 여기 있어.”

그사이 대환이 미끼를 자처했다.

그림자를 따라 반대편으로 다가간 대환이 온몸으로 마크하는데, 순간 그림자가 사라지더니 바닥에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 시X 깜짝이야!”

대환이 걸걸한 입담을 뽐냈다.

과연 기레기.

남다른 집요함에 유연마저 혀를 내두르는데, 마스크를 낀 얼굴이 어쩐지 익숙했다.

“…남경이 형?”

상대를 알아본 유연이 멍청한 얼굴로 되뇌었다.

“역시. 너희가 왜 여기 있어?”

한 박자 늦게 남경을 알아본 대환이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미쳤어? 형이야말로 왜 거기서 나와. 형이 무슨 개야?”

바닥을 기어 커튼 안으로 들어온 남경은 이내 얼굴 위로 흰 이불을 뒤집어쓴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얘는 누구야.”

손을 뻗어 이불을 들춰 보자 창백한 분홍 머리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서, 설마 죽은 건….”

남경의 얼굴이 백야만큼이나 창백해졌다.

대환이 어디서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하냐며 욱하는데, 백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 안 잤어!”

깜빡 잠이 들었던 백야가 시치미를 떼며 눈을 떴다. 그러다 남경을 발견하곤 뜨고 있던 눈을 더 크게 떴다.

“헉. 왜 여기 계세요?”

“야이 씨. 놀랐잖아!”

“죄송해요…. 그런데 형은 여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대환과 유연이 따로 연락하는 건 못 봤는데?

설마 자신의 핸드폰에 위치 추적기라도 달아 놓은 걸까. 개복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답에 세 사람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난 지한이 때문에. 애가 갑자기 쓰러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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